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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778화 (769/1,590)

< 778화 마지막(11) >

‘신화 등급?’

이거 어떻게 한 거지?

[신화 등급의 조각상의 효과로 신전의 결계가 펼쳐집니다.]

[결계 안의 플레이어들의 체력과 마력이 자동적으로 회복됩니다. 결계 안 플레이어들의 저항력이 올라갑니다. 결계 안에 신성이 깃들기 시작합니다. 결계 안의 대지가 정화됩니다. 기도를 드리는 신도들의 저주가 해주됩니다. 플레이어들은 결계 안에서 피로를 느끼지 않습니다.]

[신도들에게 무한한 신앙심이 깃듭니다. 추가 신성을 1.5배로 획득합니다.]

‘추가 신성 1.5배?’

계속해서 떠오르는 메시지에 어안이 벙벙해질 지경이었다.

굳이 하나하나 읽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들은 입이 다 벌어질 정도로 인상적이다.

특히나 추가 신성을 얻을 수 있다는 부분은 내가 뭘 잘못 읽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럽다.

찬란한 노을빛이 석상을 비추고 있는 것이 보인다. 후광 때문인지는 몰라도 왠지 모르게 더욱더 성스럽게 보이는 것만 같다.

한소라와 정하얀은 다시 한번 빤히 석상을 바라보고 있는 중.

눈물 콧물 다 흘리던 정하얀의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피어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지만 한소라의 표정도 눈에 띈다.

본인이 만들고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 자신의 결과물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니지. 시바, 이럴 게 아니지.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일단 쟤부터 전직시켜야 되겠네. 너 흑마법사 왜 하구 있어? 재능을 찾았으면 새로운 길로 가야지. 안 그래?’

[플레이어 한소라에게 전직을 제안하시겠습니까?]

[신화 등급의 직업을 검색합니다. 적절한 직업을 찾을 수 없습니다.]

[고유 신화 등급의 직업이 생성됩니다.]

‘시바, 고유 신화! 고유 신화야! 고유 신화!’

[생명을 깎는 조각사-고유 신화 등급]

[플레이어 한소라에게 고유 신화 등급의 직업 생명을 깎는 조각사를 제안합니다.]

생명을 깎는 조각사란다.

그 말이 틀린 게 아니다. 저 조각상을 보라. 마치 살아 움직일 것만 같지 않은가.

‘가자. 소라야. 이런 거 몇 개 더 만들자!’

[플레이어 한소라가 제안을 거절합니다.]

‘?’

서둘러 그녀의 표정을 살폈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것만 같다.

김현성이랑 정하얀한테 압박당한 것 때문에 그래? 사사건건 옆에서 끼어들고 고나리질 해서 그런 거야? 걔네 짜증 받아내는 게 그렇게 힘들었어?

저거 만들어질 때 보면 내가 보기에도 조금 너무하기는 했는데… 솔직히 트라우마 생길 만하기도 했는데….

지금 이것저것 따질 처지는 아니자너. 신화 등급의 직업이자너! 추가 신성 1.5배자너.

[플레이어 한소라에게 고유 신화 등급의 직업 생명을 깎는 조각사를 제안합니다.]

[플레이어 한소라가 제안을 완고히 거절합니다.]

눈을 꽉 감고 있다. 이건 아니라는 듯이 기도하고 있다. 다시 한번 그런 고통을 겪기 싫다는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나온다.

[플레이어 한소라가 애원합니다. 전직하고 싶지 않다고 저항합니다.]

‘시바, 그냥 전직해.’

[플레이어 한소라가 죽어도 전직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더 이상 전직을 권유할 수 없습니다.]

‘한소라. 진짜.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우리 하얀이 챙겨야지.’

한소라의 전직 때문에 더 중요한 게 있었다는 걸 까먹을 뻔했다. 신화 등급의 조각상이라고 한들 계속해서 연결할 수 있다고 보장된 게 아니니 빠르게 입을 여는 게 좋겠지.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까. 솔직히 말하고 싶은 것은 많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봐왔지만 직접 안부를 묻는 건 또 다르니까.

조금 호들갑을 떨고 싶기는 했지만 명색이 신인데 그렇게 말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조각상에서 나오는 말은 신탁이나 다름이 없으니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신전 안에 있던 이들이 조각상 앞으로 모이는 것이 눈에 보인다. 모두가 뭔가에 홀린 것처럼 조각상을 올려다보고 있다.

“울지 마세요. 정하얀 님.”

존댓말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오, 오빠… 오빠. 끄으윽… 오빠. 오빠아….

“항상 당신을 지켜봐왔습니다. 이 신전과 조각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당신을 지켜봐왔습니다.”

‘이런 말 해주면 좋아 죽자너.’

“외롭고 힘든 시간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이름에 맹세코 말하건대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언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슬퍼하지 마세요.”

-…….

그래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얘 왜 저렇게 서럽게 울어.’

“울음 그쳐야지?”

이제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다.

도움이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되는 모양.

솔직히 정하얀은 이 말이 가장 듣고 싶었을 것이다.

본인 나름대로도 올라올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또 만나지 못할 경우의 수에 대처할 경우의 수를 떠올리고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한 점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안심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대화하는 게 오랜만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다른 얘들은 어디 있지? 아직 소식 못들은 건가.’

아니나 다를까 허겁지겁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눈에 띈다. 김미영 팀장이 연락을 돌린 것이리라.

-형님이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나다. 돼지 새끼야.’

-진짜로 형님 맞는 거요? 진짜로 형님인 거요?

박덕구의 저런 얼굴을 보는 건 정말로 오래간만인 것 같다.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정말로 형님 맞느냐 이 말이요… 흐윽… 흐으으윽….

