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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784화 (775/1,590)

< 784화 마지막 (17) >

신전과 조각상이 만들어진 이후로 많은 이가 신전을 들락거리기야 했다. 기본적으로 신전은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었으니까.

너무 많은 신도가 찾아와 린델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을 정도였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한정된 인원들뿐이었다.

수요가 공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까. 아니, 생각해 보니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니다.

하루 24시간 중 일반인들에게 신전을 공개한 시간은 약 3시간 정도가 전부. 휴일이나 주말에는 5시간 정도로 늘린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3시간을 넘긴 적이 없었다.

그마저도 제한된 숫자의 신도들만 입장을 허용하는 상황이었고, 신전 안으로 들어가 조각상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엄격한 절차를 가져야 했다.

타국의 입국 비자를 받는 것보다 린델의 신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힘들다는 소리가 괜히 나오겠는가.

조각상을 한 번 보기 위해 먼 곳으로 온 신도들이 아무런 것도 소득도 얻지 못한 채로 돌아가는 것이 일쑤였다.

심한 경우에는 아예 신전 자체를 열지 않을 때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파란 길드 놈들이 전력으로 내 영업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떠올려볼 정도였다.

이 정도면, 시바, 영업 방해가 맞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들끼리 21시간을 돌려쓰는 건 조금 그렇자너.’

무척 높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김현성과 정하얀, 사실 얘네들을 거의 신전에서 살다시피 하는 애들이라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박덕구 이 돼지 새끼도 마찬가지였고….

그 밖에도 여러 길드원이나 파란 길드와 관련된 주요 인물들에게만 공개하기 위한 시간이 따로 있었던 거로….

‘그렇게 생각하니까 얘네들이 고이기는 고였네. 아니, 고인 정도가 아니라 썩었네. 진짜.’

린델 신전 게이트라도 열린다면 꽤 볼만할 것이다.

아무튼 정하얀과 김현성 못지않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조혜진, 사실 얘 같은 경우에는 매일 같이 달라붙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간혹 신전 앞으로 찾아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오늘은 조금 바빴어.

그래 바빴겠지. 시바, 거기에서 지금 누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겠어.

김미영 팀장은 괜찮고? 과로로 쓰러지는 거 아니지? 아니, 너도 과로로 쓰러지는 거 아니야?

물론 조혜진의 체력이라면 그럴 일은 없다.

-길드 재정 상태가 말이 아니야. 어째서 그렇게 빠져나가는 게 많은지도 모르겠고… 신전을 중축해야 하는데 필요한 자금이 없네. 신전으로 들어오는 입장료라도 받아야 하나 봐. 그렇지 않아? 너였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아무리 나라도 입장료는 그렇지. 기부금이나 헌금 같은 방식으로 받으면 꽤 쏠쏠할 거야.

-아무튼 네가 없는 곳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더라. 그래도 가끔 빈자리가 느껴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도 전부 마찬가지일걸. 사실 예전에 느꼈던 그 순간이 계속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더라고.

그래?

-밖에 나가서 한잔하는 것도 그립고 체스 두는 것도 그립고. 그냥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생각하게 된다니까. 네가 있었다면 지금 뭘 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 적어도 길드가 재정 문제를 겪게 되는 일은 없었겠네.

당연히 그랬겠지. 시바.

-후원금들이 도착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위험했을지도 모른다니까. 우정 길드라고 알아?

걔네가 후원도 했어? 시바 세상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된다니까.

내가 너한테 우정 길드 이야기한 적 있었나? 내가 옛날에 걔네 도와준 적 있었자너. 그게 지금 돌아오고 있는 거라니까.

-아무튼 그렇게 살고 있어. 최근에 주변에서 던전들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있어서 원정 준비도 조금씩 하고 있고 물론 아직까지 털고 일어나기에는 힘들겠지만 가벼운 원정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길드마스터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지만 뭐 어쩌겠어. 현성이가 그 누구보다 가장 힘들 텐데…

‘얘 그냥 현성이라고 부르는 거 봐.’

