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832화 (823/1,590)

< 832화 마지막 (65) >

“당연히 지켜드려야지요.”

---…….

“사실 예상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아주 제대로 선택하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후회 없는 거래가, 서로가 이득을 볼 수 있는 거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언제나 고객님의 만족을 위해….”

---그만….

“어떻게… 따로 생각해 보신 방법은 있으십니까?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그건 네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서로 만족할 수 있는 거래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군.

“눈에 힘 좀 빼셔도 됩니다, 군사님. 아, 그리고 병력들도 조금 치워주시고요. 기왕이면 덕구도 돌려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정 불안하시면 덕구만 줘요. 피차 만족할 만한 거래를 찾는 과정에 굳이 이런 게 필요하겠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신뢰해야 진정성 있는 관계가 성립되는 건데… 군사님께서 이렇게 고압적으로 나오시니, 혹여나 저를 신뢰하지 않으시는 건지….”

---나는 너를 신뢰하고 있지 않다. 누가 네놈을 신뢰할 수 있을까.

“왜 자꾸 시비조로 나오시고 그러십니까. 다 좋자고 하는 건데. 덕구야, 군사님한테 커피 한 잔 타드려라.”

꿈뻑꿈뻑 눈알을 굴리며 몸을 일으킨 박덕구가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필요 없다.

“그렇게 작은 행동들이 사람을 상처 주는 겁니다, 군사님. 진심을 담은 호의를 거절하시니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합니다.”

---개소리. 나는 너와 말장난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이기영. 이 병력들은 안전장치다. 네놈이 개 같은 헛짓거리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안전장치 말이다.

“거… 드, 드쇼. 악마 소환사 양반….”

박덕구가 타온 커피를 슬그머니 마시며 이쪽을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슬쩍 목구멍으로 커피를 넘긴 이후에 인상을 찡그리는 걸 보니 녀석의 입맛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 모양.

슬그머니 한쪽 구석으로 커피를 치운 녀석이 다시금 차를 홀짝이는 게 눈에 보였다.

“안전장치가 필요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군사님에게도 득이 되고 제게도 득이 되는 장사인데. 누가 손해 보고 말고 할 게 없습니다. 군사님. 우리 같은 인간들 이런 거에 환장하잖아요. 서로 윈윈 되는 장사. 아무도 손해 보는 사람 없고 깔끔하게 가지고 싶은 것만 가지고 가는 장사 말입니다.”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대륙 최고의 명예 컨설턴트의 입장에서 보면 솔직히 지금 군사님의 이미지를 살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소라 씨?”

“아… 네… 부길드마스터.”

“지금 베니고어 넷에 들어가서 군사님과 관련된 게시물 써치하고 바로 읽어주세요.”

“아. 지, 지금… 말씀이신가요?”

“네, 적당한 거라도 괜찮습니다. 조회 수 높은 거로요.”

“정말로… 읽어드려야 하나요?”

“네. 하나도 거르지 말고 읽어주세요.”

“아… 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여신의 손거울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 역시 주머니에 있던 손거울을 꺼낸 것은 당연지사. 곧바로 여신의 손거울로 시선을 돌리자….

‘뭐야, 이건.’

[내 게시글]

[제목 : 요즘 시국에 이런 글을 남기는 것도 조금 그렇지만… 엘프에게 고백받은 것 같습니다. 아니,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댓글 : 1,024)]

[작성자 : ㅍr랑색이 좋아]

[많은 분이 현재 일어나는 일이 걱정스럽고, 우려하고 계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복잡한 심경을 아무한테도 말씀드릴 곳이 없어 푸념처럼 글을 올립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면 엘프에게 고백받은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기에는 뭣 하지만 에베리아 왕국의 고위직에 있으신 분입니다. 서로 왕래가 많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회의나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스치듯 마주치는 것이 전부였고 함께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신 것 역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당연히 그분이 제게 호감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사건의 발달은 이렇습니다. 그분의 여동생 되시는 분께서 제게… 중략… 그분께서 ‘제가 당신에게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게 딱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현재 시국이 좋지 않은 터라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입니다. 제대로 거절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일이 해결된 이후에 말씀드리는 게 좋을까요? 당장 말씀드릴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이런 이야기를 드릴 시기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혹시나 제가 그분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엘프들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분들의 조언을 기다립니다.]

