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2화 방주 (2) >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지지직!
퍼어어어엉!!
-움직여! 움직여어!!
-방패부터 먼저 내려. 방패부터!
-승리를!!
-움직여라!!! 전진! 전진!
-승리를 위해!
-준비! 준비! 방어 마법 준비!!
신전에 처박힌 방주 안에서 인간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평소에 들고 다니던 방패보다 더 커다란 방패를 손에 든 채로 근육 돼지들을 이끌고 나오는 박덕구의 모습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어 기가 찬다.
바깥에서부터 쏟아지는 공격들을 막으며 병력이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걸 보면 훈련 자체는 잘 되어 있다는 게 느껴졌지만 저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니, 시바, 멋있기는 멋있네.’
위에서 떨어지는 공격도 막아서기 위해 방패로 위쪽까지 완전히 가득 채웠다. 마치 전진하는 작은 성벽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마법사들의 보호 마법으로 병력을 한차례 감싼 것으로 모자라 신성력까지 전부 때려 박았다.
밀집된 탱커들이 움직임을 보조하기 위해 민첩 관련된 버프는 전부 사용한 것 같은 모습, 이동하는 속도가 꽤 빨라 내가 보기에도 당황스럽다. 당연하지만 평범한 사제의 버프를 받은 것이 아니다.
‘벽 안에 있나.’
방패의 벽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 할 수밖에 없었다.
‘엘레나.’
망원경으로 안을 바라보자 에메랄드색 머리를 가지고 있는 엘프가 자리하고 있는 게 보인다.
입술은 덜덜 떨지만 계속해서 신성력을 보내고 있는 모습, 보조 탱커 한 명의 팔뚝을 붙잡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얼굴을 보니 겁에 질려 있는 것이 보인다. 당연하겠지, 뭐. 애초에 쟤는 저런 난전에 대한 전투 경험이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후방을 책임지는 사제 중에서도 극 후방에 자리해야 하는 사제였고, 전투 사제처럼 써먹기에는 신체 능력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총알받이들과 함께 선봉으로 전장에 나선다는 경험 자체가 처음이 아닐까.
뚫을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던 방패의 벽이지만 계속되는 폭격에도 금이 가는 것이 보인다.
콰앙!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작은 성벽의 한쪽 면이 터지기 시작.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엘레나의 얼굴로 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방패의 벽은 순식간에 보조탱커들로 메워졌지만 전투의 열기를 그대로 전해 받은 엘프 공주가 동요하는 것이 보인다.
-제길! 제기랄!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바로 채워 넣어! 다음으로!
-부상자들은 뒤로! 신속하게 움직이쇼! 신속하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조혜진이 곧바로 그녀의 가까이에 자리했다는 것이었다.
-엘레나. 괜찮으십니까?
-네… 네. 괜찮아요. 길, 길드마스터 대리. 그저.
-도착할 때까지 제가 붙어 있겠습니다.
-아니에요. 굳이 그러실 필요는…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힘드신 상황이라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
-…….
-감사합니다.
조혜진을 붙잡은 채로 발걸음을 옮기는 엘레나의 모습은 한결 편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을 떨쳐낸 것은 아니다.
아니, 두렵다는 것 이전에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소음, 땀과 혈액으로 꽉 차 있는 공기, 애써 고개를 돌려야 하는 낙오한 부상자들과 죽어가는 동료들, 전장을 넓게만 바라보던 그녀는 처음 보는 광경이다.
선봉이 바라보는 배경을 가장 후방에 위치해야 하는 사제가 바라보고 있다.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보인다.
뭔가를 깨달았다고 말하면 거창하겠지만 적어도 아까와 같은 얼굴은 아니다.
외부에서 본다면 방패의 벽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엘레나의 몸 전체가 환하게 빛나고 있다. 그만큼 한계에 가까운 신성력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결연한 표정의 조혜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 이후에 곧바로 발걸음을 옮긴다. 방패의 성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괜찮습니다.
-저를 따라 오세요. 엘레나 님.
-버텨라! 조금만 더 버텨! 거의 다 왔다. 버텨!
-엘레나 님! 어서 따라오세요.
