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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92화 (88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892화

휴가 (10)

“이 미친 개자식!”

“왜요?”

“정신 나간 놈… 제기랄! 제기랄!!”

이 양반 이거 많이 흥분하셨네.

“군사님이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으시니 자꾸만 이런 슬픈 일들이 벌어지는 겁니다.”

“…….”

눈 파들파들 떨리는 것 좀 봐. 화가 많이 나기는 했나 봐. 살짝 이성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해.

“뭐 그렇게 정색을 하고 그러세요? 블랙마켓에 드나드는 주제에 세간의 평판은 걱정되셨나 봅니다. 하여간 이 양반 명예에 집착하는 건 여전해.”

“…….”

“하긴 뭐. 걱정될 만하겠네요. 어떤 사람은 군사님보고 호색한이랍니다. 공화국으로 돌아갈 시간도 없이 허겁지겁 구매한 노예나 탐하고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니긴 하네요. 욕망에 몸을 맡겨도 아주 제대로 맡기셨어. 발정 난 개도 아니고….”

“내가 언제….”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군사님. 공화국민들이 알면 참 즐거워하겠네요. 그렇죠?”

“내가 네놈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교국의 명예추기경, 희생과 부활의 신이라고 불리는 네놈이 성별을 바꾸고 이런 곳에서 추잡하게 놀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그들이 기뻐하겠군.”

“저랑 기 싸움할 생각하지 마세요.”

린델 조커 이기연은 절대로 멈추지 않거든.

“네놈도 잃을 게 있다는 소리다. 개자식.”

“뭐 상관없습니다. 믿어줄 것 같지도 않고… 그 추잡한 명예추기경이랑 그렇게 얽히고 싶으면 얽혀 보시던가. 그리고 제가 언제 싸우자고 했습니까. 서로 한 발자국씩 양보하고 일을 잘 해결해 보자는 거지. 내 스타일 알잖아요. 우리 좋게좋게 갑시다. 뭐 대단한 거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잠깐 어울려 달라는 건데. 사람 속이 참 좁아. 우리가 예전에 조금 안 좋았다고 해도 다 과거의 이야기 아닙니까.”

맞잖아. 솔직히 우리가 좀 악연이기도 해. 그래도 그거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다. 제가 다 군사님 성장시키려고 그런 거예요. 그림자의 영웅을 위한 채찍질이었다구.

“이 쳐죽일 놈이….”

새롭게 시작한 대륙처럼 우리도 좀 성장해야 하지 않겠어?

엉거주춤하게 몸을 일으킨 녀석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낸다.

“…….”

가는 시선이 고와야 오는 시선도 고운 법, 하지만 녀석의 눈빛은 꽤나 냉정했다.

‘뭐야. 이 새끼 혹시 나 때리려고 그러나?’

한번 때려봐. 바로 하얀이가 와서 너 때려줄 거니까.

정확히 뭐라고 말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충돌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녀석이 이성적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서 이성 잃었으면 아마 나 때리고 있을 거라구.

혹시나 진짜 때릴 수도 있으니 조금은 연약한 척을 해보자.

가련하고 부서지기 쉬운 이기연. 오돌오돌 굴속에 숨어 토끼같이 떨고 있는 이기연. 궁지에 몰린 이기연.

녀석이 크게 한숨을 내쉰 것은 바로 그때였다.

“구역질 나오는 짓거리는 집어치워라.”

“그럼….”

“협력해 줄 테니. 물론 전부 협력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리고, 네놈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내놓아야겠지.”

어느새 될 대로 되라 모드로 들어간 것인가. 어차피 흘러가기 시작한 거대한 흐름은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강짜 부리다가는 자존심 구기는 일이 더 생길지도 모르니 후딱 일 처리하고 집에 가서 차나 한잔 마시자는 생각이겠지. 똥 밟은 셈 치고 말이야.

“뭐 그럼 그렇게 해요. 일단 여기 마켓 좀 더 돌아다녀 봅시다. 어떤 물건인지 물약 좀 보고 싶으니까. 아. 밖에 있는 것 좀 가져다줘요.”

