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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12화 (803/1,590)

< 812화 마지막 (45) >

‘저런 거 보니까 옛날 생각나기는 해.’

우리 튜토리얼 파티가 본격적으로 파란 길드의 실권을 잡았을 때,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김현성이 길드마스터로 취임한 직후였다.

이러다 과로사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몸을 험하게 굴리던 시절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길드 내의 모든 업무는 물론이거니와 연금술사로서의 이기영의 성장도 신경 써야 했던 시절, 김현성의 뒤치다꺼리도 해줘야 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하얀이의 멘탈도 잡아줘야 했다.

‘제대로 잠 잘 시간도 없었자너.’

어떻게든 쓸모가 있다는 걸 전하고 싶어 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도 했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김현성이 내게 막중한 업무량을 맡겼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몇 개의 직위를 가지고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았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개인 시간을 가지는 게 불가능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도 못했다.

‘솔직히 너무하기는 했어.’

“김미영 팀장 없었으면….”

무슨 사달이 났어도 단단히 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저런 김현성이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처음의 회귀자의 마음이 얼어붙어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렇다.

꽁꽁 얼어붙은 놈의 마음을 완전히 녹였다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녹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

확실하게 녹였지만 둠현성의 여파가 남아 있을 수도 있는 거고….

나름대로 합리화를 거치기는 했지만 송 빌런에게 짐을 떠넘길 생각을 하는 김현성을 보니 조금 소름이 돋기야 한다.

‘저건 나도 생각 안 해봤는데.’

사탄도 기립박수를 보낼 정도의 행동이지 않은가.

김현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든 간에, 녀석의 태도가 내게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김현성이 저런 생각을 한다는 건 송수경에게 더 큰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과 진배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빌런 송의 입이 광대까지 올라간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행복하시겠어요.’

본인이 인정받았다고, 준비한 게 먹혀든 것으로 모자라 김현성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여러 가지 힘이 되는 소리를 대놓고 들었으니 저런 표정을 유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 필사적으로 흘러나오려고 하는 웃음을 찾고 있는 것만 같다.

-하… 하하… 하하하하!

혼자 방에 들어온 직후에는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 많이 행복해해라.

-보고 계셨습니까? 보고 계셨냐고요.

그래. 보고 있었지.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파란 길드마스터가 명예추기경을 대신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리고 업무를 대신해 달라는 거겠지.’

-믿고 있겠다고, 노력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그대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질 거라고 말이다.”

-그분께서 저를 믿는다 말씀하셨을 때, 얼마나 가슴이 벅차올랐는지 설명드려도 이해하실 수 없을 겁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필멸자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가 노을빛의 신의 호의를 얻었다고 한들, 그것이 그대가 그와 연결되었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노을빛의 신이 그대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든 간에 그대는 결코 빛의 아들을 대신할 수 없다.”

-…….

표정 바로 변하죠.

이야기 속에 나오는 전형적인 빌런이나 중전을 시기하는 후궁마냥 표독스러운 얼굴로 변해버린 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그의 눈과 심장이 그대를 온전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네. 눈과 심장이 필요하다고 하셨지요. 네. 그의 눈과 심장… 그것만 있으면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완전해질 수 있는… 방법….

“그렇지. 그것이 그대가 완전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대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겠지.”

-그것만 있으면… 그것만….

이제는 초조해하는 것만 같다.

‘사람 하나 망가지기는 했어.’

-그것만 있으면 돼… 다른 건 전부 준비됐어.

‘악마 다 됐어. 송수경이.’

송 빌런이야 원래 제정신이라고 볼 수 있는 놈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그렇습니까. 벨리알 님?”

“인간의 정신은 본래 나약하지 않은가. 아주 작은 계기로도 흔들리고 아주 작은 말이나 행동으로 끊임없이 변하게 되지. 자신들이 변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게 쉽지도 않거니와 그것을 인지한 이후라면 그때는 이미 늦은 이후일 것이다.”

“악마와의 계약 때문이 아니라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영향이 없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우리들은 인간의 저열한 감정들을 즐기지. 그들이 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고 그들이 변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즐긴다. 끝없는 생에 유흥거리라고 할 수 있겠지. 그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니… 나는… 꼭 그렇지는 않은데….’

경우에 따라서 즐기기는 하지만 매번 그렇지는 않다.

“변하지 않는 이들도 있지. 그대와 그대가 영혼의 단짝이라고 여기는 그 여자가 바로 그렇다. 무감각하기 때문이야. 변화하는 것에 무감각하고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에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괜찮다 위로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아예 즐기는 경우 또한 존재한다. 이런 이들은 변하지 않아. 하지만 평범한 이들은 대개 잡아먹는 쪽이 아니라 잡아먹히는 쪽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점점 매몰되고 종국에는 빠져나갈 수 없을 때까지 어둠 속에 가라앉는다.”

‘현성이 기벽 생각나자너.’

“…….”

“그 변화를 본인이 어떻게 컨트롤 할지 역시 계약자에게 주어진 과제이기는 하다만 저자는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한 것 같구나. 하핫. 열등감에 휩싸이는 것 보다는 저런 선택이 더 맞다고 판단한 것이니 어찌 보면 저자는 선택에 따른 업보를 받고 있는 것이겠지. 본인이 만족하고 있으니 이 또한 행복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희망을 팔았으니 구입하는 입장에서 행복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옳은 말이구나. 합당한 말이야… 하핫… 그래서.”

