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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62화 (85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862화

마지막 (95)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고, 이 미친놈아.’

현성이가 지금까지 구한 애들이 몇 명인데 너를 기억하고 있겠어?

한 트럭도 아니고 몇천 트럭은 나올 텐데.

상식적으로 네가 몇 년 전에 뭐했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겠냐고 이 사이코 새끼야. 쟤한테는 그게 일상이었어.

‘그렇지.’

“그게 일상이었다고….”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말 그대로 김현성에게 누군가를 구하는 것은 일상이었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든 간에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튜토리얼 때는 물론이거니와… 그 이후에도 녀석은 여러 사람을 구해왔었다.

나와 떨어져 지냈을 때도 있었으니 내가 본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지 않았을까.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못 본 척할 정도로 냉정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아무도 부여하지 않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래.

어쩌면 1회 차에서 만났던 은인의 영향을 받은 거일 수도 있고, 사실 그 당시 김현성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줬던 정확한 심리를 알 수가 없으니 내가 뭐라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그래서 더욱더 일상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선의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물론 녀석은 딱히 자신의 행동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혼란스러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본인이 끼쳤던 행동의 결과가 최악으로 되돌아온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아….

-저를 구해주셨잖습니까. 노을빛의 신께서는 제 목숨을, 삶을, 영혼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제 삶은… 제 인생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당신이 내민 구원의 손길로 인해 저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노을빛의 신이시여. 모두가 당신 덕분입니다.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고. 이 새끼야. 괜한 연결 고리 만들어서 친한 척하지 마. 네가 그렇게 기억에 남는 관상은 아니야. 안 그래도 쟤 사람 얼굴이랑 이름 같은 거 기억 잘 못 한다구.’

계속해서 영문 모를 말을 지껄이고 있는 송수경도 송수경이었지만 사실 빌런보다는 현성이가 걱정된다.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예상이 됐으니까.

보나 마나 또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자신 때문이었다고,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한 거라고 여기고 있을 게 뻔했다.

딱히 생각해 본 적 없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행위 자체에 환멸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녀석은 지금 자신과 타인과, 세상의 악의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웃… 웃기지 마!

-진실입니다. 제가 당신께 거짓을 고할 리가 없잖습니까.

-웃기지 마! 이 새끼야! 개 같은 소리 집어치워.

-그때의 당신은 정말로….

-개새끼!!

검을 들어 올린 김현성이 놈을 향해 휘두르는 것이 보인다.

육안으로 구별하기 힘든 속도로 빠른 참격의 붉은빛은 놈의 팔을 잘라내기는 했지만 그렇게 의미 있는 행동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팔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단면들에 나온 기괴한 붉은 선들이 서로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미 녀석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넌… 넌 뭐야. 도대체….

-…….

-넌 도대체 뭐냔 말이야! 이 새끼야! 도대체 뭔데… 갑자기 나타나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 이름은 송수경입니다. 그 날 노을빛의 신께서 저를 구해주신 이후부터 당신을 섬기기로 결심한 당신의 첫 번째 신도입니다. 지금 보고 계시는 모든 것은 당신을 위해서 준비된 것입니다.

-미친 새끼… 미친 새끼!!

쾅! 쾅!!! 콰아아앙!! 콰과아아아아아앙!!!

김현성은 녀석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듯이 빠르게 검을 휘두르지만 놈의 몸을 떠다니는 붉은색의 마력이 김현성의 검을 막아낸다.

순식간에 놈의 뒤로 나타난 김현성이 다시 한번 놈의 머리를 치려고 하지만 어느새 나타난 붉은색의 마력이 김현성의 검을 쳐낸다.

둘의 마력이 부딪치는 충격만으로 사방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실제 눈으로 보는 것도 박진감 넘치지만 로 감독의 카메라 워킹으로 보는 것이 더욱더 생동감이 넘친다.

김현성과 송수경을 중심으로 카메라로 원을 그리는 모습, 김현성의 검과 녀석의 마력이 부딪칠 때는 줌인, 악마라 그런지 이런 거 캐치도 참 잘해.

사랑스러운 회귀자의 훤칠한 외모를 한 번 보여주고 눈물이 흐르는 것도 한 번 보여줘.

눈물이 땅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공중에 반쯤 떠서 발차기하는 모습은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주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절도 있는 검술도 계속 보여줘야지.

그래 저거. 저건 놓치면 안 되자너. 표정 잘 캐치해야 돼.

‘맵시 있기는 해. 진짜.’

절박해지고 있는 김현성의 심정과는 반대로 지금 김현성이 보여주는 모습은 저절로 입을 벌리며 보게 된다.

‘주인공이야.’

제대로 된 배우가 카메라를 잘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현성이한테는 미안하지만 절박하고 절망적인 얼굴이 극의 분위기와 너무나도 잘 어울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손익분기점 넘었자너.

내가 이렇게 손에 땀을 쥐고 보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어.

뻔하지 뭐. 손에 땀을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막 오열하고 소리치면서 보고 있을 거야. 행동 하나하나에 가슴 졸이면서 기도하고 있겠지.

그게 아니라면 지금 들어오고 있는 신성이 설명되지 않아.

-죽어! 이 개새끼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몰입하게 된다.

콰드드드드득! 콰아아아앙!!

-당신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적절한 빌런의 등장과 연출 역시 이 몰입감의 원인 중의 하나다.

어느새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붉은색의 마력은 여러 가지 몬스터의 모습을 띠고 있다. 아니, 저게 몬스터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존의 우리가 아는 몬스터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정체불명의 괴물들처럼 보인다.

