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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02화 (793/1,590)

< 802화 마지막 (35) >

언뜻언뜻 눈에 희열마저 보이는 모습, 혹시나 둠예리로 변신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표정이 심상치 않다.

얼굴에 쾌감마저 들어서 있는 것 같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입술을 꽉 깨물고 연기를 펼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점점 올라가는 입꼬리는 현재 김예리가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쓰레기! 쓰레기이이이!!

콱! 콱!

‘얘 이러다가 진짜로 삐뚤어지겠어. 우리 얘 좀 어떻게 해봐요. 진짜. 얘가 누굴 닮아서 이래. 시바.’

알게 모르게 쌓인 게 많았던 모양.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이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을 테니 열이 오를 만도 하지.

하기 싫은 훈련을 억지로 돕는 것도 거슬렸을 테고, 시신의 소유권 분쟁이나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 현상, 조혜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김현성의 기행, 마음에 드는 구석이 단 하나도 없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모든 길드원이 그렇지만 특히 길드원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는 걸 은근슬쩍 좋아했었던 만큼, 변해버린 길드의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걸 빼앗긴 거라는 생각도 한몫하고 있겠지. 김예리는 빈민가 출신으로 꽤나 혹독하게 살아왔었으니까.

‘원래 줬다가 뺏는 게 제일 화나는 상황 아니냐고.’

정리하자면 김예리가 저렇게 폭발한 것도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거다.

이유야 어찌 됐건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을 테고… 마침 등장한 송 빌런이 눈 밖에 난 것이다. 당연하지만 무례한 행동으로밖에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

실컷 화풀이하고 있는 김예리보다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조혜진의 얼굴이 조금 더 초조해 보인다.

당장은 신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가 김현성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대륙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집단의 핵심 인물과 사이가 틀어지는 건 원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나쁜 뜻은 없었을 겁니다.

라고 말한다고 한들, 위로가 될 리가 없다. 표정을 구기고 있는 송수경이 시야에 비친다.

사실 누굴 원망할 수도 없겠지. 녀석이 쓰레기 같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녀석은 나름 만족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모의전이라고 한들, 김예리와 송 빌런은 주어진 미션을 완수했고, 어찌어찌 퀘스트를 완료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미션 자체는 돌파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지 않았을까. 환산된 점수가 많이 쳐줘야 C등급이라는 게 문제였지.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김예리로 방금 전 모의전을 시행했다면 SSS등급 정도는 가볍게 받지 않았을까 싶다.

박덕구, 안기모와 함께 맛을 본 적이 있는 만큼 김예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아… 하아… 하아….

급기야 숨을 몰아쉬고 있다. 고개를 한 번 흔들고 단검을 갈무리한 이후에 퀘스트 장소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흔하지 않은 만큼 일단은 무표정으로 복귀하고 있는 모습.

속은 한 방 먹였다고 좋아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뭐라고 할 말을 잃은 송 빌런, 그 옆에서 자꾸만 김예리를 쉴드 쳐주고 있는 조혜진. 그리고 위풍당당하게 복귀하는 예리좌.

모의전이 끝났으니 브리핑을 비롯해 피드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만 어색한 분위기는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정신을 빠르게 차린 것은 송수경이었다. 본인이 실망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지 않은가.

이럴 때일수록 연장자의 아량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유야 어찌 됐건, 가장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은 것 같았다.

-예리야.

-…….

-방금….

끝까지 말을 잇지는 않았지만 무례한 행동을 하기는 했으니 사과를 하기는 해야겠지? 하고 은근슬쩍 운을 띄우는 것 같다.

-아!

-괜찮습니다. 조혜진 님.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들으셨구나.

-네?

-미션이. 종료된 시점에서 연결이. 끊긴 줄. 알았는데. 미안합니다. 나도 모르게.

-…….

-김예리.

-정말로. 들으실 줄은 몰랐는데. 계속 보시고 계신 줄 알았다면. 그런 행동 하지 않았을 겁니다.

히죽히죽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는 모습은 마치 도발이라도 하는 것만 같다.

