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879화
에필로그 (2)
본래 린델은 한국에서 소환된 이들이 터를 잡은 것으로 알려진 도시였다.
공화국과 맞대고 있는 다완, 중심부에서 다소 멀어져 있는 실리아와는 다르게, 비교적 수도와 가까운 위치에 있어 많은 이들이 교두보처럼 이용하는 도시이기는 했지만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커다란 발전을 이루어냈다.
린델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파란 길드가 부상한 이후였다. 삼대 길드의 세력이 커지며 자연스럽게 의뢰를 원하는 상단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눈에 띄게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워프 포인트의 대부분이 린델을 중심으로 삼고 있었으니 골드가 모이는 것이 이상하지도 않다.
희생과 부활의 신을 위한 거대한 신전은 아직까지 자리 잡고 있었고 디아루기아 님의 드래곤 레어 역시 어느 순간 대표적인 관광지로 알려졌으니까.
어떻게 생각해 보면 재개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을 것이다.
그렇게 새롭게 도시계획을 맞이한 것이 벌써 9개월 전,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륙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도시로 발돋움했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지.”
유명한 것은 삼대 길드와 디아루기아 님의 둥지뿐만이 아니다.
‘먹거리.’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으니 자연스럽게 상권이 발달한 것은 이해가 간다.
재개발과 함께 거대한 쇼핑센터와 레스토랑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 대륙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유명한 레스토랑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맛집까지… 심지어는 길거리 음식마저 품질이 좋다.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파란 길드마스터가 상권을 유치시키기 위해 꽤 심혈을 기울인 모양이라, 세간에서는 노을빛의 검사가 상당한 미식가라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광장에 빼곡히 들어서 있는 레스토랑들과 쇼핑센터,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모험가 광장이 있지만 아무래도 이쪽이 더 정이 갈 수밖에 없다.
‘거울 연어 먹으러 갈까?’
파란 길드 마스터가 직접 양식에 성공했다고 알려진 거울 연어는 거울 호수의 명물이 아니라 린델의 명물이 되어버렸다.
‘아냐. 너무 배불리 먹고 가면 답답할 것 같아.’
명예추기경님의 앞에서 먹은 것들을 토해내지 않으면 다행이다. 여기저기서 퍼지는 달콤한 냄새들이 괜스레 발길을 붙잡는다.
‘무지개 솜사탕.’
저것도 역시 명물이지.
명예추기경님도 즐겨 드신다고 했었나?
베니고어 넷에 솜사탕을 드시고 계신 모습이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상점 근처에 쓰여 있는 홍보 문구들이 보인다. ‘명예추기경님께서도 인정한 그 맛’이라든가, ‘일곱 가지 맛을 느껴보세요’라든가.
심지어 여신의 거울에서도 명예추기경님이 직접 방문하셨을 때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는 중.
-조금 어떠십니까? 기영 씨?
-괜찮은데요?
-다행이군요.
-근데 오늘은 왜….
-경매장에 기영 씨가 좋아하시는 신상이 입고됐다고 들었습니다. 움직이시죠.
저 솜사탕이 얼마나 맛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저도 모르게 움직이는 몸을 이끌고 서자 다시 한번 익숙한 인형들이 시야에 비쳤다.
“얼마나 남았어? 케루?”
“딱 세 개 사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조금밖에 안 남았어?”
“그래서 내가 장비 사는 돈 아끼자고 했잖아. 우리 어머니가 꼭 남겨오라고 했단 말이야. 큰일 났다. 우으….”
“어떻게 할래?”
“그럼 세, 세, 세 개 사서 나눠 먹자.”
“안 돼. 안 그래도 늦었는데….”
불만을 터뜨리는 갈색 머리 아이와 먹고 싶다는 듯이 파란색 아이를 바라보는 금발 머리 꼬맹이. 그리고 자꾸만 경계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은발 머리 아이까지.
모양새가 조금 이상하게 보이기는 한다.
‘왜 자꾸 마주치는 거야.’
마치 범죄자라도 바라보는 듯한 눈이 아닌가. 마주친 건 어디까지나 우연이다. 저 네 꼬맹이들이 귀엽기는 하지만 당연히 저 아이들을 미행하거나 훔쳐볼 의도는 없었다.
