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8화 의심과 확신(2) >
‘내가, 시바, 그럴 줄 알았지.’
녀석의 몸에서 나는 어둠의 악취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 구역질을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야 모든 개연성이 충족되는 것이 느껴진다.
‘더러운 악마 새끼가 누구 보고 구역질이 난다 안 난다야?’
어째서 녀석이 그토록 전쟁을 원하고 있는지, 어째서 신인류 계획에 반대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애초 녀석은 인간을 위한 적이 없다. 미래의 인류를 위해 현재 인류의 개체 수를 조절한다는 개소리 역시 단순한 멍멍이 소리에 불과하다.
저 악취 나는 쓰레기가 진심으로 인간을 사랑할 리가 없지 않은가.
모든 건 거짓에 불과했다. 전쟁을 통해 인간의 마이너스 감정을 먹고 대륙에 혼란을 야기시키기 위한 연기다.
차마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가면을 쓰고 자신을 숨겨온 철두철미함을 떠올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어쩌면 가면의 영웅이 가장 견제하던 적 역시 케루빔이 아니었을까?
너무 강경하게 반대할 때부터 수상하기는 수상했어. 진짜 너무 수상했지.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는 것도 지금 생각하니까 이상하다고.
이 정도 개연성이면 충분하겠지? 너무나도 설정이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라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쩌면 준비물은 이미 마련된 건지도 모르겠다.
이 새끼는 이미 악마 그 자체가 될 준비를 마쳤다.
물론 섣부르게 건드릴 수는 없었다.
‘녀석은 사대천사였고 많은 비둘기의 귀감이 되는 애들 중 하나니까.’
일단은 놈을 고립시키는 것이 먼저다. 원래 모든 작업의 기초가 그렇다. 한 명을 정치질 하고 싶다면 그 무리에서 떨어뜨려 놓는 게 옳다.
슬그머니 회의실에 착석한 모습은 아주 가관, 그렇게 반대를 했던 주제에 이제는 신인류 계획에 앞장서겠다고 하는 것 같아 아니꼽다.
네 정체를 파헤쳐 주고 말겠다는 듯이 말하는 눈빛이 신경 쓰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출사표를 먼저 던졌다 이거지?’
아마 경고의 의미도 들어가 있으리라.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전부 지켜봐 주마.’
혹은
‘허튼짓은 하지 못할 것이다.’
같은 뜻이 아닐까.
행동반경이 조금 축소됐다는 불편함이 있기는 했지만 커다란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이쪽은 뭔가 걸릴 만한 짓을 한 적이 없으니까. 퀘스트를 보낸 적도 없고 망원경을 사용하는 것도 자제했다.
아마 놈이 이쪽과 함께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러한 이유가 바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멀리서, 외부에서는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없으니 내부에서 찾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똑똑한 비둘기네.’
선택한 방법 역시 의외였다.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현재 계속해서 실험 중입니다.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도 하고 있습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보고 드릴 테니 너무 재촉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케루빔.”
“일을 화려하게 벌인 것치고는 진도가 느린 것이 아닌가. 도미니온스?”
“결코 느린 것이 아닙니다. 신인류 계획을 발표한 지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데이터는 계속해서 수집 중이며, 모든 오류가 잡히기 전까지는 아직까지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글쎄. 너희들이 자랑하는 그 기술을 이용한다고 가정하면 삼 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무언가 발표할 수 없는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군. 더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지? 몇 번이나 다른 회차를 반복한 것이냐.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
“나 역시 투자자다. 도미니온스. 그것도 꽤 많은 신성을 투자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응당 알아야 할 자격이 있다.”
‘누나도 성가셔하고 있네.’
이런 타입은 또 처음이겠지.
지금까지의 악마 관계자, 파란의 악마 늙은이와 사이코패스 살인마, 악마 숭배자 이토 소우타와 악마 소환사 진청, 그 외에도 수많은 녀석과 싸워왔지만 이런 타입은 처음이라 또 새롭다.
‘나도 처음 봐.’
본래는 자신을 숨기는 게 보통이다. 자신의 신념이나 주장을 꼭꼭 숨기고 발톱을 드러내지 않아야 정상이다.
