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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00화 (89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900화

성검용사와 명예추기경 (3)

외신 아이들은 이미 영웅급 이상의 모험가로 성장을 마친 지 오래였다.

케루빔과 쓰로누스 같은 경우에는 전설 등급 판정을 받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고, 도미니온스는 다방면에서 영특함을 드러내고는 했다.

지혜 누나가 직접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보니 전체적으로는 위 아이들보다 조금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

직접적으로는 케루빔이 파티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외신 아이들의 모든 결정에는 도미니온스가 많이 관여하는 편이었으니까.

가장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역시나 세라핌이다. 하지만 그 세라핌도 유능하다면 유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 편이니 오죽할까.

기본적으로 종족이 다르다 보니 성장도 빠르고 학습 능력도 빠르다. 간혹 어린아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아이들마다 차이점은 있다.

‘케루빔 얘는 다 컸어.’

보통 첫째가 가장 철이 빨리 드는 것처럼 케루빔도 그런 거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세라핌의 일 때문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간에 이쪽에 도움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

기본적으로 창조자의 사랑을 갈구하게 설계됐음에도 불구하고 케루빔은 자제력이 높은 편이다.

조용히 내려앉은 눈으로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

반면 쓰로누스는 숨기지 못하는 쪽, 숨기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쪽이다.

몸가짐은 케루빔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눈은 다르다.

조금은 상기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녀석의 눈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느껴진다.

자신을 봐달라고, 말을 건네달라고, 칭찬해 달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전생의 기억은 사라졌지만 영혼이 뒤바뀐 것은 아니니 영향을 받고 있는 거겠지.

의외로 가장 적극적인 것은 도미니온스.

‘근데 얘는 일부러 이러는 것 같아.’

지혜 누나를 닮아서 그런지 도통 속을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지 사랑받을 수 있는지 잘 알고 행동하는 것처럼 느껴져.

물론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귀엽게 보이지, 뭐. 살짝 부풀어진 볼은 한번 꼬집어보고 싶자너. 세라핌이랑 너무 달라.

마지막으로 시선이 머문 곳은 백금발의 머리를 하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다.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구분이 안 갈 것 같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하얀이처럼 말을 더듬는 건 귀여웠지만 확실히 정이 가지는 않는다.

언제나 위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새, 잠깐 시선을 마주치자 억지로 웃음을 보이고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시선을 거둬 버렸다.

“이 아이들이 말입니까?”

“네. 믿을 만한 아이들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슬쩍 눈치를 주자 케루빔의 등에서 한 쌍의 날개가 뻗어 나온다.

다른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 작은 날개를 편 아이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잠깐이지만 어두운 곳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아….”

할 말을 잃은 채로 조용히 손을 모으고 있는 마리엔을 보면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천… 천사님들이셨군요. 어, 어떻게… 인사를….”

“그렇게 딱딱하게 대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은 평범한 아이들이니까요.”

“그렇지만….”

“마리엔. 일어나라. 아직 이 아이들의 존재가 대륙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라.”

이주혁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기적의 사제가 살짝 몸을 일으켰다.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그렇게 생각할 여지는 있다.

희생과 부활의 신께서 아기 천사들의 운명을 가엾이 여겨 인간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자라나게 하고 싶어 하신다는 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 맞지?

“아무래도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린 모양이군.”

사냥개 이주혁다운 전형적인 대사. 천사들이 모습을 드러낼 정도의 일이 터진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이런 오해는 조금 풀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항상 그렇듯 여지는 조금 준 다음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여러 가지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배우는 것에 쏟고 있다 보니 밖으로 나올 기회가 흔하지 않아서… 물론 제가 생각하는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역시나… 라파엘. 이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파티의 방침은 변화가 없어.”

“너답군.”

‘알아서 괜찮은 오해를 해주기는 하네.’

따지고 보면 오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물론 나도 대륙의 위기가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등급 외 던전 하나 때문에 사람들의 일상이 무너질 거라는 것도 너무 큰 억측이기도 하고….

비슷한 예였던 균열박물관은 꽤 위험하기도 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니까.

기본적으로 대륙이 갖추고 있는 전력 자체가 다르다는 거지. 던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떤 공략 방식이 주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현시점에서 공략 불가능한 던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한번 알아봐야 될 것 같기는 해.’

성검 파티로 부족하면 파란 길드원들도 투입하면 되는 거고….

일단은 교국이 던전에 영향을 받기 전에 찾아내는 게 첫 번째. 신성력에 민감하고, 시스템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형?”

“파티의 리더는 라파엘 님입니다만….”

“아….”

“굳이 제가 조언을 드리자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네.”

“일단 여유를 가집시다. 오늘은 시간이 많이 지나기도 했고 일은 내일부터 해도 상관없으니까요.”

다들 너무 뻣뻣해.

“럼주라도 한 잔씩들 하면서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아… 네!”

갑작스레 가족 캠핑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기는 한다.

많은 인원이 모닥불에 둘러앉은 것은 순식간, 당연하지만 왼쪽 옆자리에는 정하얀이 자리를 잡는다. 보호자 자격으로 왔지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오, 오빠… 여, 여기요.”

정하얀의 옆에는 한소라가, 한소라의 옆에는 세라핌이 앉아 있다. 세라핌의 옆에는 케루빔이 앉았고… 내 오른쪽에는 쓰로누스가 앉았네.

아까부터 계속 눈치를 보던 녀석이었는데 결국에는 의미 없는 자리 쟁탈전에서 승리한 모양, 그 옆에는 도미니온스가 자리했는데 아무래도 옆자리를 빼앗긴 게 짜증 난 것처럼 보인다.

맞은편에는 라파엘이 앉아 있었지만 인원수가 많다 보니 아무래도 거리감이 있다.

