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4화 원탁 회의(3) >
‘조금 의외기는 해.’
쓰로누스와 도미니온스 정도가 안고 가는 패라고 생각해 벌인 일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쓰로누스의 배신에 어안이 벙벙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를 구해준 것이 백금색 비둘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녀석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번 계획은 흐지부지하게 끝나지 않았을까.
굳이 예를 들어보자면 이는 사업이나 다름이 없다.
예산은 한정적이고 답은 정해져 있다. 계획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라는 거다.
사업성이 있을지 없을지의 여부를 판단해 보면 회의적인 여론이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녀석들이 이걸 사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 적어도 세라핌의 참전이 이 사업을 이념 전쟁으로 변화시켰다.
공산주의가 가장 완벽한 이론이라 믿고 국가의 존망을 배팅한 정치가들처럼 녀석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쪽에 주사위를 던졌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념이라고도 볼 수 없지.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막대한 예산을 들여야 한다는 것만 빼면.’
부족한 부분은 보완할 수 있다. 긴 시간이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정말로 신인류를 탄생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긴 세월과 막대한 신성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을 가정해도 흑자 전환이 언제 올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미끼를 물기는 물었네요.”
“근데 그건 뭐야? 누나 몸도 아닌데 얼굴에 뭘 그렇게 붙이고 있어?”
“아, 습관 같은 거예요. 사실 얘네 피부가 워낙 좋다 보니 이런 거 할 필요가 없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하고 싶은 거 있죠? 이래야 쉬는 것 같다고요. 사실 머리 스타일도 바꿔보고, 여러 가지 해보고 싶기는 한데… 갑자기 바뀌는 건 조금 그렇죠?”
“조금 그렇지… 이상하게 쳐다볼 것 같은데?”
“아닐 걸요. 걔네들이 뭐 관심이나 있겠어요. 안 그래도 지금 자기들끼리 편 갈라서 싸우느라 정신없을 텐데… 제 머리 스타일이 바뀐 게 대수겠어요?”
“다른 비둘기는 몰라도 케루빔은 눈치챌 수도 있을걸.”
“아. 그 비둘기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의외로 섬세한 것 같던데. 그렇게 격렬하게 날뛰어주니 더 고맙더라고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그쪽에서 더 열을 내주니까 떡밥이 불타오르는 거 아니겠어요? 조용히 지나갔으면 이렇게까지 격렬해지지도 않았을 텐데… 어제 이야기 들었어요?”
“뭐?”
“원로들끼리 한판 붙었다잖아요. 슬쩍 봤는데 무슨 청문회 분위기보다 더 살벌했다니까요. 얘네들 생각보다 더 진지해요. ‘신인류 탄생의 선구자’라는 타이틀이 몇몇 비둘기들의 심금을 울린 거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세라핌 쪽이 호의적이다 보니 이런 흐름으로 가고 있는 거겠죠. 그 미친 비둘기가 아군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러게.”
“쓰로누스 쪽은….”
“아직 제대로 만나지는 못했는데… 시간을 언제 내보기는 해야지. 솔직히 크게 기대는 안 해. 2 대 2면 균형이 딱 좋기도 하고, 더 치열해 져야 싸움 구경하는 맛이 나지.”
“오빠 말이 맞아요. 요즘 여기 돌아가는 거 보면 진짜 꿀잼이라니까. 지구에서 뉴스 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어요. 꼬투리 잡아서 질질 시간 끄는 것도 그렇고, 파벌 만들어서 서로 견제하는 것도 그렇고… 기왕이면 성취감 있는 일을 하는 게 좋기는 한데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분탕질만 하는 것도 재미있네요.”
“지금부터 시작이지 뭐. 준비는 제대로 됐지?”
“오빠는 준비 제대로 됐어요?”
“물론.”
“그럼 슬슬 준비하죠. 슬슬 우리 대주주님 들어올 시간인데. 아, 나는 진짜 왜 오빠를 지구에서 못 만났을까. 우리 진짜 제대로 한탕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누나.”
