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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80화 (87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880화

에필로그 (3)

“퀘스트는 잘하고 왔어?”

“으응. 케루가….”

“그래에? 고맙다고 말해야겠네.”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는 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말을 더듬거나 우물쭈물거리고 있는 금발 머리 아이. 그리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한소라 님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비현실적이다.

미소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볼을 꼬집는다. 그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엉엉 울던 세라가 눈물을 멈추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아직도 히끅거리거나 코를 훌쩍이고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모양, 아까보다는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있었던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래서….”

“으응. 그래서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도, 도미가 자꾸 엄마한테 혼날 것 같다고 해서….”

“시간이 늦기는 했었네. 조금 야단맞을지도 모르겠는걸. 약속은 지켜야지. 이모도 얼마나 걱정했는데.”

“아. 엄, 엄, 엄마는….”

“아빠랑 같이 계실 거야.”

“그, 그래요? 보러 가도 돼?”

“지금은 조금 바쁘신 것 같으니까. 나중에 시간 나실 때 같이 뵈러 가자. 쓰로는 먼저 올라가서 보고 드려야지.”

“나… 나도 같이….”

“세라는 이모랑 조금 더 같이 더 있자. 엄마가 내주신 숙제 아직 다 안 끝냈지?”

“…….”

“이모가 도와줄게.”

“…….”

“그렇게 하자.”

“으응….”

“다른 일은 없었고?”

“응. 여기에 와서 솜사탕도 사 먹었어요. 용돈을 다 써서 돈이 없었는데 저, 저 누나가 솜사탕도 사줬어.”

고개를 숙이며 그대로 길드 안으로 들어간 은발의 아이의 뒤로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한소라 님의 시선이 느껴진다.

‘어떻게 해. 이쪽을 봤어.’

귀에다 대고 속닥이는 세라의 목소리를 듣고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만 눈빛이 그렇게 호의적이지는 않다.

뭔가 의심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초조해져 곧바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안… 안녕하세요. 저, 저는 벨리에라고 합니다. 이번에 파란 길드 입단 테스트의 최종 면접을 위해서….”

자신이 어떤 목소리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길드를 찾아온 면접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인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러니까….”

“네. 벨리에라고 합니다. 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한소라 님!”

“네. 벨리에 님. 저도 만나 뵙게 돼서 영광이네요. 아이들이 신세를 졌다고 들었는데….”

“아, 아니요. 신세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리고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아뇨. 길드의 손님이신데. 그럴 수는 없죠. 일단 들어오시겠어요?”

“네… 네!”

조금 굳은 몸짓으로 길드의 정문에 발들 들인 순간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란 길드에 오신 걸 환영해요.”

“넷.”

딱 한 걸음 더 디뎠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까는 잘 보이지 않았던 파란 길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20명도 채 되지 않은 길드원들이 사용하는 길드 하우스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검은백조나 붉은용병에 비해 많은 길드 직원들을 거느리기 때문일까.

길드원 한 명 한 명에게 그만큼 지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파란 길드가 운영하는 사업체를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포션 사업과 아이템 사업, 균열박물관이나 여러 가지 것들을 처리해야 했으니까.

중요한 위치에 있는 권력자들이나 타 길드마스터들이 업무를 위해 매일 같이 들락거리기도 했으니 파란 길드가 현 대륙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것치고는 길드의 분위기가 자유롭다고 느껴진다.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게 마련된 쉼터에서는 커피를 마시거나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들이 눈에 띈다.

석상처럼 서 있는 경비병이나 훈련을 하고 있는 이들도 보인다.

“정식 길드원들이 사용하는 공간은 따로 부지가 마련되어 있어요.”

“아… 네.”

“오늘 면접도 그쪽에서 보실 테니까… 아. 생각해 보니 시간이 조금 남았네요. 길드 하우스라도 구경하시는 게 어떠신가요?”

“네. 한소라 님. 정, 정말 팬이에요.”

“네?”

너무 뜬금없었던 것 같았지만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튀어나간다.

“정말로 팬이에요.”

“아, 네.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라이오스 때부터, 쭉 지켜봤었어요. 부활의 날에도… 예언의 날에도 마찬가지고요. 조금 진정하려고 해도 진… 진정할 수 없어서. 죄송해요. 그러니까 몇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쭈어 봐도 될까요? 사인은… 아니, 괜찮으시다면 같이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시면 평생의 자랑으로! 그리고 저!”

“잠, 잠깐만요.”

“네?”

“알겠으니까.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마세요.”

“아….”

“…….”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기뻐서 그만.”

‘다 망쳤어….’

혼자 신나서 멍청하게 떠들다가 일을 망쳐버렸다.

어째서 점잖아질 수 없었는지 후회가 될 지경, 자꾸만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앞뒤 안 가리고 무작정 달려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혹시나 이게 면접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아니, 면접보다는 이상한 사람으로 비치는 게 더 가슴이 아프다.

시선을 얻다 둬야 하지.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 자꾸만 머뭇거렸던 바로 그때였다.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조금 곤란한 이유가 있어서… 제가 곤란한 게 아니라 벨리에 님이 곤란해질 수도 있거든요. 기분 나빴던 것은 아니니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

“말씀드리기는 곤란하지만….”

“저주군요….”

“어떻게.”

“조금 자세히 봐도 될까요? 어쩌면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니요. 괜찮아요. 벨리에 님. 그보다 어떻게 알고 계셨던 건가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진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본래 자신은 마력에 민감했으니까.

