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723화 (714/1,590)

< 723화 원탁 회의(2) >

“…….”

“…….”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모습이었다. 몇몇 이들은 확실하게 또라이를 바라보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이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니지, 생각해 보지 않았을 리가 없지.’

정말로 인간의 개체 수를 조절하려는 게 목적이었다면 이렇게 합리적인 방법을 고려해 보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어떻게 봐도 평화로운 방법이다. 물론 걸리는 부분이 있기야 하지만, 극단적으로 말해 인류의 절반을 날려 버리는 것보다는 우리에게 이롭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후대의 인간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지만 뭐, 크게 중요한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1차적으로.

‘어차피 전부 개소리이기도 하고.’

2차적으로는.

‘실행된다 하더라도….’

일이 마무리된 이후에 수습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위쪽의 높으신 분들일 테니까.

이쪽이야 적당한 떡밥을 던지고 물기를 기다리면 그만이라는 거다.

물어도 그만 안 물어도 그만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물어주는 게 더 좋을 거라는 것은 부정할 여지가 없다.

어느 정도 피드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아직까지 무거운 얼굴을 하며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시야에 비친다.

‘뭐야. 너네 진짜로 생각 안 해본 거야?’

진짜로?

악독한 빌런 새끼들이 이 쉬운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잠깐 동안 자괴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아마 도덕적인 이유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이 새끼들이 나보다 도덕적 양심이 뛰어나서 고려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인간과 애초에 사고방식이 다른 게 가장 큰 원인일 것이고, 녀석들의 사고방식의 틀 안에 갇혀 있는 것 또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을 거다.

녀석들이 이미 인간에 대해 규정을 내렸다. 인간이 인간답게 행동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느끼지 않는다. 인간은 그런 동물이라 이미 결론을 내린 것이다.

끝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 후대를 남기고 자신의 지식을 전하며, 끊임없이 성장하면서도, 스스로를 파괴하는, 아름다운 반딧불이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규정 안에는 아마 인간들의 욕구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굳이 또 다른 이유를 찾아보자면….

‘예산 문제겠지, 뭐.’

상상도 할 수 없는 예산을 때려 박아야 했을 테니 말이다.

굳이 신성으로 환산하자면 이 거대한 신전을 서너 개 정도는 때려 박아야지 개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실행하자고 해서 간단하게 실행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아직까지도 아무런 피드백이 없는 상황에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 볼 수밖에 없었다.

세라핌은 생각할 것이 많은지 입을 열 것 같지도 않다. 쓰로누스 저 무능력 비둘기는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가장 먼저 발언권을 가지는 게 부담스러운 모양새.

원로들이야 사대천사들의 코멘트 이후에 노선을 정할 거고… 바람잡이를 해줄 도미니온스가 곧바로 입을 여는 건 위험하다.

아마 가장 먼저 입을 열 비둘기는….

“절대로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퍼랭이겠지.

“수도 없이 많은 차원에서,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재했다. 그들이 그렇게 설계되고 진화해온 이유가 있다. 욕구를 잘라 버린다는 것은 제대로 만들어진 건축물의 뼈대를 바꾼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어떤 부작용을 떠안을지 모른다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이 말이다.”

“갑작스럽게 바꾸자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내일 아침 세상이 변하도록 두고 보자는 것이 아니에요. 변화는 급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일어날 겁니다. 한꺼번에 모든 욕구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세대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변하게 만드는 겁니다. 후대의 후대, 후대의 후대를 걸쳐 점차적으로 일을 진행하면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변화하는 것도 모른 채로 서서히 변해갈 겁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새로운 행동 양식을 찾게 될 겁니다. 그게 진화예요. 그게 신인류입니다.”

“개소리로군.”

‘개소리긴 개소리지.’

“개소리가 아닙니다.”

“어떤 부작용을 떠안게 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멍청한 인간아.”

“그 부작용도 우리가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의도와 다르게 변화한다면 다시 다른 길을 열어주면 됩니다.”

“종국에 그들은 자손과 후대를 남기려는 욕구를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기를 정하면 되겠군요.”

“발정기를 만들자는 말이나 다름없어 보이는군. 인간은 짐승이 아니다.”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극단적인 예를 드린 것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케루빔 님의 생각에도 당연히 동의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

“기존의 방법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고, 결정을 내리는 것 또한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는 하나 된 과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결정을 내리고 함께 하기로 손을 모았습니다.”

“네가 생각한 일은 근본을 바꾼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전자의 선택지가 더 쉬운 길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

“아주 간단한 일이 될 겁니다. 병력들을 몰고 가 그들을 죽이고 대륙을 통제하면 되지요. 여러분들이 인간을 초월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종국에는 그 과업을 이룰 것입니다. 수많은 피와 희생으로 쌓인 탑 위에서 축배를 들겠지요.”

“매번 극단적인 예를 제시하는 화법은 여전하구나.”

“항상 최악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실제로 최악의 상황이 들이닥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

“다시 한번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케루빔 님의 말 그대로 제가 제안하는 길은 어려운 길이 될 겁니다. 신경 써야 할 일도 많고 수도 없이 많은 부작용을 떠안을지도 모릅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예산을 상회하는 신성을 소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피와 희생으로 얼룩진 탑 위에서 축배를 들지는 않을 겁니다.”

“…….”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갈 신인류처럼 우리 역시 변화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더욱더. 긍정적인 방향으로요.”

작게 손을 벌리는 액션 정도는 취해주자. 선거 운동에 나가는 정치인처럼 힘 있고 선한 목소리를 장내에 가라앉게 만들자. 개소리로 치부해도 상관없다.

아니, 이미 몇몇은 고려할 가치도 없는 사안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바람잡이가, 다른 말로 지지자들이 하나둘 생겨나면 개소리에도 힘이 실리는 법이다.

