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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741화 (732/1,590)

< 741화 가치 (7) >

“인간 쓰레기.”

‘아니야.’

“이기적인 자식.”

‘아니… 아니야.’

“비열하고 저열한 거로도 모자라 추하기까지 한 괴물.”

‘나는….’

“나는….”

“현성 씨.”

“나… 나는….”

“현성 씨?”

화아아아아아아악!

“현성 씨!”

“…….”

“괜찮으신 겁니까?”

“저… 지금….”

“아까부터 안색이 창백해서… 제가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요. 아닙니다. 네. 제가… 지금….”

“네?”

“여기가… 여기… 하아… 하아… 여기가 지금….”

“현성 씨. 괜찮으신 겁니까? 잠깐… 잠깐.”

느리게 흘러갔던 시간이 점차 본래대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입은 계속해서 거친 숨을 토해내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으로 닦아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어지럽다.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지만 보이는 것은 없다. 1회 차의 김현성도 괴물처럼 변한 김현성도 모두 사라졌다. 심신이 안정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은 틀림없이 그가 어깨를 부여잡았을 때였다.

“잠깐 쉴 수 있는 곳을 찾아야 될 것 같습니다. 어디 가까운 곳에서….”

당황하고 있는 모습,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아니, 병원으로 같이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급해 보이는 얼굴이다. 걱정해 주고 있는 것 같다.

“괜찮으신 겁니까? 정신이 드신 겁니까?”

“네….”

“현성 씨?”

“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조금만 더 쉬면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을 천천히 바라봤지만 여전히 진정하지 못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얼굴은 지금의 상황에 분노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 건지 알 것 같다. 분명히 자신을 자책하고 있지 않을까. 그는 항상 그랬으니까.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는 잘못한 것이 없다.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 현성 씨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빨리 눈치채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 정도로 힘들어하실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기영이 느끼고 있을 고통에 비하면 자신의 작은 문제 따위는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

“제가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이 사람은 더 이상 희생할 필요가 없다.

“아… 아니요. 더 이상….”

“네.”

“더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이미… 이미 충분하니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고 생각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네. 그리고… 애초에 그렇게 심각한 일도 아닙니다. 잠깐 어지럼증이 일어났을 뿐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이럴 게 아니라 잠깐 앉을 수 있는 장소를….”

“아니에요. 정말로 괜찮습니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이제 정말로 괜찮다. 뭘 해야 할지 깨달았으니까.

“그러지 마시고.”

“아니요. 이제는…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네게 주어진 일이 뭔지 깨달았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신다니… 다행이지만….”

“저는 항상 걱정만 끼쳐 드리는 것 같습니다.”

“네?”

“항상 걱정하게만 만들어드린 것 같습니다. 저번에도 이런 일이… 이런 적이 있었던 게 떠오르네요. 만약 그때 찾아오시지 않으셨다면 영원히 그곳에서 헤매고 있었을 겁니다. 저는 기영 씨와는 다르게 아주 나약한 인간이니까요. 그곳에서 계속해서 안주했을 거예요. 정말로 감사했었습니다.”

“네?”

“새로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제 짐을 함께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죄송합니다. 맡겨서는 안 되는 짐을 맡긴 것으로 모자라 외면하고 도망쳐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회피하기만 해서….”

“누구나 도망칩니다. 그리고 저는 현성 씨를 비난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현성 씨 역시 제 짐을 들어주시지….”

“아니요. 저는 든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항상 떠맡기기만 하고 정작 필요할 때는 도망치기에 바빴었습니다. 외면하고 피하고 숨는 것밖에는 한 게 없었어요. 어쩌면… 어쩌면 여기서도 누군가가 나를 꺼내주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와주시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 생각만 하고 있을 정도로… 저는 도망치기만 하는 인간이었습니다. 나약하고 옆에 설 자격이 없는 인간이에요.”

“…….”

“사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나가기가… 두려워요. 이런 선택지가 생길 때면 항상 불안합니다. 무서워서 참을 수가 없어요. 기영 씨나 다른 분들이 제 손을 잡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때처럼 다시 한번, 다시 한번 손을 잡아주신다면 조금 더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리광이라는 걸 지금 깨달았습니다.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

“이번에는 저 혼자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성 씨.”

“…….”

“현성 씨가 원하는 일이라면 모두 이루어질 겁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간에 모두 잘 될 거예요.”