정확히 무슨 종류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난생처음 느껴보는 어두운 기운이 느껴진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말씀하신 걸 생각해 보면 어쩌면 한소라 님과 접촉한 대상에게 옮겨지는 종류의 저주일지도 몰라.

세라에게는 안전장치가 되어 있거나 저주가 대상을 가리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종류의 마법이 사람을 구별한다는 것은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지만….

‘내가 지금 보고 있으니까.’

레벨 차이가 난다고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이 복잡한 술식의 첫 문단조차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은 그저 느낄 수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력을 천천히 움직였던 바로 그때였다.

‘죽어.’

어.

‘죽어.’

나 왜 단검을.

‘죽어.’

내 목에 겨누고….

‘죽어.’

있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단검을 목으로 가져다 댔을 때. 누군가 손을 꽉 잡는 것이 느껴졌다.

“어… 한소라 님 방금.”

“죄송해요.”

“네?”

“제가 최근에 공부하고 있는 게 있어서요. 연구 실패로 잠깐 부작용을 겪고 있는 모양이라… 타인과 접촉하는 걸 자제하고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제 몸에 실험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서. 하하… 저주는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다른 부작용도 없을 테니까. 가뜩이나 예민한데 디스펠을 하려고 하신 것 때문에 마법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 같네요.”

“대단하군요. 저 방금… 저 정말로 죽을 뻔했군요.”

“…….”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건지… 정말로 대단해요. 와….”

“제가 보기에는 벨리에 님이 더 대단하신 것 같은데요. 기억이 맞다면 새로 길드에 들어오실 분은 무투가라고 들었는데.”

“네. 무투가예요. 정확히 말하면 직업은 고유등급의 직업인 마법 권투사지만… 그래서 조금이지만 마법도 공부하고 있거든요. 그… 그리고 제가 또 폐를 끼쳤군요.”

“폐라뇨. 세라한테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감사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감, 감, 감사합니다.”

한소라 님의 다리 한쪽을 꽉 껴안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싱긋 웃어준 이후에는 다시 한번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지 않은가.

‘대단해….’

디스펠을 시도한 것으로 이 정도까지 반발력을 보여주는 마법이라니.

‘정말로 대단해.’

대륙의 최상위 모험가라 불리는 이들과 자신의 레벨 차이가 얼마나 심각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절대로 오를 수 없는 산처럼 느껴진다.

만약에 합격하게 되면 이런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는 거구나. 이런 사람들과 함께 훈련하고 이런 사람들에게 배우는 거구나.

잠깐이었지만 몸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계속해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같아 참을 수가 없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한소라 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약간의 미안함이 들어서 있는 듯한 얼굴….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세라야 잠깐 같이 산책할까?”

“응!”

“아… 네.”

길드 하우스를 조금 거니는 와중에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는 정원이라든지, 그 위에 있는 분수라든지, 길드 하우스 내에 입점된 상점이나 레스토랑,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유치된 여러 가지 편의시설들이 눈에 띈다. 말로만 들었던 유소년 교육시설들도 보인다.

“어디부터 보여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마법연구기관이나 연금공방도 있고 근접 직군이라고 하셨으니 연무장이나 훈련시설도 궁금하실 텐데… 최근에 훈련시설들이 아주 좋아져서… 근접 직군 분들이 자주 이용하시더라고요. 아. 무구를 지급 받으실 테니 공방도 괜찮을 것 같네요. 아니면… 아… 벨리에 님… 잠깐만요. 아… 네. 정하얀 님?”

“…….”

“아니요. 저, 잠깐… 세라 좀… 마중을… 네. 네. 지금이요? 네. 물론 갈 수 있죠. 근데… 아… 네. 네. 당연히 그래야죠.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최대한 빨리 갈게요. 식사는 하셨어요? 아. 네. 아… 죄송해요. 부길드마스터랑 드실 줄 알았는데… 아… 네. 네. 정하얀 님. 사실 제가 미리 준비하고 나오기는 했는데. 아… 같이… 네. 그럼 세라도… 아… 아… 아… 네. 그래도 같이… 네. 같이 갈게요.”

“…….”

“죄송해요. 저 잠깐 바쁜 일이 생겨서. 나중에 뵐게요. 세라야. 가자.”

“응. 이모.”

무척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연락을 받았던 것도 잠시.

‘나는 어떻게 해.’

한소라 님과 세라는 이미 보이지도 않는다.

‘정하얀 님이 부르신 건가?’

아마 그럴 것이다. 통화 내용에 그녀의 이름이 언급됐었으니까.

물론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지금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

워낙 넓은 부지라 다시 되돌아가는 것도 쉽지가 않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기는 했지만 늦어서 좋을 건 없다.

‘왜 여기에는 사람이 없는 거야.’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보였던 그곳과는 다르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길이라도 물어보련만….

“누구야?”

“네?”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침입자?”

“아뇨. 저….”

탁탁탁 땅을 밟는 소리와 함께 짧은 검이 휘둘러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침입자는 아닌 것 같지만… 재미있으니까 상관없겠죠.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필요 없어. 기모 아저씨. 몸이나 풀지. 뭐.”

“거, 살살 하라니까!”

‘어?’

“잠깐 누워 있어.”

본능적으로 쨉을 던지며 거리를 벌린다.

우습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고 품에 파고드는 인형을 향해서 라이트 훅.

‘다시 한번 쨉. 그리고 스트레이트.’

주먹을 채 휘두르기도 전에 몸이 뒤집히는 것 같다. 그리고….

“제법이네.”

눈앞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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