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842화 (833/1,590)

< 842화 마지막 (75) >

마력의 날개가 천천히 하늘을 감싸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이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주문을 외우는 마법사들, 대마법사를 위해 기도를 드리고 있던 이들, 언데드에 맞서기 위해 검을 뽑아 들었던 모든 이들이 잠깐 동안 멍한 얼굴로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환호성이나 응원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사고가 일순간 마비된 사람들처럼 할 말을 잃은 채로 조용히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펼치고 있는 대마법사의 모습은 그만큼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신성을 얻는 과정이었으며 필멸자가 껍질을 벗고 한 단계 성장하는 과정이었지만, 그렇게 쉽게 단순화시킬 수가 없는 광경이기도 했다.

칙칙한 악마의 마력을 막고 있는 형형색색 빛나는 마법진들이 도드라진다.

계속해서 뻗어 나가고 있는 네 쌍의 날개가 라이오스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이 보인다.

너희들의 신앙을 지지하겠다는 듯이. 악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숭고한 그 마력의 빛과 날개는 계속해서, 계속해서 끊임없이 뻗어 나가고 있었다.

-천사… 천사님이야. 엄마, 엄마 저거 봐. 천사님이야.

-교국의 대마법사가….

-아름답군… 아름다워.

-이건… 무슨 마법입니까. 탑주님.

-이 광경을… 어떻게… 어떻게 이걸 마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나. 허허… 이건 마법이 아니라 정하얀 님의 힘이겠지. 터무니없는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그분이 마법의 신이 되어버린 모양이군… 대륙을 구하기 위해 한계를 뛰어넘으신 게야….

-마법의 신….

-마치 대륙에 있는 모든 마력이 그녀의 새로운 탄생을 축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중얼거리는 목소리들과 그녀를 지지하는 많은 이들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들리면 들려올수록 그 힘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긴 하얀색 수염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마법사는 나이에 맞지 않는 순수한 모습으로 그 광경을 눈에 담고 있었다.

-마력의 날개.

-…….

-순수한 그분을 닮은 날개가 아닌가.

-네. 마치 정하얀 님의 투명함을 그대로 담은 것만 같은 순수한 날개입니다.

-이제는 웃으면서 기도를 올릴 수도 없겠구만….

내 입이 다 벌어질 정도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시바… 이건 또 뭐야.”

말 그대로 턱이 빠질 정도로 당황스러운 광경이었다.

“뭐야…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정하얀의 날개가 주변의 마력을 끊임없이 빨아들이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어떻게 된 거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의 신성을 흡수하는 걸 보니 오히려 이 상황을 기다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고 해냈다는 듯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장면은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친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나뿐만이 아닌 모양.

박덕구야 커다란 눈을 꿈뻑거리며 정하얀에게 환호성을 보내고 있었지만 거대한 마력의 줄기에게 휘감기기 시작한 한소라는 최대한 그것과 멀어지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발목을 잡고 올라탄 마력의 줄기는 이윽고 그녀의 몸을 끌어당긴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듯이 손을 뻗으며 기어나가고 있었지만 그녀를 뒤덮은 마력의 줄기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꺄아아아악! 정하얀 님! 정하얀 님!

-…….

-정하얀 님! 무서워요. 무… 무서워요.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시바 당연히 무섭겠지.’

인간을 강제로 천사로 변환시키는 과정이었으니까.

자신이 갑자기 다른 종족이 된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는 법이다.

마력의 줄기가 자기 몸을 자꾸만 휘감고 있으니 비주얼적으로 공포심을 느끼는 거고….

일반적으로 가능한 방법이 아닌 만큼 약간의 고통이 동반될지도 모른다.

조금 더 부드러운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막 신성을 사용하기 시작한 정하얀이 그런 방법을 깨달을 수 있을 리 만무.

최대한 빨리 한소라를 천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하얀 님… 정하얀….

마침내 거대한 마력의 줄기가 그녀의 몸을 완전히 집어삼킨다.

줄기 사이로 팔 하나가 파악 하고 뻗어 나왔지만 다시 한번 손을 뻗는 줄기에 그것마저 완전히 삼켜진다.

이윽고….

-어….

-이, 이제 괜찮아. 소라야.

등 뒤에 검은빛의 투명한 날개 한 쌍을 달고 있는 한소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찰나의 시간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본인의 등 뒤에 있는 날개가 신기한지 조용히 뒤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 와중에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는 않는지 정하얀을 흘겨보는 중, 하지만 녹초가 된 그녀의 모습을 본 이후에는 마음이 약해진 모양인지 입술을 꽉 깨물고 있다.

-많, 많… 많이 무서웠어?

-…….

-아프지는 않, 않았어?

-네… 지금은 괜찮아요.

-다행이다….

-지금은요… 지금은 괜찮아요.

-정, 정말… 다, 다행이다….

다행은 아니지. 갑자기 자기가 천사가 되는데 얘가 얼마나 놀랐겠어. 그리고 지금 괜찮은 거 맞아?

한소라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심력과 마력, 신성을 소비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위에 있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체시킬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입가가 떨리고 있는 게 느껴진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악마의 마력이 다시 한번 정하얀의 날개를 짓눌렀지만 그녀는 팔을 활짝 벌리며 커다란 소리를 내지를 뿐이었다.

‘연기하는 건 아니지?’

하얀이는 영악하다.

-끄윽…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게 싫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좋지. 그냥…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쟤도 영악한 면이 있다고.

-내가 지켜줄게. 소, 소라도… 덕구 오빠도… 그리고 저… 응… 내가 지켜줄게.