내가 많이 해봐서 아는데 저거는 누가 봐도 이죽거리는 듯한 말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놓고 나 당신 마음에 안 들어, 당신이 기분 상했으면 좋겠어, 라고 시위하고 있는 모습.

솔직히 얘가 이 정도까지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파란이 키운 괴물. 시바.’

-하하… 괜찮습니다. 형편없다는 것 정도는 저도 잘….

-형편없다. 정도가 아니었는데.

-…….

-언니. 내가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이 사람한테도 더. 더. 좋은 일이야. 이런 훈련은 의미 없을지도 몰라. 그리고 이건 버릇없거나 무례한 것도 아님. 훈련이니까. 솔직한 피드백이 필요해.

옛날에 박덕구와 함께 훈련을 하면서 죽창처럼 딜을 박아 넣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네. 김예리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는 게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입에 발린 칭찬을 받자고 귀하신 손님들을 모신 게 아니니까요.

-일단.

-…….

-시야가 너무 좁음. 어째서 이걸 원하고 있는지 대충 예상은 가지만 기본적으로 재능과 역량이 부족,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매번 한 박자, 반 박자, 두 박자, 세 박자, 느리던데. 판도를 보는 능력 자체가 너무 딸림. 송수경 님께서는 대륙 전쟁이나 공화국 전쟁, 27군단 전쟁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

-기영이 아저씨는 크고 작은 전투와 전쟁을 모두 지휘함. 몸으로 직접 뛰고 피를 토하며 얻은 그 경험은 결단코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그걸 기반으로 전술을 짜낸다고 해도, 결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시간으로 변하는 전장을 컨트롤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님. 작은 클랜이나 길드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는 거임.

‘왜 점점 말이 짧아지고 있는 건데.’

별로 존대해 주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

-원래 천재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자신의 몸을 버리면서까지 쌓은 경험으로 할 수 있는 것. 평범하고 경험까지 부족한 사람이 아티팩트나 보조도구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거였다면 대륙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아저씨랑 비슷한 걸 할 수 있었을 것임. 송수경 님은 전장에 대한 이해도만 적은 것이 아님. 직접 몸으로 뛴 경험이 부족한 것도 티가 남. 송수경 님의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미안하지만, 이건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네….

-방금의 모의전을 관통하고 있는 커다란 문제에 대해서만 설명을 드린 것. 자세하게 말씀드리자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야가 너무 좁음. 아저씨는 조금 더 위에서 전장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음. 미래 예지에 가까운 능력이었고, 거대한 전장을 하나처럼 보고 있었음.

김예리가 지도를 쫙 편 이후에 단검을 꺼내 선을 긋는 것이 눈에 보인다.

-북부 전체.

지금 이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엘레나에게 처맞았던 엘리오스가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다.

‘얘 살기 싫겠어….’

-방금 송수경 님께서 모의전에서 사용하신 범위? 끽해야. 대도시 수준. 현성이 오빠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북부 전체가 넘음. 고작 대도시 하나에서 써먹자고 이걸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바닷물을 어떻게 물컵에 담겠음. 전력의 상승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솔직한 판단임. 아. 시야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한 가지가 더 있음. 송수경 님께서는 타 직군이나 적 네임드 병사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 어떻게 기영이 아저씨가 이걸 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영이 아저씨는 현성이 오빠가 상대하고 있는 모든 네임드들의 움직임과 스킬, 버릇이나 습관 같은 것들을 알고 있었음.

-…….

-오차는 없었음. 하나도 빠짐없이, 분명히 전부 다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음. 근접 직군이나 칼밥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걸 파악하고 있을 수 있다는 건 이미 재능의 영역. 눈썰미가 좋다는 것. 그것마저도 재능의 영역. 노력으로 격차를 줄인다는 것을 비난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건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재능의 영역.

‘마음의 눈 고마워요.’

-…….

-심지어 신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의 송수경 님께서는 나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 내가 괜히 송수경 님에게 일부 스탯과 능력을 공개한 것이 아님. 정말로 알려주기 싫었지만 그래도 뭐 한번 해본다기에 알려드린 것. 결과는 뭐….

-네….

