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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94화 (88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894화

휴가 (12)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냐고 한바탕 쏘아주고 싶다. 돈 벌어오라고 내쫓은 새끼가 여기서 튀어나오게 된 경위가 궁금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 만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상황에 머리가 반쯤은 마비된 것만 같았다.

‘이… 시바.’

물론 김현성의 표정도 다르지 않다.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나보다 더 당황하고 있는 쪽이지 않을까.

김현성의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이기연의 만남은 마치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인연, 되찾고 싶었던 소중한 추억, 남겨진 것은 구두 하나, 찜찜하게 마무리됐던 하룻밤의 기억.

그 모든 감정이 뒤섞여 복잡한 표정을 보내오는 김현성의 얼굴이 볼만하기야 했지만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나가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심지어 이 새끼 눈에는 진청이나 이지후도 보이지 않는 모양, 내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해야 할 말을 고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큰일 났다. 진짜. 레알 엿 된 거 아니야?’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지후 얘는 그저 신났는데.’

“이 쓰레기 같은 새끼. 넌 누구야….”

“…….”

진청 이 새끼는 받을 생각도 안 하자너. 이 새끼도 많이 당황하기는 했어.

-이기영… 이 개자식. 지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나도 잘 몰라. 시바. 근데 너도 대충 알 거 아니야. 척 보면 척 아니야?

“누나… 괜찮은 거예요?”

-이런 제기랄! 내가 또 무슨 개 같은 일에 휘말린 거지? 대답해라. 이기영.

“내가 묻고 있잖아요. 누나.”

너희들 둘 다 너무 그렇게 압박하지 마. 안 그래도 머리 이상한데 더 이상해질 것 같아.

이지후의 감정선은 이미 터지기 직전, 아주 열연을 하고 있는 모습에 이 극의 사실감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자신과 떨어진 동안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현실로 돌아온 것 같은 얼굴이다.

초조하고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고 숨도 많이 거칠어져 있다. 이 정도면 배역에 완전히 몰입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이기연을 걱정하고 있는 동시에 이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는 전형적인 남 주인공의 모습, 절박하게까지 보이는 그 얼굴은 다른 배우들마저 극에 집중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나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모습을 보이게 된다.

도련님에게 죄송하다고, 이 남자에게 소중한 것을 빼앗겼다고, 더 이상 도련님의 이기연이 아니라고. 예전에 알던 이기연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헤어진 시간은 무척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일정상 압축 진행을 해야 하니까.

사실상 이 무뢰배의 손에서 두세 달 정도는 고생했다고 봐야지. 누나도 딱 그런 설정인 것 같고….

많은 것을 담은 얼굴이었다.

-이 개 같은 자식! 이기영! 개자식!

물론 내 얼굴을 본 진청은 자신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지랄 발광을 하고 있지만….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군사님.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 진짜. 지혜 누나랑 휴가 나왔는데. 상황이 조금 꼬인 겁니다. 나중에 들어달라는 거 하나 들어드릴게. 제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요. 딱히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그냥 평소처럼 있어 주시면 됩니다. (0/1)]

[진청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을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플레이어 진청은 보상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내가 네놈에게….

[저 지금 진짜로 진지하게 부탁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냥 장난치면서 노는 것처럼 보이실지 몰라도 급박한 상황이에요. 진짜 급해요. 아, 이건 어때요? 우리 같이 일하기로 한 거 있잖아. (0/1)]

-나는 네놈과 함께 일하기로 한 기억이 없다만.

[솔직히 하고 싶잖아요. 나한테 전부 맡기는 것도 짜증 나고, 자기가 모르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도 짜증 날 거 아니에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거에 많이 민감하잖아. 그거 군사님이 원하시는 포지션에서 일할 수 있게 해드릴게. 지원도 빵빵하고 단독 프로젝트도 최대한 많이 가져가실 수 있게. 쉽게 말하면 자치권 보장. 공화국 쪽 떼어드리면 돼요? (0/1)]

-…….

[끌리죠? 끌리잖아요. 뭐 어려운 거 부탁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평소처럼 계셔주시면 돼요. 아무것도 안 하고요. (0/1)]

차라리 넌 대사 안 치는 게 더 좋거든.

그림자의 영웅 때를 생각해 보면 이런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이놈을 메인으로 투입시킬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냥 띠꺼운 얼굴과 오만한 표정, 자신이 위에 서 있다는 스탠드를 유지하기만 해도 누나가 만족할 만한 그림이 나올 거야. 비열한 얼굴 있잖아.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는 않는다. 고민하는 건지, 아니면 내 말대로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의 얼굴은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는 것만 같다.

워낙 얼굴 자체가 악역답다 보니 굳이 대사를 치지 않아도 흐름이 이어진다.

“이리로 오세요. 누나.”

“…….”

“도, 도련님….”

“이리로 와요.”

마치 진청이 나를 가지 못하게 막는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죄송… 죄송해요. 저는….”

“이리로 오라고 했잖아요. 누나.”

미묘한 대치. 그 미묘한 대치를 기다려 주고 있는 김현성도 뭔가 있다는 걸 깨닫기야 한 것 같다.

김현성의 상상력으로 어느 정도의 스토리가 만들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다음은 장소에 대한 의문일 것이다. 어째서 이기연이 여기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야지.

김현성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을 것 같군요.”

아니, 그냥 두고 봐도 되긴 하는 데… 현성아….

