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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25화 (816/1,590)

< 825화 마지막 (58) >

[네임드 개체 김현성이 플레이어의 명령에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플레이어에게 전달할 수 없는 의사를 표현합니다. 네임드 개체 김현성의 의사는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많이 나쁘지는 않네요.”

[인류 진영의 병력들을 소집합니다. 15전선에서 전투가 벌어질 예정입니다. 노을빛의 검사와 마검사가 서로를 인식합니다. 네임드 개체 마검사가 노을빛의 검사를 도발합니다. 노을빛의 검사가 혼란과 분노에 휩싸입니다. 악에 받친 소리를 내지르며 검을 뽑아 듭니다.]

‘아니, 시바, 나쁜 건가?’

[마검사는 노을빛의 검사를 비웃습니다. 마검사가 노을빛의 검사를 모욕합니다. 마검사는 싸우고 싶어 합니다. 악마 진영의 플레이어는 그의 뜻을 존중합니다.]

‘분위기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전투가 시작됩니다.]

‘이거 진짜 버그 걸린 거 아니야?’

뭐라고 항의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와 꽂혔다.

김현성이 멘탈이 약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말까지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당황스럽다.

어쩌면 페널티를 먹은 것일지도 모른다. 좋은 능력치만큼이나 정신적으로 약해졌다고 생각해 보면 제법 그럴듯했으니까.

‘우리 쪽만 문제를 겪고 있는 건 아니야.’

진청이 보유한 네임드 개체인 정진호 역시 결코 제정신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

전황이 불리해지면 버그 핑계로 퍼즈를 걸거나 진청에게 직접적으로 항의할 여지가 생길 것이다.

아마 진청이라면 이쪽의 항의를 받아들일 거고….

조금 야비하게 보이기야 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소중한 대륙인들의 목숨이 걸려 있는 대결인 만큼 정정당당함이라는 단어를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일단 가자. 중간에 불리해지면 버그 핑계로 뜯어낼 수 있는 만큼 뜯어내자고.’

내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는 와중에도 진청과 조혜진은 더미월드 확장팩을 조작하느라 여념이 없다.

첫 전투에 걸린 게 많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처음부터 김현성을 투입한 조혜진이 사뭇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얘는 그거지 뭐.

인류 측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으리라.

15전선이 보급에 중요한 것은 맞지만 구태여 김현성을 저곳으로 밀어 넣을 이유는 없다.

정진호가 빠져 있다는 걸 확인했다면 병력을 다른 전선 쪽으로 집중시키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미미한 이득이겠지만 효율을 생각하면 활동 범위가 넓은 김현성이라는 패를 정진호와 묶이게 할 이유가 없다.

녀석이 대량살상에 특화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기도 했고, 쓸데없는 희생을 최소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의 전투 구도를 만들어낸 것이리라.

쬐끄만 녀석들 주제에 제법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만들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인류 진영의 지휘관들이 병력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지원군을 요청합니다.]

인류 측의 병사들과 악마 진영의 군대가 서로를 향해 창을 내지르고 있다.

마법사들은 주문을 외우고 사제들은 신성 마법을 계속해서 뿌린다.

울부짖고 있는 말들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말들이 쓰러지고 실제 전쟁을 방불케 하는 모습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인류 진영의 몇몇 이들이 두려움에 빠집니다. 교황청의 사제들이 찬란한 빛을 노래합니다. 병사들이 용기를 얻고 전진합니다. 악마들에게 굴복하지 않겠다 소리칩니다. 상태 이상 절망이 상쇄됩니다. 두려움을 딛고 승리를 노래합니다.]

[인류 진영의 야전지휘관들이 신성력을 아끼라 경고합니다. 탈진하는 사제들이 늘어납니다.]

조혜진이 입술을 깨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김현성과 정진호가 서로에게 검을 맞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네임드 개체 노을빛의 검사가 질 리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진호와 직접 검을 부딪치는 것을 보니 걱정이 되기는 하는 모양.

온갖 마법으로 자신을 강화시킨 이후에 김현성을 향해 검과 마법을 내지르는 놈의 얼굴은 즐거워 보인다.

정면승부로는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건지, 특기인 견제기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짜증 나는 방법으로 김현성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전장을 잘못 골랐어.’