자리에서 일어나 착착 준비하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나 역시 만들어 놓은 자료를 검토하기 시작, 도미니온스가 다과를 준비하는 사이 이쪽은 차를 준비한다.
와인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건 일이 성사된 이후에 까야지. 조명도 나쁘지 않고 분위기도 괜찮다.
슬쩍 지혜 누나의 얼굴을 보니 벌써부터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된 듯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키야. 시바, 진짜 타고난 사기꾼이야. 진짜.’
“오빠 표정 변한 것 좀 봐. 진짜 타고난 사기꾼이라니까. 태어나길 사기꾼으로 태어났어요.”
“…….”
“원로들은?”
“이미 받아 놨어요. 아까 제가 한 말 못 들었어요? 그냥 다 준비됐다니까.”
“응.”
“이제 사담은 금지예요. 올 때 됐으니까. 오빠도 긴장해요.”
“잘해보자고.”
“실패하면 죽어야죠.”
탁자의 자리를 앉은 모습에 사기꾼의 얼굴은 없다. 완벽히 도미니온스로 변신을 마친 이후에 다시금 자료를 검토하는 모습이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린 것은 당연지사.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누가 왔는지 알 수 있었지만 곧바로 몸을 일으켜 반기는 정도의 센스는 필요했다.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자 고개를 끄덕이는 세라핌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오셨습니까?”
“그래. 도미니온스는 미리 와 있었나.”
“조금 더 검토할 게 있어 일찍부터 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허투루 진행할 사안이 아니니까요.”
“그 말이 맞아. 케루빔과 쓰로누스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처음부터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케루빔이 새로운 사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요. 쓰로누스의 경우가 조금 의외이기는 했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겁이 많지 않습니까.”
“네 말이 맞아. 도미니온스. 쓰로누스는 겁이 많지.”
“아마 결과물로 나오는 것이 있다면 쓰로누스 역시 합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케루빔을 설득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가 가지고 있는 낡은 이론에 반박할 수는 있겠죠.”
“…….”
“굳이 그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국에는 이해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 일이 중요합니다.”
“알고 있어.”
살짝 이쪽을 바라보는 게 시야에 비쳤다.
“하지만 조금 의구심이 있는 부분이 있기도 해. 아 물론 내 입장은 너와 같아. 도미니온스. 신인류를 만들고 새로운 대륙을 만드는 것은 이전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기도 했어.”
‘아니. 세 과장님. 그거 제 기획서이고 제 실적인데 중간에 가로채기 있기 없기?’
사실 별 상관은 없지만.
“기획서도 인상적이었어.”
“감사합니다.”
“하지만 위험성이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지. 그렇지 않나?”
‘이렇게 나오네.’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아예 병신은 아니야.’
좋다고 해서 따라오는 모지리는 아니다. 충분히 기획서를 검토해 보고 내린 결론이겠지.
이지혜와 함께 머리를 굴려서 만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있던 위험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건 거짓으로 보고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었고 사기를 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었다.
이 사업을 안전한 투자로 포장하는 건 아무리 가면의 영웅 듀오라고 해도 무리일 수밖에 없다.
‘최대한 숨기기는 했지만.’
그 와중에도 잘 캐치했네.
“특히 현재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 더욱더 그래. 일의 실패가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에 대해서는 다들 생각해 봤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도미니온스. 너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라핌. 하지만 어떤 일이든 위험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한 번의 실패를 겪었습니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지만 그 실패의 원인을 우리에게서 완전히 분리시킬 수는 없습니다.”
“…….”
