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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98화 (88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898화

성검용사와 명예추기경 (1)

[정하얀 님께서 사진을 좋아합니다.]

가장 먼저 사진에 반응한 것은 역시나 정하얀이었다.

얘 지금 한소라랑 같이 마탑 조지고 있었던 거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역시나 일은 뒷전이었던 모양이다.

한소라에게 대부분을 맡겨 놓은 이후에 손거울을 만지작거리고 있었겠지.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1초도 안 돼서 반응한 건 조금 그녀답기도 했다.

[차희라 님께서 사진을 좋아합니다.]

[조혜진 님께서 사진을 좋아합니다.]

차희라야 길드에서 계정 관리를 하고 있으니 명예추기경과의 관계에 문제가 없다는 표현의 일환으로 눌렀을 거고, 혜진이도 손거울을 끼고 있는 만큼 곧바로 반응했겠지.

얘는 오늘 휴일이었나. 지금 뭐 하고 있나 몰라.

기왕이면 조혜진을 데리고 나오고 싶기는 했지만 혹시라도 김현성의 원망을 살 수 있으니 논외, 같은 값이면 서로 사이가 안 좋은 라파엘을 이용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쉴 새 없이 조잘거리고 있는 라파엘의 이야기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채로 손거울을 힐끔힐끔 바라보자 계속해서 좋아요가 찍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일이 다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지만 마음의 눈 덕분인지 이 모든 게 시야에 들어온다.

박덕구, 안기모, 김예리를 비롯한 파란 길드원들은 물론이거니와 오스칼, 바젤 교황, 이 양반 또 계정 가지고 있었나 봐. 젊게 사시네.

마를린 영애, 카트린 의원, 공화국이나 연합의 인사들과 교황청, 심지어 이종족들까지, 계속해서 좋아요를 찍어댄다.

대충 올린 사진이 베니고어넷에 퍼져 나가는 건 순식간, 아마 김현성이라면 게시글을 보고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김현성 님께서 사진을 좋아합니다.]

지금 봤나 보네.

[김현성 님께서 사진의 좋아요를 취소합니다.]

‘이 새끼 잘못 눌렀나 보네.’

근데 그거 알아. 내 계정에서는 다 볼 수 있어.

아마 스크롤을 내리다가 실수로 찍혔을 것이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녀석의 모습이 뻔히 그려진다.

뒤늦게 자신이 좋아요를 찍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번 눌렀겠지. 기록이 남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머리 손거울에 정신이 팔렸던 걸까? 옆자리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 형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

“그냥 평소처럼 지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일로 보내기는 하지만 가끔은 휴식도 즐기고 있어요. 독서도 하고, 기도도 드리면서 말입니다.”

지혜 누나랑 난잡하게 놀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어.

“역시… 대단하시네요. 하… 하지만 건강을 조금 생각하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저 조용히 미소를 보내는 게 베스트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그 누구보다도 제가 제 건강에 대해서 신경 쓰고 있으니까요. 라파엘 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열심히 일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대륙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현시점에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게으름을 피우게 되더군요.”

“하하하….”

살짝 웃고 있었지만 조금은 씁쓸한 느낌이 나는 웃음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시간이 남으니 오늘 같은 자리도 마련할 수 있었던 거겠죠?”

“네. 그렇군요….”

“오랜만에 보니 저도 즐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라파엘 님.”

사실 그다지 즐겁지는 않아. 새로운 우정이라고 떠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얘는 그다지 재미있는 성격은 아니야. 어쩌다가 만나서 한번 놀기는 좋지만 계속해서 만나기에는 무리가 있어.

물론 오늘은 어쩌다가 한번 만나는 날이기 때문에 대화의 소재가 줄어들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라파엘이 하고 있는지는 궁금했으니까.

성검용사 파티는 대륙의 유능한 자원이었고 사실 김현성이나 나, 정하얀, 차희라에 비해 덜 부각될 뿐이지 꽤 관심을 끌고 있는 파티다.

매번 언론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녀석의 선행이나 공략한 던전, 혹은 언행까지 주목받는다. 그래서 이렇게 시선이 집중되는 거일지도 모르지.

‘굳이 새삼스럽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오늘은 유독 심하네.”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파엘 님.”

‘진짜 심해.’

보통 김현성이나 정하얀, 심지어 박덕구와 나들이를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대륙의 영웅이나 이름난 모험가들은 대개 연예인 같은 느낌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시선이 쏠리기는 하지만 오늘따라 지독하다는 느낌이 든다.

빤히 쳐다본다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눈에 보인다. 몇몇 얼굴을 익혀놓은 기자들도 눈에 띄는 걸 보면….

‘라파엘이 생각보다 인기가 있나 봐. 너무 오랫동안 안 만났던 건가.’

이거 기사로도 나올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손거울을 꺼내자 역시나 메인에 떠 있는 기사가 눈에 띈다.

[명예추기경님과 성검용사의 린델 나들이-린델 일보 김성경 기자]

댓글들도 많이 달려 있는데. 굳이 읽어볼 필요는 없겠지.

뭐 뻔할 것이다. 지금 이 타이밍에 성검용사를 린델로 부른 목적,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는지, 현재 연합을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라파엘 파티를 파란에서 영입한다는 가설을 세워보면 난리가 날 만도 하지.

[노을빛의 검사와 불화? 파란 길드에서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아.-린델 정치부 기자 강유미]

‘이건 또 뭐야.’

새로운 우정이라는 해시태그가 너무 자극적이었나. 아무튼 별 시덥지 않은 거로 부풀리기 하면서 사람들 선동하는 건 여전해.