웃으며 등 뒤에 칼을 숨겨 놓는 것이 이런 싸움의 정석적인 방법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녀석은 다르다. 애초부터 칼을 숨기지 않고 있다.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굳이 숨기지 않는 것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반대한다 육성으로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녀석은 행동으로 우리에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바닥에 뿌리는 신성이라는 걸 알면서도 대규모의 신성을 투자한 것 역시 그러한 이유였다.
‘괜히 상장했나?’
심지어 원로 비둘기들 몫까지 자신의 신성으로 사들이기 시작했고, 녀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기영 자회사 더미에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녀석의 말은 틀린 것이 없다. 투자설명회에서 내가 말한 것처럼 투자자는 일의 진행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달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저 새끼가 자기 신성을 땅바닥에 버릴지를 가정하지 못해 일어난 상황이었다.
물론 크게 불리하지도 않다. 경영권 방어 같은 걸 생각해야 할 타이밍도 아니었고 녀석도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았을 테니까.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
‘압박하는 것.’
지금처럼 나와 누나를 압박하는 것이다. 마음대로 뒤흔들지 못하도록, 결과를 조작하지 못하도록, 다른 원로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도록 계속해서 견제하는 것.
우리 입장에서는 불편한 것이 당연하다. 속여야 할 눈이 늘었으니 말이다.
“1차 발표는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장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결과가 나고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데이터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고 오류가 났다면 그 오류를 분석할 시간도 필요합니다.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케루빔. 너무 공격적인 태도는 지양해 주십시오. 이 일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당신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완벽한 상태에서 일을 진행시키고 싶습니다.”
“너야말로 너무 과민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도미니온스. 나는 그저 진행 상황을 알고 싶을 뿐이다.”
“…….”
“그럴듯한 무대 위에서 그럴듯한 쇼를 선보였지만, 결과적으로 보인 것은 이론에 대한 비전이 아니라 기술에 대한 비전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가치가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조금 더 정확한 데이터를 원하는 이들이 많다. 나는 그들을 대표하는 것뿐이다.”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정확한 날짜를 명시해 주면 좋겠군.”
‘작작 좀 해, 새끼야.’
아마 지혜 누나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을까 싶었다.
“인간들과….”
“이미 접촉을 시도하는 중입니다. 케루빔 님.”
“…….”
“물론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대다수지만…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상황이 달라지면 이해관계도 달라지게 마련이 아닙니까. 우리와 뜻을 함께하기로 한 이들이 있습니다.”
“확실한가?”
“일을 처리한 것은 이기영이 아니라 나야. 케루빔.”
“세라핌.”
“물론 아직은 소수지만 그들이 함께할 이들이 더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들었어.”
“…….”
“일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어 케루빔. 그렇게 의구심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아.”
“정확히 어떤 이들인지 들어야겠다.”
하지만 녀석의 올곧음이 정말로 효과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을 준비가 되어 있다.
정직하게 바위를 내겠다고 으름장을 내놓는 놈과 가위바위보를 하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 지금 녀석이 하는 일이 그렇다.
‘물론 이해는 돼.’
녀석이 보기에는 지금의 이기영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지금 당장은 이렇게 압박하고 조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다음 수를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첫 번째는 견제.’
본인이 투자한 자금으로 신인류 계획을 휘두르는 행위 자체가 바로 견제다.
놈의 생각이 맞다. 이쪽을 구석으로 몰아넣는다면 자기 자신의 행동반경이 더 넓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거겠지.
단순히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니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만약 놈이 이쪽 세력까지 포섭하려고 하는 거라면 조금 귀찮아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파벌과 나는 한 팀이었지만 놈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서로가 멀어질 수도 있다.
함께 신인류 계획을 향해 달려가는 동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투자자고 나는 그들이 가진 것을 돌려줘야 하는 입장이다.
만약 놈의 견제가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고 가정해 보자.
저 퍼랭이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너무나도 뻔하지 않은가. 신성을 투자한 원로들을 포섭한 이후에는 견제가 아니라 칼로 심장을 쑤시려고 달려들 것이다.
