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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43화 (834/1,590)

< 843화 마지막 (76) >

전장의 열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누구나 즐거운 광경은 아닐 것이다.

한 번이라도 전장에 서본 적이 있다면 저걸 반기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상처 입은 전우를 넘고 적과 마주치고 검과 창을 휘두른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함께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들려온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른다. 악의와 적의, 광기가 공기 중에 퍼져 있다는 걸 느끼게 되고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쉬기가 힘들어진다.

온몸이 땀으로 젖는 것은 물론 종국에는 뭐가 무엇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일반인들에게 전장은 두려움의 대상이며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물론 이런 환경을 즐기는 이들도 존재한다.

말하지 않으면 서러운 사이코패스 살인마와 함께했던 여단 쓰레기들, 간혹 전쟁 중독에 걸린 퇴역군인이나 은퇴한 용병들이 그렇다.

전쟁에 중독된다는 게 무슨 감각인지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붉은 용병을 보고 있자면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했다.

‘특이하기는 해.’

확실히 특이하기는 해.

‘특이한 놈들이야.’

-가자! 전우들아!

-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싸우자! 내 형제자매들아!

-발을 멈추지 마라! 돌격! 돌격! 돌격!

-달려! 달려라! 새끼들아!

-죽지 마라! 개자식들아! 죽지 마! 살아서 만나자!

‘진짜….’

붉은용병 길드의 분위기가 본래 거칠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정리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최영기같이 제법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놈들도 있었고, 근육 덩어리들이기는 하지만 이성적인 근육 덩어리들이라는 느낌이 있었으니까.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상당히 매너가 좋은 쪽이었고 나름 댄디한 덩치들의 비율도 꽤나 높았다.

물론 놈들에게 이성을 심어준 것은 길드에서 정의한 규율이었겠지만 그런 이미지가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어느새….

‘까먹고 있었자너.’

저 사고뭉치들을 억제하고 있었다는 게 차희라였다는 것을 잠깐 동안 잊고 있었다.

당장 바깥에 내놓으면 범죄자가 되거나 어딘가에서 사고나 치고 있던 놈들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죽여! 죽여!!!

-죽어라!! 이 더러운 새끼들!! 마법사 지원! 지원!!

-비켜! 이 새끼야! 비켜!!

-들어와! 들어와라!! 이 악마 새끼들아!! 한번 들어와 봐!!

‘레알 개판이네.’

붉은 용병이 전장에 선 것을 처음 본 것은 아닌데, 이런 모습이 너무나도 생소하게 느껴진다.

붉은 갑옷을 입고 대열을 맞추며 훈련받은 군인들처럼 싸우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마치 목줄이 풀린 짐승들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얘네 진짜 개판이야.’

도끼를 든 놈도 있고 방패를 든 놈도 있다. 제각각 들고 있는 무기들처럼 싸우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더운지 갑옷을 벗고 싸우는 놈이 있는가 하면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지팡이를 둔기로 사용하는 놈도 있다.

거대한 무기를 던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적 마법사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낸 뒤에 실실 웃고 있는 놈도 있다.

팔에 박힌 화살들을 뽑으며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무모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놈들이나 맛탱이가 간 것 같은 눈으로 전장을 훑고 있는 놈들도 보인다.

어째서 놈들이 지금까지 목줄을 풀지 않았는지가 이해가 갈 정도로 엉망진창인 전장은….

---야만인들이군.

“뭘 또 야만인이라고 그래요?”

---그래도 내가 설계한 전장이었다. 더 이상 참견하고 싶은 마음도, 권리도 없다만 저런 전투를 지켜보는 게 편하지는 않군. 차라리 보지 않겠다.

“품위 있는 척 좀 하지 맙시다, 진짜. 하기야 온실 속의 난초처럼 큰 사람이 뭘 알겠어요? 좋은 부모님 밑에서 금이야 옥이야 자라온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 뭘 알겠냐고. 전장에 품위라는 게 어디 있답니까.”

---쓸데없는 프레임을 씌워 날 모욕하려 하지 마라. 이기영. 나 역시 전장에서 품위를 찾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최소한의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지. 저건 전쟁이라고 부를 수도 없어. 주점에서 술에 취해 싸움을 벌이는 싸구려 용병들과 다른 게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군. 린델의 삼대 길드 중에 하나라 불리는 붉은 용병이 저런 꼴이라니. 길을 열어준 나마저 쓰레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니까 군사님이 지금 거기서 그러고 있는 거예요. 지가 뭘 알아. 저런 뜨거운 싸움에 대해서도 모르는 놈이 무슨 의자에만 앉아서 전략이니 전술이니. 지가 뭐 한 번이라도 저런 열기를 느껴 봤겠어? 이래서 사무직 놈들은 안 된다니까. 탁상공론하기에 바쁜 놈들이 현장에 대해서….”

---적어도네놈보다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는 군사님 쪽보다는 저런 쪽이라니까요. 나는 저기 가서도 적응 잘했을 거야. 저는 현장 쪽입니다. 군사님이랑은 근본이 다르다니까.”

---더 듣고 있을 가치가 없는 개소리로군.

‘이 새끼.’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찌푸린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 정도 진청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마 방금 놈이 지껄인 말은 진심은 아닐 것이다.

그냥 눈에 거슬리는 거겠지, 뭐.

어쩌면 저걸 인정하기 싫은 걸지도 모르겠다. 저따위로 싸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과를 내고 있다는 걸 녀석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자기가 나름대로 정립하고 있었던 가치관이 산산이 조각난 기분일 것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이거지. 그동안 이 새끼가 대륙을 무대로 얼마나 많은 전장을 겪어 왔겠어. 얼마나 많은 전장을 대상으로 논문을 써 왔겠냐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녀석 나름대로 전쟁을 정의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원래 오만함으로 똘똘 뭉쳐 있는 새끼였으니… 어느 정도로 자기 논문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결국에는 그 논문을 위협할 새로운 이론이 등장한 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논문의 반박하는 사례가 등장한 것이다.