엄밀히 따지고 보면 조혜진이 김현성보다는 누나다. 물론 김현성이 회귀자라는 걸 생각해 보면 녀석을 연상으로 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조혜진이 더 성숙하게 느껴진다.

사실 1회 차는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시간이라기보다는 멘탈이 갈리는 시간이라도 표현하는 게 맞으니까….

이렇게 조혜진이 종종 조각상에 앞에서 혼잣말을 할 때면 지나치게 편해지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뭐 나야 좋지만 본인은 내가 듣고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이기영의 인격이 조금 더 성숙해졌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것도 아니면 아예 달라졌거나.

이곳을 안식처로 생각하는 것은 그녀 역시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다. 단언컨대 그녀가 이 장소에 가장 의지하고 있을 것이다.

앞서 봤듯이 김현성은 뭐 여전했고, 박덕구와 엘레나도 많은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조혜진처럼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은 없다.

‘많이 괜찮아졌자너.’

처음 봤을 때 망가졌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천지 차이다. 그녀의 개인적인 문제도 해결된 것 같고… 이 부분은 그녀를 지속적으로 케어해 준 알프스의 역할이 컸겠지만 결정타를 먹인 것은 바로 이기영의 조각상이니까.

“근데, 베니고어 님. 성창을 내리는 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적절한 무구가 있기는 해요?”

“글, 글쎄….”

“아, 생각해 보니 베니고어 님 창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아… 내 거?”

“네.”

“내… 내 거는 조금 그렇지. 아무래도 이기영 신도가 직접 내리는 게 더 의미가 있는 것 같구… 내 창은 베니고어 교단에 정보가 남아 있잖아. 다른 사람들이 아마 눈치챌 거야. 빌려주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절차가 복잡하다니까.”

“신성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성검 내리는 것도 그 난리를 겪었는데 여기서 창까지 내리면….”

“투자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 일단 적절한 매물이 있는지 알아보는 게 좋겠다.”

“어디서 알아보시게요?”

“아, 우리도 사용하는 마켓 있어. 신화급의 창이 필요하구… 사실 그렇게 비싼 건 내릴 수 없으니까. 가격은 이 정도로 설정하면 좋겠네. 조건에 맞는 걸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아무도 찾지 않는 매물이 있기는 할 거야. 창 같은 경우에는 검보다는 인기가 없어서 다른 대륙의 관리자들도 선호하는 물건이 아니거든.”

“기왕이면 괜찮은 거로 골라 주세요.”

그래도 친구한테 내리는 건데 가성비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조금 예산을 넘더라도 확실한 거로 선물해 주는 게 좋겠지.

“지, 지금으로서는 가장 싼 매물이 이거네.”

“조금 가격을….”

“가격을 높게 잡을 수가 없어. 우리 예산으로는… 이게 한계야. 물론 몇 년 정도만 더 기다리면….”

아쉽게도 그럴 시간은 없다. 베니고어가 손바닥 위로 띄운 창을 바라봤지만 영 성에 차지 않는다.

신화등급은 어떻게 받았는지 궁금할 정도,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강점이 없다.

조혜진과 잘 어울리는 것 같기는 하지만 뭔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할까? 일, 일단 지금 구매할까? 소유자를 이기영 후배로 등록하면 제한적이지만 모양이나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정말로 제한적이지만….”

“그렇게 하는 게 좋겠네요.”

빛과 함께 그녀의 손에서 무구가 떠오르는 것은 순식간, 택배기사라도 올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던 모양이다. 솔직히…

‘내가 아는 게 없기는 없네.’

위쪽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충은 파악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

아무튼 창으로 손을 가져다 댄 이후에는 곧바로 등록을 마치고 조금이나마 내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커스터마이징하기 시작했다.

기능 같은 경우에는 손을 대기 어려웠지만 겉모습이나마 삐까번쩍한 것으로 바꿔주고 싶다.

‘아, 왠지 별로인 것 같은데….’

“멋, 멋진데? 완, 완전 성스러워 보여.”

근데 조혜진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조금 무리수일지는 모르겠지만 창날이라도 그녀가 좋아하는 색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조, 조금 색깔이….”

