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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10화 (801/1,590)

< 810화 마지막 (43) >

‘그 정도로 병신은 아니었네. 그렇지?’

나름대로 길을 잘 찾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송 빌런이 무능력하기는 하지만 결코 멍청하지는 않다.

애초 녀석이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였다면 지금처럼 신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의 핵심 인사로 내정되지도 않았겠지.

대륙이 모험가에게 우호적이기는 하지만, 맨몸으로 시작해 저 정도까지 올라가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정치적인 감각은 물론이거니와 녀석 나름대로의 세력을 형성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오히려 유능하다고 판단하는 게 맞다는 거다.

녀석이 만약 김현성 이슈에 말려들지만 않았더라도 한 번 쯤은 써볼 만하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길드 직원으로 고용하거나, 운이 좋으면 제법 괜찮은 자리에 내정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해볼 만큼 녀석은 인재라고 부를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물론 이쪽을 대신하거나 전술 김현성을 부리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영역이지만 지금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에 대한 대응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려 빛의 아들이 죽은 이후에 계속해서 폐쇄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던 파란 길드가 문을 연 타이밍이 아니었던가.

이기영의 시선을 노리고 있는 존재들을 언론에 공표했고, 교황청과 교국에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린델에 있는 크고 작은 길드들에게 협력해 줄 것을 부탁했으며 빛의 성자를 지키기 위한 집단을 만들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드디어 노을빛의 검사가 세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 떠들기도 했지만 파란 길드가 그런 이들의 눈치를 볼 리가 없지 않은가.

길드에 암살자와 레인저들이 침입한 정황은 너무나도 명확했고 파란 길드에서 준비한 영상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여기에….

‘협정 같은 걸 맺고 다녔으니 오죽하겠어?’

평소의 김현성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내가 말을 조금 잘해놓기는 했나 봐.’

길드마스터는 부길드마스터 하기 나름이자너.

어떻게든 접촉할 구실을 만들고 있었던 송수경에게는 나름 호재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리라.

-꼬리는 확실히 자른 게 맞습니까?

-네. 확실하게 처리해 두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위원회가 이번 일과 연관되어 있는 증거는 없을뿐더러, 아주 작은 연관성조차 발견되는 일이 없게 손을 써두었습니다. 의뢰를 드린 집단의 실체가 없으니… 저들에게 꼬리가 밟힐 일은 없을 겁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완전 악마 새끼 다 됐자너.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자너.’

-그보다… 노을빛의 검사께서는….

-네. 이미 참석하신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다. 곧 도착하실 테니 미리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요. 정말로 다행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한 박자 느리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녀석이 행동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보호 관리 위원회의 입장에서도 당연히 보여야 할 반응이었다.

‘괜찮은 타이밍이기는 해.’

전 대륙의 관심이 쏠린 일에 신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가 손가락만 빨 수 있을 리 만무, 녀석이 그렇게까지 무능하지 않다는 걸,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다.

파란 길드에서 공식적으로 사건에 대해 공표한 이후에는 곧바로 대책본부를 설립,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 현상과 이번 일을 엮은 이후에 대륙 내 네임드와 권력자들을 불러 모은 것.

당연히 초대 명단에는 파란 길드도 존재했고, 이제 막 사교계에 발을 들이려고 하는 김현성과 파란의 입장에서는 놈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말이 알맞을 것 같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이후에 개인 대기실에 들어가 옷매무새를 고치는 행동이 눈에 보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조용히 입을 여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일이 잘 풀릴 것 같습니다.

“…….”

-그분께서 정말로 와주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네. 얻어야지요. 반드시 얻을 겁니다.

-나가실 시간입니다. 송수경 님.

-네. 지금 가겠습니다.

‘나름대로 잘 준비하기는 했어.’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적절히 선을 지킨 것 같은 느낌, 조금 단출하다는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분위기가 뒤숭숭한 지금은 오히려 이 정도가 딱 알맞다.

왕국이나 공화국 권력자들의 눈에는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대중들의 눈을 생각하면 지나친 화려함은 지양하는 것이 맞다.

애초에 이 모임이 파티의 목적을 띄고 있지도 않았으니까. 노을빛의 검사가 합류한다는 게 아마 회의의 성격을 많이 바꾸지 않았을까.

천천히 착륙장으로 향하는 놈의 얼굴에 미소가 꼴 보기 싫기는 했지만….

‘어차피 정의구현 당할 거자너.’

굳이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송수경은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중, 아니나 다를까. 직접 그리폰을 몰고 온 김현성이 눈에 들어왔다.

‘믿음직스럽죠?’

오랜만에 보는 검은색 그리폰과 함께 보호 관리 위원회에 착륙한 김현성의 얼굴에 언뜻 긴장감이 감돈다.

익숙하지 않은 얼굴.

‘얘 긴장했네.’

오늘 하루를 잘 버텨야 한다는 건 김현성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굳이 표현하자면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지금까지 제가 조금 겉돌았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것을 공표하는 자리.

대륙의 생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알리는 자리.

1회 차에서도 이런 자리가 익숙하지 않아 전부 다 떠넘겼을 테니 저런 얼굴이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파란 길드마스터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신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의 송수경입니다.

-아… 네. 다시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이렇게 마중 나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직접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네.

-소식은 전해 들었습니다. 노을빛의 검사님.

