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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733화 (724/1,590)

< 733화 이례적인 일 (1) >

‘넌 지금 가면 진짜 쓰레기인 거야. 나쁜 새끼인 거라고. 어떻게 시바 나를 혼자 두고 가.’

최대한 겁먹은 표정을 보여주는 것이 맞다. 여기는 안전하지 않다는 듯, 믿을 수 있는 건 너뿐이라는 얼굴로 쓰로누스를 바라보는 것이 정답이다.

잠깐이었지만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멈췄다고 하는 게 올바른 표현일까.

온몸에 힘이 들어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리라.

‘뭐야? 시바 고민하는 거 아니지? 그렇지?’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너도 최근에 분위기 이상한 거 알고 있잖아. 우호적인 비둘기들도 있는 반면에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새끼들도 많다고.

지금 바깥이 상식이 통할 것 같아? 케루빔이 왜 시바 지금까지 저 싸움터에 등판하지 않았겠어?

이 새끼 분명히 나 찾아다니고 있을걸. 안 그래도 뚝배기 한번 깨보려고 기 모으던 찰나였는데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겠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거슬리던 새끼를 쓱싹하는 건 솔직히 누구나 다 하는 생각이잖아.

무법지대라고, 시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니까?

굳이 케루빔이 아니어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원로 비둘기 중에서도 나를 탐탁지 않아 하는 이들이 많다.

쓰로누스가 뛰쳐나간 순간 그 새끼들이 이쪽으로 들이닥치면 이기영의 소중한 목숨이 저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 버리는 상황이라는 거다.

“두렵습니다. 이곳은 안전하지 않아요.”

‘네 옆이 제일 안전한데 시바. 무슨 안전 타령이야?’

“…….”

“가지 말아주세요.”

“이곳은 안전한 곳이다. 내가 이미 다른 이들에게도 이야기해 놓았어. 아마 그들이 널 지켜줄 것이다.”

“그들이 저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 쓰로누스 님.”

“그렇지 않….”

“몇 번이나 목숨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사실 받은 적은 없다. 좀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 정도로 미친놈들은 없더라.

“그럴 리가.”

“말씀드리지 못했을 뿐입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계획한 일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건 쓰로누스 님이 가장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할 말 없지? 시바. 너도 내 편 안 들어줬잖아.’

“가지 마세요.”

다시 한번 소매를 꽉 붙잡아 보자. 잠깐 동안 혼란스러워하기는 했지만 이내 결심한 듯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모습.

한 번 고개를 돌린 이후에는 조심스레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그래. 시바, 잘 생각했어.’

일단은 붙잡아 두는 것에 성공했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바닥에 자리를 잡아 조금은 어색한 몸짓으로 옆쪽에 자리를 잡는 것이 눈에 보였다.

본인이 느끼기에도 어색한지 조금 쭈뼛거리기는 했지만 이내 날개를 접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다. 조금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참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에 본인이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지 불안해하고 있는 거겠지, 뭐.

그 말 그대로 나를 지켜주고 있는 이 늠름한 천사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한번 해볼까?’

변덕이다.

‘한번 해봐?’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짐을 놓을 수 없는 이 천사가 짐을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짐을 놓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가정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쁘지는 않아.’

전투 능력이야 흠잡을 데가 없다. 그 김현성을 압도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심지어 둠둠현성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고 성격도 써먹을 만하다. 1회 차 가면의 영웅이 어째서 녀석을 곁에 두었을까 떠올려보면 금방 답을 찾을 수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이 천사가 내 편이 되어준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투 역시 훨씬 원활하게 진행하지 않을까.

문제는 이놈이 케루빔이나 세라핌에게 검을 겨눌 수 있느냐는 것. 다른 비둘기들을 적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때마침 콰아아아아앙!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지만 연약하고 힘없는 이기영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괜찮을 것이다. 겁먹지 않아도 돼.”

“하지만.”

“잠깐 내가 바깥을 확인….”

“안 돼요. 가지 마세요.”

‘주변에 아무도 없어 새끼야. 누구 하나가 열심히 뛰어오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네가 신경 쓸 정도는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신경 쓰면 안 되는 거지.’

“…….”

“…….”

슬슬 분위기나 잡아봐야지. 침묵이 너무 길면 이상하자너.

온몸에 떨림이 잦아든다. 공포에 질린 빛기영이 점점 안정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쓰로누스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같다. 이 정도 타이밍이 좋을 것이다. 딱 지금인 것 같다.

“…….”

“이따금….”

“?”

“이따금 생각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뭐?”

“흐릿하지만 이따금 생각나는 것들이 있어요. 저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입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장면들이 떠올라요. 그곳에서 저는 저런 비명 소리와 폭발 소리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

“피 묻은 가면을 쓴 채로 웃고 있었어요. 인간들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살려달라고, 살고 싶다고,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그런 그들 역시 온몸이 터져 넝마가 되어 흩어졌어요.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틀림없이 저였습니다. 폐허의 중심에서 웃고 있었던 것은 저였어요. 어째서인지, 도대체 제가 왜 이런 걸 보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운데 자리한 것은 틀림없이… 틀림없이 제 모습이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었던 비밀. 쓰로누스의 얼굴이 흔들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건….”

“쓰로누스 님을 처음 봤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었지만…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분명히 저를 알고 계시는 것 같….”

“그건 네 모습이 아니다. 잊어도 되는… 잊어도 되는 기억이야.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이미… 그래… 이 전과는 다르니까. 지금의 모습과는 다르다.”

“역시 그건….”

“…….”

