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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768화 (759/1,590)

< 768화 마지막 (1) >

-이후에 누군가가 그날의 전투가 어땠는지 묻는다면 제 생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과 빛을 바라본 날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

-먼 시간이 흐른 이후에 누군가가 그날의 풍경이 어땠는지 묻노라면 모두가 하나같이 가장 숭고한 빛이 있었다고 노래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륙은 승리했습니다. 대륙을 위협하는 악마의 무리를 몰아내고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쟁취했습니다. 값진 승리였습니다.

“…….”

-하지만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이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늘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한 성자의 희생을….

“아직도 믿기지가 않네요.”

“…….”

“정말로… 믿기지가 않아요.”

-한 성자의 희생을 기리기 위함입니다.

“…….”

-네. 파란의 부길드마스터. 이기영 명예추기경님께서는 항상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많은 것을 희생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가장 가까이에서… 저는… 그의 친구로서… 그가… 얼마나…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온종일 이야기해도…. 네… 죄송합니다. 다시… 그러니까… 제 친구… 기영이에 대해서… 흐윽… 죄송합니다.

앞을 바라보자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조혜진 님의 모습이 보였다.

손에 들린 추도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뭐라고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어떻게든 말을 떼려고 하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그녀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남들 앞에서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던 그녀가 이런 공식 석상에서 눈물을 흘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하고 있는 이들 몇몇도 시야에 비친다.

‘가혹해.’

이 장소에 자리해 있다는 게 그녀에게 가혹한 일이다. 부길드마스터의 지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가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미 눈가가 붉어져 있다. 대륙의 승리를 기뻐할 겨를도 없이 날아온 절망적인 소식에 제대로 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로 지옥 같은 장소에 발을 디딘 것이다.

계속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억지로 입을 떼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이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눈에 보인다. 어떻게든 쥐어 짜내는 목소리는 절규 섞인 울음소리에 금세 묻혀 버렸다.

-흐윽… 흐으으윽… 흐윽… 죄송합… 흐으으윽….

-자리해 주신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네… 잠시 후에… 순서를 바꿔….

이내 교단 관계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몇 사제들이 단상 위로 올라가 허물어진 조혜진 님을 챙기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마 추도식은 계속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였으니 말이다.

이기영 명예추기경을 추도하는 것은 교단과 대륙 전체에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는 대륙의 영웅이었고 대륙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 성자였다.

이 힘든 자리에 조혜진 님이 자리한 것 역시 그러한 이유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의 죽음을 감당해야 했으니까. 파란 길드에서 누군가는 그가 얼마나 숭고하고 자기희생적인 사람이었는지, 그의 삶이 어땠는지, 대륙에 전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녀의 말대로 대륙은 전쟁에서 승리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쟁이었고 그 어떤 전투보다 가혹하고 힘든 전투였다.

이질적인 빛이 사라지고 난 이후, 노을빛의 물든 세상은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풍경보다 더 아름다웠다.

모두가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누구도 그 커다란 승리 뒤에 더욱더 큰 희생이 자리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자신 역시 그랬다.

새로운 하늘이 열린 순간 웃음을 터뜨렸고 인류의 승리를 노래했다.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눈을 감고 있었던 부길드마스터의 시신을 보지 못했다면 다른 이들과 함께 계속해서 축배를 들어 올렸을 것이다.

지금도 무척 선명한 기억이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던 노을빛 아래, 부길드마스터의 시신을 부여잡고 오열하고 있는 정하얀 님의 모습과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길드마스터의 모습.

무언가 할 말을 잃은 것 같은 길드원들과 부길드마스터의 죽음을 부정하던 박덕구 님.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러웠던 그 날은 기쁨보다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날이었다.

아니,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허리를 숙이며 계속해서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정하얀 님이 눈에 보였다.

옆에 있는 한소라 님이 손을 꽉 잡아주지 않고 있었더라면 아마 이 곳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정하얀 님은 아직까지도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으니까.

간혹 한소라 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부길드마스터가 말을 걸었다고, 부길드마스터가 함께하고 있다고 하는 종류의 이야기였다.

악마의 봉인에서 풀려난 한소라 님은 희미하게 웃으며 그녀의 말에 긍정했지만…

‘그렇지 않을 거야.’

정말로 정하얀 님이 부길드마스터의 죽음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는 길드에 있는 그 누구보다 위태로워 보였고 심지어 부길드마스터와 만나겠다며 생을 마감하는 것을 기도하기도 했었다. 솔직히…

정하얀 님이 자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비어 있는 곳이 많이 보인다. 엘레나 님도, 길드마스터 역시 자리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표현이 더욱더 어울릴 것이다. 그만큼 그의 죽음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삼 일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대륙 전역에 커다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슬픔을 위로했지만 파란도, 대륙도, 빛의 아들을 잃었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백조의 이지혜 님은 부길드마스터의 소식을 들은 직후에 자취를 감췄다.

선희영 님, 카스가노 유노 님도 비슷한 시기에 모습을 감췄다. 이지혜 님이 선희영 님과 따로 접선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그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함께 사라진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붉은용병의 길드마스터인 차희라 님 역시 자리하지 않았다. 참석하겠다는 메시지를 따로 받기는 했지만….

“알프스 님?”

“…….”

“알프스 님?”

“…….”

“알프스 님.”

“아… 네. 죄송해요. 김미영 팀장님.”

“아닙니다.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조혜진 님이 이제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 잠깐 따로 휴식을 취하시고 이곳에서 대기하시다가 단상 위로 올라가실 텐데….”

“아… 네. 김미영 팀장님은 지금 가시는 건가요?”

“네. 저는… 아무래도 교단 측과 한 번 더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로… 힘드네요.”