‘내 돈 내놔! 이 사기꾼 연놈들아!’
비둘기 수백 마리가 푸드덕거리며 저리 말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꿈과 미래를 향해 달려나가던 회의실이 사기꾼에게 단체 사기를 맞은 피해자 모임으로 돌변해 우리의 목을 조를 것이다.
나와 누나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다.
‘지금까지 신성이 얼마나 모였더라?’
정확한 수치로 표현할 수 없지만 대륙의 법칙을 하나둘 정도는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양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신인류 계획에 사활을 걸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신성을 쏟아부은 비둘기부터, 여기저기서 끌어모아 넣어놓은 비둘기들까지 있다.
말 그대로 이 사업이 무너지면 원로 비둘기 중에 반은 거울 호수의 물 온도가 어떤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IMF 뺨치는 쇼크가 올 수도 있겠는데.’
이걸 이렇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경제대공황 수준의 혼란이 찾아오지 않을까.
케루빔이 간과한 것은 바로 그 점이라고 생각했다.
저 비둘기는 신인류 계획을 끌어내리고 싶어 하고 있지만 내게 투자한 비둘기 중 이 계획이 떡락하길 바라는 비둘기는 아무도 없다. 모두가 손을 잡고 기도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거다.
‘누가 악당이 될 것 같아?’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내가 악당이 될 것이다.
‘내가 악당이 될 것 같아?’
하지만 일을 망치려고 하는 외부의 적이 있다면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은 내가 아니다.
우리는, 시바, 함께 가라앉고 함께 떠오르니까.
운명공동체라는 거다.
“오늘 회의 거지 같았네요. 진짜. 사사건건 시비 거는 데 짜증 나 죽을 뻔했다니까요.”
“뭐 곧 해결될 거야.”
“그런데, 왜 그렇게 악랄하게 웃고 있어요? 오빠?”
“누나. 누나는 만약 누나가 투자한 회사가 찌라시 때문에 휘청거리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네? 갑자기요?”
“찌라시를 퍼뜨린 놈을 원망할 것 같아?”
“당연히 그 쥐새끼를 원망하겠죠. 보통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잖아요. 변수가 생기면 변수에 원인을 두고 원망할 사람이 생기면 곧바로 원망하게 되는 법이에요. 만약 변수가 생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떡락하면 내 안목을 의심하겠지만 그게 아니잖아요?”
“역시 그렇지?”
“근데 그게 왜요? 아… 아하… 와… 이야… 진짜 쓰레기네요. 그런데… 음… 그게 될까요? 얘네들은 인간이 아니라 비둘기들이라 조금은 더 이성적일지도 몰라요.”
“아니야. 누나 얘네들도 인간들이랑 별반 다를 바 없어.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예전에 베니고어에게 들었던 말이 괜스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아마 알타누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도중이었을 거다.
‘너희들도 완벽하지는 않구나.’
‘맞아. 완벽하지 않지. 그걸 잘 기억해. 나의 자랑스러운 이기영 명예추기경. 우리들도 완벽하지 않아. 불안전하지. 대륙 위에 있는 이들과 서 있는 위치가 다를 뿐, 우리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 너는 그걸 잘 기억해야 돼. 우리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정확히 이런 대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째서 베니고어가 계속해서 완벽하지 않다는 걸 강조했는지 이해가 간다.
이때를 위해 복선을 깔아둔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베니고어는 아마 이걸 전하고 싶었을 거다.
앞으로 너희들이 싸울 존재들도 너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들이라고, 완벽한 존재가 아니고 인간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나 역시 그녀의 생각에 동의한다.
이지혜가 나를 바라보며 웃음을 보인 순간 허겁지겁 뛰어들어오는 원로 비둘기 한 마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지… 지금, 지금 우리에게 손을 내민 인간들이… 가면을 쓴 천사들에게 습격당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내가 만든 천사들이, 아니, 케루빔이 보낸 역겨운 비둘기들이 전쟁에 지쳐 손을 내민 힘없는 인류의 뒤통수를 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게… 그게 정말입니까!”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