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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28화 (819/1,590)

< 828화 마지막 (61) >

미국 간 녀석의 동료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돌아오지 않는다.

“거, 악마 소환사 놈은 아무것도 모를 거요! 사탄도 거를 사악한 놈! 저런 놈을 믿고 따르는 공화국의 시민들이 불쌍하다니까!”

‘덕구 잘하자너.’

“대륙에 대한 악의로 똘똘 뭉쳤다는 거 아니요. 죽어서까지 이런 짓거리를 저지르다니. 수많은 사람을 봐왔지만 저놈 같은 싸이코 패스는 처음이요! 더러운 악마의 하수인아! 네게 조금이나마 인간성이 남아 있다면… 네 죄를 회개하고 빛에 무릎을 꿇는 것이 옳다! 소라 후배도 한마디 하라니까.”

“아… 네… 이… 이 악마 소환사…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평화로운 대륙에… 악마를 소환할 수….”

본래 빛이라는 건 함께 할 때 더욱더 빛나는 법이 아니겠는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 된 외침이자너.’

실실 웃으며 녀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초조해하는 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비난받는 상황에 대한 초조함이라기보다는 애써 다잡은 마음이 흔들릴까에 대한 초조함이라고 해석해도 될 것 같았다.

녀석은 알고 있다.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것도, 페이스에 휘말리면 안 된다는 것도, 쓸모없을 것 같은 기 싸움에 밀리면 안 된다는 것도 전부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정심을 유지하기 쉽지 않으리라.

녀석이 가지고 있던 오만함에 금이 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악마 소환사의 생의 유일한 오점으로 남을 성스러운 빛을 보고 있으니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내가 뭘 할 것 같느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것만 봐도….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뻔하자너.’

진청에게 있어 이기영이라는 인간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종류의 인간이다.

놈은 나를 더러운 사기꾼으로 칭하고 블러핑만을 일삼는 머저리로 표현하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리가 없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할 정도로 병신 새끼는 아니니까.’

말 그대로, 놈은 지난 시간을 통해 충분히 교훈을 얻었다.

눈앞에 있는 인간은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며 판을 이끌어 나갈 능력은 없지만 판을 뒤집을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조금 더 과대평가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까 전에 터진 마력 공급원들의 폭사가 놈의 생각에 개연성을 부여해 주고 있지 않을까.

녀석이 내게 경각심을 일구어 주는 것 자체는 그리 반가운 상황이라 할 수 없었지만 기왕이면 이쪽을 조금 더 과대평가해 줬으면 좋겠다.

어디서 무슨 수가 터져 나올지 조심하고 계속해서 주의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어차피 시간만 지나면 이기는 상황이었고… 마력 공급원들 다수를 잃은 악마 진영의 말로야 안 봐도 비디오였으니까.

조용히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한번 상황판을 살펴보는 모습은 가관, 하지만 본대에 커다란 피해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는 턱을 쓰다듬는 모습이 보인다.

‘싸울 생각이네.’

불리한 상황에서 전황을 바꿀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게 싫다니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백기를 드는 것이 맞다. 내가 보기에도 보이지 않는 활로를 찾은 녀석을 보니 짜증이 솟아 나온다.

---사담이 길었군. 어떤가. 나도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궁금하던 차였다. 계속해야 하지 않겠나.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야.

[네임드 개체 노을빛의 김현성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플레이어에게 전달할 수 없는 의사를 표현합니다. 네임드 개체 김현성의 의사는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아, 왜 자꾸 얘는 버그 걸리고 난리야.’

---네 다음 수가 궁금하군. 어차피 쓰레기 같은 블러핑일 테지만 말이야. 보여줄 게 남아 있나?

굳이 당황할 필요는 없다. 뭐 이럴 때는….

본질을 흐리는 게 중요하니까.

딱히 이 게임판으로 한정 짓지 않아도 된다는 것.

녀석이 나를 예측 불가능한 인간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다.

공략 방법은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이라 명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왕이면 녀석이 여러 가지 가설들을 떠올려줬으면 좋겠다.

판을 조금 더 키운다거나 녀석이 알지 못하는 공략 방법을 내가 찾고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움직이기 편한 환경을 마련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원래 애매할 때는 물타기만큼 좋은 게 없다니까.’

게임판에는 굳이 시선을 두지 않는다. 하얀이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거나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한다.

공화국의 병사들과 시민들을 최전선으로 세운 이후에는 할 수 있는 전쟁 준비를 간단하게 마치고 주변을 살핀다.

덕구와 시시덕거리거나 희라 누나가 서 있는 연방의 소식을 접하기도 하고 이런 게임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놈을 향해 비웃음을 흘려보내는 게 중요하겠지.

마냥 무시하기도 힘들 것이다.

“군사님. 이지혜와는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관심을 끌 수 있는 질문일 테니까.

---쓸데없는 질문이군. 누군가에게 제안을 받았을 뿐이다.

“제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알고 계셨습니까?”

---대답해야 하나. 이런 잡담이 중요한 것인지 모르겠군. 조금 더 전쟁에 집중하는 것이 어떤가.

“글쎄요. 솔직히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이 이벤트도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요. 지금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이해하고 계십니까?”

---알고 있다.