‘분명히 정리되지 않은 것 같은데.’

정리된 느낌이 있다.

저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병과도 제대로 나누지 않았고 대열도 정상적이지 않다. 그저 무식하게 돌격하고 있을 뿐이며 제대로 된 지휘관도 보이지 않는다.

지휘관 휘장을 달고 있는 놈은 있지만 저놈들 역시 눈에 불을 켜며 악마들의 대가리에 도끼를 내리꽂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다.

입가에 게거품을 물고 욕설을 내뱉고 있는 놈들의 얼굴과 몸이 악마의 피로 흠뻑 젖어 있는 것이 보인다.

솔직히 누가 악마 진영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 악마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잔인한 장면들이 눈에 띈다.

홍보용으로도 못 쓰겠자너.

하지만.

‘왜 정리된 것처럼 보이는 거지.’

결과론 때문에 개소리를 지껄이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법칙이 있다.

단순히 날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약속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상자를 최소화하고 있으며 저들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법칙들이 보인다.

제각각 행동하고 움직이는 놈들이 마치 한 몸처럼 보인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말도 안 되는 퍼즐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면은 마치….

“완벽해.”

완벽한 하나의 작품이었다.

‘이거 아마 다시 하라고 해도 못 할 거야.’

분명히 장담할 수 있다.

우연으로 만들어진 산물일 것이다. 쟤네들이 지금까지 맞춰온 호흡이라는 게 어쩌다 보니까 몸에 익어서 딱 하고 맞아떨어진 거지. 다시 하라고 하면 진짜 정말로 못 할 거야.

애초에 전장을 이끄는 게 차희라가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을 장면이었겠지.

붉은용병이 규율을 부수고 목줄을 부순 것은 차희라가 그렇게 하라고 말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생각해 보니 차희라가 그런 판단을 내린 건….

‘악마 소환 쓰레기 때문이라는 거고.’

아이러니하게도 공화국의 천재 군사가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무대를 마련해 준 덕분일 것이다.

-죽여! 죽여라!! 죽여!!!

-돌격! 발을 멈추지 마! 뒤를 돌아보지 말고 뛰어라!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굉음이 들려온다.

양손으로 들라고 만들어진 도끼와 대검을 각각 한 손에 잡은 채로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두른다.

대검에 스친 놈은 그대로 상반신이 날아가고 도끼에 찍힌 녀석은 그대로 몸이 짓이겨진다.

한 번 발을 구를 때마다 대지가 파이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광풍이 불어온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효과음들이 계속해서 내리꽂히는 것만 같다.

전장의 신이 열어준 길을 따라온 신의 병사들은 그녀를 바라보며 믿고 따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른다.

적의 공격을 방패로 쳐내고 광기에 미쳐 웃으며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딘다.

저건 죽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아니, 그것보다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죽더라도 종국에는 전사의 무덤인 발할라로 향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전장의 신이 우리와 함께한다!”

“붉은용병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오늘 이곳이 우리의 무덤이 될 것이다! 전장의 신의 곁에서 가장 영광스러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싸우자! 전사들이여! 싸우자! 전우여! 싸우자! 내 형제자매여! 싸우자! 싸우자! 전장의 신을 위하여!”

“그 아무것도 전신의 길을 막지 못하리라! 우리들은 언제나처럼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되리라!”

‘어떻게. 이 새끼들 취했나 봐.’

안 좋은 약이라도 한 것 같다. 광기에 취하고 전장에 취하고 있다.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대사들을 계속해서 내뱉는다.

‘안기모 이 새끼가 왜 적응 못 했는지 알겠네.’

광기에 물들어 있는 붉은 용병의 덩치들 사이에 머쓱하게 서 있었을 놈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놈이 파란을 갈구할 만도 하다.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전장의 신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른다. 차희라는 웃고 있다.

계속해서 적들을 베어 넘기고 벌레처럼 짓누르며 저들에게 자신을 믿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보라.

압도적.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압도적인 힘.

콰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절로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무력.

“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마법! 마법사!”

“전진! 전진! 뒤를 돌아보지 마라!”

“전장의 신의 곁에서 죽으리라!”

“전장의 신에게 내 목숨을 바치리라!”

‘이 새끼들 정신 나갔어.’

악마 소환 쓰레기가 만들어진 교각을 건너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역병 쓰레기가 활짝 열린 길을 내버려 둘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테니까.

병력들을 밀집해 전선을 보강하거나 구멍을 틀어막으려고 했지만 그 모든 행위가 무의미해 보일 정도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체력적인 한계를 맞을 만도 하건만, 전신이 이끄는 신의 병사들은 지치지 않는다.

‘얼마나 당황스럽겠어.’

---…….

‘진짜 얼마나 짜증 날까.’

악마 소환 쓰레기보다는 역병 쓰레기가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을까.

---…….

‘…….’

---이 역겨운 벌레 놈… 이 더러운 벌레 놈들이… 감히… 감히!!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역병 쓰레기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고 벽과 뜨거운 인사를 시켜주는 차희라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콰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오랜만이네. 자기.

-너어어어어어어어어!!!! 이 주제도 모르는 미친 빨간 년이이이이!!!!!!!!

-입 다물어. 새끼야.

거대한 주먹이 놈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어떻게 해… 못 보겠어.’

콰아아아아아아앙!

콰드드드드드드드득!!

콰지지지지지지직!!!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진짜 못 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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