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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19화 (810/1,590)

< 819화 마지막 (52) >

마치 모든 걸 안아주는 것처럼 따뜻한 그 빛은 전투로 지쳐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전투와 기적을 겪어왔었지만 이런 순간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만든다. 방금까지만 해도 욕을 내뱉었던 난봉꾼 캐넌 역시 멍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어두운 하늘을 환하게 비추어주는 빛.

저게 기적이 아니라도 좋다. 단순히 허울뿐인 빛이라 해도 좋다.

이곳을 비추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생각을 떠올릴 정도였다.

“빛의 아들께서는… 대륙을 버리지 않으신 건가. 그분께서는….”

“그분께서 대륙을 버리실 리가 없지. 하핫. 당연하지 않아? 그분보다 대륙을 사랑하시는 분이 세상 또 어디에 있겠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욕을 내뱉은 것 치고는 너무 당당한 거 아니야? 캐넌?”

“그야. 뭐, 뭐 그런 걸 굳이 이야기하고 그래? 그냥 운 한번 더럽게 없었다고 생각한 거지. 이제야 은퇴해서 사람답게 좀 살려고 했는데, 수도 구경하러 온 날 재수 없게 일이 꼬일지 누가 알았겠어? 알렉스, 너도 같은 생각 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 이제는 칼밥 먹는 것도 지겹다고 한 것도 너였잖아. 같이 은퇴하자고 꼬드긴 것도 너라고.”

“…….”

“아무튼 조지, 저놈이랑 붙어 다니면 운도 더럽게 없어요. 시국이 이런데 수도 구경은 무슨, 삼류도박꾼 아니랄까 봐 타이밍 한번 더럽게 못 맞추고…. 너도 한마디 해. 알렉스.”

“아니, 나는….”

“뭐?”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캐넌.”

“뭐?”

“여기 온 게 다행일지도 몰라.”

“정신 나간 놈. 그쯤 되면 전쟁 중독이야. 알렉스. 상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신전이나 정신병원에 찾아가 보는 게 좋을 거다. 혼자 가기 정 그렇다면 내가 같이….”

“그런 게 아니야.”

정확히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그런 것이 아니다. 싸울 수 있어 좋다기보다는 그냥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를 위해 싸운다거나, 사상을 위해 싸운다거나, 후대를 위해 싸운다거나 그런 거창한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은 물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종류의 인간이었으니까.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이었으니까.

거대한 흐름에 전환점에 서 있을 때마다, 커다란 위기가 있을 때마다, 크고 작은 전투에 차출되어 싸우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는 기분이 든다.

저도 모르게 위를 바라보게 된다.

성스러운 창을 들고 있는 오스칼 님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드래곤과 빛의 아들의 환영이 빛으로 둘러싸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용이 하늘 위로 목을 올려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교국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던 환영이 우리에게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난간에 올라 검을 잡고 있는 오스칼 님의 모습을 보니 등 뒤로 뭔가가 찌릿하고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다. 언제나 기품있고 정리된 그녀의 모습이 아니다.

마치 우리와 같은 모습이지 않은가. 상처 입고, 쓰러지고, 지치고, 여리고….

하지만 강한,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타오르는 듯한 눈빛이 괜스레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있는 그녀의 눈이 제대로 보일 리도 없건만 눈물 자국이 묻어 있는 눈동자에 불길이 번지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그것은 영웅의 탄생이었으며 한 인간이 껍질을 벗고 스스로 성장하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쓰러진 대륙의 지도자가 아니라 평범한 이로 전장에 우뚝 서 이끄는 자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곳에 오기를 잘했어.”

“정신 나간 새끼. 알렉스 이 정신 나간 새끼! 이 새끼한테 뭐라고 좀 해봐. 조지!”

“멋진 모습이 아닌가.”

“제기랄, 여기서 정상인은 나밖에 없어. 제기랄! 너희 두 놈이랑 어울린 내가 병신이지. 내가 병신이야….”

거대한 빛과 함께 커다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꺾이지 않을 것이다!”

“…….”

“나는 도망치지도, 숨지도, 꺾이지도 않을 것이다! 설령 꺾인다고 한들, 다시 일어나 투쟁과 저항의 불꽃을 피울 것이다! 교국민들이여!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우리의 동지들이여! 나는… 나는 두려워했다. 그대들을 잃을까. 혹시나 빛의 아들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했다. 그대들과 다르지 않다. 나 역시 그곳에서 검을 들고 저항하고 있는 그대들과 다르지 않다.”

“…….”

“내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내가 어떠한 것과 싸우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였다. 어째서 싸워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대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인간이었으며, 변화하는 것에 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했다.”

“…….”

“하지만 나는 검과 투쟁의 깃발을 들어 올렸다. 빛의 아들과 빛의 여신이 남기신 사상에 담긴 뜻과 철학이 무엇인지,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였음에도 검을 들어 올렸다.”

“…….”