말도 안 더듬자너.

-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정하얀의 날개가 한 번 내리 앉자 위를 바라보는 이들이 비명을 내지른다.

기도를 올리기도 하고 정하얀에게 응원을 보내고 힘을 보내기도 한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정하얀에게 계속해서 마력을 보내고 있다.

저게 연기라면 아마 속으로 신나서 춤을 추고 있겠지.

우리 하얀이가 보고 배운 게 많기는 해. 근데 저거 진짜 일부러 저러는 거 맞지? 진짜 위기상황은 아닌 거지?

-내가 지킬 수 있어! 지, 지킬 수 있어….

입술을 꽉 깨문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온다.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에 온몸이 넝마가 된 것처럼 보인다.

마력을 떠받들고 있는 그녀의 날개에서 후드득후드득 소리와 함께 마력의 파편들이 떨어진다.

한소라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하아… 하아… 지… 지킬 수 있어….

-정하얀 님!

몸을 일으키며 그녀의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눈물 나는 광경이기는 했다. 저게 주작만 아니라면.

작은 체구의 마법사가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악에 대항하려는 모습이 어떻게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하얀의 왼편에 선 한소라도 어느새 필사적으로 대항하려는 모습, 방금 전까지 본인이 마력의 줄기 속에서 헤엄치고 왔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인지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다.

쟤도 혹시 자기세뇌 돌리고 있는 거 아닌지 몰라.

-할… 할 수 있어요. 힘내세요. 정하얀 님.

-고, 고, 고마워… 소라야.

극한 상황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니야. 저거에 누가 안 속아 넘어가겠어.’

프로레슬링도 그렇잖아. 각본은 있지만 위험은 진짜라고.

누군지 몰라도 정하얀한테 저런 거 가르친 놈 얼굴 좀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얘가 적응이 빠르기는 해… 솔직히 무서워.’

응용력도 남다르고….

본인의 몸 안에 들어온 게 신성이라는 걸 깨닫는 거로도 모자라서 벌써 저러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정하얀은 정하얀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직접적인 계약을 맺지 않았으니 당장은 위로 올라올 수 없겠지만 쟤가 뭔가 다른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불안감은 존재한다.

당장 자신의 천사를 만들었다는 것부터가 이미 규격 외의 일을 해낸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 걱정을 내려놔도 되지 않을까.

“좋네.”

아군 측에게 아주 좋은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좋아. 우리 하얀이. 아주 좋아.”

기다렸다는 듯이 악마 소환 쓰레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멍청한 짓을 했군. 가짜 놈. 네놈이 아끼고 아끼던 한 수가 쓰레기가 되어버린 것 같은데….

아마 역병 쓰레기도 악마 소환 쓰레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

‘아무 말 못 하네.’

---쓸데없는 발악이다.

그래도 컨셉은 지키고 싶은지 입은 털고 있다만….

---잘 막아내고 있다만 운이 좋았을 뿐이다. 준비된 수는 많다. 그중 하나가 틀어진 것이지 내가 네놈들에게 패배한 것은 아니다.

---이 만들어진 가짜는 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하겠지. 자신이 지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는 멍청이와 싸우는 것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네놈의 오만함이 네 목을 조를 것이다.

---패배하는 것은 너희 벌레들이다. 내 생각은 오만이 아닌 확신이며 네놈들의 발악은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없을 것이다. 전장을 둘러봐라. 남은 것이 무엇인지. 결국에는 네놈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쓸데없는 전선 줄다리기도 슬슬 지겨워지는 참인데… 작은 이득으로 이 커다란 전장을 굴릴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도… 허무하군.

---애초에 나는 싸움터 안으로 들어간 적도 없다. 만들어진 가짜 놈. 네놈과는 즐거웠다만….

---…….

---이제는 자리를 양보해 줘야겠지.

‘그래. 악마 소환 쓰레기 말이 맞기는 해.’

싸움터 안으로 들어간 적도 없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다.

애초에 악마 소환 쓰레기가 이 악물고 상황을 컨트롤 하려고 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놈이 허세를 부리는 것이 맞다.

하지만 자리를 양보해줘야겠다는 표현은 거짓말이 아니다.

애초에 이 쓰레기의 역할은 다리를 연결해 주는 것뿐이었으니까.

말도 많고 탈도 많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면 주어진 시간 안에 튼튼한 교각을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전선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전장을 볼 줄 모르는 자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겠지만 내 눈에는 틀림없이 전장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아마 역병 쓰레기 역시 보고 있을 것이다.

쓸데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전장에, 작은 이득을 추구했던 전장에, 견고한 다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것이다.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을 보니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모양.

이번에야말로 자존심이 상했는지 일그러진 얼굴이 들어왔지만, 바로 다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게 놈에게도 이로울 거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게 우리뿐만은 아닐 테니까.

진청은 아무런 말도 전하지 않았지만….

붉은 짐승은 확신에 찬 얼굴로 견고한 다리 위에 발을 내디뎠다.

천천히 발을 내딛기 시작한 짐승은 이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며 그녀가 가장 원하던 장소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역병 군주는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녀석이 습관처럼 내뱉던 말들을 입에 담지 못한 채로 조용히 그 짐승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등한 인간이나 벌레라는 말로 그녀를 지칭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지 않을까.

이내.

자신의 전장에 도착한 짐승이 커다란 함성을 내질렀다.

-가자.

-…….

-가자! 내 형제자매들아!

-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붉은 용병을 위하여!!!!!

-붉은 용병을 위하여!!! 전장의 신을 위하여!!!!

썩은 대지를 가득 메운 것은 붉은 물결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