“네놈이….”

“제가 나갈까요?”

“내가 가져오지.”

“…….”

“…….”

“먹을 만하네요.”

적당히 우물우물거리며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놈의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다 먹은 접시를 한쪽으로 치우고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

마켓 쪽에서 가져다준 옷은 전형적인 차이나 드레스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옆이 조금 트여 있다는 것, 본래 입고 있었던 옷 같지도 않은 옷을 옆으로 던져 버리자 그제야 옷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검은색의 차이나 드레스에 금색으로 문양을 수 놓은 것 같은 디자인, 잘은 모르겠지만 소재 자체가 괜찮게 느껴진다.

마켓 쪽에서도 제법 신경 써준 거겠지. 굳이 차이나 드레스로 가져다준 건 저 공화국 군사의 영향이 아닐까. 잘 보여야 하니까 말이야.

“마음에 드네.”

나름 만족감을 표현하자 녀석이 해석할 수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대륙 뽕을 제대로 맞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김치를 좋아하는 외국인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따로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지만 준비가 됐다는 걸 깨달았는지 문을 박차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 이쪽도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로 녀석의 뒤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연히 시선들이 느껴진다. 방금 전까지 안쪽에서 일어난 일들을 멋대로 추측하고 있을 테니까.

마켓의 VIP룸을 관리하는 하녀들의 시선이 뜨겁다. 너무 멀쩡하면 안 되니까. 조금 힘든 척해줘야지.

청아. 내가 너 기 살려준 거야.

“판매가 될 만한 쪽 좀 알아요?”

“시중에 유통되지 않은 물약을 파는 곳이라면 알고 있다. 아마 그곳에 있겠지.”

“시중에 유통되지 않은… 저도 근본이 연금술사라 궁금하기는 하네요.”

“다들 네가 알고 있는 것들이겠지. 치명적인 부작용을 띠고 있는 물약들이 많으니. 이를테면 광전사 물약이나 저주 물약 같은 것들 말이다. 최근에는 제법 이용하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전투 시의 두려움을 잊게 해주는 포션이라면 팔릴 만도 해요. 배경이 배경이니까. 안 그래도 비슷한 걸 연구 중이기는 했었는데… 단가가 안 나오더라고요. 사냥을 계속해서 포션에 의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것도 모험가 생활을 할 수 없는 모험가들한테 팔리고 있겠네요.”

“콜로라도처럼 말인가.”

“네. 뭔가 이상하다고 하기는 했었거든요. 콜로라도는 가 본 적 있습니까?”

“…….”

“거기 도시 사람들 대부분이 포션 중독자들이더라고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것 같던데… 지금은 콜로라도에서만 유통되고 있지만 혹시 압니까. 나중에는 연방 전체, 그다음에는 공화국 쪽으로 유통될지.”

“그럴 일은 없을 거다.”

“퍽이나 없겠네요. 이 범죄자 새끼들 아주 조직적이라니까. 생각보다 얽혀 있는 게 많아요. 마탑도 한번 파봐야 하고, 공화국이나 교국 주요 요직자들 가운데서도 몇 마리 나올 것 같은데. 그동안 너무 숲만 봐왔나 봐. 제가 보낸 메일들 안 봤죠?”

“대답이 필요한가?”

“제가 요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느라 바쁘다 이거예요. 대륙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여러 가지 업무에 집중하고 있거든. 혹시 관심 있어요?”

“관심 없다.”

“일손이 모자라서 애들 훈련시키고 있기는 한데 우리는 즉시 전력이 될 수 있는 인재를 원합니다. 기후, 대륙의 법칙이나 던전 업데이트부터 몬스터 생태와 개체 조절, 퀘스트나 이벤트도… 너무 많아서 지금 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든데. 아마 군사님한테도 도움이 될 겁니다. 제 쪽에서 조금 처리해 주면 금방 자격도 갖출 것 같구… 서로 윈윈이라니까. 나랑 누나가 어떻게든 하고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힘에 부쳐서….”