커다란 손으로 눈을 비비는 게 어린애 같다.

-내가… 내가 멍청해서… 내가 멍청해서 정말로 미안합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끝까지 형님 옆에 있어 주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 미안…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내가… 정말로….

이제는 목이 메는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얘도 김현성만큼이나 멘탈이 나가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지금이야 억지로 밝은 모습을 보이고는 있었지만 결국 추도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오죽할까.

솔직히 내 시체를 옮기는 것은 저 돼지 새끼의 역할이 될 줄 알았다. 가장 앞자리에서 사진이라도 들어줄 줄 알았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박덕구가 내 죽음을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한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못했던 녀석이었으니 이해는 할 수 있다.

-형님이… 형님이 그렇게 된 건 다 내 잘못이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러니 자책하지 마세요.”

-뭐라고 말하든 내 잘못이라니까… 내가… 미안합니다. 형님을 그렇게 놔둬서 미안합니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제대로 배웅해 주지 못해서 정말로… 흐윽… 미안합니다. 아무 능력도 없는 동생 하나 거두느라 고생만 했는데… 내가 아무것도 도움 주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합니다. 흐윽… 끄으으으윽… 바보 같은 놈이라 정말로….

“당신은 대륙의 영웅입니다. 기억하세요. 제가 당신에게 전한 말을 항상 기억하세요.”

울음을 그치라 말한 건데 오히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모양이다.

-흐어어어어엉… 흐으으윽… 흐어어어어어엉….

아니, 왜 이렇게 소리 내서 울어. 그만해. 다른 사람들이 보자너.

-흐어어어어어엉….

나름 성기사였던 안기모는 짧게 기도를 올리며 예를 표하고 있었고 김예리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같이 있을 때는 싫어하는 티를 냈었지만 역시 그렇지도 않은 모양, 어떻게든 참으려고 하고 있는 게 보이기는 했지만 코끝이 빨개진 게 보인다.

뭐라고 한마디라도 더 내뱉으려고 했을 때였다.

[잠시 후 조각상과의 연결이 해제됩니다.]

반갑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 것.

어처구니없어 헛웃음이 다 나올 정도로 짧은 시간, 어째서 그 많은 신이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현세 개입에 들어가는 신성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애초에 쉽게 가능한 일도 아니다.

조각상 안에 숨어 있었던 베니고어의 선례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지금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입장도 아니지 않은가.

‘특정 조건을 채우면 조각상과 연결할 수 있는 건가? 내 경우에는 노을빛이 쏟아지면 디스카운트되는 거야? 다른 조건도 더 있고… 한 번 읽어봐야겠는데.’

신화 등급의 조각상이기 때문에 그나마 비용이 적다고 느껴진다.

‘이거 시바 그냥 아무 조건 없이 강림하고 연결하고 이러면….’

들어가는 추가 비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이 새끼들이 왜 현세에 개입하는 걸 최소화했는지 알겠다.

그냥, 시바 지불할 능력이 없었던 거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신이 현세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놈들의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어쩌면 이 법이 신들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솔직히 이건 도박이나 다름이 없다. 강림해서 뭔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그나마 본전은 건질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죽 쓰고 파산 엔딩으로 갈 수도 있을 테니까.

대륙과 차원을 유지하고 관리하려면 개입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잠시 후 조각상과의 동기화가 해제됩니다.]

‘김현성 이 새끼 왜 빨리 안 와?’

또 빨빨거리고 돌아다니고 있었을 게 뻔하다. 아직 신전이 완성되지 않았으니 자재들을 구하고 있겠지.

김미영 팀장의 연락을 받았다면 아마 지금 달려오는 중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허겁지겁 뛰어오는 놈의 모습이 보인다. 꽤 먼 거리라는 게 문제기는 했지만 말이다. 달려오던 김현성이 날개를 펼치는 게 느껴진다.

-지금 가겠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전해주세요. 팀장님.

여신의 손거울로 능숙하게 김미영 팀장과 통화하고 있다.

-지금 가고 있습니다. 10분 안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네. 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네. 네. 아니, 하얀 씨는 잠깐 이곳으로 부를 수 있습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이 새끼도 울려고 그런다.

-아직도 계시는 겁니까? 아직도 목소리가 들립니까?

‘아, 근데 시간 안 될 것 같은데… 무슨 드라마야 이거… 꼭 어거지로 이렇게 못 만나게 해요. 진짜.’

현성이, 조혜진, 그리고 나머지 파란 길드원들과도 인사했으면 좋을 것 같지만 정말로 시간이 없다.

일단 강림한 이상 신탁은 내려야 하니까. 소통 창구가 있으면 그걸 활용할 생각을 해야지, 그렇지?

“나의 영혼의 단짝이여. 내 목소리가 들리신다면 이곳으로.”

-네?

“나의 영혼의 단짝이여.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이곳으로.”

검은 백조의 이지혜를 찾습니다. 라고 해봤자 나오지 않을 테니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딱히 그녀를 지칭하지 않았지만 어디에선가 소식을 듣고 있다면 신전으로 와주겠지.

아니, 와야 한다. 지혜 누나의 도움 없이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가 있었다면….

-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

-아무래도… 네. 아무래도… 기영 씨가 저를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미영 팀장님.

김미영 팀장에게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받고 있었던 김현성이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

‘아니야. 시바. 현성아.’

-아마 영혼의 단짝이라는 건….

‘너 아니야. 이 새끼야.’

-네.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확률이 높을 겁니다.

“잠깐….”

[조각상과의 연결이 해제됩니다.]

“아….”

“…….”

“너 아니라고… 이 새끼야… 지혜 누나 불러줘.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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