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875화
시나리오의 끝 (8)
이해가 되지 않는 것투성이였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마법 같은 광경을 봐오고 겪어왔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는 나 역시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빛이 계속해서 대지를 가득 메운다.
화아아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김현성이 있었던 자리를 밝힌다.
깜깜했던 시야가 순간적으로 되돌아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두운 방을 순간적으로 밝혔던 것처럼 갑작스레 모든 감각이 되돌아온다. 가라앉는 늪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상쾌한 공기가 느껴진다.
‘그래… 미래를….’
화아아아아아아아악.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모두의 얼굴이 시야에 비친다.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과 기분 좋은 빛이 느껴진다.
계속해서 떨렸던 팔도, 일그러져 있었던 얼굴도 제자리를 되찾는다.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킨다.
“형님….”
가장 가까이에서 내 손을 붙들고 있는 돼지 새끼.
“오, 오, 오빠….”
아예 팔을 끌어안고 붙어 있는 정하얀이 보였다.
모두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파란 길드원뿐만이 아니라 자리에 위치한 모든 이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그중에서는 무릎을 꿇고 있는 이들도 보였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들도 있다. 기도를 올리고 있는 이들도 있었으며 손을 꽉 잡고 있는 이들 역시 보인다.
상처 입은 몸을 일으킨 이들과 서로 손을 꽉 잡고 있는 연인들과 동료, 대륙 어딘가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것 같은 이들이 내 주변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게 만들었다.
물론 감상에 빠진 것은 아니었지만….
“정신이 좀 드는 거요?”
내가 언제 정신을 잃고 있었다고 이래. 얘는.
“괜, 괜, 괜찮으세요? 오빠?”
당연히 괜찮지. 그럼, 내가 뭐 진짜로 당황했을까 봐. 하얀이 얘는 왜 이렇게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야. 좀 닦아줘야겠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형님, 형님?”
“정신 사나우니까 입 다물어. 돼지 새끼.”
“아, 아무리 그래도 설명이 필요한 거 아니요. 지금 도대체… 형님… 방금까지는 분명히….”
내가 좀 이상했었어?
아직도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정하얀의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닦아준다.
안심했다는 듯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이후에는 다시 한번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상황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으니까.
“현성이 형씨가….”
“됐어. 아무 말 하지 마.”
“…….”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거야.”
“정… 말입니까? 부길드마스터?”
“그래. 혜진아. 되돌릴 수 있어.”
“그게… 그게 정말이야?”
“응. 다시 돌아올 거야.”
이제야 조금 여유가 생기네.
이제야 주변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빛의 아들이시여….”
“이기영 님….”
“빛의 아들께서 돌아오셔… 노을빛의 신의 죄를 사하시니… 죽음에서 돌아오신 빛의 아들이….”
음유시인들과 사제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날개를 활짝 펼친다.
등 뒤에서 날개가 화악 퍼지며 다시 한번 빛이 쏟아진다.
몸 안이 신성으로 가득 채워지는 감각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머리가 맑아진 느낌에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가 미래를 선물할 것이다.”
사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수가 없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현상이 계획된 것인지, 아니면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것인지도 판단할 수 없지만 딱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게 있다.
영원토록 변하지 않을 불변의 진리.
‘시바, 내가 천재라는 거지. 뭐.’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모든 게 계획된 거고 설계된 거라 이거야.
김현성의 희생까지 이 머리 안에 들어가 있었다네.
소름이 돋는다, 소름이 돋아.
아직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서 정확히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펜던트, 외신전쟁, 둠둠현성, 부활과 죽음.
모든 게 거미줄처럼 얽혀 있을 거라는 판단이 선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짜여둔 각본이었고, 나는 그 각본대로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다.
김현성도 아마 마찬가지겠지. 누나도, 카스가노 유노도… 모든 게 끝을 보기 위해 필요했던 요소였다는 거야.
아니어도 굳이 상관없어. 본래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잖아.
‘무섭다. 이기영. 진짜 도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본 거야? 천재도 이런 천재가 없어요.’
“내가 두렵자너.”
“형님… 그게….”
“덕구야. 수신기 가져와.”
“아….”
“빨리. 하얀아. 주변 소리 차단하고. 촬영 준비해 줄래?”
“아… 네… 네!”
천천히 팔을 벌린다. 무대 위에 선 배우처럼 과장스럽게 팔을 벌린다.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이제 좀 정신 좀 차렸나 봐요. 오빠?
“연기 좀 괜찮았어? 누나?”
-연기는 개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누가 봐도 정신 놓고 있는 게 눈에 보였는데. 저 진짜로 당황했어요. 진짜로요. 그나저나 뭐가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엄청 의외네요. 솔직히 저도 끝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
-베니고어넷 실시간 반응 보면 놀라 자빠질 거예요. 오빠가 정신 놓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다른 사람들도 그리 좋지는 않았나 봐요. 최대한 막으려고 하기는 했는데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거 구경할 시간은 있었나 봐.”
-중요한 일이니까요.
그래. 누나 말이 맞아.
-노을빛의 검사는 빛의 아들을 위해 희생했어요. 이야기의 끝이 여기라도 저는 별로 상관없지만 오빠도 상관없지는 않겠죠. 아니, 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오빠 상태가 더 심각했으니까. 정말로 재기불능처럼 보였으니까… 아닌 척하면서 은근히 마음이 약하다니까.
“마음이 약하긴 개뿔.”
-그래서 지금 어떤 상황인 거예요?