[아이디 미정 : 지랄을 하네. 아주 지랄을 해. 소설을 써라 진짜. ㅋㅋㅋㅋㅋㅋㅋ]

[ㅍr랑색이 좋아 : 네?]

[아이디 미정 : 소설도 이 정도면 정성이네. 근데 너무 구림.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님 예전에도 이상한 주작 글 들고 온 사람 아님? 이번에는 갑자기 엘프한테 고백을 받았댄다. 저기요. 소설을 쓰려면 좀 제대로 쓰셈. 지금 에베리아 통제됐는데 무슨 에베리아 왕국의 고위직을 만나셨다고 참나ㅋㅋㅋㅋㅋ 내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온다. ㅋㅋㅋㅋ]

[린델마을주민 : 요즘 시국도 시국인데… 이런 글은 조금… 그렇기는 함. 아이디 미정 님 말에 동의하는 게 아니라 에베리아가 대륙 모험가와 관광객들을 억류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런 글은 조금… 분위기 파악 못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되나?]

[ㅍr랑색이 좋아 : 제가 글을 올린 이유는 여러분에게 조언을 받고 싶어서입니다. 말씀 그대로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는 차원에서… 결코 여러분들을 기분 나쁘게 하거나 지금의 상황의 심각함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흙수저 : 이 사람 예전부터 주작 글 많이 올리기는 했지. 기억상실증 썰도 있었고….]

[ㅍr랑색이 좋아 : 정말 주작 아닙니다.]

[아이디 미정 : 비추나 드셈.]

[나나나나난 : 저도 엘프들한테 고백받았었는데… 문화 차이 때문에 힘든 점도 있지만 지금은 그중에 하나랑 잘 사귀고 있어요. 나이 차이가 조금 많이 나서… 아무튼 거절하시더라도 너무 매몰차게 거절하지는 마세요. 엘프들은 고백에 실패하면 종종 스스로 목숨을 끊는….]

[ㅍr랑색이 좋아 : 네? 정말입니까?]

[천연사러버 : 논란 글로 신고했습니다. ^^;;]

‘아니, 얘는 이걸….’

내 손거울이 아니라는 것 정도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사건 직후 올린 글인 것 같아 리플과 조혜진의 반응을 조금 더 살펴보고 싶었지만 애써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왠지 모르게 양심이 찔린 것 같기도 했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일단 넘겨.’

고객님이 먼저다. 명예 컨설턴트 이기영은 언제나 고객을 최우선으로 모시는 프로가 아니었던가.

‘얘 진짜….’

민망함에 헛기침을 시작하기 무섭게 입을 열어오는 한소라가 보인다.

“진청? 아… 그 악마 소환사 새끼? 욕, 욕도 읽어야 하나요?”

---…….

“숨김없고 투명하게. 우리 회사의 모토 아닙니까.”

“공화국에 중 소규모의 길드를 운영하고 있는 길드마스터다. 당연히 그 악마 소환사 새끼랑은 함께 일한 적도 있었고 같이 식사한 적도 있었지. 참 웃기지. 그때까지만 해도 그 새끼가 공화국을 책임지고 이끌어나갈, 우리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재인 줄 알았다는 게….”

‘청이 형아 표정 안 좋자너.’

“결국에는 전부 자기 욕심이고 연기였다는 거지. 그 새끼한테 속아서 군사님 군사님 하면서 따라다닌 것만 생각하면 요즘도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을 지경이다. 악마 소환사 새끼. 죗값도 제대로 치르지 않고 뒤져가지고… 나는 그 새끼가 조금이라도 더 고통받았으면 좋겠다. 기만자. 사기꾼. 더러운 악마 소환사.”

---…….

“리, 리플도 읽어드려야 하나요?”

“정직함! 투명성!”

“아… 네. 나도 진청 그 자식 밑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기는 했지… 폼은 더럽게 잡고 다니던 새끼였음. 자기는 다른 척, 자기는 특별한 척, 남들보다 우위에 있는 척, 세상을 내려다보는 척. 당시에는 정말로 뭔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마안?”

