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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86화 (87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886화

휴가 (4)

어제도 그랬지만 연방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수선했다. 모든 대도시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누나가 결정한 대도시 콜로라도의 분위기는 조금 떠들썩한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리라. 연방은 많은 일을 겪었으니까.

대륙전쟁, 27군단 소환사태, 심지어 대륙던전화에서도 굵직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보통이었다면 국가로서의 기능을 상실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들을 연달아 견뎌냈으니….

‘이 정도면 운이 좋은 편이지.’

오히려 이 정도 선에서 그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모두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도시의 분위기는 꽤 활기차다.

어떻게 보면 가장 바쁜 시기라고 볼 수 있으니까. 사방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오고 인부들이 공사를 하는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건축 자재들을 공중으로 띄운 채로 이동하고 있는 하급 마법사, 거대한 망치로 커다란 못을 박아 넣고 있는 전사. 다수의 모험가들 역시 개발, 보수 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신 시끄러운 소리와 난잡한 소리가 섞여 들어온다. 날씨도 맑았고 산책하기에는 적절한 아침이었다.

“사냥 가실 분들 구합니다. 중급까지 커버 가능한 전사입니다.”

“건축 자재 파밍하러 가실 용병분들 모시겠습니다.”

일거리는 많겠네. 소외된 모험가들이 많이 보이는 것을 보니 확실히 잘 고르기는 했어.

“린델에서 직접 공수한 회복 물약 팝니다. 종류별로 있으니 보고 가세요.”

저거 가짜잖아.

생기가 넘친다는 표현이 어울리리라. 많은 인간이 섞이고 어우러져 있었으니까.

완성된 건축물과 아직 짓고 있는 건축물들이 더 많았고, 상점들도 모두 재건축을 하고 있다 보니 물건을 팔기 위해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많다.

초창기의 린델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막 개발을 하고 있다 보니 기회를 얻기 위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 모인 이주민들도 많다. 연방의 경우에는 이주하기 까다로운 편도 아니었으니까.

동양인들의 비율도 만만치 않게 많은 것처럼 보였다. 이미 먹을 게 없는 공화국과 교국보다는 이곳에서 시작하는 게 더 좋겠다는 판단을 하고 있겠지.

무슨 소문을 듣고 왔는지… 사람 생각하는 거 다 똑같다니까.

“장비 보수해 드리겠습니다. 괜찮은 장비들도 많으니 둘러보세요.”

“여기! 여기!!”

“천재 검사와 연금술사가 사랑하는 법 외전이에요! 어렵게 구해왔습니다!”

우르르 몰려들고 있는 사람이 왜 저렇게 많을까.

아마 이곳의 풍경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른 것은 나와 누나뿐이지.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보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바, 무슨 하녀복이야.’

누가 봐도 메이드들이 입는 옷처럼 보인다.

‘아니 누가 요즘 이런 걸 입고 다닌다고 왕국 연합 왕성 하녀들도 안 입고 다니겠다. 야.’

고개를 돌리자 창에 비친 얼굴이 시야에 비쳐온다.

완벽히 이기연의 모습이었다. 지난번과 다른 점은 머리 스타일이 달라졌다는 점, 조혜진처럼 뒤로 묶어 올린 머리 스타일이었는데 의외로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지혜 누나가 직접 해준 화장이랑 잘 어우러져서 그런가.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진다는 게 이쪽의 한 줄 평, 그나마 감사했던 건 노출이 없었다는 것 하나였고 그다지 감사하지 않았던 것은 이지혜였다.

‘그만 만져. 시바.’

허리에 손을 올린 채로 과시하듯 걸음을 옮기는 꼴은 가관, 손을 걸쳐 놓은 것은 더욱더 가관이다.

얼굴에는 이죽거리는 듯한 미소가 어울린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누나의 본래 모습과 닮은 것처럼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잘생기기는 했어.

오히려 저게 더 잘 어울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화감이 없다. 머리카락과 성별만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키는 나보다 조금 작았고 나이는 이쪽보다 훨씬 어려 보였는데 그야말로 어딘가에 도련님이라는 느낌.

입고 있는 옷의 원단도 고급스러워 보이고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브랜드였으니까.

누가 봐도 이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도련님이 심심풀이로 세상 나들이를 나온 것 같지 않은가.

꼭 그게 아니더라도 아직 애송이처럼 보이는 양아치가 하녀를 대동하고 길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은 어딜 가도 주목받을 것이다.

“누나.”

“네. 도련… 님.”

“표정이 조금 안 좋은데… 어제가 떠오르나 봐요?”

“아니에요.”

“실망스럽네요. 기왕이면 떠올려 주기를 바랐는데.”

“저는 어째서 누… 아니, 도련님께서 이곳을 골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심심풀이로 돌아다니기에는 좋은 환경이니까요. 근처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잖아. 사람들도 많이 몰려있고. 우리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제격 아닌가요?”

‘아니, 시바, 손 좀 떼. 시바.’

“저기 도련님 여기서는… 조금….”

“뭐?”

‘너 시바. 진짜.’

-이지혜 진짜 적당히 좀 해라. 진짜

-뭘 적당히 하래요? 어떻게 하든지 내 마음이지. 그리고 갑자기 이렇게 치고 들어오기 있어요?

-누나가 치고 들어오고 있잖아. 지금.

-여기서는 누나가 아니라 도련님이에요. 계약 잊었어요?

-시바, 다른 사람들이 보잖아.