물론 저절로 시선이 가 워프 포인트에서 멍하니 바라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자신들끼리 속닥속닥 거리며 슬그머니 거리를 벌리는 모습은 가관, 도미라고 불리는 아이의 표정은 마치 혐오스러운 걸 보는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진짜 아니야.’
뭐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일단은 부정해야 할 것 같은 느낌.
“하나는 누… 누나가 사 줄까?”
그저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던진 말이었다.
“네?”
케루라고 불리는 아이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보내는 것이 눈에 띈다. 세라라는 아이는 벌써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은발 머리 아이는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다.
“누나가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 그, 그냥….”
“괜찮습니다.”
“누, 누나 정말로 이상한 사람 아니야.”
“충분히 이상한 사람 같아요. 저희한테서 떨어져 주시겠어요? 어머니가 모르는 사람한테….”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너희들이 너무 귀여워서….”
“어머니가 귀엽다고 하는 사람 말은 듣지 말라고.”
“파란 길드 면접 때문에 잠깐 들른 거야. 이것 봐. 출입증. 지나가던 길에 자꾸만 눈에 띄어서….”
어린 아이들이 출입증을 알아본다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어린 아이들이라도 파란 길드의 인장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까. 린델에서 가장 공신력이 높은 세력인 만큼 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대로 물러선다면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빤히 출입증을 바라보는 파란 머리 아이가 눈에 띈다.
“맞아?”
“맞는데?”
“어떻게 하지?”
모두가 케루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만 같다. 도미가 말을 이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맞네요.”
“그… 그렇지?”
“저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용돈이 없거든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걸 드릴 테니 그것과 교환하는 걸로 해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벨… 벨리에….”
아이가 꺼낸 것은 작은 조약돌이다. 웃음이 나오기는 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벌리고 있는 아이의 손에 동전들을 떨어뜨렸다.
잠깐 동안 서로 이야기를 나눈 이후에는 “감사합니다.” 하는 소리가 들려와 괜스레 뿌듯해진다.
이윽고 솜사탕을 하나씩 손에 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더욱더 뿌듯해지기 시작했다.
도미는 조용히 솜사탕을 우물거리고 있었고 케루라는 아이도 마찬가지. 유일하게 은발 머리 아이만 솜사탕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안 먹을 거니?”
“아버지 드리려고요.”
“하… 하나 더 사 줄까?”
“괜찮습니다.”
그 말을 들었는지 금발 머리 아이도 자꾸만 머뭇거리기 시작한다. 꾸욱 다문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자신의 솜사탕도 아버지께 가져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시선을 애써 피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괜찮아. 누나 돈 많거든.”
“정말로 괜찮습니다.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충분히 감사합니다.”
그 와중에 케루는 세라에게 자신의 솜사탕을 나눠주기 시작, 허겁지겁 입을 댄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결국에는 참지 못했는지 케루의 솜사탕을 먹은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것도 먹고 있는 모습, 약이 오를 만도 하건만 천천히 먹으라고 이야기를 해주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저 파란 아이가 맏형의 포지션에 있는 모양이다.
“너… 너는 정말로 안 먹을 거니?”
“네.”
“누나 거 조금 떼어 줄까?”
“괜찮습니다.”
하지만 몸은 솔직하다.
살짝 손으로 솜사탕을 떼 입 근처에 가져다 대자 침을 줄줄 흘리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윽고 눈을 감고 모르는 척 솜사탕을 삼키는 것이 보였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맛이었으니까.
자꾸만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걸 보니 속으로 갈등이 되기는 하는 모양. 아마 악마가 자신을 유혹하는 느낌이지 않을까.
‘아빠를 많이 좋아하나 보네.’
“그럼 누나는 파란 길드까지 가시는 건가요?”
“응.”
“마침 잘됐네요. 세라랑 쓰로가 모셔다드릴 거예요.”
“어?”
“너희도 파란 길드로 가는 거니?”
“쓰로랑 세라만요. 저는 붉은 용병 길드에 들러야 돼서.”
케루였고.
