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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14화 (805/1,590)

< 814화 마지막 (47) >

-들었어? 오빠가 살아나야 던전이 클리어되는 거야. 소, 소라야. 그래야 하늘이 보인대!

-와! 다… 행이네요!

-오, 오, 오빠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는 거라고, 부서져야 마땅하다고. 그렇게 시스템도 판단했나 봐. 그래서 대륙을 던전으로 변화시킨 거야.

‘너는 또 언제….’

-그, 그래서 선택지를 준 게 분명해. 다, 다들 협조해 줄 것 같아. 물, 물론 멍청이 바보들이 뭘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그래도 자기들 목, 목숨이 걸려 있으니까. 다, 다 죽으면 진짜 웃기겠다. 그렇지.

-아… 네.

-소라는 안 죽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네… 감사합니다. 정하얀 님. 그것보다 지금… 괜찮으세요?

-응?

-마력이요.

-상, 상관없어. 이, 이 정도는 회복되는 게 더 빠르거든… 소라도 곧 이렇게 될 거야.

조용히 책을 덮고 창문을 바라보는 정하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예, 예, 예쁘다. 그렇지?

창밖에 벌어지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던 한소라 역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까만 밤 공간에서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빛과 폭발들의 향연들을 어떤 수식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린델의 성문을 두드리고 있는 몬스터과 언데드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계속해서 터져 나가고 있었지만 정하얀의 얼굴에는 미동이 없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차원의 마법을 책을 읽으면서 유지하고 있는 모습에 한소라 역시 기가 찬 모양인지 존경심과 두려움이 섞인 얼굴로 정하얀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마탑에서는 기도드리고 있는 거 맞지?

-네… 아마 지금 기도드리고 있을 거예요. 아! 그러고 보니 잠시 후에 회의가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마법을 유지하느라 바쁘시다고 전해드릴까요?

-누구 누구 온대?

-길드마스터랑 박덕구 님도 오신대요.

-그, 그럼 가자.

-네. 그럼 준비할게요.

-아! 잠깐만. 소라야. 잠깐 조금 커다란 게 나, 나타나서….

거대한 번개가 하늘에서 떨어지며 대형 몬스터의 몸을 한차례 지지는 것을 보면 마법의 신이 영 설득력 없는 소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제, 제대로 맞았다. 그럼 가자.

-네.

‘아마 다들 똑같기는 할 거야.’

당연하지만 모든 길드와 집단들이 회의를 하지 않을까. 환경이 바뀌면 행동 방향도 바뀌게 되는 법이다.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는 환경이 바뀌는 것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사건이었으니 전 집단이 비상이 걸렸다고 하는 게 맞다.

특히나 파란 길드는 사건의 핵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깊게 연관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회의 방향이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괜스레 피어날 수밖에 없었다.

‘시바….’

김현성이 무슨 생각을 할지 걱정 됐기 때문이다.

어째서 던전을 공략 시키는 선택지가 2개인 것인지 녀석이 깨닫지 못할 리 만무, 빛의 성자의 부활과 모든 생명의 끝에 대한 연관성에 대해 분명히 깨닫고 있을 것이다.

‘억지로 숨기는 것 같으니까. 더 걱정되자너.’

기본적으로 빛의 아들이 희생된 대륙은 이기영을 위해 만들어진 던전이라는 게 정설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모든 생명의 끝이라는 선택지가 3회 차의 시작을 알리는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일이 조금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노을빛을 보고 싶다고 어둠 좀 치워달라고 말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않은가.

지금이야 내가 준 검을 가지고 대륙 지키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정말로 희망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첫 번째 선택지에 발을 들일까 두렵다.

모든 생명의 끝이 3회 차를 가리킨다는 확신이 없더라도, 최악에 상황에 김현성은 그 희망에 발을 들일 것이다.

꿈에서나 등장했던 단현성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거다.

‘안 될 말이지. 안 될 말이야.’

일이 꼬이게 된다는 것 이전에 김현성 본인이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미 충분히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회귀자가 자신의 손으로 인류를 파멸시켰을 때, 만약 정말로 3회 차가 시작되더라도 본인이 견딜 수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아니, 일단 이건 생각하지 말자.’

일단 표면적으로 녀석은 이번 사태에 대해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으니까.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그다지 상관없어한다는 게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사실 녀석뿐만이 아니다. 정하얀, 심지어 박덕구, 모든 길드원이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누님! 여기 앉으쇼. 바깥에서 계속 떨어지고 있는 거 봤는데. 그거 계속해도 괜찮은 거요? 덕분에 수성전 하는 병사들한테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서… 아, 그쪽 병사들이 누님한테 고맙다고 꼭 좀 말해달라 합디다.

-마, 마법의 신… 이야기는….

-그렇지 않아도 홍보하고 왔다는 거 아니요. 알겠다고 마탑 지하실에 있는 신전에 꼭 가 보겠다고 들었다니까.

전장에서 바로 왔는지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로 이야기를 꺼내는 박덕구가 눈에 보인다.

오랜만에 보는 정하얀이 내심 반가운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녀석 역시 다른 의미로 이번 일을 기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뭔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라니까. 던전이라는 건 본래 클리어하라고 만들어 놓은 거 아니요. 형님의 부활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조건이라면 분명히 형님을 구할 수 있는 방도가 있다는 거겠지. 우리 형씨랑 누님이, 그리고 우리 길드가 하는 일이 헛된 일이 아니었다는 거요. 형님은 분명히 살아날 수 있다는 거라니까.