-아… 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

-그 어떤 말로도 파란 길드마스터를 위로할 수 없겠지만 저희 신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서도 이번 일에 관련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현재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 현상을 일으킨 집단이 연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파란 길드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많이 다를지 모르겠지만….

-…….

-다방면,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정보가 제한적이지만 저희 역시 이번 일에 심각성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

-자세한 이야기는 이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네.

다소 충격적이었던 첫 만남은 일단 서로의 기억 속에서 잊은 모양, 사실 김현성이 얘를 별로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뭔가 중요한 인사라는 건 눈치챘는지 우호적으로 대하려고 하는 것이 보인다.

수행원으로 함께 온 김미영 팀장이 김현성에게 귓속말을 보내는 중, 송수경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다시 한번 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김미영 팀장 원래 이런 자리에 잘 안 나타나기는 하는데….’

그만큼 길드 차원에서도 김현성의 새로운 행보를 신경 쓰고 있다는 방증이겠지. 뭐.

-어떻게… 오는 길이 힘들지는 않으셨습니까?

-네.

-그러고 보니 말로만 들었던 노을빛의 검사님의 그리폰을 직접 보게 되는군요.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은 모습입니다. 깃털에 윤기가 흐르는 게 아주 건강하게 느껴집니다. 체격도 다른 그리폰들에 비해 커 보이고요.

-최근에는 신경을 써주지 못했지만… 네.

-아! 갑작스러운 질문이지만 어떻게 결실을 맺으신 건지도 궁금합니다. 사실 저도 그리폰에 대해서 아주 관심이 많은 터라… 이번에 화이트 폴이라는 그리폰이 또 알을 낳았다고 들었습니다. 자연교배는 불가능하다고 들었는데… 학계나 관련 업계에서도 많은….

-뭔가를 딱히 한 것은 아닙니다만… 처음부터 잘 어울리더군요.

‘그저… 그저어… 그리폰 이야기만.’

-얼마나 빠르게 날 수 있는 겁니까?

‘할 수 있는 말은 그리폰 이야기뿐이자너.’

-가끔 라이딩을 즐기신다고 들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라…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모든 일이 끝난 이후에 기회가 된다면….

-네. 기회가 된다면 그것도 좋겠군요.

‘근데 저거에 낚여 버리네.’

아마 언제 한번 밥 같이 먹어요. 같은 멘트로써 받아들인 것 같기는 했지만 굳이 긍정적인 대답을 해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김현성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데 송 빌런을 밀쳐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일단 의심하기보다는 먼저 믿어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 거겠지.

린델의 길드나 교국, 교황청처럼 직접적으로 협력을 요구하지 않는 걸 보면, 만약의 사태를 상정하고 있기는 한 것 같았지만….

대책본부를 만들어 자리를 마련해 준 녀석을 배척하는 게 득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함께 회의실로 향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말을 내뱉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뒤쪽에는 김미영 팀장과 함께 보좌관 몇몇이 함께 걸어오고 있는 중, 결국 문 앞에서 자신들을 부르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눈에 보였다.

-신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의 송수경 님과 파란 길드마스터님이 입장하십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 이후에는 곧바로 문이 열린다.

‘진짜 얄밉기는 얄밉네.’

굳이 김현성과 함께 등장하는 걸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거겠지.

-반갑습니다. 파란 길드마스터.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노을빛의 영웅이시여.

-송수경 님과는 벌써 인사를 마치셨군요.

-아… 네. 그렇습니다.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파란 길드마스터.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었다고 말입니다.

-…….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꼭 연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공화국의….

-네. 반갑습니다.

끊임없이 김미영 팀장이 김현성에게 귓속말을 해주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다소 무례할 수도 있는 행동이기는 했지만 모두 어느 정도는 용인해 주고 있는 분위기, 김현성이 자신들에 대해서 잘 모를 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애초에 녀석들이 판단하는 김현성은 칼밥을 먹고 사는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실질적인 길드의 관리를 전부 내가 떠맡은 부작용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둠현성 때 고통받았던 애들은 안 보이네.’

걔들 다 은퇴했나 봐.

-이렇게 두 분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대륙에 그 어떤 위기가 와도 헤쳐 나갈 수 있는 듯합니다.

-…….

-알고 계셨습니까? 노을빛의 검사님.

-죄송합니다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송수경 님께서 빛의 아들의 화신이라고 불리신다는 것 말입니다. 이렇게 두 분이 함께 있는 것을 보니 마치 예전을 보는 듯합니다.

-…….

-대륙의 새로운 두 기둥이 한자리에 모였군요.

-과연….

-빛의 아들께서도 기뻐하실 게 분명 겁니다.

-기쁘기만 하시겠습니까. 무척 든든해하시겠죠. 서로 간의 오해가 있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두 분이 뭉치시지 않았습니까.

-아마 노을빛의 검사님도 깜짝 놀라실 겁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로 빛의 아들께서 살아 돌아온 줄 알았습니다.

‘별로 기쁘지는 않은데.’

김현성의 얼굴을 보니 쟤네들이 지뢰를 밟았다는 것은 알겠다.

혹시나 상황이 터지지는 않을까 걱정된 것은 당연지사.

송수경이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지금 그게 무슨 무례입니까!

필요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 진짜 쟤 왜 이렇게 얄밉냐.’

-기분 상하셨다면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파란 길드마스터.

악마의 혓바닥을 김현성을 향해 놀리기 시작한 모습을 보니 심사가 뒤틀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악마 새끼. 진짜. 얄밉고 비열하게 공사 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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