“네.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많으니까요. 추도식에서까지 이런 이야기를 나눠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길드에서 문제를 처리하지는 않는 건가요?”

“다른 분들에게 이런 것까지 신경 쓰고 싶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조용하게 처리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정하얀 님의 상태를 생각하면… 알리면 안 될 것 같고요.”

“아… 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추도식은 아마 잠시 후에 다시 시작될 것 같습니다. 조혜진 님이 꼭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주셔서… 마음이 조금 진정되실 때까지만… 부탁드립니다.”

“네.”

김미영 팀장님이 조용히 자리를 일으키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부은 눈을 바라보니 씁쓸한 기분이 든다.

김미영 팀장님이라고 슬프지 않을까. 부길드마스터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아마 그 누구보다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그런 걸 상의하고 싶지 않을 텐데.’

간단한 문제다.

부길드마스터의 시신의 소유권에 대한 문제였다.

교단 측에서는 상징적인 의미로 베니고어의 아들의 시신을 직접 모시고 싶어 했다. 사실 모시고 싶다는 표현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교단 측에서도 양보하기 힘든 문제였을 것이다. 부길드마스터가 공식적으로 파란 길드를 탈퇴한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으니 결과적으로 파란 길드는 부길드마스터의 시신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입장에 있었다.

공식적으로 명예추기경의 직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단에서는 시신이 자신들의 소유라고 주장했고 아직 남아 있는 대륙보호관리위원회는 위원회에서는 자신들이 시신을 인수인계하겠다고 주장했다.

추도식 전까지는 파란 길드에서 부 길드 마스터를 보관하고 있었지만 추도식이 끝난 이후에는 각기 집단들이 소유권을 주장할 것이다.

어쩌면 무력 충돌까지 일어날지도 모른다. 상상하기도 싫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이미 자신을 포함한 몇몇은 무력 충돌이 일어났을 경우의 매뉴얼을 숙지하고 있다.

슬픔을 감당하기도 힘든 시기에도 머리 아픈 정치적인 문제를 직면한 것이다.

김미영 팀장님이라고 이런 일을 맡고 싶었을까. 본인 나름대로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하셨지만 주변의 상황은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전쟁의 뒷정리는 물론이거니와 부 길드 마스터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응해야 했고 파란 길드를 지켜야 했다.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길드마스터가 얼마나 길드를 사랑하는지 알고 계셨으니까.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씁쓸해… 이런 게… 부길드마스터가 원하는 광경은 아니었을 텐데….’

이런 걸 원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자리를 지나치자 유아영 님과 김창렬 님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인다.

김예리 님은 막 교단의 관계자에게 향하려는 김미영 팀장님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방금 건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다.

“지네들이 뭔데. 아저씨를. 달라고그래? 그 새끼들이 한 게. 뭐가. 있다고. 시발 새끼들이.”

“김예리 님. 지금 이 자리에서는… 잠깐… 따로….”

“나도. 같이 갈래.”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정하얀 님이 살짝 고개를 드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잠깐 동안 한소라 님과 이야기를 나눈 이후에 다시 한번 고개를 아래로 내렸지만 갑작스레 이유를 알 수 없는 오한이 등 뒤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째서 손발이 떨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방금 뭔가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숨을 몰아쉬는 한소라 님이 눈에 보인다.

황정연 님과 안기모 님도 자리에서 잠깐 일어나 김미영 팀장님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다.

그 끝에 조용히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조혜진 님이 눈에 띈다. 천천히 다가가 옆자리에 몸을 앉아봤지만 뭐라고 위로를 건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맞겠지.

조용히 손을 꽉 잡아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

“…….”

“꼴불견이었군요.”

“…….”

“정말로… 꼴불견이었습니다.”

“모두 이해할 거예요.”

“괜한 고집을 부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마지막까지 폐를… 끼친 것 같습니다. 부길드마스터는… 저를 비웃을 게 분명합니다. 그렇게밖에 못하냐며 저를 비웃고 있겠네요.”

“…….”

“읽을 수 없었습니다.”

“…….”

“그의 희생을 기리고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 그게 대륙의 성자가 원하는 모습일 거라고 도저히 이야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얼마만큼 대륙을 진심으로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도,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

“눈앞에 있는 걸… 그대로 읽으면… 그대로 읽으면 끝일 텐데… 그걸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흐윽… 그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마지막까지…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흐으윽… 없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괜스레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허벅지에서 번지고 있는 피가 보인다. 검은색 하의를 물들이고 있는 붉은색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저번과 마찬가지다. 잠깐 동안 입술을 꽉 깨물게 된다. 이걸 다시 한번 언급하는 게 맞나 싶기도 했지만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조혜진 님. 혹시….”

“…….”

“혹시….”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걸… 끝마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금은… 힘이 된 것 같습니다. 이만 자리로 돌아가세요. 저는 이걸 끝마쳐야 하니까요. 네.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단상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조용히 말을 잇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몇 번이고 멈추고 억지로 눈물을 삼키고 있었지만 끝끝내 말을 이어 나간다.

-그의… 그의 희생은 의미 있는 희생이었습니다.

의미 있는 죽음 같은 것은 없다.

-분명히 이겨낼 수 있다고… 네. 견딜 수 있다고, 별것 아니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우리를 사랑했던 제 친구는 미소 지으며 눈을 감았던 마지막 순간… 순간처럼… 웃으며 우리를 지켜볼 것입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이겨낸다거나 그 죽음을 딛고 일어선다는 선택지는 없다. 죽음은 항상 괴롭고 저주스러웠으며 많은 사람을 갉아먹는다.

-슬픔을… 딛고 일어섭시다. 그가 우리와 함께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

-빛의 성자는, 베니고어의 아들은, 제 친구는 대륙을 비추는 빛이 되어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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