저런 말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은 안심되는 위로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사람은 두려워하는 법이 없었다. 기억을 잃고, 죽어가는 와중에도 항상 올곧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기 때문에 그때도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 올곧은 눈을 보고 있을 때면 나 역시 실패할 거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그 선택이 옳은 선택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 이 사람은 절대로 틀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 역시 짐을 떠넘긴 행동에 불과하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죄송합니다.”

“네?”

“정말로 그동안 너무 죄송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책임을 질 차례다. 모든 걸 끌어안고 마침표를 찍을 차례였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현성 씨? 현성 씨?”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굳이 멈추거나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만약에 고개를 돌린다면 다시 한번 결심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을 잡는 게 느껴졌지만 곧바로 뿌리칠 수밖에 없었다.

“현성 씨!”

점점 더 빠르게 바뀌는 풍경이 시야에 비쳐왔다.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보인다.

셔츠와 청바지는 어느새 무거운 갑주로 변해 있다. 화려한 길거리는 점점 어두워진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노을 진 풍경은 거대한 어둠에 뒤덮였다. 철퍽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기분 나쁜 공기가 장내를 가득 메운다.

커다란 책상에 앉아 책을 쓰다듬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눈에 보인 것은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직후였다.

“루시퍼.”

-…….

“루시퍼.”

-여기에는 무슨 일이야? 뭔가 잘 풀리지 않는 게 있나. 마음에 들지 않는 거라도 있어?

“나가고 싶어.”

-뭐?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

-…….

“밖으로 나가야겠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말하지 않았나? 네가 나서면 모든 게 엉망이 될 거라고.

“아니,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어떤 근거로?

“내가 마침표를 찍을 테니까. 더 이상 도망치는 일은 없어.”

-재미있는 생각을 하는구나. 쓰레기 같은 인간. 너는 주인공이 아니야. 모든 걸 끌어안고 마침표를 찍겠다고 한들, 그게 제대로 될 거라는 보장은 없어. 회귀했다는 것 하나야. 네 특별함은 겨우 그 정도라고, 운이 좋아서 아니 나빠서 선택됐을 뿐이야. 내가 장담할 게 여기서 나간다면 너는 후회하게 될 거야. 이번에도 역시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절규하게 될걸.

“…….”

-얌전히 기다리는 게 더 이로울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다시 한번 실패하게 될 거라고.

“그럴 일은 없어.”

-어떤 근거로.

“내가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네가 본래 그리던 엔딩에 너는 없을 거야. 네가 꿈꾸던 일상에 너는 없을 거라고 그래도 좋아?

“상관없어.”

-지금까지 무서워 숨어 있었던 주제에 지금은 타인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이제야 내 역할이 뭔지 깨달은 것뿐이야. 나는 나가고 싶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루시퍼. 그게 계약이었어.”

-글쎄 조금만 더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

-후회할 거야.

“이미 충분히 후회했어.”

-실패할 거라고.

“네가 절대로 마침표를 찍지 않을 거라는 걸 지금에서야 알았어. 루시퍼.”

-누구보다도 끝을 바라고 있는 건 나야.

“아니. 네가 원하는 건 혼란뿐이야.”

-이래도 나가고 싶어? 나라면 가능해. 네가 꿈꾸는 미래를 실현시켜 주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이야.

눈앞에 다시 한번 꿈 같은 현실이 펼쳐진다. 어두운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고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다.

길드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다들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그 자리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자신 역시 자리해 있었다. 꿈 같은 광경이다. 아주 아름다운 멋진 풍경이었다. 저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찬란한 광경이었다.

-네 모습을 봐. 어린애처럼 웃고 있는 모습을 보라고. 네가 꿈꾸던 게 이거야. 네가 가장 큰 가치로 품고 있었던 건 이런 거라고. 아니면 다른 건 어때. 조금 비현실적이기는 하겠지만 더 과거로 가 보는 건 어떨까. 그래. 대륙에 떨어지기 전에 만나는 것도 재미있을 거야. 학창시절을 함께 보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나가고 싶어. 나를 보내줘 루시퍼. 계약을 이행해.”

-…….

“…….”

-…….

-멍청한 놈. 넌 멍청한 인간이야.

천천히 감았던 눈이 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까 꿈 같았던 풍경과는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둠과 악취로 물든 폐허였다.

천사들의 시체로 가득 메워져 있는 장소는 확실히 아까 봤던 풍경보다 내게 더 익숙하게 느껴진다.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보자 괴물처럼 변한 팔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뿔 때문인지 머리도 익숙하지 않다.

고여 있는 썩은 물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예상하고 있었던 것보다 더 형편없었던 것 같았다.

이제야 현실로 돌아왔다. 그걸 인지할 수 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어와 꽂힌 것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고 있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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