슬그머니 쓰로누스를 바라보자.

‘지지해 줄 거지?’

너 나한테 잘못한 거 많잖아. 다시 친해지고 싶으면 지지해 줘야 돼. 그렇지?

‘마지막 기회야.’

기립박수라도 쳐야지.

하지만 저 무능력한 새끼는 표정을 굳힐 뿐 다른 말을 하질 않는 것이 보인다.

오히려 이쪽의 눈치를 살살 보는 게 반대표라도 던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도미니온스 역시 슬그머니 대중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 아무런 호응이 없으니 뭔가 반응을 끌어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쓰로누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게 더 어울리는 표현이리라.

“뭔가 다른 의견은 없습니까? 쓰로누스는….”

“나는….”

‘그래. 너는 뭐. 이 새끼야. 빨리 말해.’

“나는 잘 모르겠다.”

‘뭐?’

“물론 희생과 피로 세워진 탑에서 축배를 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인간이 바뀌어 버린다면 그게 진정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인간인 것일까. 많은 것이 바뀔지도 모른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들은 변화할지도 모른다.”

‘이 개새끼.’

어차피 이 새끼한테는 기대도 안 했다.

“그럼 지금과 같은 노선을 유지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의견에는 나 역시 동의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어. 다시 한번 더 비슷한 상황을 겪을 수는 없다.”

‘이거 별로 안 좋은데.’

지지자가 없다면 개소리는 개소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

도미니온스 하나로는 힘이 실리기 부족하고 케루빔과 쓰로누스는 전혀 이쪽에 호응해 주지 않는 상황.

원로들은 자신들끼리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딱히 다른 의견을 제시해 오지는 않았다.

세라핌이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쁘지 않군.”

‘뭐?’

“나쁘지 않아.”

‘…….’

“도미니온스의 말이 맞아. 설득력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야. 장기적으로 바라보면 이것이 더 합리적이야.”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세라핌.”

“똑같아. 생각해 봐. 케루빔. 어차피 우리는 인간을 통제해야 해. 그들의 개체 수를 조절해 대륙의 균형을 유지하겠다는 건 우리의 오랜 숙원이 아니었나? 가정해 봐. 모든 게 끝난 이후의 미래를 한번 가정해 보자고 그들은 다시 늘어나기 시작할 거야. 그들의 욕구는 끝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

“인간이 발전하고 빛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라핌.”

“하지만 그들은 그 욕망 때문에 스스로를, 주변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지. 그러한 문제 때문에 통제하자고 말했던 것이 아니었나?”

“이런 방식으로는 아니었다! 세라핌! 정신이 나간 소리를 지껄이는군. 그들을 바꾸려고 해서는 안 돼. 통제와 관리하는 것에 동의한 것이지 그들의 근본을 바꾸는 것을 동의한 것은 아니다!”

“이미 통제와 관리를 하겠다는 것부터가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거야. 케루빔. 우리는 다시 한번 더 슬픈 선택을 해야 할 거야. 끊임없이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그들을 죽여야 할 거라고. 이 자의 말대로야. 우리가 신인류의 탄생에 기여하는 것. 그게 우리의 존재 이유일지도 몰라.”

“미쳤군. 정신이 나갔구나, 세라핌. 그리고 도미니온스. 저 인간의 감언이설에 홀린 것이냐. 이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거라. 이 아둔한 것들아. 저자는 뱀의 혓바닥을 가지고 있고 악마보다 더 비열하고 교활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 정말로 저 쓰레기 같은 인간이 진실로 인간을 사랑해 말 같지도 않은 의견을 던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거친 언동은 자제해라. 케루빔.”

“저 정신 나간 소리를 부정하면서도 저자를 두둔하는구나. 쓰로누스!”

“나는 저 인간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간 게 아니야. 케루빔.”

“그 입 닥쳐라. 세라핌! 네놈은 이 전에도 그랬었지.”

“뭐?”

“네 추악한 욕망을 내가 모를 줄….”

“입 다물어.”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것이라면 오산이다.”

“입 다물어. 케루빔!”

‘히야, 시바. 개판이네. 개판이야.’

“회의와 상관이 없는 소리는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다니.”

“지나치게 흥분해 있습니다. 케루빔. 당신답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을까. 너야말로 너답지 않다. 도미니온스. 언제나 합리적인 판단을 했던 네가….”

‘아주 개판이죠? 슬슬 원로 비둘기들도 참전하고 있는 게 보이네요.’

“아직 결정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생각을 해보자는 것뿐입니다. 여러 가지 방향성에 대해서 말입니다.”

“어떻게 이런 걸 두고 볼 수 있단 말입니까. 인간의 근본을 바꿔 버린다니요. 그걸 정말로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겁니까?”

“그것 역시 인간입니다. 신인류라 하지 않습니까. 어려운 일입니다만 만약 가능하다면 정말로 위대한 업적을 세우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대륙뿐만이 아니라 전 차원에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도 있단 말입니다.”

“심각하게 생각할 사안이 아닙니다. 고려해 볼 가치도 없어요. 단순히….”

“그렇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해 보자는 것이 아닙니까!”

여기저기서 언성을 높이는 이들이 눈에 보인다. 딱 봐도 진영이 갈라져 있는 모습은 너무나도 흐뭇해 참을 수가 없다. 솔직히 이렇게 쉽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단하네. 시바.’

가족끼리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명대사를 괜스레 실감하게 된다.

원래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이념이라 하더라.

‘비유우우우웅신들.’

그 말 그대로, 첫 번째 퍼즐 조각을 판 위에 올려놓은 순간이었고, 병신 새끼들이 미끼를 문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