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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66화 (85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866화

마지막 (99)

“기영 씨… 기영 씨!!!”

“아악….”

갤러리들의 어마어마한 성원에 소리를 내질렀던 것도 잠시였다.

‘시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네. 얘들 도대체 왜 이래?’

라파엘 이 새끼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진작 손절했어야 했는데.

초조함에 손가락을 움직였지만 현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그나마 누나가 있어서….

‘다행이지. 시바. 다행이야.’

굳이 내가 여러 가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누나라면 일을 잘 처리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언질을 주기도 했으니까.

기왕이면 직접 해결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모든 상황을 통제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장에 나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세세한 변수에 모두 대응할 수 있겠는가.

다른 경우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이곳에 집중하는 게 맞다는 판단이 선다.

현재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실시간으로 벌리는 신성, 갤러리들의 어마어마한 성원, 여기에 당도하기까지 투자한 게 많았다는 것도 물릴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

카스가노 유노와도 소통하고 있을 테니 각본이 바뀌더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겠지.

만약에 라파엘이 도착하더라도… 미래는 바뀌지 않도록 조치를 해줄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까 초조해하지 않아도 돼. 여기 집중하는 게 맞아.

사실 다른 무엇보다 김현성의 상태를 계속해서 체크해야 하는 이유가 크다. 안 그래도 한계에 내몰린 녀석을 계속해서 밑바닥으로 처박고 있으니….

나 역시 놈에게 포커스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이미 미치고 팔짝 뛸 상황이었으니까.

굳이 표현하자면 고층 건물 위에서 외줄 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끊어지기 직전의 실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본래 능력 있는 감독은 배우를 한계까지 내모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래, 이게 맞아. 여기 집중하자.’

녀석에게서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역시나 죄책감, 어차피 3회 차로 향하기로 마음먹은 김현성이었지만 녀석이 2회 차를 완전히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시작한다고 한들, 지금 실시간으로 빛의 아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있다는 건 녀석에게는 견디기 힘든 장면일 것이다.

육체마저 모자라 영혼까지 고통받는 친우의 모습을 어떻게 마음 약한 김현성이 모른 체할 수 있을까.

악에 받친 듯이 계속해서 소리치는 모습.

“너 이 개새끼!!!!”

조용히 이름을 부르자 곧바로 반응해오는 게 보였다.

“현성… 씨.”

“기영 씨… 기영 씨!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네… 네… 들립니다.”

시선을 돌리기가 무섭게. 정신없이 커다란 탑을 향해 몸을 내지르는 녀석이 시야에 비쳤다.

군단이나 다름없는 이형의 괴물들에게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면서도 시선을 계속해서 내게 고정시키고 있다.

커다란 죄책감이 녀석의 머릿속을 한 번 스쳐 지나간 이후에는 머리가 하얗게 변한 것 같이 느껴졌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놈은 지금 극도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혹여나 정말로 영혼을 빼앗길까 봐.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빛의 아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될까 봐.

숨을 멈추고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고 악에 받친 듯이 날개를 펼친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이 조금 감동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봤다는 걸 말해주는 장면처럼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보이기도 했다.

“놔줘! 이 개새끼야!!”

“죄송합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기영 씨를… 놔줘.”

“죄송합니다. 노을빛의 신이시여. 이건 당신을 위한 일입니다.”

“놔달라고! 제기랄!!”

송수경은 내게 손을 뻗는다. 내 몸을 꽉 붙들고 있는 촉수들이 울렁이며 희미한 빛을 뿜어내고 그 빛은 천천히 탁한 색으로 변해가며 놈에게 빨려 들어간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 일발 장전.

김현성뿐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가 들썩일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명장면이었다.

여러분들의 뜨거운 성원이 다시 한번 쏟아지는 걸 느끼기도 전에 다음 성원이 도착하고 있자너.

숨소리가 계속해서 거칠어질수록 김현성은 점점 더 급해진다. 무척 멀게 느껴질 것이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서 내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가 무척이나 멀게 느껴질 것이다.

계속해서 다가오려고 하고 있지만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끝없이 재생성되고 있는 짐승들은 끊임없이 김현성의 발목을 붙잡는다.

계속해서 베어 넘기고 있지만 끝없이 모습을 만들어내며 녀석의 앞길을 막는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기… 기영 씨….”

“하아… 하아….”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조금만요.”

“아아악….”

“죄송합니다. 죄… 죄송해요. 전부 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또….”

“현성 씨… 잘못이… 아니에요.”

“제길… 제길….”

“그러니 책임감… 느끼실 필요… 없어요.”

“흐윽… 흐으윽… 제길! 제기랄!!”

“…….”

“어째서… 어째서 매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어째서 당신만 이렇게….”

“하아… 하아….”

“아주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네…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기영 씨. 제가… 제가 구해드릴 수 있어요. 네… 흐… 흐윽… 그러니까 버텨주세요.”

“하윽….”

“안 돼! 안 돼!!”

녀석의 몸이 빛나는 것이 보인다. 생명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찬란한 빛에 짐승들이 허물어진다.

거대한 촉수의 기둥 역시 반으로 갈라진 이후에는 날개를 활짝 펼친 녀석이 순식간에 이곳으로 쇄도한다.

바닥에서 생성된 줄기들이 놈의 발목을 잡았지만 김현성은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아니, 왜 이렇게 빨라.’

좀 전까지만 해도 저 멀리 있었던 녀석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니, 벨이사 뭐해. 이대로 끝나게 내버려 둘 거야?’

어떻게든 이쪽을 붙잡으려 손을 뻗는 모습.

“손을 잡….”