“김현성이 나를 부활시키기 위해 사용한 알타누스의 유산과 내가 이전에 넣어둔 보험이 충돌하고 있는 것 같아. 지금 떨어지고 있는 빛은 그것 때문일 거야. 조금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시스템은 김현성이 아직 사라질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거든.
아마 누나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하고 많은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더미 월드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그곳에서도 시스템은 존재한다. 물론 대륙을 관장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화판이지만 그 결은 같다. 이곳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대충은 알고 있다는 거지.
-요지는 오빠가 의도적으로 오류를 일으켰다 이거네요.
“맞아.”
-더미 이기영이 비슷한 걸 했었나….
“아마 그럴걸.”
중요한 쟁점은 의도적으로 충돌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오류, 버그 뭐,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많지만 잘 돌아가고 있는 코드에 허점을 찾아 찔렀다는 것만은 부정할 여지가 없다.
당연히 시스템은….
-오류를 복구하려고 하겠네요.
“우리는 그 틈을 더 벌려야 하고.”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시스템이 정상화되기까지, 그 텀에 김현성을 날치기해 오자 이거죠? 신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것 때문이었네요. 이제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가 가요. 곧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게 헛짓거리가 아니게 돼서 좋네.
“다행이네.”
-모아놓은 게 충분할지는 모르겠지만….
“벨리알과 베니고어도 비슷한 걸 하고 있을 거야. 지금 바로 이체해 줘. 그리고 바로 방송 들어갈 거야.”
-실시간으로 벌어먹자 이거예요.
“단순히 그것뿐만은 아니야.”
이유가 그것뿐만은 아니다.
‘본래 스토리텔링이 중요하거든.’
말 그대로였다.
대중들이 어떤 걸, 어떻게 믿느냐도 중요해. 내가 어떻게 사용하는지와는 관계없이 그들이 믿는 것도 중요하다고.
그런 의미에서 이 모든 작업은 의미가 있었다. 이전에 김현성이 몸을 일으켰던 것도, 지금 내가 이렇게 되살아난 것도 말이야.
“나는 희생과 부활의 신이야. 누나.”
-희생과 부활의 신이래. 이해는 가지만 자기 입으로 말하기 쪽팔리지도 않나 봐.
“대중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어쩌겠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누나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나는 희생과 부활의 신이 될 거야.”
-원하는 게 너무 많네요. 실시간으로 언론플레이도 해달라고요?
“사랑해.”
-나도 사랑해요.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내가 김현성이 뭐가 예쁘다고 이런 걸… 으, 왠지 안 내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지혜가 심어 놓은 프락치들이겠지.
“희생과 부활의 신….”
“희생과 부활의 신이다.”
“부활의 신이시여.”
계속해서 신성이 내리 떨어진다.
나는 날개를 더욱더 크게 펼친다. 계속해서 같은 소리를 중얼거린다. 종교의식을 진행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어나라. 노을빛의 신이여. 그리하면 내가 네게 미래를 선물할 것이다.”
눈물을 흩뿌리며, 유대감으로 똘똘 뭉친 형제를 잃은 이기영의 목소리로, 비참하고 동정심이 절로 생기는 모습으로, 숭고하고 성스러운 모습으로 중얼거린다.
“일어나라… 흐윽… 흐으윽… 노을빛의 신이여. 그리하면 내가 네게 미래를… 선물할 것이다. 흐으윽….”
아까보다 더 실감 나는 것 같아. 폭포수처럼 눈물 뚝뚝 떨어지자너.
이런 게 더 공감을 산다고… 막무가내로 발버둥 치는 것보다는 이렇게 여린 모습이 더 먹혀. 그렇지? 베니고어랑 벨 이사. 너희들도 확실하게 해.
[신화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내가 너의 죄를 사하노니 일어나라 알타누스의 회귀자여. 그리하면 내가 네게 미래를 선물할 것이다. (0/1)]
[퀘스트 클리어 보상-미래 (0/2,129)]
거대한 빛이 계속해서 떨어진다.
갤러리들은 손을 모은다. 여느 때와 같이 기적을 목도한 이들처럼 손을 모은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 직접 행하는 기적을, 이들 모두가 노을빛의 검사가 몸을 일으킬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 믿음은 힘이야. 이 믿음은 힘이라고. 시스템도 부정할 수 없고, 무시할 수 없는 힘이야.
[신화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내가 너의 죄를 사하노니 일어나라 알타누스의 회귀자여. 그리하면 내가 네게 미래를 선물할 것이다. (0/1)]
[퀘스트 클리어 보상-미래(0/4,122)]
물론 불안요소는 있다.
이걸로 될 거라는 확신은 있지만 다른 변수가 없을 거라는 것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가능할 것이다. 김현성이 부활하는 걸 원하는 건 나뿐만이 아닐 테니까.
녀석이 남긴 유산 역시 나와 같은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 녀석이 남긴 유산도 뭐가 옳은 것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알타누스?
‘알타누스는 그 남자를 사랑했어. 그리고… 그의 삶에 공감하기도 했고. 수많은 고민 끝에 자신을 희생해서 다시 한번 이 모든 걸 되돌리겠다고 생각한 거야. 물론 그때의 나는 그녀를 말렸던 것 같지만… 나는 그녀를 존중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신은 아마 없을 거야. 그 감정은 우리 사이에서 통용되는 가치거든… 모든 걸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알타누스의 의지는 기억하고 있지.’
너는 그를 사랑하잖아. 그렇지.
네가 우릴 도울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네가 분명히 유산에 안배를 해놨을 거라고. 우리가 너의 유산을 발견한 것도 네 의지였다고 말이야.
나는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고맙다. 알타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