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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760화 (751/1,590)

< 760화 끝으로 (19) >

“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확실하게 뿔을 잡아당기지 못하는 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으아아아아아악… 아… 아아… 흐윽… 아아아악!”

심지어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아직까지 확실하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내 비명 소리에는 반응하고 있다.

눈이 커다랗게 변하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아… 으… 아아….”

‘시바, 새끼야.’

무척이나 리얼한 울음소리와 고통에 찬 비명이 그대로 전해지지는 않을까.

아직까지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마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 네 생각이 맞을 거야.’

통각 공유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게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김현성이 깨닫지 못할 리가 없다.

눈치가 없기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깨달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회귀자가 전투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까 차마 말하지 못했던 ‘그 녀석’의 배려.

자신의 고통을 참아가면서까지 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그 녀석의 희생.

아니나 다를까 흠칫거리고 있는 모습이다. 절망으로 가득 차 있는 감정은 녀석이 입을 떼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기… 기영 씨?

“…….”

-기영 씨? 괜찮… 괜찮으십니까? 기영 씨?

‘제정신인 건가?’

솔직히 모르겠다. 그냥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일지도 모르지. 일단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맞다.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다시 의연하게 말을 잇는 모습을 선보이는 게 무난한 행동이지 않을까.

여기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게 정답인지 결정을 내리는 것에 시간이 걸린다.

일단 김현성이 반병신이 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으니까. 그만큼 나도 절박했었고….

김현성이 느끼고 있는 통증은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육체적인 고통도 육체적인 고통이지만….

‘문제를 그렇게 해결하려고 그러면 안 되지.’

그렇게 막 자해하고 뿔 뽑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거 뽑은 다음에도 해결 안 됐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그다음에는 날개도 뜯으려고 했어? 그다음에도 안 되면 뭐 어떻게 할라구.

그런 거는 도움이 안 된다니까. 그런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안 돼요.

시바 그냥 받아들이는 게 차라리 편하다고. 애초에 마음속에 싹트고 있는 의심을 네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찍어 눌러야 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찍어 누르는 게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녀석에 괜한 짓을 할 수 없게 제대로 찍어 눌러야 한다. 방법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해야 돼.’

아니, 사실 어렵지도 않다. 악마들이 한 인간을 타락시킬 때와 마찬가지다.

인간의 가장 약하고 괴로워하는 부분을 끊임없이 파고들고 파고들고, 또 파고든 다음, 저항할 수 없는 상태까지 내몬 이후에 완전히 먹어버리는 거지 뭐.

물론 나는 김현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차이점이 있기야 하지만 여기서는 그들의 방법이 더 잘 통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현재 김현성이 가장 괴로워하는 부분이 뭐지? 뻔하지 뭐.

죄책감?

더 어두운 곳으로 끌어내리자. 조금만 더 아픈 척하고 괜찮은 척하면 되는 거야.

“아…. 하아… 아….”

-괜… 괜찮으십니까? 기영… 기영 씨? 지금….

“하… 으… 아….”

-기영 씨… 통각이… 통각이… 아… 제가… 제가….

“아….”

-…….

“저는 괜찮습니다. 저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네? 네… 어… 네… 흐윽….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 그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저도 느껴지는 게 없어서… 뭔가…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 맞다면… 제가 직접 현성 씨의 상태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머리는… 머리는 괜찮으십니까?

“통각을 차단해 놓은 지 오래됐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네. 하아… 하아… 현성 씨는… 현성 씨는 괜찮으신 겁니까? 일단은… 일단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정신 계열의 마법이… 하윽… 현성 씨는 지금….”

-기영 씨? 기영 씨?

“…….”

‘나는 리얼루 아무렇지도 않은데. 넌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저는… 네. 저는… 흐윽….

‘얘가 얼마나 고통에 익숙하면 진짜 저래요? 뭐 저래?’

-저는…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흐윽… 네.

딱 생각하고 있었던 그대로 였다. 굳이 의식을 유도할 필요도 없이 녀석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놈이 자신의 머리에 붙어 있는 뿔을 떼어낸 것은 루시퍼에게 저항하기 위한 의미라고 판단해도 되겠지만 실상은 자해라고 봐도 무방한 행동이었다.

자기혐오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힌 거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아니라는 거다.

본인을 상처 입히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게 해를 끼친 셈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김현성이 점점 가라앉는 것인 느껴진다.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었다면 지금은 그 해결책마저 막혀 있는 상황.