“신화 등급의 던전 빛의 아들이 희생된 대륙이 열렸고 군사님이 그 이벤트를 이끌어 나갈 장기 말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신 게 맞습니까? 군사님에게는 이 퀘스트가 존재 의의이기도 하고 목적 그 자체이기도 하겠지만 제게도 같은 무게로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거짓이로군.

“그렇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너무 티가 나는 거짓말이야. 자신이 없는 건지, 아니면 머리가 맛이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네 행동이 꾸며진 행동이라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머저리 같은 놈. 내가 말하지 않았나. 지킬 게 있는 인간은 약해진다고. 네 목소리가 저 미친 여자와 덩치 큰 머저리한테 들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굳이 들어도 상관없습니다만,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초조해하고 있군. 일이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당황하고 있어.

“못 본 사이에 거짓말 탐지기가 다 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걸 입에 담았을 뿐이다. 쓰레기.

“뭘 어떻게 구별하고 계신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군사님의 해석이 옳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게 우습게 느껴지네요.”

---간단한 이야기다. 모든 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아닌가. 무대 위에 오르는 배우처럼 덩치를 부풀리며 그 여자의 몸에 깃든 것은 그럴듯하다만 타이밍이 제법 공교롭다고 생각되는데 말이야. 이 작은 전쟁터에 있는 그 여자가 죽었을 때였지 아마.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연기에 치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눈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추리 하나는 기가 막히시네.”

---그 하찮은 연출조차 네 본심을 숨기기 위한 쇼일지도 모르지. 나를 도발한 것도, 텐션을 올린 것도 그 불안함을 감추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을지도 몰라. 아! 물론 네 말대로 이건 확신이 아니라 추측이다.

“네. 네. 네. 군사님 생각이 맞습니다. 맞아요.”

---한 가지 더 살을 붙이자면 지금의 행동도 초조함을 숨기는 행동이라 느껴지는군. 너는 불안해하고 있어. 너 같은 자식에게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내 눈에는 지금 네가 실수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짜 짜증 나네. 이 새끼.’

---너와는 다르게… 나는 이 전쟁에만 충실하면 그만이라는 거지.

‘진짜 짜증 나.’

하지만 놈은 그 가설에 대해 확신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확신을 억누르려고 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바라고 있을 가능성도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말하자면 놈은 지금 모든 변화나 변수에 대응하자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부정할 필요도 없고, 긍정할 필요도 없다. 아니, 다시 말하면 부정해도 상관없고, 긍정해도 상관없다는 거지.

“뭐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맞혔나 보군. 그 여자의 명예가 발목을 잡은 셈인가. 우스워.

“우리 혜지니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건 사실입니다. 제가 그녀의 죽음을 막기 위해 이쪽으로 내려왔다는 건 과대 해석된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만 뭐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제가 이렇게 나와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천천히 감정을 가다듬자 곧바로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계속해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놈의 얼굴이 잠깐이나마 일그러지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잠깐이나마 조혜진을 잃는 생각을 해보자. 이기영이라는 인간의 성향을 바꿔 소중한 사람의 죽음에 반응하는 인간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몸이 나락 끝까지 떨어지는 기분이 느껴진다. 분노와 좌절감과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뒤섞인다. 턱이 덜덜 떨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떨어져 내린다.

“아… 으… 윽….”

이상한 소리가 계속해서 목구멍으로 새어 나온다. 호흡이 가빠져 숨을 쉬기가 힘들다.

머리가 어지럽다.

이상해.

토할 것 같….

---정신 나간 놈. 네놈은 미친 게 분명해.

‘이거 기분 더럽네. 다시는 안 할 거자너.’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게 편하시겠습니까. 군사님이 저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시든 간에 저는 거기에 맞춰드릴 용의가 있는데….”

---미친놈.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자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뭐 어떻게 생각하시든 간에 군사님 마음입니다만 저는 제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말을 번복하는 개새끼라고 생각하시는 게 편할 겁니다. 멍! 멍! 멍! 멍!”

---진지하게 충고 하나 하지. 네놈의 끝이 어떻게 되든 간에 결국 네놈은 미쳐 버릴 거다.

“그건 군사님이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재볼 생각하지 마요. 응? 짜증 나니까. 그래요. 솔직히 기분은 더럽겠네. 내 것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군사님 말처럼 미쳐 버릴지도 몰라요. 근데 뭐 아무렴 상관없다는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이 던전의 클리어 조건이 이기영의 부활 혹은 모든 생명의 끝이라는 거 알아요?”

---알고 있다.

“군사님께서는 후자를 위해 이 무대를 다시 밟으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후자도 상관없다는 겁니다.”

---…….

“3회 차가 시작되거든.”

---…….

“모든 생명의 끝 다음에는 모든 게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시작된다 이거야. 조금 슬프기야 하겠지만 뭐 어때? 나는 내 것들과 다시 한번 마주할 텐데. 슬픔은 느끼지도 못할 거야. 방금 봤잖아. 조금 복잡하고 귀찮아질 수는 있어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정신 나간 놈.

“군사님이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가 복수 맞지?”

---부정하지는 않겠다.

“복수할 수 있겠어? 나한테 좌절감을 심어줄 수 있겠어요?”

---…….

여기서 한마디 해줘야지.

“선택권을 드리겠습니다. 군사님.”

---…….

“복수입니까. 명예입니까.”

---…….

“아니면 이런 개자식과의 거래는 받아들이지 않으실 겁니까.”

커피를 마시며 히죽거리는 웃음을 보내자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놈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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