[아이디 미정 : 그럴 거라고 생각했음. 솔직히 이런 말 대놓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지난 파란 길드마스터의 행보를 보면 그럴 만도 하지. 갑작스럽게 파란 길드마스터가 공화국으로 간 것도 딱 맞아떨어짐.]

[린델마을주민 : 하긴… 파란 길드 공화국 지부는 사실상 상징적인 의미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조금 타이밍이 이상하기는 함.]

[천연사러버 : 기사 내려주세요. 말도 안 되는 기사 내려주세요.]

[린델마을주민 : 사실 불화설이 한두 번도 아니었고… 예전에 명예추기경님이 연방 이적 소문도 들리지 않았음? 이쯤 되면 합리적인 의심을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하는 건 아님. 그냥 그럴 가능성도 생각해 보자는 거지.]

[천연사러버 : 길드 관계자로서 말씀드리는 건데 사실무근입니다. 기사 내려달라고 정식적으로 요청할 예정이니 알아서들 생각하세요.]

[아이디미정 : 길드 관계자니까 대놓고 이야기할 수 없겠지. 이런 타이밍에 성검용사와 만난 것도….]

근데 딱히 나쁘지는 않아. 이런 거로 기강이 잡히는 거니까. 특히 저런 메인에 뜬 기사라면 김현성도 찾아서 볼 수 있을 테니까….

생각이 많아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사태의 심각성도 깨닫지 않을까.

생각보다 일이 커진 모양인지 김미영 팀장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 ‘저… 부길드마스터…’라는 말에는 짧게 ‘굳이 대응하실 필요 없습니다. 팀장님 어차피 곧 사라질 소문이니 형식적으로만 문제없다고 발표해 주세요’라고 답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주가가 조금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뭐 알아서들 잘하겠지.’

“죄송합니다. 라파엘 님. 잠깐 일이 생겨서….”

“아니요. 괜찮아요. 형. 혹시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어요?”

“글쎄요. 라파엘 님께서 골라주시면 좋겠네요.”

“아… 네. 그럼 제가 알아서… 와인은 드실 건가요?”

“한 잔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네.”

‘그렇게 엄청 고민 안 해도 돼.’

한참이나 고민한 녀석이 꺼내 든 것은 가장 무난한 코스 만찬이다.

“유명한 사람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라고 하더라고요. 본래는 화 속성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모험가였는데… 은퇴하고 연 식당이라고… 마리엔이 알려준 곳이에요.”

“마리엔이라면… 기적의 사제님 말씀이군요.”

“네.”

“그러고 보니 파티는 지금 어떻게….”

“던전을 찾고 있어요.”

“던전 말입니까?”

“네.”

‘궁금하기는 하네.’

“조금 갑작스럽네요. 갑자기 던전 탐색을 하신다고 하시니….”

“역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야… 보통 성검용사 파티 정도가 되면 던전 찾기에 열을 올리지 않으니까. 보통 발견된 던전의 공략권을 매입하거나 의뢰가 들어오는 공략에 참여하는 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잖아. 너도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던전 찾기는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다. 아주 우연히 발견되기도 하고, 주변 지역의 이상 현상을 통해 찾을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는 과정을 거친다.

라파엘이 운용하는 파티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다. 파티가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전문추적꾼을 고용하는 게 더 싸게 먹힌다는 거지.

후자의 방법을 모를 리가 없는 녀석들이 직접 자신들이 던전을 찾는 이유는 하나.

‘냄새가 나나 본데.’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혹시….”

“네. 사실 보안이 걸려 있기는 하지만 형이라면 말씀드릴 수 있어요.”

착하네. 우리 파엘이.

“잠시만요. 말 듣기 전에 잠깐 음식 사진 좀 찍고 들어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형.”

마침 타이밍 좋게 식사도 나오네. 이것도 베니고어그램에 곧바로 업로드, ‘정하얀 님이 위 사진을 좋아합니다’라는 메시지를 확인한 이후에는 곧바로 손거울을 닫았다.

“사실은 린델 근처에서 이상한 몬스터를 발견했어요.”

“…….”

“정말로 특이한 몬스터요. 일반적인 도감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몬스터였어요. 경황이 없어서 촬영하지도 못했고요.”

“사체는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그것도 사라져서….”

“네?”

“정확히 말씀드리면 마리엔이 손을 댄 이후에 빛 가루가 되면서 사라졌어요. 어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특이하게도 신성력을 사용하는 몬스터였거든요.”

“신성력 말이에요?”

“네. 틀림없이 신성력 이었어요. 저도 그렇고, 마리엔도 그렇게 느꼈으니까요. 처음에는 그저 변종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네.”

“마리엔이 꿈을 꾸기 시작해서….”

“…….”

“누군가가 말을 거는 꿈이래요.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도와주세요. 여기서 꺼내주세요… 라고… 말하는 꿈이요.”

“…….”

“…….”

‘확실히 전조라고 할 만하네.’

이 정도라면 이 파티가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정황도 확실했고, 신성력을 사용한다는 몬스터의 레벨이 높았다면 고등급의 던전이라는 확신이 섰을 테니까.

사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생각나는 던전이 있기야 있다. 물론 말해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대륙 관리자들, 그중에서도 나와 지혜 누나는 대륙의 던전 목록도 가지고 있었지만….

‘유포할 수 없으니까 문제지.’

라파엘이 찾고 있는 던전은 아마도….

‘두더지 성녀….’

베니고어가 직접 업데이트시킨 던전 이었고 교황청에 지하에 숨겨져 있는 던전이었다.

[등급 외 던전]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

자연스럽게 떠오른 던전의 정보를 확인하며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작지만…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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