“그 특별함이 악마와의 계약에서 나온 특별함이라는 걸 누가 알았겠냐고.”

“여론이 이래요. 여론이 이래… 계속해 주세요. 소라 씨.”

“군사님을 두둔하는 리플이 달려 있네요.”

---…….

“그 뒤로는 악마 소환사 개새끼 해봐… 라는 글이 리리플로 달려 있고요. 다음 글로는… 네… 그… 사진인데… 합성되고 그려진 사진들… 악마의 몸에 군사님의 얼굴이 달려 있다거나… 네… 보, 보여드려야 되나요?”

“아니요. 고객님의 멘탈 보호를 위해 그건 공개하지 맙시다.”

당연하지만 녀석의 얼굴이 찌푸려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아무튼 뭐 이렇다는 겁니다. 군사님.”

---전부 다 네놈이….

‘또 빡 치려고 하자너.’

“아닙니다. 군사님. 실제로 저는 군사님의 명예를 위해 불철주야 동분서주 뛰어다녔다니까요. 갑자기 나타난 결사단들이 모든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전에는 군사님의 이미지 세탁 2주년 계획이 착실하게 진행되는 중이었습니다. 억울하시겠지요. 그 심정 당연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자기 손을 떠난 일들도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 경우가 딱 그랬어요. 저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호흡을 고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결사단이 등장하기 전과 후의 차이의 여론이 급변한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저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지요. 군사님의 누명 제가 벗겨 드리겠습니다. 진청 군사야말로 이 땅을 위해 희생한 진정한 영웅이었다는 걸 제가 다시 증명하겠습니다.”

---입에 발린 말을 할 필요도 네놈을 내세울 필요도 없다. 영웅이었다는 걸 증명할 필요도 없고 필요 이상의 일을 벌일 필요도 없다. 내가 악마 소환사가 아니라는 것만 밝혀줬으면 좋겠군.

“겨우 그걸로 되겠습니까.”

---나를….

“더 확실한 거로 합시다. 군사님도 아마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는 게 좋지.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는 했는지 박덕구 역시 조용히 진청을 바라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무슨 소리요…? 진청 군사가 악마 소환사가 아니었다는 소리요?”

“…….”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설명하자면 길다. 덕구야. 한 가지 확실한 건… 군사님은 지금도 자신의 안에 있는 악마와 싸우고 있다는 거지….”

---쓸데없는 소리를….

“소라 씨. 대륙 전체에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내보내세요.”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이기영! 경고했다. 분명히 나는!

한소라보다 정하얀이 더 빠르다. 대륙 전체에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보이기까지는 정말로 순식간….

대륙인들의 반응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이곳에서도 밖의 상황을 볼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멍한 표정으로 하늘 위에 떠 있는 여신의 거울을 바라보는 이들이 시야에 비친다.

도대체 무슨 일이 펼쳐지고 있는지. 어째서 파란의 신창 조혜진과 죽은 줄로 알았던 악마소환사가 함께 있는 건지, 지금 도대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궁금한 거겠지.

악마 소환사… 진청… 이라고 중얼거리는 이들과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대륙인들.

자신이 원하고 또 원한 일이었겠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진청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지금 뭐라고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전 대륙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놈이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곧바로 두 손을 가슴 쪽으로 모으며 절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이겨 내셔야 합니다. 군사님. 당신은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제길….

“악마와 싸우실 수 있습니다. 제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겨 내실 거라고 빛을 위해 함께 싸우실 거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눈물을 흩뿌리는 건 당연했다.

‘우리 혜지니 스크린 데뷔하자너.’

조금 더 감정을 담아야지.

“제발… 흐윽… 제발 돌아오세요. 군사님… 이겨 내셔야 합니다! 마음속에 있는 작은 빛을 되찾으셔야 합니다.”

아마 녀석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용히 입을 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렇게까지 수치스러워하고 그래?’

---나는 이미 어둠에 잠식되었다. 빛… 빛의 선택을 받은 딸이여.

아무래도 녀석은 연기에 재능이 없나 보다.

---제… 제기라알… 제길…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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