팔다리가 뒤죽박죽 붙어 있는 짐승이라든가. 수천 개의 눈을 달고 있는 얼굴이라든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괴물들은 분열하거나 모양을 바꾸어 가며 신전의 폐허 위에 자리 잡았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선택이라 박수를 쳐주고 싶었을 정도, 어차피 송수경의 신체 능력이야 아무리 강화를 해도 한계가 있을 테니 저런 방향으로 노선을 트는 게 최선의 선택지였을 것이다.

어림잡아 수백, 아니, 수천 개체로 불어나고 있는 괴물들.

그중 일부는 뿌리를 내린다. 말 그대로 뿌리를 내리고 신전을 덮는다.

마치 지옥처럼 보인다. 붉은색의 점액질과 촉수, 이상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들이 서로에게 쌓이고 쌓여 기괴한 모양의 건축물을 만든다.

폐허가 된 신전 위에 송수경은 자신만의 신전을 덮어 씌웠다.

‘시바… 비주얼….’

그 가운데 붉은 날개를 달고 있는 송수경의 모습은 솔직히….

‘진짜 흑막처럼 보여.’

-어서! 어서 보여주십시오! 당신의 힘을! 당신의 위대함을!

‘대사도 진짜 제대로 적혈이야. 누가 제정신으로 저런 대사를 치겠어?’

오직 송수경만이 가능한 행동이야.

-당신이 얼마나 강하고 완벽한 존재인지, 당신이 얼마나 고귀하고 성스러운 존재인지, 당신의 안에 있는 빛이 얼마나 숭고한지 말입니다. 네. 그때처럼! 그때처럼 말입니다. 저는….

-이 개새끼야… 이 개새끼야!! 나는 네가 뭐라 지껄이는지 관심도 없어.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짐승들이 수십 갈래로 쪼개지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김현성의 등 뒤를 잡고 거대한 팔을 휘둘렀던 녀석의 몸이 네 개로 쪼개지며 뒤로 처박힌다.

거대한 꼬리가 김현성의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게 보인다.

녀석은 그 꼬리를 밟고 올라가기 시작, 곧바로 작은 개체 수십 마리가 김현성을 둘러싸지만 녀석이 검을 휘두르자 노을빛이 반짝이며 놈들이 조각조각 휩쓸려 나간다.

-퀘에에에에에에에엑!!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엑!

‘신기술이다.’

짧게 짧게도 쓸 수 있게 됐나 봐. 원래는 충전한 이후에 큰 거 한 방이었잖아.

콰아아아아아앙!!

노을빛이 비칠 때마다 크고 작은 소리와 함께 짐승들이 흩어진다.

신전을 잠식한 기괴한 건축물들에서 거대한 촉수들이 튀어나와 김현성에게 쇄도한다.

아파트 단지들이 현성이에게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저거 어떻게 피하는 거야.’

“진짜 대단하다.”

피할 공간조차 없어 보였지만 녀석에게는 길이 보였던 모양, 날개를 펼친 이후에 빈 공간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피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는지 간혹 검을 내지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전부 피해내는 모습, 날개를 펼쳐 공중에서 선회하는 것으로 모자라 내리 떨어지는 것들을 밟고 위로 올라선다.

콰아아아아아앙!!

-케에에에에에에엑!!!

-노을빛의 신이시여….

여러 가지 시점에서 이걸 볼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륙인들도 입을 벌리고 보고 있을 것이다. 어디 가서 이런 걸 공짜로 볼 수 있겠는가. 아마 실상을 알면 더 놀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송수경이 내 눈을 가지고 있는 걸 아는 내 입장에서는 지금 저 장면이 더욱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진짜 미쳤어.’

송빌런은 아마 김현성이 보는 시야를 보고 있을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김현성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디로 향할지에 대해서도 미리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맵을 밝히고 싸움에 임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불구하고 김현성을 저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부터가 놀랍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수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

단순한 신체 능력으로 저 악마의 수를 전부 파훼하고 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역시 당신은 대단합니다. 하하… 메시아시여!

-입 닥쳐! 이 새끼야. 내놔. 내놓으라고!

다른 방향으로는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 건가. 행동을 제한하거나 하는 건 아직 숙련도가 부족해서 못하는 거야?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당신은 더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당신을 완성시키겠어요. 그 추악하고 더러운 빛의 아들을 대신해서 제가 당신을 완전하게 만들겠습니다. 이기영 말입니다. 그는 당신의 장애물이었습니다만 저는 다릅니다. 저는 당신의 길을 가로막지 않을 겁니다.

‘지금 가로막고 있어.’

-입에 담지 마! 이 역겨운 새끼!

-어째서입니까.

-그 사람을 입에 담지 마!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개자식. 네가 뭘 안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여.

-지금 당신의 모습이 보이십니까?

-…….

-약하고 추하고 부질없어요. 그는 당신을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완전해질 수 있는 당신을 가두고 억압했습니다. 그가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은 어땠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그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신앙의 대상입니다. 당신은….

-네 헛소리를 나한테 강요하지 마. 나한테 그딴 걸 강요하지 말라고. 난 신이 아니라. 인간이야. 나는 인간으로 살아갈 거야.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 눈에는 보여요.

-…….

-이전과는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이 말입니다. 당신은 신성을 머금고 있어요. 저 어리석은 필멸자들과는 다르게 노을빛의 신께서 얼마나 거대하고 위대한 존재인지 보이고 있습니다. 본래도 당신에 대한 제 믿음에는 거짓이 없었지만 이제는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네 눈이 아니야.

-이제는….

-네 눈이 아니라고. 개새끼야. 내놔. 그 사람한테 돌려줘.

-…….

-나한테 남은 건 이제….

-…….

김현성은 떨리는 손을 붙잡고, 얼굴을 이상하게 일그러뜨리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그것밖에 남은 게 없어.

그 모습은 비참해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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