뭔가 말을 하기 꺼리는 표정이다.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쓰로누스의 입장에서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 그거 너야. 사실 1회 차에서 네가, 응? 나쁜 놈들에게 세뇌당했었는데, 그때 진짜 대단했었지. 막 있잖아. 여기저기 다 부수고 다니고 사람들도 화끈하게 죽이고 그랬는데. 내가 봐도 진짜 악질이었다니까. 그것뿐인 줄 알아? 나도 죽였다고. 뭐 세뇌당해서 그런 거기는 한데 그때는 1회 차고 정신도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죄책감 같지 않아도 돼.’

어떤 싸이코패스가 저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상처받은 빛기영의 마음은 누가 치료해 주나. 녀석이 말을 조심하는 것도 그런 연유일 거라고 생각했다.

“죄의 심판이 무엇인지, 제가 가지고 있었던 죄가 뭐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부정하고는 있었지만 그건….”

“네가 아니었다!”

“…….”

“네 모습이 아니었어….”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머릿속에 나타나는 이미지 중에는 쓰로누스 님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이 기억은 조금 더 편안한 기억이에요.”

“그건….”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그건….”

“정확히 어디인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너도 기억하지? 그때 우리 좋았잖아. 완전 행복했었자너.’

“쓰로누스 님은 인간은 별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빛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그래서 인간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죠. 어째서 제게 자신을 선택했는지도 물으셨습니다. 그럼 제가 대답을….”

늠름한 천사가 홀린 듯이 입을 열어왔다.

“내가 인간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네. 쓰로누스 님은 인간들처럼 고민하고 후회한다고. 걱정하고, 별것 아닌 것들 때문에 깊은 생각에 빠진다고…. 당신은 더 빛날 수 있다고, 더 강해질 수 있고,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다른 천사님들보다 더욱더 높게 떠 있을 수 있다고. 그게 제가 쓰로누스 님을 선택한 이유라고….”

“그렇지… 그랬었지.”

“언젠가 다시 이 풍경을 보러 오자고.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자고.”

“분명히… 그랬었다.”

아깐 아니라고 했으면서 지금은 또 그랬었단다. 녀석의 태세전환 솜씨를 보니 살짝 기대되기도 했다.

은근슬쩍 얼굴을 흘겨보자 확실히 감상에 빠져 있는 것만 같다. 눈가가 살짝 축축해진 것은 기분 탓인지 모르겠다.

“그때의 대화는 제 가슴속에, 영혼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 것이냐.”

“물론 괴로운 기억도 함께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이상하고, 제가 생각하기에도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

“저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

“인간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어요. 그것은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분노의 표출이었으며 광기 그 자체였습니다. 쓰로누스 님의 말처럼 그들은 별입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별, 스스로 빛나고 어둠을 환하게 빛내는 별 말입니다. 저는 그 별들을 짓밟고 부쉈어요. 이유가 뭐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죄를 저질렀다는 것 하나예요. 네.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문장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들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이유 말입니다. 덜 빛나거나 모양이 모났거나 설사 빛나지 못하는 별이라고 한들 상관없어요. 그들은 살아가야 합니다.”

“이기영.”

“저는 그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별들이 사라지게 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무슨 뜻이냐.”

“저는 이곳에 들어온 제 가족과 친구들을 살리고 싶어요. 그게 제 속죄이고 저에게 주어진 역할입니다.”

“어째서 나에게….”

‘뻔하지.’

“저는 쓰로누스 님이 저와 함께해줬으면 합니다.”

“…….”

“다시 한번 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습니다. 함께.”

빌드업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굳이 빌드업 하지 않아도 우리 쓰로누스가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빌드업 다 해주고 있었을 텐데 뭐가 필요할까.

아니, 정말로 기초공사를 쌓아놓은 것은 가면의 영웅이다.

나 역시 조금은 긴장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솔직히 쓰로누스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나 다름이 없다.

‘나를 실망시키지 마.’

내가 생각해도 이례적인 일이다.

‘나를 실망시키면 안 돼.’

용서라는 단어는 빛기영과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으니까.

다시 한번 소매를 꽉 붙잡고 시선을 마주치자 놈의 눈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먼저 시선을 피한 것은 녀석 쪽.

‘그래. 시바,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나는….”

‘그래요. 시바.’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나는… 사명과… 책임이… 그래. 사명과 책임이다. 하… 하지만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마음껏 떠드세요. 시바, 하나도 안 들려요. 다른 방법을 왜 네가 찾아? 시바. 내가 찾아야지. 짜증 나 죽겠네. 이 새끼.’

“다른 이들에게도 잘 말한다면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케루빔이라면 틀림없이 이해를….”

“야. 쓰로누스.”

“어….”

“나를 봐. 이 머저리야.”

콰아아아아아아앙!!

폭음이 들려오며 한쪽 벽이 무너진 것은 바로 그때. 한 인형이 검을 들고 이쪽을 찌르려고 하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물론 당황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내가 시킨 일이었으니까. 당황한 것은 오히려 쓰로누스 쪽이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녀석은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로 내 앞을 막아섰다.

아마 쓰로누스를 노렸다면 유효타를 먹일 수 없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번쩍이는 회색빛 때문에 잠시 감았던 눈을 뜨자 시야에 비친 것은 쓰로누스의 얼굴.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가슴을 뚫고 나온 회색의 검이 보였다는 것.

“형한테서 떨어져. 개자식.”

‘아이고, 내 동생 라파엘 왔구나.’

무능력한 천사의 손에서 나를 구해준 라파엘의 당당한 모습을 보자 속이 다 시원해진다.

감사의 인사를 하기 전에 이 새끼한테도 한마디 해줘야지. 그렇지?

“…….”

“…….”

“내가 왜 너를 선택하지 않았는지 알겠다. 왜 네가 버림받았는지 알겠어. 쓰로누스.”

“괜… 괜찮으… 냐.”

“병신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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