-나도 차라리… 이렇게 돼서 잘 된 것 같아. 오늘 일이 터진 이후부터 계속해서 공문. 날라 오고 있대. 이기영 아저씨. 시신을 살펴볼 수 있냐고.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고.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

-지금까지는.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 일에 끼어들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짜증 나. 미친 사람들인 것마냥 쳐다볼 때는 언제고… 현성이 오빠가 이겨내야 한다고, 이제는 아저씨의 죽음을 극복해야 한다고. 떠들어 대더니… 결국에 이것 봐. 자기 안위가 걸리니 이렇게 추하게 변하는 것 봐.

-하하… 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너무 미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부 두려움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니까요.

-기모 아저씨야말로. 너무 물러. 힘이 필요할 때는 하얀이 언니랑 현성이 오빠한테 부탁하러 찾아오고. 힘이 필요 없을 때는 무시하고, 홀대하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도 나는 차라리 일이 이렇게 된 게 잘된 것 같아. 힘이 필요한 환경이 찾아온 거니까.

-끄응…. 거,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기는 한데….

-덕구 아저씨도 공감하면서.

‘얘도 진짜 언제 한번 교육 시키기는 해야겠다.’

김예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 꼬맹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얘가 너무 비틀려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하다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았으니까. 조용히 눈치를 보던 유아영 역시 천천히 입을 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사실은 저도 김예리 님 말에 동감해요. 무례한 사람들이 많죠. 길드마스터가 다른 사람들을 지켜주는 게 꼭 의무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요.

-영웅이란 본래 그런 법이다.

-하지만 창렬아.

-나 역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말이야.

-…….

조금 분위기가 무거워졌다고 느껴질 즈음에는 황정연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분위기가 조금 안 좋네요. 물론 바깥 상황이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웃어야죠. 덕구 씨 말처럼 던전을 유지하는 힘이 부길드마스터가 살아날 수 있다고 공인한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의견을 내는 건 좋지만 개인적인 감정을 담는 건 임무에 좋지 않다는 거… 다들 알고 계시죠?

-…….

-앞으로 길드가 움직일 방향에 대해서는 김미영 팀장님과 길드마스터, 혜진 씨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계실 거예요.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면서 기다리는 게 어떨까요?

완전 막내라 눈치를 보고 있는 알프스를 제외하고는 다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거, 그러고 보니 일 터진 이후에 엘레나 누님 소식 들은 사람 있는 거요?

-안 그래도 지금 위탁할 곳을 찾고 있는 것 같았어요. 힘드시겠죠.

정하얀은 적극적으로 대화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떠들썩해진 것 같은 길드의 분위기가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소라 옆에 붙어 한마디씩 거들기도 했고 엘프들을 직접 린델로 데려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현성과 조혜진, 김미영 팀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이후.

김현성과 조혜진이 자리에 앉고 김미영 팀장이 곧바로 브리핑 준비를 하는 것이 보였다. 그 와중에 정하얀이 비어 있는 내 자리를 살짝 바라본 게 마음에 걸리기야 했다.

당연하지만 아직도 공석인 자리. 누군가가 저 자리를 채우거나 내 자리가 빠져나갔다면 아마 꽤나 섭섭하지 않았을까.

이윽고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에서 김미영 팀장이 천천히 입을 여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다들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파란 길드의 최우선 목표는 신화 등급의 던전, 빛의 아들이 희생된 대륙을 공략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임무도 위 목표보다 우선시하지 않습니다.

-…….

-정확한 던전 공략에 대한 정보가 모일 때까지는 대륙의 위험요소를 방어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몬스터 웨이브 말이요?

-몬스터 웨이브를 포함한 모든 위험 요소입니다. 넓게는 교국, 그것 보다 더 좁게는 린델, 그보다 더 좁게는 파란 길드를… 보호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게 정확히 무슨 소리요.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

-타 도시와 타 국가 역시 우리 길드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을 겁니다.

-그러니까….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전 대륙에 기근 현상이 일어날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유통 상태가 좋지 않은 몇몇 소도시 같은 경우에는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저장고가 바닥날 거고, 대도시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수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연방을 시작으로 전 대륙에 혼란이 들이닥칠 것입니다. 이에 파란 길드 역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고자 합니다.

-…….

-기근 문제는… 신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서 통제하지 않는 거요?

-교국에서는 신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가 추진하는 정책들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이 주관하는 시스템을 믿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중립국 라이오스와의 동맹 관계는 그대로 유지되겠지만, 오스칼 님께서는 연방과 왕국 연합, 공화국을 잠재적 적대세력으로…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으로 규정했습니다.

-…….

-아마 실제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겠지만 파란 길드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움직이려고 합니다. 전력을 보존하고 키우고 파란 길드의 영원한 우방인 검은 백조, 그리고 붉은 용병과 뜻을 함께 하려고 합니다.

-붉은 용병… 빨간 누님은….

아마 박덕구는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커다란 소리와 함께 도시 전체가 울리는 듯한 느낌.

반사적으로 회의실에 앉아 있던 이들이 경계하는 게 눈에 들어왔지만 방금의 소리를 만든 게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온몸이 피로 흠뻑 젖어 있는 붉은 짐승이 성벽에 외곽에서 날뛰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하얀 마법사가 유지하고 있는 마법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

몸으로 견디고 부수고 물어뜯으며 격전을 펼치고 있는 모습은 전사로서 아름답다.

두려움보다는 존경, 공포보다는 환희를 느끼게 하는 붉은 짐승은, 마침내 고깃덩어리가 된 적들의 시체 위에서 올라.

포효한 후 입을 열었다.

-…….

-…….

-이제야 술이 좀 깰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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