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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746화 (737/1,590)

< 746화 끝으로 (5) >

“제대로 준비해 놓으셨네요.”

-부길드마스터가 돌아오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우리 김미영 팀장님은 어떻게 이렇게 기분 좋은 말만 해주실까.’

사실 그 말이 맞기는 했다. 애초에 내가 없다면 성립할 수 없는 작전이었으니까.

“하얀이는 조금 어떻습니까?”

-이미 캐스팅을 외우는 도중이십니다.

“타이밍이 딱 맞겠군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 이런 페이스라면 시간 안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탄탄하고 개념 찬 지휘부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일이 딱딱 들어맞는 것 같은 기분은 느끼지 못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김미영 팀장의 확언에 여신의 손거울을 두드리며 상황을 살핀 것은 당연지사.

북부 지역을 커다랗게 감싼 신성이 옅어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혹시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녀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일부는 완전히 걷혀 있는 것을 보면 실상 지금 상태로 주문을 외워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컨트롤 타워에서도 나와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겠지만, 아마….

‘확실히 하고 싶은 거겠지.’

나도 불확실한 쪽에는 걸고 싶지 않다.

“임무가 끝난 병력이 빠져나갈 퇴로를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지역으로 향할 추가병력은 지휘부 쪽에서 편성해 주세요.”

-네. 부길드마스터.

‘짜투리들은 대부분 해결됐고요. 이제 덩어리들만 남은 건가요?’

도미니온스와 조혜진이 드라마 찍고 있는 곳은 아마 누나가 알아서 해결해 줄 거고….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비둘기들의 컨트롤 타워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게 느껴졌으니까.

몇몇 병력이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케루빔과 세라핌이 서로 드잡이질을 하고 있는 것처럼 장로 비둘기들 역시 서로를 적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누가 이곳에 인간들을 불러 왔는지에 대해 탁상공론이나 하고 있겠지, 뭐. 굳이 망원경으로 살펴볼 필요도 없다.

-작전 성공했습니다.

‘좋아요.’

-우정 길드가 임무를 마치고 병력과 합류했습니다. 라파엘 님께서도 함께 움직이고 계십니다.

‘좋은 울림이죠?’

-가로쉬앤캐쉬 길드와 미주사랑 길드 역시 포인트 도달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현재 적들과 전투 중이며 공화국의 병력들이 합류할 예정입니다.

‘네, 보고 있습니다.’

-67구역 임무 완수했습니다.

“네. 확인했습니다.”

-검은백조 길드는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고 있습니다. 따로 지시를.

“아니요. 검은백조 길드는 최대한 빠르게 귀환합니다.”

-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계속해서 신성이 옅어지고 있다.

“다른 특이사항이 있다면 계속해서 보고해 주세요.”

네.

조금 의외의 보고가 날아들어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부길드마스터, 용병여왕 님께서 현재 케루빔과 전투를 시작하실 거라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따로 지원 병력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전언을 받았습니다만….

“네? 언제….”

-방금입니다.

‘뭐야.’

케루빔과 세라핌의 영혼을 건 한판 승부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블루가 이겼어?’

적어도 몇 시간을 서로 싸우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조금은 일이 꼬였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시선을 돌린 것은 당연지사. 김미영 팀장이 보고한 그대로 케루빔과 시선을 마주치고 있는 차희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현재의 케루빔의 상태. 정확히 어떤 상황일지는 알 수 없지만 몸이 성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니, 이미 죽어가고 있다.

곧바로 주변을 살펴봤지만 세라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곧바로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깨닫게 된다.

‘세라핌이 이겼구나. 희라 누나는 막타 치러 온 거고.’

작은 문제가 있다면 차희라가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는 것.

“아….”

-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 누나 왜 또 멋있는 거 하고 그래. 진짜. 그냥 얌전히 막타 치면 되는데 뭘 그렇게 또….’

“…….”

‘그러다 지면 어떻게 하려고.’

물론 희라 누나가 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까 말한 것처럼 이미 케루빔은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차희라가 그걸 눈치채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회복할 수 있는 몸이 아니다.

아니, 가능성은 있었지만 스스로 그 가능성을 갉아먹고 있다. 촛불이 꺼질 때 활활 타오르는 것 같은 상태가 아닐까.

솔직히 희라 누나가 좀 멋있기는 했지만 굳이 이 타이밍에 라이벌과의 정정당당한 혈투를 준비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거, 시바, 진짜 대륙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니까.’

자기 재미있겠다고 스스로 핸디캡을 달고 싸우는 게 꼭 자기 스스로 하드모드를 고르는 게이머 같다.

대륙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내 입장에서 저런 선택은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핫! 재미있네. 퍼랭이.

-…….

하지만 그녀가 싸우는 모습은 그 자체로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케루빔은 둘째 치고 차희라마저 같은 인간이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생기게 했다.

눈은 점점 붉어지고 있고 본인 스스로가 이성을 놓으려고 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슬슬 시동이 걸렸는지 점점 말이 사라지고 있는 중, 폭음과 괴성 외에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기술과 기술의 전투는 이미 지나가고 마음껏 치고받는 모습, 그 와중에 케루빔의 입꼬리도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면 내가 모르는 유대감을 서로에게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모르긴 몰라도 나와 진청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자신이 인정한 상대에게 보내는 찬사와 경의,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에 대한 존경, 이런 싸움을 즐길 수 있다는 즐거움과 결국에는 마지막이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는 씁쓸한 마음까지.

종류는 조금 다를지 모르겠지만 둘은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지지지지지직!

작은 문제가 있었다면….

‘연구시설이 아깝기는 하다. 야. 근데.’