“생각하셔야 합니다. 세라핌. 분노와 증오로 무엇이 남았습니까. 이 전쟁을 이어나간다고 한들, 그 끝에는 무엇이 남을 것 같습니까. 인간들은 당장 눈앞에 닥쳐올 일들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미래와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는 다릅니다. 그들은 저항할 겁니다. 순응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강경하가 나간다면 그들은 더욱더 강경하게 부딪칠 겁니다. 보이지도 않는 머나먼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쓰로누스와 케루빔은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틀렸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 정도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입니다.”
“네. 도미니온스 님의 말이 맞습니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획안의 테스트는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세라핌님.”
‘생각보다 고민하고 있네.’
예산을 너무 높게 잡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었지만 이 정도는 잡아줘야 투자다운 투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신성을 적어놨을 뿐이다. 원로 비둘기들을 더 뒤흔들 수 있는 제대로 된 자료가 필요했으니까.
선뜻 손을 뻗지 못하는 걸 보면….
‘확실히 의심하고 있구나.’
이기영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이기영은 죄의 심판을 받았으니까. 녀석의 의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일의 성공 여부다. 아마 이런 심리가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
‘한 번 했던 종목이 더 자신 있다 이거지.’
1회 차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것은 곧 경험이기도 했다.
한 번 뛰어들었던 시장에 재도전하는 것이 더 안정감이 있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앞으로 이쪽이 걸어갈 길은 완전히 새로운 길이었으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투자를 한다면 익숙한 분야에 투자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요식업계 종사자가 실패 후에 패션 사업에 뛰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겠지 뭐.’
티를 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 녀석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슬그머니 도미니온스를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시작하라는 듯한 신호를 보내는 눈, 곧바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세라핌 님이 가지고 계신 불안감은 이해합니다.”
“나는 불안한 게 아니야. 다만.”
“제가 보여드린 기획서가 부족하게 느껴진 것이겠죠.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세라핌 님 성에 차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여러 가지 위험성이 따르고 있었고, 작업을 조금 더 구체화시켜 보니 생각보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도 많았습니다. 여러 가지 오류가 많아요. 이 계획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이기영 님의 말이 맞습니다.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시간을 더 두는 게 정답일 겁니다. 그게 예산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겠죠. 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안 그래도 긴 세월을 바라보고 하는 일입니다. 케루빔님의 진영에서 손을 쓰기 전에 저희 쪽에서도 결과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원로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테니까요.”
“그래서, 신성이 필요하다 이건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세라핌 님. 세라핌 님이 가지고 계신 불안함과 제 기획서의 미흡함, 모두 인정드린다고요. 위험한 곳에 투자하라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기반을 다지는 것은 저와 도미니온스 님으로 충분할 겁니다.”
‘그래, 맞아. 우리 너 빼고 할 거야.’
“뭐라?”
“기분 나쁘게 듣지 않으셔야 합니다. 세라핌. 당신의 상황을 고려해 보고 결정한 일입니다.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예산이 더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기획서의 테스트 서버를 만드는 것뿐이지만 중간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일단 기반을 다진 이후에 괜찮다는 판단이 서시면 합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근데 우리 자회사 주식 상장하면 후발주자한테 돌아가는 건 적을 수도 있다는 거 이해할 수 있지?’
“도미니온스 님의 말이 맞습니다. 세라핌. 도미니온스 님께서 보유하고 계신 신성이 생각보다 많아 충분할 것 같습니다. 굳이 부담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너 아니어도 예산 많거든, 이거 누가 봐도 대박 날 아이템인데 셋이서 나눠 먹기는 조금 그렇지. 애초에 시작도 나랑 도미니온스가 한 거고 너는 그냥 중간에 합류했으니까. 나중에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받아먹으라 이거야.’
아마 이렇게 들리지 않을까.
“네. 이기영 님의 말대로입니다. 사실 조금 더 빨리 말씀드려야 했는데….”
‘티키타카 느낌 괜찮다. 누나. 신인류의 아버지, 어머니 타이틀은 우리가 가지고 간다. 백금색 비둘기야. 너는 조력자 정도로 이름만 적어 줄게.’
분명히 이렇게 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