-남들 시선이 무슨 상관이에요? 우리만 좋으면 되지. 그리고 오빠 보면 누구든지 다 쳐다볼 거예요.

-아. 진짜.

-내가 다 섭섭하네요. 내가 한 게 얼마나 많은데 이거 하나 못 맞춰 준다고? 그동안 내가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해?

-…….

-섭섭하다. 섭섭해. 이기영. 솔직히 말해 봐요. 이렇게까지 끌고 온 게 누구 덕이야? 나도 보상은 받아야지. 안 그래?

-…….

-그리고 솔직히 오빠도 주목받는 거 좋잖아. 말로는 싫다고는 하지만 몸은 솔직, 아! 이 대사도 써먹어야겠다.

-……

-아무튼 부끄러우면 그렇게 행동해요. 그게 오빠 캐릭터잖아. 얼굴 붉히는 모습도 귀여워서 좋네. 화장도 열심히 해줬는데… 옷도 진짜 예쁘기는 하네요. 몰랐는데 나 이런 거에 조금 로망 있었나 봐. 오빠. 아니면 우리 기연이가 옷발이 잘 받아서 그런가. 상처 입은 소설 속 주인공 같고 그래요.

-누나도 잘 어울려. 겁 없이 설치는 애송이 같아. 진짜로.

-칭찬은 고마운데. 너무 자주 훅 치고 들어오지 마요. 몰입 좀 하자고요. 몰입 좀.

‘시바, 이거 진짜 괜히 했나 봐.’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어려운 일이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근데 그만큼 누나가 기뻐 보이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누나와 시간을 보낸 적이 많지는 않았으니까.

일 때문에 모인 적은 많았지만 이런 식으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 적은 없다. 남의 눈치 안 보고 이럴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좋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지.

도시를 구경한다든가 길거리에서 파는 것들을 구경하며 거리를 걷는다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이리라.

누나나 나나 사람 많은 곳에서 부대끼면서 노는 걸 즐기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가끔은 이러는 것도 도움이 되니까.

사람들의 시선만 아니라면 그럭저럭 즐길 만하다. 조금 색다르기도 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이지후는 계속해서 이쪽의 허리를 붙잡아 오는 중, 걷는 게 불편해 몸을 뒤틀어도 귀신같이 붙잡는 것이 느껴진다. 더 가까이 오라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왜 이렇게 힘이 세.’

“밤에는 조금 으슥해질 것 같은데 우리 목걸이 하고 나올래요?”

“…….”

“농담이에요. 계속 가죠. 누나.”

“네. 도련님.”

“오늘은 모험가 길드에 등록하러 갈 겁니다.”

“네.”

“기회가 있으면 괜찮은 퀘스트가 있는지 찾아볼 거고요.”

“네.”

모험가 길드는 기본적으로 덩치가 크다.

요즘이야 베니고어 넷의 영향으로 그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는 소문이 들리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함께 파티를 짜거나 사냥을 나가는 것은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이 나으니까.

괜찮은 모험가 길드 같은 경우에는 외지에서 온 이들을 위해 숙박시설도 마련되어 있었고 용병이나 떠돌이들을 위해 여러 가지 임무들을 알선해 주기도 한다.

여기도 다르지는 않은지 꽤 많은 사람이 눈에 보인다.

이지후가 조용히 문을 열자 순식간에 시선들이 쏟아진다. 길드 안으로 들어서자 시끄럽던 곳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험가 길드에 처음 오셨나 봐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가장 좋은 방 하나.”

직원에게 동전을 던지며 거만하게 말을 잇는 모습은 가관.

“이지후. 이기연. 임시 모험가 등록증 발급.”

말 역시 짧다.

적당히 테이블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이에 움직이는 건 내 몫이다.

“캐슬락에서 오신 이지후 님이십니다. 임시 모험가 등록발급을 위해 찾아왔습니다. 관련 서류와 인장은… 제가….”

“아, 네. 잠깐 따라와 주시겠어요?”

“네.”

시선이 뜨겁다.

휘유. 하면서 휘파람을 부는 새끼 너 기억했다. 뚝배기 부서질 준비 해라.

“교국에서 왔다는데?”

“캐슬락? 여기는 무슨 일이지?”

“낸들 알아? 어디 부잣집 도련님이 여행이라도 왔나 보지. 뭐.”

“하녀를 끼고?”

“그것도… 와… 말이 안 나온다….”

“캐슬락이면 실력 괜찮은 거 아니야?”

“…….”

“두 분 다 신원 확인되셨습니다. 각각 영웅 등급, 희귀 등급의 자유 모험가로 등록되어 있으셨네요. 혹시나 임무나 퀘스트를 원하시면….”

“차차 찾아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접수원을 지나쳐 뒤를 돌자 다시 한번 장내에는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시바, 내가 구두 싫다고 했는데.’

앉아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는 이지후가 세상 양아치 같다.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고 어서 자신의 옆으로 오라는 듯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니 곧바로 팔을 잡아당겼고 내 모습은 엉거주춤 녀석에게 반쯤 안긴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시키신 일은….”

“시킬 일이 더 있는데….”

“네. 도련님. 언제든지… 그, 그보다 오늘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여기서 먹을게요. 누나.”

“네.”

이 누나 진짜 신났나 봐. 몰입한 거 봐. 아무래도 남들 보라고 이러는 것 같어.

확실하다. 남의 시선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접근하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두 이곳을 흘깃흘깃 바라보고 있다.

그 와중에 이지후는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고,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잠깐 합석 좀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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