하지만 내 쪽에서 손을 뻗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살짝 웃어주는 게 한계자너.

아슬아슬하게 이쪽에 닿지 못한 김현성이 다시 한번 밀려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주 잠깐 봤을 뿐이었지만 눈물범벅이 된 놈의 얼굴이 멀어지고 있었다.

‘너무 필사적인데.’

좀 미안해질 정도로 너무 필사적이야.

콰앙!! 콰드드득!

거대한 굉음과 함께 거대한 기둥이 놈의 몸을 두드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발목을 잡은 줄기들과 짐승들이 계속해서 녀석의 몸을 옭아맨다. 김현성은 비명도 내지르지 않는다.

여전히 나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검을 휘두른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패대기쳐지면 다시 한번 검을 들어 올린다.

녀석답지 않은 기합을 내지르며 계속해서, 계속해서 몸을 움직인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판단하고 있는 모습, 꾸물거리는 촉수가 내 몸을 타고 올라가 점점 몸을 집어삼킨다.

마치 뱀한테 잡아먹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고통스럽지는 않지만 속이 답답하기는 해 거친 숨을 토해내자.

다시 한번 발작하듯 소리를 지르는 김현성이 보였다.

“그만둬… 이 개새끼야… 그만두라고… 더 이상 그 사람을 괴롭게 하지 마. 놔 줘. 이미 많은 걸 희생한 사람이야. 여기에 오기까지 자신의 모든 걸 버리고 간 사람이라고….”

“…….”

“네 목적이 나라면 그 사람은 필요 없잖아. 그렇지? 그렇잖아.”

“…….”

“뭘… 뭘 원해.”

“…….”

“뭘 원하는 거야. 네가 원하는 게 도대체 뭔데 이러는 거야. 내가… 내가 무릎 꿇고 비는 걸 원해? 제발… 제발 놓아줘. 영혼까지 고통받을 사람이 아니야… 흐윽….”

심지어 송빌런과 타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김현성답지 않다.

그만큼 궁지에 몰려 있다는 반증이리라.

회귀자 사용설명서가 아니라 그냥 눈으로 보기에도 위태로워 보인다. 몸에 커다란 상처는 없지만 녀석의 갑옷은 으스러지거나 갈라져 있다.

처참하기까지 할 정도로 겉모습은 엉망이었다.

“이러지 마. 제발… 제발 그러지 마. 부탁할게.”

“…….”

“나는 솔직히 네가 누군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만약 정말로 내가 너를 구해준 적이 있는 게 맞다면… 그 사람을 놔줘. 제발….”

“추하고 약한 모습입니다.”

“제발 놓아줘. 부탁이야….”

“거리가 멀어요. 제가 생각하는 당신은 부러지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너무 약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입니다.”

“제발….”

“제가 원하는 건 완전한 노을빛의 신이에요. 이자 때문입니다.”

“…….”

“당신이 약해진 것은 이자 때문이에요.”

“하지 마! 하… 하지 마!”

‘이 새끼 내 머리 잡아당기지 마.’

“이 멍청이는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노을빛의 신이시여.”

“…….”

“그래서 당신의 옆에 있을 수 있었던 겁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하아… 하아….”

“그…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러니 놓아줘.”

‘이 이중적인 빌런 새끼. 드디어 맛탱이가 갔나 보다. 이 새끼는 지가 무슨 소리 하는지도 모를 거야.’

“운이 좋아서 남들보다 조금 특별한 능력을 얻은 것뿐입니다. 운이 좋아서 말입니다. 그저 운이 좋아서… 신이 되고… 남들에게 추앙받고….”

‘네가 빛기영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 뭘 알겠어.’

사실 제3자의 시선으로 보면 그렇게 비칠 여지는 있다.

겉으로 보기에 빛의 아들의 모습은 화려하게 보이기도 하니까. 은근히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 고생은 한 번도 안 해본 것처럼 느껴지고 말이야.

김현성에게 빌붙어 파란 길드에 들어가서 귀족들과 연을 맺고 교황의 총애를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매번 파티에 불려 다니면서 말이야.

와인 한잔하고 수다나 떨면서 하하 호호 행복한 삶을 만끽했겠지.

용병여왕의 정부고 대마법사의 애인이고, 지원 빵빵한 곳에서 연금술이나 연구하면서 책이나 읽고… 온 세상의 이쁨을 독차지하는 걸로 비칠 수도 있어. 어. 그거 인정해.

말하자면 전형적인 주인공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그래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투명한 인간.

빛의 아들이 정말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송수경이 저런 식의 열등감을 표출하는 걸지도 모른다.

종국에는 대륙을 보살펴 주는 신이 되기까지 했으니, 바닥부터 올라온 놈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 만도 하지 않은가.

하지만 김현성은 알고 있을 것이다. 대중에게 비치는 이기영의 모습이 실상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 이기영이 밑바닥에서부터 기어왔다는 걸 놈이 모를 리가 없다.

“겨우 그것뿐입니다….”

김현성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2회차의 이기영을 부정하는 것 같은 놈의 목소리에 김현성의 마음도 일그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초조함과 불안감.

“그러니까… 놓아줘.”

‘포기하면 안 되지.’

“현성 씨….”

“…….”

굳이 목소리로 내 감정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눈빛을 쏘아 보낸다.

포기하지 말라고.

나는 괜찮다고.

언제나 그렇듯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만약 내가 사라져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그러니….

싸워 이기라고.

물러서지 말고 싸워서 이기라고.

“부탁이야. 더 이상 그 사람을 괴롭게 하지 마….”

뭐해 이 새끼야. 싸워 이기라고.

“제발… 이렇게 빌게.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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