진청을 바라보는 김현성. 뭔가 둘이 대화하는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확실히 이 꼴이 됐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둘이 눈에 띄었다. 서로 안부라도 묻거나 어째서 여기 있는지 물을 만도 하건만 서로 처음 본 사람처럼 어색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차라리 잘된 일이지. 여기서 둘이 얽히면 상황이 더 꼬일 수도 있으니까.

“어디로 갈지는 기연 씨의 자유입니다. 기연 씨는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니까요. 당신들과 기연 씨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

“기연 씨.”

뭐가 어찌 됐든 간에 김현성은 보내는 게 맞아. 너무 위험해. 시바.

뭔가 그리운 느낌으로 김현성을 바라본다. 많은 것을 담은 얼굴로 말이다. 입술을 꽉 다문 이기연이 선택한 것은 도망치는 것.

‘일단 뒤로 빼자.’

개연성도 맞다.

이지후에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진청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을 것이다. 김현성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진청이야 그냥 저 자리에서 비열하게 웃으면서 이지후를 쳐다본 것만 해도 충분히 1인분은 한 거니까.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이 자리를 피했다는 게 현실감 있지 않겠냐구.

허겁지겁 발걸음을 옮긴다.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잠깐 시간 좀 끌어줘요. 뭐 큰 거 기대 안 합니다. 잠깐이면 되요. 교통정리 좀 해주시라고요. 김현성은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아마 곧 돌아갈 겁니다. (0/1)]

[진청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을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플레이어 진청은 보상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곧바로 코너를 도니 시야에서 사라진다. 기영 씨! 누나!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재빠르게 손거울을 열어 메시지를 보낸다.

-현성 씨. 지금 잠깐 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발신자는 희생과 부활의 신, 김현성과의 유대감으로 똘똘 뭉친 갓기영.

-조금 급한 일입니다. 이것저것 드릴 말씀도 있고… 생각해 보니 제가 말씀을 심하게 한 것 같습니다. 식사라도 하면서 사과하고 싶어서요. 좋은 식당에 예약을 해뒀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고 계셨는지도 궁금하네요. 오랫동안 얼굴을 안 봤잖아요.

하아 하아 하는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올 정도로 뛰면서 문자를 보내는 것도 쉽지가 않다.

김현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진청이 시간을 잘 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 메시지를 읽은 건지 모르겠다.

아직 안 읽었을 수도 있고, 혹시 못 받았을 수도 있으니까 한 번 더 보내봐야지.

-그리고….

딱 여기서 끊어야지.

궁금하게 만들어야지 조금 효과가 있을 거야.

문자를 읽는다면 바로 달려 오지 않을까. 우리 현성이라면 비치기연한테 빠져서 빛기영을 배신하지는 않겠지.

너무 정신없이 뛰어와서 여기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전히 주변이 개판이라는 것. 애새끼들이 전부 뛰어다니고 있다 보니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네. 아주 개판이야.

손거울에서 살짝 진동이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왔구나.’

-정말로 죄송합니다. 기영 씨.

“뭐?”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지금 당장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만 정말로 급한 일입니다. 세 시간 안으로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네?

‘너 이 새끼 지금 무슨 짓이야.’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시바. 나를 배신해?

-네. 그럼 계속. 용무 잘 보세요. ^^ 제가 귀찮게 했나 봅니다. ^^

시발놈. 이 나쁜 새끼. 시바. 어디 이 문자 보고도 안 오는지 보자.

-전혀 귀찮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연락해 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기영 씨가 말씀하신 대로 용무 잘 마치고 돌아가겠습니다.

이 새끼는 내가 저 이모티콘을 왜 보냈는지도 모를 거야. 조금 더 세게 말해보는 게 좋겠네. 꼭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해야 알아들어요.

다시 한번 황급히 손거울을 들어 올렸지만 곧바로 품 안으로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김현성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으니까.

사람들 속에 섞이기도 쉽지가 않다. 그냥 계속해서 코너를 돌면서 거리를 벌리는 게 전부, 아니 거리를 벌린다는 표현조차 우습지. 일단 눈물이나 일발 장전해 놓자.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어깨를 잡은 손이 느껴진다. 눈물이 가득 들어가 있는 모습으로 김현성을 한 번 바라본다.

멈칫거리는 김현성이 시야에 비쳤다.

다시 한번 손을 탁 치자 녀석이 손이 힘없이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이내 이곳이 어떤 곳인지 깨달았던 걸까.

다시 한번 옷 소매를 잡아당긴다. 내가 억지로 힘을 주자 옷은 자연스럽게 뜯어지기 시작.

그리고 드러나는 그 인장. 그 동안의 이기연의 삶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은 노예의 인장.

“기연 씨?”

일단, 시바, 따귀 한 대 올려야지.

짜악.

“아….”

“이 이상 얼마나 저를 비참하게 만들 생각인가요.”

“…….”

“제가… 제가 아직도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

“원하시는 재회가 아니라 실망하셨나요?”

“…….”

“이렇게 변해버린 제 모습에 실망하셨나요?”

일단 몰아붙이자. 원래 이 새끼 몰아붙이면 아무것도 못 해.

“바보 같은 여자라고 생각하시나요?”

“…….”

“왜 제 앞에 나타난 건가요. 흐윽… 도대체… 왜. 왜!”

일단 따귀 한 대 더 맞아.

이유는 없어. 그냥 맞아.

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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