지쳐 숨을 몰아쉬고 있는 엘레나에게 손을 내민 것은 파란 길드의 보조탱커 유아영.
벽 안에서 대열을 새로 정비하는 병력들이 보인다. 방패의 벽을 이끌고 온 사제와 마법사들을 다시 한번 최후방으로 보내고 방패의 성문이 열리면 가장 뛰쳐나올 전사들이 무기를 가다듬는다.
대열을 재정비하기까지 시간을 벌어줘야 할 근육 돼지들은 쏟아지는 공격을 막으며 최대한 버티는 중, 비명과 함성이 섞여 신전 안을 가득 메웠다.
-버텨어!! 버텨!!!!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열어! 열어라! 지금! 지금 열어!!
-준비됐어! 열어!
-죽지 마쇼! 혜진 누님! 다치지도 마쇼!
-열어!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방패가 열리며 숨을 참아왔던 병력들이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가장 처음 성문을 열고 나온 것은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조혜진, 두 손으로 창을 잡은 채로 자신을 맞이하는 비둘기의 목을 꿰뚫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왜 이렇게 빨라? 혜진이, 시바, 이 갈았네. 창 한 방에 1킬이여. 아주.’
마치 김현성을 보는 것만 같다. 그것도 조금 더 날카로운 것 같은 느낌, 뒤를 따라오는 병력들보다 한참 앞에 서 있다.
저러다 포커싱돼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던 모양. 정말로 창을 들고 있는 건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창을 지렛대 삼아 몸을 움직이고 꽂힌 것을 그대로 빼지도 않는다. 일정 거리를 둬야 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완전히 비둘기들에게 둘러싸인 형국이 아닌가.
창을 휘두를 공간도 없는 전장에서 신창이 선택한 방법은 몸을 사용하는 것. 창을 완전히 놓은 채로 주먹질을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개… 시바, 개 멋있어.’
단순한 주먹질이 아니다.
‘뭐야? 저런 건 또 어디서 배웠어.’
이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다. 차희라와 부딪친 적이 있었던 샤오린이 비슷한 걸 보여준 적이 있다.
종류는 다른 것 같지만 뭔가 형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무기 긴 애들은 전부 주먹질 같은 거 할 줄 아는 거야?’
무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되는 환경에 처했을 때에 대한 대비가 아닐까.
샤오린의 것보다는 화려하지 않다.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수수한 쪽, 하지만 절도가 있고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다.
필요한 만큼 움직이고 있는 느낌, 낭비가 없다는 게 전해져 온다. 마치 창을 휘두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발바닥으로 상대방의 정강이를 부러뜨리고 어깨로 밀친 이후에 공간을 만든다.
주먹을 쥔 이후에 상대방의 명치에 가져다 대자 주먹에 맞은 비둘기 엑스트라가 튕겨 나간다.
창을 뻗어오는 비둘기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는다. 긴 다리를 쭉 뻗어 창을 감은 이후에 몸을 돌리자 오히려 창을 뻗은 비둘기가 땅바닥에 처박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발로 턱을 걷어 올려 차고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른다. 너무 정신이 없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발차기를 잘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게 된다.
“뭐야, 이거. 시발 왜 이렇게 멋있어.”
보통의 싸움에서는 저렇게 할 수 없는 법이다.
그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보여주고 있으니 어떻게 기가 차지 않을까. 액션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들도 지금 저것보다는 덜 멋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날 가져요. 누나. 시바.’
지금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정말로 날 가지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시바, 이제 어쩔 건데.’
쟤네들이 보여준 인상적인 모습은 확실히 뇌리에 박혔다.
‘그래 너네 멋있고 아주 훌륭하세요. 진짜. 근데 이제부터 어쩔 거냐고.’
상륙작전에 성공하셨네요. 진짜 덕구야, 대단하다. 너도 진짜. 어떻게 이걸 성공시켰어? 훈련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내가 봐도 군더더기가 없더라. 근데 그래서 이제부터 뭐 할 건데. 여기서 어떻게 나갈 건데.
괜스레 입술을 깨물게 된다.
만약 일회성 기습 공격이었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내 통제에서 벗어난 행동이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며 박수를 보내지 않았을까.