그게 조금은 아쉬웠는지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는 소리가 들리고, 조용히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적당히 예전 이야기도 하고….

“이, 이,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나네요. 그렇죠. 오빠….”

“응. 그렇네.”

아까부터 계속하고 있던 생각이었어.

“그때는… 텐, 텐트가 엄청 좁았었는데… 아! 저, 저 이번에 소라랑 같이 몰에 다녀왔었거든요.”

“그래?”

“오, 오빠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선물도 사 왔는데… 소, 소라야 가져왔어?”

“네. 물론이죠.”

당연하지만 제일 신난 것은 정하얀이다. 최근에는 함께 시간을 보낸 지 오래되기도 했고 이럴 기회가 없기는 없었으니까.

솔직히 나도 즐겁다. 이렇게 외신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정말로 평범한 가족 같은 느낌도 들고….

잘 생각하지는 않지만 간만에 율하도 같이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어. 아니, 걔는 이런 거 싫어하려나.

“최근에는 이럴 기회가 자주 없었네. 이런저런 일 때문에….”

“괜, 괜찮아요… 어, 어쩔 수 없으니까. 일도 있었고 저도 바, 바빴잖아요. 그, 그리고 말이에요. 아! 이, 이거 드셔보세요.”

“하얀이도.”

“네. 네….”

“옛날처럼 다 같이 모험 다니고 싶, 싶어요. 다, 다들 바쁘니까. 오, 오빠랑 저랑 소, 소라만 셋이 해서… 그, 마, 마력 스팟만 어떻게… 정리한 다음에는….”

“정하얀 님. 저… 세라도… 같이 가는 게 어떠세요?”

“아! 으… 응. 세… 세라도 같이….”

글쎄….

괜스레 쓰로누스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은근슬쩍 몸을 밀착시키는 게 조금 더 쓰다듬어 달라는 표현처럼 느껴졌다.

“아버지….”

“응?”

“아무것도 아닙니다….”

뭐 적당히 해줄 말 없나.

“요즘 훈련은 조금 어떠니? 그러고 보니 저번 퀘스트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구나. 일지는 전부 읽었는데….”

“스승님이 공화국으로 가셔서 차희라 님에게 훈련받고 있습니다.”

“고생 많았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어른스러운 말을 내뱉으려고 하는 것은 칭찬받고 싶다는 신호다. 은근히 속보여, 얘도.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지만 미국 드라마에서 자식들이 아버지한테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니까 효과가 좋더라고.

조용히 눈을 마주쳐 주면서 손을 꽉 잡아주고. 진심을 담아서 말이야.

“네가 자랑스럽구나.”

이거.

“사랑한단다. 쓰로누스.”

요것도.

“저, 저도… 사랑해요. 아버지.”

확실히 사랑을 담아 키우고 있자너. 우리 첫째랑 둘째도 부를 걸 그랬어.

“저는요? 아버지. 저는요?”

멀찍이 떨어져 있는 도미니온스의 머리도 한번 쓰다듬어 준 이후에 똑같은 말을 해주니 배시시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정도면 단란한 가족을 잘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성검 용사 파티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 훈훈한 웃음을 보내고 있는 중.

라파엘도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

“네. 라파엘 님.”

“그럼 일정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의 훈련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마 이 부근에서 계속 머물 것 같은데….”

“조금 귀찮기는 하겠지만 린델….”

“만약 괜찮으면 제가 남는 시간 동안 아이들을 조금 봐줄 수 있을까요?”

나쁘지 않겠네. 다른 얘들이면 몰라도 얘는 확실히 믿을 수 있으니까.

라파엘 역시 초월자에 반열에 올라간 만큼 잠깐은 녀석에게 배워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힘을 운용하는 방법이나, 라파엘은 회색 마법에도 능통한 편이니까.

플러스가 됐으면 플러스가 됐지… 아마 차희라나 이지혜라면 무조건 시키라고 하지 않을까.

배울 수 있는 건 전부 배워오라고, 나도 걔네들과 같은 생각이야. 사람이건 천사건 배울 수 있을 때 배워 놔야지.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정말인가요?”

“네. 내일부터 바빠지겠군요. 던전도 찾아야 하고, 훈련도… 아! 저도 가끔은 훈련에 참관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네. 물론이에요. 형.”

하하 호호 분위기 좋아.

“그렇다면 나도 함께하지. 괜찮겠습니까? 명예추기경님.”

그래. 너도 괜찮겠네. 주혁아. 케루빔이랑 잘 어울리겠어.

“네.”

이제 조금 분위기가 편해진 것 같다. 이쪽 그룹과 저쪽 그룹이 조금 벽이 쳐져 있었던 전과는 다르게 잘 섞이고 있는 중.

세라핌은 여전히 한소라에게 푹 안겨 있었지만 케루빔은 이주혁과 대화를 나눈다.

쓰로누스와 도미니온스도 파티와 어울려 이런저런 질문을 주고받고 있고, 정하얀도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이들은 재우는 게 좋겠는데….”

“아, 제가 데리고 갈게요. 부 길드 마스터.”

시간이 너무 늦으니 아이들도 보내고, 어른들끼리 이야기 나누면서. 사진도 찍고 베니고어그램에 업로드 좀 하고, 시간은 지나고 지나 어느덧 새벽 3시.

누구나 그렇듯 감성적으로 변해 대륙에 대한 이야기와 서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새벽 감성은 명예추기경도 취하게 해.

우웅.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손거울이 울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자연스럽게 손거울을 열다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술 한 잔 마셨습니다….]

라는 말로 시작되는 장문의 게시글.

‘있을 때 잘해야지.’

김현성의 첫 번째 게시글이었다.

‘진짜 구질구질하다. 구질구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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