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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51화 (842/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851화

마지막 (84)

근데 그거 알아둬. 3회 차는 없어. 때려죽여도 3회 차는 없다고.

“…….”

“네. 모든 게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그런 새로운 시작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

“그곳에서 기영 씨는 웃고 있었습니다. 기영 씨뿐만이 아닙니다. 덕구 씨도, 하얀 씨도, 혜진 씨나 다른 길드원들도 다 함께 모여 웃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힘든 일이나 고통받는 일 없이 소중한 일상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모험은 즐거웠지만 함께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 즐거웠습니다.”

‘일단은 들어보자.’

“가끔 기모 씨가 실없는 농담을 던졌고 덕구 씨와 예리가 웃으며 농담을 받았습니다. 기영 씨는 여전히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지만, 가끔 먼발치에서 길드원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바라보고는 했습니다. 기영 씨가 원하시는 것처럼 그리폰을 타고 대륙을 둘러보거나 하는 일도… 함께 여러 가지 일을… 네. 모두 다 함께 말입니다.”

몸이 떨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아마 나라면 자신의 실없는 말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을 거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굳이 3회 차라는 말을 해오지는 않았지만 녀석이 말하는 게 3회 차라는 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이기적이기까지 한 자신의 발언에, 대륙을 위해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한 성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튜토리얼에서도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어요. 그동안 일어났던 여러 가지 전쟁들이나 커다란 사건들도… 기영 씨를 힘들게 한 많은 일도 모두 일어나지 않거나… 없었던 일로….”

“…….”

“기억을 잃거나… 기영 씨가 겪은 여러 가지 사건들 때문에 정신과 육체가 망가지는 일 또한 없었습니다. 기영 씨뿐만이 아닙니다. 대륙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이전과는 다른 건강한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전부 다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이런 장소였습니다. 새로운 시작이 자리한 곳은 모두가 행복하고 웃을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네.

순간적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본 것만 같다. 겁을 먹은 듯 깜짝 놀라는 녀석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괜한 말을 꺼낸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가 스쳐 지나간 것 같았지만 입술을 꽉 깨문 김현성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다.

“제, 제가… 기영 씨를 상처 입힌 일도… 그곳에서는….”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어요.”

“아니요. 되돌릴 수 있습니다.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기영 씨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떻게요?”

“새롭게 시작하면 됩니다. 제가 꿈에서 봤던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현성 씨의 망상에 찬성할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망상이 아닙니다.”

“망상이 아니면요.”

“실제로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 시바, 실제로 가능하기는 하겠지. 근데 어쩔 건데.’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다시 한번 새로운 시작을 한다고 해도 현성 씨가 알고 있는 저나 다른 길드원들이 지금과 변함없을 거라는 확신하실 수 있으세요?”

“그건….”

“물론 잊고 싶은 기억도 있습니다. 생각하기 싫은 경험도 있고 정말 저를 고통스럽게 만든 기억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예요. 그 모든 일을 겪어 왔기 때문에 지금의 하얀이가, 덕구가, 혜진이가, 우리 사람들이 있었던 거라고요. 그 모든 일들을 함께 헤쳐 왔기 때문에 지금의 현성 씨와 제가 깊은 유대를 가질 수 있었던 겁니다.”

“…….”

“모두가 힘든 일들을 잊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힘든 일들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놓고 싶지 않은 거예요.”

“기억을 가진 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회귀자가 굳이 하나라는 것은….”

“제가 말씀드린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뿐만이 아닙니다. 추억이 된 장소들도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교국은 우리가 알던 교국이 아닐 겁니다. 새로운 라이오스는, 새로운 거울 호수는 우리가 알고 있던 곳이 아니에요. 캐슬락의 성벽은 보수되기 전일 거고, 연방도 그대로의 모습일 겁니다. 복구 계획을 세우기 전의 모습이겠죠. 소도시 헤르엔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현성 씨가 말씀하신 모습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에서 추억들을 쌓아가기를 원해요. 파란 길드원들과 제 사람들이 함께 지낸 이 곳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던 이곳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아주 약간 적의를 담아 녀석을 노려본다. 굳이 따져보자면 이 정도다.

‘너 그 정도밖에 안 돼?’

드라마틱 하잖아.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었어?’

같은 표정. 그래. 딱 이 정도 표정이 잘 어울리지.

나는 굳이 3회 차로 가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열거하지 않았다.

또 지금의 대륙을 만들기 위해 희생된 이들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지.

지금의 대륙을 버린다는 것과 빛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버려야 한다는 것, 복구가 불가능할 수준까지 이곳을 몰아 붙여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현성은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내 표정이 의미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말이다.

사실 3회 차가 귀찮아질 것 같은 게 가장 큰 이유이기는 했지만 어찌 됐건 간에 놈의 쓸데없는 망상은 접어주는 것이 옳다.

아니나 다를까 적의를 담은 빛에 반응하는 김현성의 모습은 가관, 잠깐이었지만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흘러넘치는 것 같다.

불안감이 점점 올라가고 있는 게 보인다.

살짝 째려본 것 치고는 호흡이 흐트러진 게 심상치가 않다. 곧 발작이라도 일으킬 모양새였지만 용기를 내 입을 벌린다.

“하지만… 하지만 기영 씨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추억들을 쌓아가기를 원한다고 하셨지만 기영 씨의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저는 돌아갈 거라고….”