“그것이 옳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과 내가 같은 인간이라고,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함께 뜻을 모아 나아가는 것이 옳다고 가슴속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실패하고, 쓰러져도, 많은 이들이 함께 뜻을 모은다면 결국에는 옳은 길로 향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스칼….”

“많은 희생이 있었다! 그래… 정말로… 정말로 많은 희생이 있었다!”

“혁명의 딸이여.”

“너무나도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우리가 뜻을 함께할 수 있는 교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많은 투사의 희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교국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그것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나는 우리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정이었을 것이다! 실패와 변화 역시 옳은 길로 향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답을 찾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옳은 길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대들이 지도자라 부르는 나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가슴속으로 느끼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언젠가는 기필코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

“이 땅 위에 희생된 이들이 현재의 교국을 위해 밑거름이 된 것처럼 우리 역시 커다란 뜻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천한 시녀가 왕의 탈을 쓰고 있구나! 저 반역자의 모습을 보라!

“나는 미천하지 않다! 나는 천하지도 더럽지도 않다!”

---제국의 황녀와 미천한 시녀가 미쳐 스스로의 근본을 부정하는구나!

“나는 미천하지 않다고 말하였다! 세상에 미천한 것이라는 것은 없다. 나는 이제야 내 목소리로 그것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그대는!!

“우리는 그대들을 부정하기 위해 투쟁하고 싸울 것이다! 망령들이여. 두 팔과 두 다리가 으스러질 때까지 설사 쓰러지더라도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보다 더 나은 나라를 위해! 이 나라를 위해 싸운 희생과 피를 위해! 나를 위해! 우리 스스로를 위해! 대륙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 그러니….”

“…….”

“혁명하라! 우리가 싸워 이길 것을 믿고! 검과 깃발을 들어 올려라!”

“…….”

“혁명하라! 나의 동지들이여!”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쿵! 쿵!

---혁명하라!! 동지들이여!!

“하… 하하….”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거야…. 어이, 조지.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쿵! 쿵! 쿵!

---혁명하라! 동지들아!! 우리의 형제들이여!!

“대단하군… 대단해. 이런 걸 보게 될 줄이야.”

쿵! 쿵! 쿵! 쿵!

---혁명하고 투쟁하라! 승리의 깃발을 들어 올려라!!

“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이들과 함께 싸울 수 있다니! 이들과 함께 전장에 설 수 있다니! 하하하하! 네 말이 옳아. 알렉스! 네 말이 옳았다고!”

“신전에 가보는 걸 추천하지. 캐넌. 자네 전쟁 중독이야.”

“하하하하하하하핫!! 우리는 역사의 중심에 있어!”

쿵! 쿵! 쿵! 쿵! 쿵!

---혁명하라! 동지들이여!! 투쟁의 검을 들어 올리자!!

“오스칼 님은… 알고 계셨던 건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영혼들이 보인다.

검을 들어 올리고 그녀의 말에 화답하듯 깃발을 높게 치켜든 이들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망령들을 향해 검을 겨누고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몸을 일으킨 동지들이 보인다.

거대한 용이 포효에 맞춰 그들이 발을 두드린다.

쿵! 쿵!

커다란 소리가 마치 심장을 두드리는 듯하다.

혁명의 딸은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스스로를 희생한 영혼들이 몸을 일으켜 다시 한번 깃발을 들어 올릴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녀를 올려다봤지만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다만 인장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할 말을 잃은 것처럼 인장을 손에 쥔 채로 교국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비친다.

그녀는 눈물을 감추지 않고 참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게 자신의 모습이라는 듯이 숨길 필요 없다는 듯이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혁명하라! 혁명의 딸을 위해! 교국의 미래를 위해!!

“내가 앞장설 것이다! 흐윽… 언제나! 언제나! 그대들을 위해 내가 앞장설 것이다! 나의 동지들이여! 이미 피를 흘린 그대들의 희생을… 흐으윽… 절대로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다!”

검을 들어 올린다.

“나의 사랑하는 동지들이여!”

그녀가 그리폰에 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끓어오르는 고양감에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외치게 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조지는 조용히 웃고 있었지만 캐넌 역시 고함을 외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마치 세뇌된 것처럼 끊임없이 그 목소리를 외치게 된다.

“혁명하라!! 혁명하라!!”

---깃발을 들어 올려라!

“싸우자! 교국을 위하여! 내 나라를 위해! 싸우자!”

---검을 들고 일어나라!

“혁명하라! 혁명하라! 하하하핫! 혁명하라!!”

마침내 교국의 지도자가 그들의 앞에 섰을 때 영혼들이 무기를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역사의, 아니, 신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광경이었을 것이다.

* * *

-부길드마스터….

“왜요.”

-부길드마스터는 어떻게….

“제가 어떻게 알겠… 아니….”

-…….

“혁명의 딸이 스스로 깨어난 것이라 하시니, 성스러운 창을 지닌 전사여. 그대는 빛의 뜻을 의심하지 말지어다.”

-미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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