“저는 검은 백조 길드에 먼저 들러야 돼요. 어머니가 기다리실 거예요.”
도미였다.
어떻게 이 아이들이 린델의 삼대 길드로 향할까 하는 의문이 솟는다. 추측을 하려고 해도 도무지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
아이들이 장난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지만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붉은 용병 길드로 파란색 머리의 아이가 들어가는 것이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파란 길드보다 오히려 크기가 더 커다란 건물, 아니, 건물이라기보다는 마치 성 같은 모습이다.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게 될 정도로 압도적인 광경을 자랑하는 건축물은 마치 전사가 검을 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가운데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의 모습이 이질적이다.
‘엄마가 저기에 있는 거야?’
“그럼 이따가 보자. 세라. 누나 손 꼭 잡고 가.”
“응.”
“감사했습니다. 누나.”
“아… 응….”
그다음도 마찬가지였다. 대륙 최고의 정보 길드, 오직 여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파란 길드 못지않은 자금력을 자랑하는 검은 백조.
레인저와 도적, 암살자 같은 이들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지혜 부길드마스터가 취임하면서 사업적인 방면으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거대 길드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길드 하우스의 크기는 붉은 용병보다 작았지만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효율적으로 지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축물이 눈에 띈다.
검은색으로 치장된 건물은 눈에 띄게 위험하게 느껴진다.
“벨리에 언니. 고마웠어요.”
“으응….”
“은혜는 꼭 갚을게요. 우리 어머니가 은혜랑 원수는 절대 잊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특히 원수를 잊지 말라고 하셨어요.”
“아… 응… 다음에 보자. 도미야.”
“쓰로. 세라 좀 잘 챙겨.”
“…….”
“얼마나 늦은 거지… 우으… 어머니한테 혼나겠네.”
그 말을 끝으로 처진 어깨를 이끌면서 걷고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문이 열린다.
‘도대체 뭐야.’
그럼 이 두 명 역시 파란 길드로 향하게 될 거라는 말이 된다. 어째서 출입증을 확인한 이후에 자신에 대한 태도가 너그러워 졌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위 간부의 아이들인 건가. 도대체 뭐지.’
“너희들 어… 어머니는 뭐 하시는 분이시니?”
기껏 나온 게 이런 멍청한 질문 이라니.
“우리 엄마는 마법사예요.”
“그… 그래?”
“네. 대륙에서 제일 유명한 마법사래요. 그, 그리고 쓰로는 엄마가 없어요.”
“형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잠깐 동안 움찔하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의 의미라는 걸 깨달은 이후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쓰로는 스승님이랑 같이 살아요. 매일 매일 훈련받고… 스승님한테 교육받거든요. 쓰로만 빼고 우리들은 다 엄마한테 교육받아요.”
“그러니?”
“쓰로도 엄마가 없어도 괜찮다고 했데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괜히 엮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어쩌면 이게 입단 시험의 최종 면접이 아닐까, 어린아이들도 경계해야 했던 걸까, 내가 지금 마법으로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온갖 생각을 하게 된다.
불안함을 억누르며 꾸역꾸역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 와중에 한 인형이 시야에 들어왔다. 단발머리에 적당한 키.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한소라 님.”
두말할 필요가 없는 파란의 마법사.
대마법사 정하얀 님의 오른팔이자 왼팔로 불리 우시는 분, 라이오스를 두 번이나 구한 영웅이었으며, 연금술과 정치적 수완에도 뛰어나 명예추기경님의 비서관으로 일하고 계신 분이다.
마탑의 실질적인 권위자이자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리시는 분이 눈앞에 있다.
“정말로… 정말로 한소라 님이야.”
어떻게 떨리지 않겠는가. 우상이나 다름없는 영웅이 눈앞에 있는데….
어째서 밖에 나와 계신 걸까. 혹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길드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도대체….
커다란 세라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모!”
우당탕탕 뛰어간 세라와 그런 세라를 꼭 품에 안은 한소라 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이… 이모….”
“세라 왔구나.”
“훌쩍… 이모… 흐어으응… 이모….”
“다녀오느라 고생했어. 이리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
“이게 뭐야….”
터무니없는 아이들을 만난 것만은 확실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