“네?”

“준비는 끝난 것이 아닌가. 무대는 마련되어 있고 인물들도 갖추어진 것처럼 보이는데….”

‘얘 진짜 기다리는 거 싫어하네.’

빨리 선물 상자를 열어보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는 건 저희가 아닙니다.”

언제나 그렇듯 스타트를 끊는 것은 우리 쪽이 아니다. 내가 준비를 했으니 주사위는 다른 쪽에서 던져 주겠지.

“역시 그렇군.”

“네. 방아쇠는 누나가 먼저 당길 겁니다.”

합당한 생각이다. 송 빌런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기영의 시신을 탈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파란 던전이 교국 던전으로 규모가 커지고 자기 놈들을 교국 던전으로 투입시킨다고 한들, 최종 보스와 히든 보스가 지키고 있는 던전을 뚫는 게 간단하다고 판단할 리가 없다.

이미 첫 번째 실패를 겪었으니 두 번째는 조금 더 현명해질 수밖에 없겠지. 적어도 김현성이나 정하얀을 바깥으로 빼내 올 명분이 필요하다는 거다.

‘누나가 한 건 터뜨리는 게 제일이자너.’

대륙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이상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큰 사건이 필요하다는 거다. 아마….

“거의 다 온 것 같기는 합니다.”

“음….”

“슬슬 터뜨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지혜누나가 준비한 게 뭔지 기대되기는 하네요.”

입으로나마 대륙을 멸망시킨다고 했으니 아마 꽤 임팩트가 센 걸 준비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정말로 멸망시킬 생각이라면 허투루 준비하지는 않았겠지.

대륙 전체가 혼란에 빠뜨릴 만한 일을 벌이지 않을까.

세계수의 소실이나 현재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별거 아닌 일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누나라면….

‘일 벌이면 무서워.’

루시퍼의 후원을 받고 있다고 가정하면 더 무서워지고.

누나라면 이쪽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줄 것이다. 곧바로 일이 터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변화한 대륙을 바라보고서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 누나도 양반은 아니야.”

진짜 양반은 아니라구….

-송수경 님!

-…….

-송수경 님!

-네?

-지, 지금… 지금 바깥으로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

-급한 일입니다. 지금 바깥에… 바깥에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뭐야….”

-지금… 그러니까….

“뭔데….”

“어처구니가 없군.”

벨리알 역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만큼 현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

초월적인 존재라 할 수 있는 벨리알이 비현실적이라고 느끼고 있으니 대륙에 있는 이들이야 오죽할까.

송수경이 허겁지겁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모두가 허망한 얼굴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신이시여… 이게… 이게… 도대체….

대륙의 주민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공포에 질린 채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 시야에 비친다.

-노을빛의 검사는 어디에….

-노을빛의 영웅은 어디에 있습니까! 베니고어시여. 빛의 아들이시여. 부디… 부디 대륙을 구원하소서.

-미쳤군… 이건… 이건 정말로 미쳤어.

-엘룬이시여… 하… 하하….

“이런 게 가능했을 줄은… 아니, 그분의 힘이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만 이런 생각을 했다는 창의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군. 무엇보다 시스템이 이런 걸 허락했을 줄이야….”

“네. 제가 생각해도. 창의적이네요. 아니… 진짜 어이가 없어서….”

하늘에 어둠이 드리우고 있다. 아니, 하늘뿐만이 아니다. 대륙 전체가 어둠으로 물들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으리라.

갑작스레 일어난 상황에 하늘로 솟구치고 있는 김현성도 시야에 비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륙을 집어삼키고 있는 어둠에 저항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검을 뽑고 노을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붉은빛이 순식간에 세상을 메우고 녀석의 마력이 하늘을 찢어발길 듯 쏟아졌지만 저건 물리적인 힘으로 걷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동도 없는 검은색 기운에 김현성의 얼굴에 의아함이 감돈다. 본인이 밝힌 빛으로 어둠을 걷어낼 수 없다는 의문이 아니다.

‘반응이 없다는 걸 눈치챈 거네.’

저 어둠이 우리들의 노을빛에 아예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의아함이겠지.

“저건 시스템이니까.”

“…….”

“다시 한번 생각해도 당황스럽네요. 저런 게 가능한 겁니까.”

“지금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가능하니 저렇게 된 것이겠지. 시스템도 아마… 합당하다 생각한 모양이다.”

정체불명의 어둠이 완전히 대륙을 감싼 이후, 예상했던 것처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신화 등급의 던전 ‘빛의 아들이 희생된 대륙’을 강제적으로 생성합니다.]

[모든 인원이 던전에 입장한 것으로 규정합니다.]

[모든 인원에게 신화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부여합니다.]

[던전 클리어 조건을 공개합니다.]

[두 가지 선택지가 공개됩니다.]

[모든 생명의 끝 (0/1)]

[혹은]

[빛의 아들의 부활 (0/1)]

“이지혜 진짜.”

[선택하는 건 너희들의 몫이야.]

“스케일 한번 크게 벌리네.”

[알아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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