“이번에도 거짓말이면!”

“아니….”

“이번에도 거짓말일 수도 있잖습니까!”

“…….”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네. 이번에도 그렇게 다 괜찮다고 말씀하시고는 계속해서 돌아오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언제 돌아오시는 겁니까. 돌아오실 수 있으시다면 진즉에 돌아오셨어야 했어요. 또 거짓말일 게 분명합니다. 분명히….”

“저는 돌아갈 겁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돌아갈 수 있어요.”

“거짓말하지 말라고… 제길….”

“저도 원하는 일입니다.”

“거짓말… 이잖아요.”

이 새끼 사람 말 더럽게 안 믿네.

이렇게 의심이 많은 새끼가 왜 그렇게 뒤통수를 많이 처맞고 다녔어?

마치 땡깡 부리는 것 같다.

이미 대화가 통하지 않은 수준까지 온 것 같아 민망하기 짝이 없다.

아니, 내가 돌아간다고 하는데 왜 지가 거짓말이라고 그러고 난리야.

아니, 왜 째려보고 그래. 저러다 한 대 칠 것만 같다.

심지어 눈물을 일발 장전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늘이 점점 변하면 변할수록 초조해하는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시간 얼마나 남았지… 여기서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 있나.’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네가 뭘 어쩌겠어.’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지금 내 모습을 보고도 계속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조용히 말을 멈추고 녀석을 바라보자 조금 움찔하는 것 같다.

계속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눈빛을 보낼수록 녀석이 점점 움츠러든다.

결국에는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점점 내리는 모습, 강한 어조도 점점 약해지고 결국에는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이래야지.’

어딜 목소리를 높여.

이 꼴을 보고서도 어딜 목소리를 높여.

이거 네가 그런 건데. 네가 감히 목소리를 높여? 이 배때기를 보고도 목소리를 높여?

“믿어주세요.”

“…….”

‘이번에는 거짓이 아니라구요.’

“믿어주셔야 합니다.”

“…….”

“현성 씨가 아니면 누가 저를 믿어주겠어요? 지금 당장 이해하기 힘드시다는 것도, 불안하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에요. 대륙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파란 길드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도 다시 함께할 날을 그리고 있어요.”

‘아무 말 못하죠.’

아마 하고 싶은 말은 많을 것이다.

솔직히 윽박을 지르거나 커다랗게 소리쳐도 할 말은 없겠지만 이미 녀석은 나를 믿고 있는 것만 같다.

아니,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겉모습도 겉모습이지만 김현성이 나를 믿지 않으면 누가 나를 믿을까.

내 몸을 이 지경까지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녀석을 믿어준 것이 바로 나다.

‘완전 만신창이 됐는데도 믿어준 거자너.’

친우의 검에 몸이 헤집어지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던 우정에 대한 보답.

우리 현성이의 의지가 아니었을 거라고, 녀석이 그럴 리가 없다고….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것은 물론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김현성을 지지했던 것에 대한 보답.

‘빚은 갚아야지.’

빛은 절대로 빚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말로 압박하지도 않지.

나도 너를 믿어줬으니까 너도 나를 믿어줘야 돼.

안 그래도 써먹으려고 했었던 패였다.

마침 딱 괜찮은 타이밍에 개봉했다는 생각도 들고.

“믿어주세요.”

나는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이미 변하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며 이제는 때가 됐다는 듯 그렇게 검을 들어 올렸다.

물론 나는 내 몸에 해를 끼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김현성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주저하던 녀석은 천천히 이쪽으로 몸을 옮기기 시작, 휘황찬란하게 변하는 하늘을 한 번 바라본 이후 다시금 나를 바라본다.

당연하지만 이미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중, 자신이 이걸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할 수 있어.’

같이 할 거니까.

혼자 짐을 떠넘기지 않으니까.

나와 녀석은 검을 잡았다.

내가 검을 잡은 모양새는 조금 우습긴 했지만 눈물을 떨어뜨리며 검을 잡는 김현성의 손이 떨리는 게 느껴져 더욱더 검을 꽉 잡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올 겁니다.”

“네… 흐윽… 네.”

“정말로 다시 돌아올 거예요.”

“네… 네. 기영 씨. 믿고 있습니다.”

“저도 믿고 있겠습니다.”

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을 질끈 감은 모습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똑바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조심히 눈을 뜨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동공이 흔들리지만 고개를 끄덕여 미소를 보이자 억지로 웃음 짓는 게 우습게 보인다.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는 주제에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얼굴, 잠깐 터질 뻔했지만 다시 한번 감정을 잡고 입을 열어본다.

“준비됐죠?”

“네. 준비됐습니다.”

준비가 된 것 같지 않았지만 김현성은 마음을 먹었다. 회귀자 사용설명서가 있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다.

하나 둘 셋 하면 가는 거다. 표정으로 뜻을 전한 다음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둘,

셋.

‘아….’

그리고.

목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검이 바닥에 떨어진다.

의아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자.

눈에 보인 것은 김현성이 한쪽 눈을 부여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망했다.’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

분노에 이성을 잃은 것 같은 표정.

‘아, 송수경 이 새끼. 타이밍 한번 더럽게 못 맞추네. 진짜.’

침묵하고 있던 빌런이 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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