주변이 완전히 개 박살 나고 있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1차전 때와 마찬가지다. 2차전 때 역시 완전히 지형이 바뀌고 있다. 이미 연구실은 그 형태를 잃어버렸다.

세라핌과 케루빔이 얼마나 얌전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즐거운가 봐?

-무슨 소리냐. 붉은 짐승아.

-너 지금 웃고 있잖아. 퍼랭아. 어때 재미있어?

-이해할 수가 없군.

아니, 녀석은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아마 녀석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부길드마스터.

“들키지 않게 근처에 지원 병력 넣어 두세요. 어차피 신경 쓸 겨를도 없을 것 같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미소 짓게 되는 얼굴이 눈에 띈다.

이미 그 긴 머리는 풀어 헤쳐져 있다. 단정하게 머리를 묶었던 이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현재의 녀석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결벽증도 뭣도 아닌 모양, 본인의 얼굴이나 몸에 붙어 있는 것들이 거슬리지도 않아 보인다.

거대한 낫과 도끼가 부딪친다. 무기가 튕겨 나가자 곧바로 머리로 차희라를 들이받는 놈의 모습이 보인다.

-하하하핫!

차희라 역시 비슷하다. 놈의 긴 머리를 잡은 이후에는 곧바로 팔꿈치로 얼굴을 가격한다.

콰아아아앙!

폭발 소리가 들려왔지만 둘은 물러서지 않는다. 박진감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다.

인간과 천사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짐승과 짐승이 싸우는 것 같다.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신화 속에 나오는 짐승들이 싸우는 것만 같다.

케루빔은 차희라를 붉은 짐승이라 불렀지만 내가 보기엔 오히려 놈이 파란 짐승에 가깝다.

마치 본인을 억누르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토해내는 것처럼 녀석은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고 있었다.

냉정한 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도 않다. 놈 역시 희라 누나와 같지 않은가.

활활 타오르는 불꽃.

절대로 꺼질 것 같지 않은 불꽃.

어떻게 저런 불을 억누르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녀석은 본인들이 타고난 성격이 없다고 표현했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불길도 사그라든다. 놈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놈은 한계를 넘어섰으니까.

‘희라 누나 지는 건 아니지?’

서로 치고받고 있지만 뒤로 물러서는 것은 녀석 쪽이다. 일어나지 못하는 쪽은 녀석이다. 종국에 쓰러져 비틀거리며 한심하게 땅바닥에 누워 있게 된 쪽도, 녀석이었다.

붉은 짐승은 피가 섞인 가래를 퉤 하고 내뱉으며 누워 있는 파란 짐승에게 입을 열었다.

조롱에 찬 대사를 내뱉어야 하는 타이밍이었지만 붉은 짐승의 얼굴은 진지해 보였다.

-아쉽네.

진청이랑 나랑은 다르네.

-그래… 아쉽구나. 붉은 짐승아.

-그래서. 속은 조금 시원해졌고?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기분이 어때?

-나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본래 사라지는 것에, 삶을 끝내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우리였지만… 어째서 인간들이 그토록 끝에 집착하는지 알 것 같구나.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내 안에 있던 걸 털어놓은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고… 또 유대감… 그래. 유대감이라는 게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유대감?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네가 나와 같은 걸 가지고 있다고 느껴지더군.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너 같은 인간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것도 우습다만 너와 부딪치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아니, 죽어가는 이가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뿐이니 마음에 크게 담아두지 않아도 좋다.

-비슷하기야 비슷해. 정확히 네가 뭘 말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너와 내가 닮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네. 굳이 풀어서 해석하자면 유대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네. 우리는 동류야. 퍼랭아.

-동류….

-그래 동류. 나는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거든. 지금 네 꼴이 그걸 증명하고 있는 거 아니겠어? 숨기려고 하지만 숨길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야. 타고난 본성이라는 건. 후천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데. 뭐 결국 너희들도 가지고 있었다는 거지.

-우리는 그렇게 설계되어 태어난 것이 아니다만….

-그딴 건 관심 없어. 너와 내가 동류고 그렇기 때문에 네가 유대감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느꼈다는 거지. 나도 마찬가지야. 어느 쪽이냐 묻는다면 나도 너와 비슷한 걸 느꼈던 것 같네. 조금 더 해보고 싶었는데 아쉽기는 아쉬워.

-그래. 아쉽… 구나.

-어때? 뒈질 때까지 같이 있어 줄까? 그 정도면 가능한데.

-하… 하하. 그럴 필요는 없다. 그냥 이렇게 눈을 감고 싶구나.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다만… 네게… 그래. 동류에게 부탁이 있다.

-뭐?

-부탁을….

-넉살도 좋네. 보통 동류라고 해서 부탁하고 들어주거나 그렇지 않아.

-염치… 없다만… 내 형제들을… 잘 부탁….

-…….

-…….

-그건… 내 능력 밖이야. 퍼랭아.

-…….

-…….

-그럼… 어쩔 수 없겠군.

녀석은 조용히 천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파란 짐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째서 저 말을 중얼거리는지는 나는 하등 이해할 수 없었지만 놈은 끝까지 입을 열고 있었다.

-세라핌, 도미니온스, 쓰로누스, 그리고 나… 하… 하하….

-…….

-세라핌… 도미니온스, 쓰로누스, 그리고 나….

-…….

-세라핌, 도미니온스…쓰로… 누스… 그… 그리고 나….

붉은 짐승은 등을 돌린다.

-세라…. 도미… 누스… 나….

-동류 맞네. 새끼.

-쓰로누…스… 그…리…고….

그리고,

그 아름다웠던,

투쟁과 격전의 장소에서.

넝마가 된 채로 굴러다니는 내 가방이 시야에 비쳤다.

‘아, 마취 물약 놓고 온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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