-송수경 님께서는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있음, 절정에 오른 모험가가 진심으로 싸운다는 게 어떤 건지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 목이 날아가거나 팔이 잘려 불구가 될 수도 있다는 위험을 나는 당신을 믿고 맡긴 것. 모의전이라지만 내 목숨을 당신에게 맡긴 것이나 다름없음. 정확히 3번 죽을 뻔함. 실전이었으면 반병신이 됐을 것.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송수경 님께서 현성이 오빠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음.

-그건….

놈의 얼굴에 변화가 생긴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김예리는 오랜만에 말을 늘였다. 자신의 말이 확실하다는 듯이 송수경을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송 빌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다지 수긍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는 않는다.

당장 뭐라고 말은 못 하고 있었지만 녀석이 김현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놈에게 있어서 제대로 빡치는 상황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당장 바젤 교황에게 당신은 베니고어 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고 가정해 보라.

다음 날 아침 녀석의 목이 수도의 광장 위에 걸릴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녀석에게 당신은 김현성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는 건 그런 의미라는 거다.

우리 눈치 빠른 꼬맹이도 놈의 역린이 어떤 것인지 깨달은 모양, 이왕 속을 긁을 거 제대로 긁어보자 다짐이라도 했는지 끊임없이 입을 놀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작은 움직임이나 소소한 오더에 대해 피드백을 하는 와중에도 마무리는 항상….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음. 이해할 수 없을 거임.

공부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자리한 송수경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뻔할 뻔 자.

너는 딴 생각해라 나는 계속 입이나 털란다 모드로 들어간 예리좌는 아직까지도 입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소규모 전투에서는 효율을 볼 수 있을 거임. 평범한 파티나 클랜을 대상으로 하면 어느 정도는… 응. 어느 정도는…. 하지만 그 이상이 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음. 이건 송수경 님께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절대로 불가능한 이야기. 이건 통계. 지금부터 내가 말씀드리는 사실은 파란 길드에서 자체적으로 집계한 통계에 의거해서 말씀드리는 것. 원래는 대외비인데 훈련에는 피드백이 필요한 법이고… 신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의 중요 인사니까 밝히는 것임.

조혜진의 얼굴에 불안함이 감돈다. 도대체 얘가 뭘 말하려고 하나 궁금한 거겠지.

잠깐 동안 김예리에게 눈치를 보내봤지만 김예리가 상관없다는 듯이 입을 열고 있다.

얼굴을 확인한 조혜진도 굳이 김예리를 말리지는 않았다. 김예리도 대충 길드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있는 만큼 말해도 되는 사항과 말하면 안 되는 사항을 구별해 주리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이기영 아저씨가 현성이 오빠와 연결을 유지하면서, 연결을 유지하는 도중에 총 몇 명에게 미션을 내렸을 것 같음? 북부 전투에서… 몇 명에게 미션을 내렸을까.

-…….

-정확히 5,421명. 712명의 사제. 831명의 마법사. 심지어 검은백조의 박연주 언니, 교국 8좌를 포함한 각 대륙의 네임드들 역시 개인 미션을 하달받음.

‘그 정도나 돼?’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 저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김예리가 약간 과장해서 말하고 있는 거겠지.

-현성이 오빠와 연결을 유지하면서. 현성이 오빠가 전투에만 집중 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거임. 이런 게 가능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

-…….

-지금까지 재능, 재능했지만… 사실 정말로 천재라고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음. 이기영, 아니.

-…….

-기영이 오빠가….

‘나도 오빠 됐자너.’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이라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피드백하는 시간이 이기영 자랑하는 시간으로 뒤바뀐 현장, 송수경이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문 채로 테이블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비쳐왔다. 흥분하려고 하는 자신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는 모양새였다.

김예리는 내가 베니고어에게 선택받았다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녀석은….

내가 김현성에게 선택받았다고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점점 가라앉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녀석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놈의 감정이 지하 밑바닥까지 처박히는 게 보이는 것만 같다.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한번 놈을 향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

“…….”

-…….

“너도, 이기영 그자와 같은 것을 원하고 있구나.”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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