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872화
시나리오의 끝 (5)
“언젠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
“…….”
‘뭘 언젠가 다시 만나?’
“뭐….”
‘그게 무슨 의미야. 이 새끼는 갑자기 왜 이상한 말을 하고 그래?’
“뭔 소리야.”
‘너 미쳤어?’
도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조금 이상하지 않나. 아무리 생각해도 감정선이 조금 이상한 것처럼 느껴지잖아.
그 대사가 맞아?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모든 게 끝났습니다. 더 이상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같은 대사가 더 어울리지 않아?
‘안녕히는 개뿔. 왜 안 볼 사람처럼 말하고 그래?’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이해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째서 녀석이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왜 펜던트를 붙잡고 있는 건지, 어째서 무섭다고 이야기했는지, 드디어 모든 게 끝났다는 듯이 웃고 있었던 건지, 왜 이제야 편해질 수 있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지, 어째서 지금 놈의 모습이 흩어지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뭐라고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마치 사고가 마비된 사람처럼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정신을 붙잡아 보려고 했지만 멍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언제나 그랬듯이 멋진 풍경이 대륙에 드리운다.
너무나도 환한 노을빛이 대륙을 비춘다. 마치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났다는 듯이 빛이 대륙에 퍼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자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이들이 눈에 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모습이었다.
“빛의 아들이여!”
“살았어… 살았다.”
“베니고어시여… 하하… 하하하하!!”
“빛이다.”
“따뜻한 빛이야. 너무나도 따뜻한….”
“노을빛의 검사가 이긴 거라고… 하하하하!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기적을 내려 주셔서….”
‘무슨 개소리들을 하는 거야. 지금….’
“기적입니다. 여러분. 기적이에요. 대륙은 다시 한번 승리했습니다. 악에 지지 않고, 굴복하지 않고 다시 한번 승리를 일구어냈습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을, 빛의 아들의 영혼을! 우리가 소중히 하는 것들을 지켜냈습니다. 우리는 오늘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뭐냐고… 그러니까. 너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악마가 사라지고 있어요. 여러분… 악마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인류가 승리한 겁니다.”
말 그대로였다. 천천히 흩어지고 있는 이형의 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노을빛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 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흩어진다.
모두가 검을 내려놓는다.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모험가들, 계속해서 기도를 올리는 사제들, 주문을 쉴 새 없이 외우고 있었던 마법사들이 지팡이를 내려놓는다.
눈물을 흘리거나, 안도감에 서로 껴안거나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지는 이들도 시야에 비친다.
그 와중에도 나를 품에 안은 김현성은 흩어지고 있었다.
“어… 어?”
깜짝 놀라 연기하는 것도 잊은 채로 녀석의 옷을 부여잡았지만 내 손이 닿기 전에 허물어진다.
민들레 씨가 날아가는 것처럼 작게 불어오는 바람에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손을 잡아봤지만 잡히지 않는다. 부여잡은 손이 그대로 흩어졌다. 마치 모래를 만지는 것 같다.
“야, 야!”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의 표정은 멈춰 있다. 마지막 대사를 입에 담은 이후의 그 표정 그대로, 웃고 있는 얼굴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녀석의 시선은 마지막까지 이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입 모양도 변하지 않는다. 미세한 떨림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야… 너 왜 그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몰래카메라야?”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어떻게 해. 얘 좀 이상해졌나 봐. 너무 무리해서 그런가… 맛이 간 건가 봐. 선 채로 기절했다. 뭐 그런 건가 봐.
너무 주인공 티 내지 않아도 괜찮아. 이미 할 만큼 했는데. 뭐 그런 연출까지 하고 그래.
사실은 다 알고 있었지? 그래서 나 놀려주려고 이러는 거야?
“말 좀 해봐요. 현성 씨. 괜찮으세요? 현성 씨… 이제… 전부 다….”
너무 놀라서 그런 건가. 내가 갑자기 말하고 그러니까. 놀랐지. 그럴 만도 해. 원래 여기서 말하는 건 계획에 없었거든.
너무 놀라서 얼어붙은 것 좀 봐. 이제는 이런 짓도 못하겠다. 야. 이제 안 할게. 그러니까 말 좀 해봐.
“이제 전부 다 괜찮을 거예요.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돌아가요. 돌아가죠….”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녀석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끝났다니까.”
“…….”
“야. 이제 끝났다고….”
“…….”
“김현성. 내 말 안 들려?”
베니고어, 루시퍼. 이제 끝난 거 맞지? 누가 대답 좀 해봐. 누나 이게 맞나?
왜 아무도 피드백이 없어. 지금 조금 이상하잖아. 아니, 조금 많이 이상하지 않아?
이런 거 계획에 없었잖아. 지금 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잖아. 베니고어. 베니고어. 내 목소리 들려?
“베니고어… 내 목소리 들려? 벨리알… 너희….”
“…….”
“뭐해. 김현성… 넌….”
얼떨결에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나를 안고 있었던 놈의 몸이 사르륵 무너진다.
“아….”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어….”
손에 닿은 녀석의 얼굴이 흩어진다. 계속해서 미소 짓고 있던 얼굴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몸도, 다리도, 팔도, 그대로 바람에 흩날려 사라져 버렸다.