계속해서 짧은 거리를 이동하며 김현성의 발을 묶는다거나 하는 방법은 확실하게 효율적이다.

바닥에 고여 있는 핏물이 김현성의 발을 붙잡고 어딘가에서 날아온 마법들이 김현성의 신경을 긁는다.

전쟁을 벌이고 있는 병력들 사이에 섞여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은 녀석이 김현성과 일기토를 벌이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전쟁을 즐기는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고 손에 닿는 족족 휘두르거나 넝마로 만들어 버리고 있으니 김현성의 입장에서도 녀석을 상대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코패스 살인마답게 인간을 방패로 사용하는 것도 거리낌이 없다.

불리하다 싶으면 인간의 벽 뒤로 숨거나 김현성이 검을 휘두르기 곤란한 상황을 만든다.

미친놈처럼 웃음을 터뜨리며 무작정 검을 휘두르고 있다.

1회 차의 기억을 통해 봤을 때나 튜토리얼 때를 생각해 보면 나름 점잖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전투가 점점 더 길어질수록 본성을 드러내는 것인지 이성을 놓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니야. 희라 누나랑은 다르자너.’

이성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다. 놈은 지금 그 누구보다 이성적일 것이다.

김현성은 이런 과정을 즐겁다고 느껴본 적이 없겠지만 놈은 정반대.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악마 진영의 네임드 개체 마검사 정진호가 즐겁다는 듯이 웃습니다.]

[인간 진영의 병력들이 상태 이상 공포에 빠집니다.]

[악마 진영의 네임드 개체 정진호가 광소를 터뜨리며 검을 휘두릅니다.]

[인류 진영의 병력들이 정진호를 두려워합니다. 야전지휘관들이 마검사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전장이 점점 혼돈에 빠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양 진영의 병력들이 뒤엉키기 시작합니다. 아군과 적군을 구분할 수 없는 혼란 상태에 빠집니다. 전장의 열기에 미쳐 모든 병력들이 광란 상태에 빠집니다.]

‘시바.’

[마검사 정진호가 광소를 터뜨립니다.]

‘실수라고 생각하겠는데.’

진청은 애초 넘겨줄 수밖에 없는 지역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조혜진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이 전선에 집착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했을 테니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따내야 하는 전선, 어째서 놈이 이곳에 정진호를 투입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알고 있죠? 그냥 개싸움 하자는 거예요.”

-…….

피해를 최대한 누적시켜서 깎아 먹겠다는 의도. 녀석답다.

작은 이득으로 상대방을 계속해서 깎아 먹으며 스노우볼을 굴리고 내줄 건 내주더라도 다른 쪽에서 이득을 보겠다고 생각하는 게 눈에 보인다.

물론 조혜진이 멍청하게 당해주고 있을 리 만무. 재빠르게 병력을 재정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통솔 수치가 높은 야전지휘관들을 곧바로 투입해 병력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네임드 개체 노을빛의 검사 김현성이 노을빛의 검을 들어 올립니다.]

[인류 진영의 병력들이 상태 이상에서 해제됩니다.]

[네임드 개체 신념의 방패 박덕구가 재집결의 함성을 외칩니다.]

[인류 진영의 병력들이 재집결합니다. 깃발을 들어 올리고 진영을 재구축하기 시작합니다.]

-방진을 재구성하겠습니다. 각 야전지휘관들에게 전달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개판이 되어버린 전장을 다시금 가다듬고 진영을 재정비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리 김현성과 박덕구가 병력들의 정신을 깨워 준다고 한들, 자갈과 모래를 구분해 제자리로 돌려놓는다는 게 쉬운 일일리가 없지 않은가.

이미 예상했다는 것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병력들은 내가 보기에도 신기하다.

개인적으로 조혜진이 임기응변에 약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보니 그렇지도 않다.

매뉴얼대로 움직이고 있는 병력들과는 별개로 상황이 여의치 않은 곳은 직접 지시를 내리고 있는 모습.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방진을 재구축한 병력들은 전진합니다.

[인류 진영의 야전지휘관들이 플레이어의 결단에 환호를 보냅니다.]

[인류 진영의 사기가 상승합니다.]

