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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22화 (813/1,590)

< 822화 마지막 (55) >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야?’

초조함에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게 된다. 제법 난이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난이도가 높을 수도 있다고 여겨졌다.

‘이거 너무 어려운 거 아니냐고.’

오랜만에 보는 악마 소환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마치 첫 만남의 재현과 같지 않은가.

조용히 정하얀과 박덕구를 바라보고 있는 표정에는 뭐라 설명하지 못할 것 같은 오만함이 보인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얼굴에서도 자기 자신의 능력을 향한 자신감이 드러나는 것만 같다.

놈은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인간이었고 언제나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지혜 누나나 나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약점을 드러낸다든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법이 없다. 놈은 능력에 걸맞은 오만함을 갖추고 있었고, 그 오만함을 숨기지 않았다.

‘블러핑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그렇지.’

놈은 자신을 과대 포장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블러핑을 혐오하는 종류의 인간.

처음부터 혐오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몇 가지 사건 이후에는 혐오하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지 않을까.

김현성, 차희라, 정하얀과는 다른 종류의 천재.

놈은 이 대륙에서뿐만 아니라 지구에서도 선택받은 종류의 인간이었을 것이다.

‘이런 새끼들만 보면 괜히 짜증 나자너. 진짜.’

실내로 들어온 셋 역시 녀석을 경계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곧바로 방패를 들어 올리고 공격할 준비를 하는 박덕구와 바로 주문을 외운 정하얀이 보였지만 아마 통하지 않을 것이다. 놈은 시스템의 보호를 받고 있었으니까.

이 강제 퀘스트는 물리적인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아마… 그런 종류일 것이다.

이미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조용히 정하얀의 손을 잡는 한소라가 눈에 들어온다. 눈치를 보던 박덕구 역시 조용히 방패를 내려놓고 놈을 관찰하고 있다.

-이건… 도대체….

-강제 이벤트 같아요. 마법이나 물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아마 저 게임에 승리하는 게 라이오스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요. 어떤 게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 오, 오빠가 하는 거 봤는데….

-거, 나도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아, 아무튼 간에 그럼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요.

---게임입니다.

-…….

-…….

-…….

---말 그대로. 간단한 게임입니다. 네. 단순한 놀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편하실 겁니다. 체스나 장기 같은 것들보다는 조금 더 복잡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아, 혹시나 이런 종류의 게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거, 당연히 모르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것은 커다란 보드. 이전에 봤던 것처럼 수십 가지의 장기 말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차이점은 맵이 달랐다는 것, 무작위로 만들어 놓은 것만 같았던 이전의 맵과는 다르게 현재의 맵은 대륙의 모습을 띠고 있다.

말 그대로 대륙을 축소한 것 같은 느낌. 라이오스와 공화국을 중심으로 마련된 전장은 마치….

‘공화국 전쟁.’

이 이벤트 이후에 시작될 마지막 전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라이오스처럼 보이는 보드에는 거대한 마력이 위에 떠 있었고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는 말들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는 정하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말도 있었고 박덕구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말도 있었다.

심지어 김현성의 모양을 하고 있는 말도 시야에 비친다.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는 군대, 마법사, 기사, 암살자.

여러 가지 병과는 물론이거니와 각 클랜이나 길드 역시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일단은 공화국도 이쪽 진영이네.’

따로 연계 퀘스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당연하리라.

사실 녀석을 처음 봤을 때부터,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보드를 봤을 때부터 깨닫고 있었다.

여기에서 시작되는 특수 이벤트, 악마 소환사는 라이오스 악마 소환 사태와 공화국 전쟁을 하나로 관통하는 퀘스트나 다름이 없다.

아마도….

---사실 기본적인 룰에 대해 설명해 드릴 필요도 없을 겁니다. 이건 전쟁의 축소판이니까요. 진영을 두 개로 나누고 두 플레이어가 맞부딪치는 전쟁 게임입니다. 한 가지 더 설명해 드리자면….

-…….

---위험은 진짜입니다.

-그게….

---이 작은 피스들이 실제로 생명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편하실 겁니다.

-무슨….

---패배한 진영에서 목숨을 잃은 말들은 실제로 목숨을 잃는다고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미, 미친….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당신들이 패배할 경우 예정대로 라이오스에는 마력이 떨어질 겁니다. 이 게임에서 제게 승리하는 것이 이벤트의 내용이며 다른 공략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말씀드리는 건데. 지금 드린 말씀은 거짓 하나 없는 진실입니다.

-거, 악마 소환사의 말을 어떻게….

---…….

‘왠지 이럴 것 같더라니.’

난이도는 최상. 위험부담 역시 크다.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간다고 해도 저걸 이길 수 있을지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애초에 공략하라고 만든 퀘스트가 맞기는 해?’

당연히 공략하라고 만든 퀘스트가 맞다. 악마 소환사 녀석이 자신의 입으로 직접 이벤트의 공략 방법을 알려줬으니 다른 말이 필요할 리가 없다.

공략 내용 역시 무척 간단하지 않은가. 진청과의 게임에서 승리하면 모든 게 마무리된단다.

보스가 있으니 보스를 잡으라는 말과 다름없이 들린다. 문제는 이쪽이 상대해야 할 보스가 김현성이라는 것.

저 악마 소환사는 적어도 이런 분야에서는 김현성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이질적이다.