“아아아…. 어….”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주변을 바라본다. 여전히 환호성이 들려온다. 행복한 웃음소리와 함께 마치 축제처럼 변해버린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게 오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흩어져 버린 김현성을 붙들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이들이 보인다.
조금 표정이 이상한 애들의 얼굴이 보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파티원들의 얼굴에 걱정스러움이 묻어나온다.
내가 지금 무슨 표정을 하고 있지. 지금 울고 있는 건가.
손이 계속해서 떨린다. 숨을 제대로 못 쉬겠어. 머리가 어지러워. 왜 이러지. 지금 꿈꾸고 있는 거지.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제부터 어떻게 하기로 했더라. 다음 계획이 뭐였지. 내가 뭘 하려고 했었지? 지금… 지금…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이것들은 다 뭐고… 나는….
“……!”
“……!”
“…….”
“……?”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목소리 들려왔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괜스레 한 번 더 손을 뻗어봤지만 잡히는 것이 없다. 박덕구가….
“형님….”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후에는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몸이 하늘로 붕 떠오른다는 느낌이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판단을 내릴 수 없었지만 그다음에는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두가 위를 바라보고 있다. 거대한 빛 안에 들어가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아래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더미의 모습에서 벗어난 건가. 지금 나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건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현실감각이 없어.
지금 정말로 부활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되살아나는 거야?
“……!”
“……!”
환호성을 지르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지만 아마 그러는 중일 것이다.
[신화등급의 던전 ‘빛의 아들이 희생된 대륙’의 클리어 조건을 완수하셨습니다.]
[빛의 아들의 부활(1/1)]
메시지가 보였으니까.
북부를 덮었던 하늘이 사라지는 것이 보였으니까.
던전화의 영향을 받았던 모든 것들이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게 눈에 보였다.
다시 한번 환한 빛이 떨어지고 무너진 것들이 다시 일으켜진다.
처음부터 전투가 없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던 것처럼 본래대로 되돌아간다.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난다. 오염됐었던 지역에 빛이 떨어진다. 대륙 곳곳에서 계속해서 노을빛이 떨어져 내린다.
저 멀리 있는 에베리아의 모습도 보인다. 노을빛의 영향을 받은 세계수에 나뭇잎들이 피어난다. 엘프들은 세계수를 향해 기도를 올린다.
라이오스도 다르지 않다. 연방도 말이다.
거울 호수도 마찬가지다. 교국도, 공화국도, 대륙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현상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막혀 있던 강물이 다시 흐른다. 누워 있던 이들이 몸을 일으킨다. 숨어 있던 이들이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본다.
대륙 전체를 비추는 노을빛에 조용히 눈을 감고 팔을 벌리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기뻐하는 대륙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마 환호성을 지르는 중일 것이다.
기적이라거나 노을빛의 영웅을 위해서라거나, 빛의 아들을 위해서라고 중얼거리고 있겠지.
아까도 그랬고… 지금 이 광경은 분명히 기적같이 보였으니까. 기적이라고 하기에 마땅한 광경이었으니까.
모두가 잃었던 것들을, 잃을 뻔했던 것들을 돌려받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 김현성이 있었던 곳을 바라봤지만 녀석은 자리에 없다. 누더기의 몸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왜 너는….’
“원래대로 안 돌아오는 거야.”
상처를 입었던 이들의 몸이 치유되고 있다. 죽어가던 이들이 몸을 일으킨다. 김현성은 여전히 몸을 일으키지 않는다. 녀석은 본래대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왜 너는….”
펜던트.
“왜 너는 안 일어나는 거냐고.”
머리가 아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조혜진의 모습이 보였다. 김현성이 있었던 곳을 지켜보며 오열하고 있는 그녀가 눈에 띈다.
김예리는 김현성의 검을 부여잡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그녀는 안기모에게 안겨 그대로 허물어졌다.
“흐윽… 흐으으윽… 흐으으윽….”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흐으으으윽….”
그런 의미였나 봐.
김현성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 그런 의미였던 건가 봐.
지금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노을빛이, 던전 클리어의 영향이 아니라 김현성이 만든 빛인가 봐.
나를 위해 희생한다는 게, 누려야 하는 건 나라는 게 이런 의미였던 거였어? 정말로 이렇게 끝내려고? 그런 거였어?
손이 떨린다. 바닥에서 억지로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안 내려가.”
“…….”
“씨발! 안 내려간다고. 제기랄. 씨발! 이거 안 치워? 안 내려간다고 개새끼들아!”
“…….”
“김현성 이 멍청한 개새끼! 주제넘은 짓 하지 마! 이 개새끼야. 네가 뭔데 나한테 돌려주느니 마느니 하는 걸 결정해. 네가 뭔데, 시발, 주제넘게 그딴 짓을 하냐고….”
“…….”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원래대로 되돌려놔. 이 멍청한 새끼야.”
“…….”
“내가 전부 해결할 테니까! 처음부터 원래대로 되돌려놓으라고! 이 답답한 새끼! 이거 놔! 씨발 안 내려가! 안 내려간다고! 제기랄!”
“…….”
“베니고어! 베니고어!!”
“…….”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본다.
나를 바라보는 인형 하나가 시야에 비친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내 눈에는 틀림없이 보이고 있다.
“너….”
가면을 벗은 녀석이.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게 맞아.’
“지랄하지 마! 이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