“네놈과는 더 이상 연관되지 않기로 결심한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았다. 개자식.”

‘근데 솔직히 관심은 있을 거야.’

“…….”

‘이 새끼도 컨트롤 프릭이잖아.’

지 없는 곳에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얼마나 초조하겠어. 아닌 척하고 있겠지만 돌아가면 분명히 메일 뒤져볼걸.

아무래도 욕으로 도배한 내용이나 장난으로 보낸 메일은 삭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진청이 펼친 마력 장벽 안에서 정신없이 수다를 떨며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시선이 쏠리기는 한다.

블랙마켓 안에서는 이미 소문이 퍼졌는지 웃음기 섞인 얼굴이나 혐오 섞인 얼굴로 진청을 바라보는 놈들도 여럿 보인다.

심지어 접근하려고 하는 놈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 군사님. 실례합니다만….”

“저는 연합의 헤들러입니다. 혹시 잠깐 이야기 좀….”

“좋은 노예를 얻으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언젠가 저희 저택으로 초대드리고 싶습니다. 제 컬렉션들을 함께 공유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 놈들이 태반,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리며 나는 네놈들과 다르다를 말하고 싶겠지만 그런 말을 한들 믿어줄 놈이 얼마나 되겠는가.

녀석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전부 다 무시한 채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경매장에 있을 때도 규모가 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바깥으로 나오니 상상 이상이다.

웬만한 몰을 방불케 할 정도, 레스토랑은 물론이거니와 이것저것 즐길 수 있는 컨텐츠들도 많다.

검투 경기, 노예시장도 있었고, 몬스터 거래시장도 있네. 볼거리들도 많으니 눈을 쉴 수가 없다.

특히나 장물거래소가 괜찮아 보여. 불법 카지노도 있네.

“군사님 저기 많이 가시죠? 게임하러 많이 가시겠네. 그런 말 많이 하시죠. 칩이 없다면 목숨을 걸어라. 그게 아깝다면 네 한쪽 손목으로 대신하도록 하지.”

“…….”

“군사님이랑 저랑 처음에 했던 게임도 있습니까?”

“…….”

‘있나 보네.’

“너무 말이 많군.”

“아. 저기가 포션 거래소인가 보네요.”

꽤 멋들어지게 전시되어 있다. 블랙마켓이라고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말이다. 마음의 눈을 열고 조용히 주변을 둘러본다. 그사이에 응접하러 온 직원과 녀석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콜로라도에서 유통되는 포션을 만든 연금술사를 만나보고 싶다. 제품이 있다면 가져….”

‘잘해주고 있네.’

하지만 이미 마음의 눈으로 확인한 직후.

‘흐음….’

환상물약의 열화판으로 봐도 되나. 옛날에 실리아에서 유통되던 물약에서 힌트를 많이 얻었나 본데.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면서 녀석을 바라본다. 가면쓰레기는 천천히 다가오며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연금술사에 대한 정보는 없나 보군. 원하는 것은 찾았나?”

“네.”

“다음 계획은 뭐지.”

“뭐 계획이랄 게 있나요. 샘플은 찾았으니 그냥. 날려 버리는 거죠. 뭐.”

“…….”

“…….”

“그사이에 정의로워지기라도 한 건가. 블랙마켓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만.”

‘정의는 무슨.’

“제가 모르게 하면 안 되죠.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동시에 바깥에서 커다란 고함이 튀어나왔다.

“워프게이트가….”

“제기랄! 뭐야? 워프게이트가 막혔잖아.”

“죄송합니다. 고객여러분들 현재 워프게이트에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곧 정상화될 예정이니….”

좋네.

“어딜 내 거에 불순물을 묻히려고 그래.”

좋아.

“…….”

“지금 돌아가야 되는데… 제기랄….”

“밀지 마세요. 밀지 마요. 진짜!”

“몬스터가 미쳐 날뛴다! 경비! 경비!”

“아아아아악!”

입꼬리가 올라간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깨달은 그림자의 영웅은 조용히 이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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