-병력들은 악마 진영의 군대들을 몰아냅니다. 생존자와 떨어진 병사들을 모아 다시 한번 재구축합니다. 방패를 들어 올리고 보호 마법을 펼치며 전진합니다. 대열을 맞추고 적들을 몰아내겠습니다.

[인류 진영의 방패병들이 방패를 들어 올리고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신념의 방패가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이길 수 있다고 병력들을 독려합니다. 특수스킬 선동을 발동합니다. 모든 아군 병력들이 신념의 방패의 선동을 신뢰합니다.]

[아군 병력들이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악마 진영의 사기가 꺾입니다.]

---하하하하!

‘이 새끼 재수 없게 쳐 웃고 있어. 진짜.’

---재미있습니다. 재미있군요.

‘재미는 개뿔. 시바. 엿이나 먹어라, 새끼야.’

이쯤 되면 김현성을 투입한 이유도 합당해진다.

-네임드 개체 마검사 정진호를 최우선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인류 진영의 김현성이 플레이어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곧바로 몸을 날리는 김현성이 녀석을 향해 검을 날린다. 정진호는 아쉽다는 듯이 몸을 뒤로 내뺀다.

[악마 진영이 병력을 뒤로 물리며 후퇴합니다.]

-놓치지 않습니다.

‘단거리 이동마법. 시바. 저게 짜증 날 줄 알았는데.’

[검은백조 길드의 레인저들이 더 이상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찰되지 않은 지역이라고 경고합니다.]

[네임드 개체 김현성이 자신은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일이든 맡겨 달라고 소리칩니다. 자신은 위험하지 않다고 합니다. 퀘스트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사를 강력하고 처절하게 표현합니다.]

-더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조혜진과 합당한 판단을 했다는 아군 병력들이 눈에 보였다.

전투는 승리했지만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 곧바로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있는 조혜진이 눈에 보인다.

아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른다는 둥, 이 기세를 몰아 적들에게 들어가야 한다는 쪽지들이 계속해서 날아오고 있었지만 전선을 재정비하고 보급로를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단단한 방어 전선을 구축하고 성벽을 쌓아 올리고 유리한 전투를 위한 기반을 계속해서 다진다.

이른바 후반 한 방을 바라보는 운영을 시작한 것이다.

체스를 둘 때의 성향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은 느낌. 저렇게 문을 걸어 잠그고 이후를 바라볼 때의 조혜진은 특히나 더 무섭다. 틈을 보이지 않으니까.

진청 역시 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인다.

어떤 타입인지에 대해 대충 예상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조혜진이라는 인간에 대해 잘 알게 되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플레이가 진행될수록 천천히 조혜진을 재보기 시작한 놈이 눈에 들어왔다. 야금야금 이득을 보며 그녀의 성향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독사와 같다.

---당신은 올곧은 사람처럼 보이는군요.

-…….

---이렇게까지 성향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가 않은데… 이 전쟁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사담은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신은 이곳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 겁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신념을 지키고 살아간다고 해도 당신이 잃기만 하겠지요. 무엇을 얻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당신이 명예를 버리고 악마의 손을 잡으신 겁니까?

---…….

-저는 올곧지도 않고 당신이 판단한 것처럼 의로운 자도 아닙니다. 당신이 공화국 전쟁에서 패한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

-자신의 신념을 믿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륙이 수많은 위기를 넘기고 계속해서 발전하는 이유 역시 신념을 믿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혹이나 힘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죽는 그 순간까지 가슴에 품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대륙을 만든 것은 바로 그런 이들입니다.

---…….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당신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저는 믿고 있습니다.

‘명예도 팔아먹은 악마 소환사 새끼. 꿀 먹은 벙어리 됐죠?’

---…….

‘아무 말도 못 하죠? 진짜 명예로운 사람 보니까 아무 말도 못 하죠?’

-진짜 세상을 바꾸는 건 그대 같은 이들이 아닙니다.

‘우리 혜지니 멋있는 거 봐. 진짜. 반하겠다. 야.’

조용히 조혜진을 바라보는 진청의 얼굴이 괜스레 진지해지는 것 같은 느낌.

충분히 조혜진이 빌드를 쌓아 올렸다는 걸 인정하고.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혜지나. 슬슬 체인지. 체인지. 우리 저 새끼 통수칠 거야. 완전히 믿고 있자너. 걸려들었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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