김현성은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어떤 방향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려다가도 멈칫거리고 있었고, 유일하게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막혀 버리자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막말로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한 단계 성장을 이룩해 냈던 김현성은 없다. 스스로 루시퍼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희생하는 영웅으로 발돋움했던 김현성은 이미 자리에 없다. 건드리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모래성만 자리해 있었다.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덜덜 떨리는 입과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눈에 띈다.

뭐라고 제대로 말을 하지도 못하고 있다. 김현성은 망가졌다.

“저는… 저는… 현성 씨를 믿고 있습니다.”

그 한마디에.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 내렸다.

화아아아아아악

‘지금.’

쉬운 작업이다.

무방비 상태에 있는 김현성을 조금 건드리는 것 정도는 정말로 쉬운 작업이다.

‘끊자.’

김현성이 이기영에게 가지고 있는 유대를 끊어놓으면 돼. 우리 회귀자가 저항하고 있는 이유는 그 끈을 놓기 싫어서니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전부 흐릿하게 만드는 거야.

아니, 흐릿하게 만든다기보다는 김현성이 지금까지 느꼈던 감정과 유대를 죽이자.

이기영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버리자.

이런 게 가능할까? 불가능할 게 뭐가 있겠어. 완벽히 벽이 허물어진 상태 아니야?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불안요소는 처음부터 차단하는 게 맞지. 지금의 김현성의 모습을 보면 확신할 수 있잖아? 유대가 있으면 결국에는 찌르지 못하는 거야.

내가 가면의 영웅이라는 사실을 인정해도 2회 차의 정 때문에 건드리지 못할 변수도 차단해야 돼.

저 새끼 봐. 분명히 그렇게 행동할걸. 머뭇거리고 부정하다가 결국에는 칼 떨어뜨린다니까.

‘하지만….’

하지만은 없어. 선택지는 이거 하나야.

계속해서 김현성의 머릿속을 헤집는다. 녀석이 이기영에게 유대감을 느꼈던 순간들을 계속해서 뽑아낸다.

처음 튜토리얼 때부터.

-아… 안 돼.

돼.

‘김현성이라고 합니다.’

그래 처음부터.

처음부터 말이다.

이미 녀석과 한 차례 추억 이야기를 주고받기는 했지만….

이렇게 보니 마치 모든 게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기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소환사, 연금술사, 흑마법사에서 고르는 게 조금 더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흑마법사는 추천해 드리기 어렵겠군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적어도 이 상태창은 저희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으니까요.’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직업 때문에 실랑이했던 것도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

솔직히 나도 재미있기는 했어. 그때는 연금술사가 개꿀 직업인 줄 알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낚인 것 같기도 해.

시바. 흑마법사도 괜찮을 것 같았고 지휘관도 좋았을 것 같은데, 라무스 터커의 연금학개론에 낚였었네.

너 지금도 이걸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진심으로?

‘혹… 혹시 말이요… 혹시나 형님은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인 거 아니요?’

‘그건 안 돼요. 오, 오빠!’

‘그런 건 아니야. 나도 너희와 함께하고 싶다. 물론 현성 씨도 같이. 그렇지 않습니까?’

‘예. 비록 이런 이상한 장소가 맺어준 인연이지만… 기영 씨와 덕구 씨, 그리고 하얀 씨와는 함께 가고 싶군요.’

처음 길드에 들어갔을 때야? 형이 돈 많이 벌게 해준다고 했자너. 그때는 진짜 급하기만 해가지고 앞뒤 안 돌아보고 들이대기만 했었지.

가끔 덕구가 없어도 넷이 있을 때가 즐거웠다고 이야기를 하고는 했는데. 너도 마찬가지였어? 아니면 추억 보정이야? 너 이때는 시바 나 별로 안 좋아했잖아. 그지?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기영 씨.’

‘네?’

‘기영 씨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아니 설사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유라 씨가 굳이 기영 씨의 잘못을 지적을 권리는 없습니다. 엄연히 기영 씨는 파란의 파티원입니다. 만약에 실수했다고 생각했다면 제가 먼저 말씀을 드렸을 겁니다. 어째서 유라 씨가 먼저 우리 파티원의 행동을 문제 삼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나쁘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저번에도 말한 적이 있었던 첫 던전. 내가 생각해도 너 거기서 좀 멋있기는 했어.

‘우리 파란의 길드마스터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바로 이 그리폰입니다.’

‘아!’

그렇게 좋았어? 그리폰에 환장해요.

‘혜진 씨를 길드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려고….’