“아니요. 이 정도가 딱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도 조혜진은 조각상의 옆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괜찮아진 것 같지만 그건 그냥…. 아무튼 현성이가 빨리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면 좋을 텐데…. 이건 내 욕심이겠지. 나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니까. 사실 요즘은 체스도 잘 안 둬. 하루하루 바쁘게 보내다 보니까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같이 둘 사람이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꾸 네 생각을 하게 돼서 그런 것 같아. 지혜 씨도 어디에서 뭘 하는지 모르겠고…

자꾸 그런 소리 해주면 감동이자너.

-아! 그리고 현성이는 자기가 영혼의 단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 재미있지?

그거 너희 둘 다 아니라니까.

-그날 네가 해줄 이야기는 조금 위안이 된 것 같아. 아니, 많이 위로가 됐어. 나도 어느 정도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고… 정말로 네가 슬픔과 죄를 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결 마음이 편해졌거든. 응… 정말로….

-…….

“…….”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조혜진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머뭇거리는 모습, 입술을 자꾸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한숨을 한 차례 내쉬고 나서는 조각상을 올려다보고 있다.

-돌아올 수 있는 거 맞는 거지?

아마도?

-너도 들었겠지만, 현성이는 네가 반드시 돌아오게 만들 거래. 가능할 거라고,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고 매일 매일 이야기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어. 정말로 방법이 있는 건지, 아니면 말도 안 되는 희망을 그냥 붙잡고만 있는 건지… 하지만 네가 꼭 돌아와 줬으면 좋겠어.

나도 내가 돌아갔으면 좋겠어. 혜진아.

-사실은… 사실은 아직도 많이 힘들거든… 흐으… 흐으윽… 정말로… 너무 힘들거든…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시간이 지나면 무뎌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가슴 한쪽이 텅 빈 것 같아. 같이 잡담을 나눌 사람도,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이제는 없다는 게 너무 힘들어. 많은 사람을 잃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네 존재가 컸었나 봐. 짜증 나는 새끼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재수 없는 새끼라고… 절대로 상종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흐윽… 흐으으윽…

그건 너무 하자너.

-개새끼라고… 정말로 역겨운 벌레 같은 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1절만 해. 시바.

-흐윽… 흐으윽…

아니야 조금 더 해도 될 것 같아.

나도 인간인지라 저렇게 아무 말 없이 우는 걸 보니까 가슴이 아프다.

조각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조혜진의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신전 안을 메운다. 아무래도 더 이상 저렇게 놔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곧바로 준비한 창을 내보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조혜진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조각상이 밝게 빛나기 시작한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천천히 위를 올려다보는 눈에는 많은 궁금증이 서려 있었다.

-어….

하는 단말마의 목소리를 꺼낼 뿐 다른 말이 없다.

황급하게 어디론가 연락을 하려 손거울을 집어 들었지만 이내 조용히 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본인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리라.

그녀도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겠지.

-부길드마스터…?

거대한 빛과 함께 준비한 창이 떨어져 내리는 것은 순식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커다란 소리와 함께 푸른색의 날을 가진 창이 땅바닥에 박힌다.

풍압 때문에 조혜진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두 눈은 틀림없이 떨어진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은하게 서린 기운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말문이 막힌 듯 벙 쪄 있는 모습, 하지만 이내 뭔가에 홀린 것처럼 천천히 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조금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은 장면이기도 하다. 만약 후대에 이 이야기가 전해진다면 그녀는 신의 선택을 받은 사자로 역사의 이름을 남기겠지.

대지는 빛에 둘러싸였고 그녀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빛이 걷힌다.

내가 커스터마이징한 창이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외관 자체는 합격한 모양, 흘렸던 눈물을 닦으며 조혜진은 천천히 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울어요?”

-흐윽… 흐으으윽…

“지금 울어요?”

-흐윽… 흐으으으윽… 흐으으윽…

“혜진 씨 울어요?”

-누가… 누가… 운다고… 누가 운다고… 흐윽… 그러십니까.

“우는 것 같은데….”

-안 운다고… 흐윽… 안 운다고요… 이… 안 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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