애초에 박덕구 정하얀 한소라는 지휘관이 아닐뿐더러 대형 병력들을 운용한 적도 없다.

대륙 내에 있는 지휘팀이 온다고 한들, 진청을 상대로 포인트를 따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유능한 이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녀석은 유능함의 차원을 넘어섰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나 편법.

‘일부러 지면 돼.’

잔머리였다. 애초에 승리를 포기하고 게임에 임하는 것.

패배한 진영의 모든 말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면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하면 된다.

중요한 말이나 본대를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게임을 끝낸 이후에 라이오스를 버리는 선택을 한다면 나름 적은 피해로 이벤트를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최후의 최후까지 저항해 모든 말들을 잃어버리는 선택을 할 바에야 최소한의 병력과 라이오스를 던져 버리는 것이 속 편할지도 모른다.

지혜 누나가 도망칠 구석을 마련해 준 것 같아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이것마저 쉽지 않을 것이다.

저 악마 소환사가 일이 그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걸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

-저, 저도 잘… 섣부르게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진청 씨.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원하시는 대로.

-만약 패배하게 된다면 게임을 진행한 플레이어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플레이어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게임을 수락하지 않으면 어떻게….

---게임이 시작되지 않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알아야 할 다른 룰이 있나요?

---없습니다. 만약 의심스러우시다면 룰 북을 제공해 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플레이는 한 명만 가능한 건가요?

---다수라도 상관없습니다.

-게임 도중 플레이어를 바꿀 수 있는 건가요? 아니. 저희 셋 중 하나가 플레이를….

---타인이 와서 진행해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벤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라이오스 위에 떠 있는 마력의 양이 늘어나게 될 겁니다. 네. 지금부터 말입니다.

그 와중에 차곡차곡 정보를 모으고 있는 한소라를 보니 그나마 그녀가 저기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물리적으로 녀석을 저지할 방법이 완전히 막힌 상태에서 정하얀은 할 일이 없어졌을 테고 박덕구의 경우에는….

-이거 큰일 난 거 아닌가. 이, 이대로 계속 시간이 지난다면 마력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거 아니요! 지, 지금 게임 해야 하는 거 아니요? 지금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니… 그건….

-거, 누구라도 빨리 해야 한다는 거 아니요. 아무한테나 연락을 해보든지… 그게 아니면 잠깐 내가 맡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중간에 바꿀 수 있다고 하니까! 일단은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니까!

‘지랄하지 마. 이 새끼야.’

-잠깐만요.

-아니, 정말로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거요. 저 악마 소환사를 막을 방법이… 정 방법이 없으면 일단은 내가….

‘이 돼지 새끼 진짜.’

---…….

-누님이 뭔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은 없는 거요?

-찾, 찾아는 보고 있어요.

-일단 이렇게 된 거….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박덕구 님!

-지금 이럴 시간이 없다니까!

-소, 소라가 기다리래요.

-진정하세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요. 저… 정하얀 님. 마력이 팽창해서 터지는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한, 한 시간?

-감사합니다. 일단 한 시간 정도가 남았으니까요. 굳이 저희가 게임을 진행하지 않아도 돼요. 대륙의 현장 지휘관들에게 맡기는 게 더 확률이 높을 거예요. 일단 김미영 팀장님이나 길드의 다른 분들께 연락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괜, 괜찮을까요? 정하얀 님?

-소, 소라한테 맡길게.

-감사합니다.

‘진짜 한소라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매번 대륙을 구하고 있는 한소라였지만 이런 방식으로 대륙을 구하는 것은 또 처음이다.

박덕구가 혼자 들어와 진청과 자리 잡고 있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일 지경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전술 공부를 하기야 했고, 예상외로 재능도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박덕구를 이 무대 위에 세운다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다.

전 대륙에 있는 네임드들을 모두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 버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편법을 사용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한소라 덕분에 초기 대응은 나쁘지 않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본인들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그랬고, 악마 소환사에게 먼저 질문을 던진 것부터가 그랬다.

‘이것부터가 함정이었던 거네.’

“아니… 애초에 이 새끼 이거… NPC 맞기는 해?”

언뜻 보면 지혜 누나에 의해 만들어진 녀석 같기도 했지만 굳이 불필요한 정보를 흘리지 않는 녀석을 본 이후에는 의식이 있을 가능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한소라가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면 플레이어를 바꿀 수 있다는 것도, 곧바로 게임을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게임의 승패와 플레이어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는 제약이 걸려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거지? 그럼 기억 쪽은 어때? 기억은 가지고 있나?’

-잠깐. 질문을 한 가지 더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진청 본인이 맞나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이 새끼.’

-거, 악마 소환사 본인이 맞는 거요?! 대륙을 공포에 떨게 만든, 그 악독한 진청이 맞냐 이 말이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당신은 누구요?

---던전의 이벤트 몬스터라고 생각하시는 게 편하실 겁니다.

굳은 얼굴이 보인다. 격식을 차린 말투처럼 침착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관찰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르다는 것. 다른 역할을 부여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교국에 있는 망령과는 퀄리티가 다른 게 느껴진다.

일단 어찌 됐든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이 경우에는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혜진아. 준비하자.”

-뭘….

“우정의 힘을 보여주러. 감은 안 떨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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