‘그 현성 씨… 제가 이전에 말씀드린 것은 머릿속에서 지워주셔도 됩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니까요. 혜진 씨가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면 부담 없이 임명하셔도 됩니다. 아!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오해하고 있는 건 없습니다. 현성 씨 입장에서는 충분히 생각하실 수 있는 이야기니까요.’

진짜로 이때 이 새끼 똥줄 탔었자너.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추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순서가 뒤죽박죽이지만 하나같이 김현성이 이기영에게 유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이다.

심지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많다. 아주 사소한 거. 정말로 사소한 것들. 함께 식사를 하거나 술자리에서 주고받은 별것 아닌 이야기들.

반대로 무척 커다란 사건들도 많다.

‘죽여줘.’

이건 지금 보니까 조금 부끄럽네. 아니야. 솔직히 멋있기는 멋있었어. 저것 봐.

‘돌려줘. 이 개자식.’

‘말하지 않았나.’

‘돌려줘….’

‘앵무새 같군.’

‘돌려줘… 돌려달라고!!! 이 씨발!! 개새끼야아!!!!!’

저건 그만 보자. 이 앞이 죽여줬었는데.

‘인간이라는 건 참 이상한 것 같습니다. 모든 게 다 무너진 폐허인데… 조금은 예쁘게 보이기도 합니다. 신비롭게 보이기도 하고요. 붉은 노을이….’

그래. 이거.

‘제기랄!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아냐고! 제길… 제길! 흉내내지 마. 흉내내지 말라고. 제기랄!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서 나에게 책임을 강요하지 마. 이렇게까지 나타나서 나한테 책임을 강요하지 말란 말이야. 나는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한 적 없어. 다시 한번 하고 싶다고 부탁 한 적도 없다고! 그러니까 그만 내버려 둬. 제발 그만! 그만 내버려 둬! 더 이상 나한테 책임을 강요하지마! 이 개새끼들아! 나한테 씨발… 책임을 강요하지 말라고… 씨발….’

‘…….’

‘제발 생각하지 마… 제발… 제발 생각하지 마. 떠올리지 말라고… 이제 지긋지긋하잖아. 제발 떠올리지 마. 아무것도 떠올리지 마.’

‘…….’

‘제발 그만해… 제발… 제발 그 모습으로 나한테 책임을 강요하지 마요.’

솔직히 이게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 그렇지? 지금 생각해도 괜히 찡 하다고.

‘아무도 네게 책임지라고 말한 적 없다. 그 누구도 그렇게 말한 사람은 없어.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압박으로 느껴진다는 것도, 많은 걸 감당해야 한다는 걸 버틸 수 없을 것 같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굳이 혼자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어. 짐은 같이 들면 돼.’

‘…….’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내가 김현성 전부 다 키웠지. 생각보다 너무 많네.

가방 쇼핑? 아, 시바. 2주 동안 감금당한 거? 야간 산책, 시바? 장난쳐? 진짜?

둠현성 사건도 조금 컸지? 라파엘 진짜 싫어했었네. 근데 이번 일 끝나면 너네 같이 얼굴 맞대고 지내야 할지도 몰라.

점점 더 가면 갈수록 사소한 거 하나하나 전부… 너무 많은데. 상관없지 뭐. 어차피 찰나니까.

‘기영 씨?’

응.

‘저는 믿고 있습니다.’

어. 시바, 나도.

‘그야 물론. 짐을 함께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근데 이거 끝나고 도망쳤지.

‘죄송합니다.’

넌 죄송한 것도 많아. 미안할 짓을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말라고! 더 이상 짐을 들게 하지마!! 더 이상!! 기영 씨! 거기서 나와요! 거기서 나오라고요! 하지마… 흐으윽… 하지 말라고. 더 이상 뭘 어쩌려고…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라고….’

울지 마. 시바. 왤케 자주 울어?

‘저는 조금 못난 사람이었습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았어.

‘꼭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과의 의미도 있고 여러 가지로 기영 씨에게 필요한 물건일 테니까요.’

80만 골드짜리 가방도 선물해 줬자너. 그게 어떻게 못난 사람이야?

그리고.

‘저는….’

‘…….’

‘저는… 저는 회귀자입니다.’

그래. 장하다. 시발로마. 너는 회귀자야. 내가 선택한 알타누스의 회귀자.

화아아아아아아악!

찰나였지만 많은 걸 보고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멍하니 서 있는 김현성이 눈에 보인다. 이미 눈물을 멈춘 지는 오래.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다시 뿔을 잡아당기려고 하지도 않고 있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초점이 정확하게 잡히지 않은 눈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하… 끝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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