문제는 이게 올인이라는 것에 있다. 인류가 가진 걸 모두 걸고 냅다 적에 심장부에 꼬라박았다.
내로라하는 길드의 길드마스터는 전부 자리해 있다. 저게 인류 전력의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거다.
총알받이들이라도 조금 자리해 있다면 그나마 안심이 되겠지만 어디까지나 저 병력은 소규모라고 말해야 옳다.
말이 좋아 상륙작전에 성공한 거지 저 병력이 모두 고립된 거나 마찬가지라다.
그 어떤 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고, 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상태다.
‘혜진아. 시바. 생각해 놓은 수는 있는 거지?’
저 자리에 김현성이라도 있었다면 그나마 안심이 됐을 것이다.
‘아니야. 그래도 안심 안 됐을 것 같아. 혜진아. 뒤는 생각하고 온 거 맞지? 다음 수가 있기는 있는 거지?’
누구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고 싶다.
‘그냥 자살하려고 온 건 아닐 거 아니야. 시바.’
뭔가 그럴듯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아니, 없더라도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혼란.’
세라핌, 케루빔, 쓰로누스는 아직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 도착하지 않았다.
적 네임드들이 전쟁터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저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
‘제길. 시바. 시바.’
이 사달이 났는데도 이 새끼들이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다. 어디서 뭣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움직이는 중이 아닐까. 나 역시 움직여야 했다.
‘어디로?’
지혜 누나는 따로 움직여 주겠지? 설마 저 사단이 났는데 이지혜의 영혼을 빼앗은 도미니온스 연기를 조혜진한테 선보이지는 않겠지? 아니, 얘는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을 때였다.
“여, 여기 있었구나.”
‘쓰로누스.’
“다친 곳은 없… 다친 곳이 없는 것 같아 다행이구나. 아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지금 인간들이….”
“…….”
“인간들이 신전을 습격했다. 지금 당장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안전한 곳이 어딘데.’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나 역시 지금 당장 가 봐야 해. 인간들의 공세가 심상치 않아. 아마도 너를 되찾으려고 온 거겠지. 확실한 것이다.”
‘이 새끼는 갑자기 친한 척이야. 이 무능력한 새끼. 시바.’
“어서! 빨리!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표정이 긴박해 보이기는 한다. 급한 상황이기는 하겠지.
“쓰로누스 님?”
사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인간들이 본인들의 성소로 침입한 상황이 아니었던가.
한쪽에서 아직도 긴박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만큼 곧바로 지원을 나가는 것이 옳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먼저 찾아왔다는 건 어떤 상황에서는 환영할 만하다고 느껴진다.
‘쓰로누스는 당장 합류하지 않는 건가.’
녀석이 합류한다면 팽팽한 균형은 분명히 무너질 것이다. 이 새끼가 무능력하기는 해도 김현성을 압도할 만한 무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니었던가.
‘이 새끼를 상대할 만한 놈이 누가 있지?’
당장은 떠오르는 이가 없다.
구태여 말하자면 라파엘 정도가 되겠지만 김현성을 궁지로 몰아넣은 녀석을 성검용사 따위가 감당해 낼 수 있을 리 만무.
차희라야 케루빔과 싸우기를 원하고 있을 테고 정하얀은 특별한 롤을 부여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돼지 새끼야 어차피 맞는 게 역할이고….
“빨리,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안전한 장소. 여기가 안전한 장소야?’
허겁지겁 뛰어온 곳을 보니 확실히 안전할 만하다고 느껴지기야 한다.
문제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일을 정리한 이후에 곧바로 돌아오마.”
‘뭐, 시바, 너 지금 나 두고 간다고?’
이 새끼가 나를 두고 전장에 합류하려 한다는 것.
“조금만 버티거라.”
‘뭐야. 시바. 진짜 나 버리고 갈라고?’
“…….”
“그럼.”
“…….”
“…….”
“가지 마세요.”
일단은 녀석의 소매를 꽉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바깥은 무법천지였으니까.
‘나 지켜줄 거잖아? 그렇잖아. 케루빔이 와서 해코지하면 어떻게 해?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누구를 믿을 수 있겠어. 진짜 그 새끼가 나 죽이러 올지도 모른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