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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02화 (89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902화

세라 (2)

“이, 이, 이게 뭐하는 짓이야!”

정하얀이 화를 내는 걸 오랜만에 듣는 것 같다.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목소리에 주변이 얼음장처럼 얼어붙는 느낌, 특히나 라파엘의 파티가 많이 당황한 것처럼 보인다.

한소라야 정하얀이 화내는 걸 자주 봐 왔지만 성검용사 파티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파티 내의 마법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항상 고개를 푹 숙이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쑥스러워하던 모습 대신 자리 잡은 것은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세라핌을 노려보는 눈.

저 마법사들은 본인이 본 게 진짜가 맞는지 확인하고 있는 것만 같다.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내가 크게 노해 소리를 지르는 것과 비슷하게 보였을 수도 있겠지, 뭐.

마법사들의 우상이 감정적인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는 상황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을 테니 저들의 저런 표정들이 이해가 간다.

“지금 뭐, 뭐하는 짓이냐구!”

다시 한번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히 나도 정하얀이 이렇게까지 화를 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헤프닝으로 치부할 수 있는 작은 사건이었지만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일이 모두 끝난 이후에 유독 연약했던 명예추기경의 안전에 주의를 기울인 건 김현성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사실 정하얀이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얘는 근데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닌 것 같아.’

사실 저 꼬맹이가 던진 칼이 아파봤자 얼마나 아프겠어. 실제로 다친 것도 아니고… 헤프닝이라면 헤프닝이지….

“아, 아… 아….”

“말… 말 똑바로 해야지….”

당연하지만 정하얀의 분노를 정통으로 마주한 세라핌은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 원래 제대로 자기주장을 내세울 줄 모르는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정말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랑받는 걸 갈구하는 기벽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으… 죄, 죄, 죄… 죄송….”

“이이이익!”

커다란 눈에 눈물이 가득 들어서는 것은 순식간, 그 와중에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울면 사태가 악화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지 않을 상황을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짜… 짜증 나… 진짜 짜증 나… 흐윽….”

‘넌 또 왜 울어.’

“히끅… 짜증 나아… 히끅… 진짜 쟤는 진짜 바보 같아….”

“…….”

“히끅… 그, 그것도 제대로 못 하구… 오, 오빠한테 사과해… 잘못했다고 해!”

“죄… 죄송… 합니다… 아버지….”

“이… 이리 와서 이야기해!”

“죄송합니다… 아버지….”

옛날 일을 떠올리면 정하얀과 함께 세라핌을 몰아붙이거나 더 하라고 응원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 하지만 보는 눈이 많은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엄연히 실수로 일어난 일이었고 이런 건 보기 좋게 눈감아주는 게 성자로서, 아니, 아버지로서 해야 할 행동이었으니까. 맞나?

세라핌이 얼어붙자 케루빔, 쓰로누스, 도미니온스까지 얼어붙어 버렸다. 적절히 분위기도 환기시켜 줘야지.

“괜찮아. 하얀아. 이리와, 세라.”

“…….”

“무슨 일인가요? 세라. 왜 우는 거야? 정하얀 님? 정하얀 님은 또 왜….”

그래, 소라야. 너 잘 왔다.

“네… 네 입으로 직접 설명해… 말하라구!”

하얀이 좀 말려줘.

“제, 제… 제가… 검, 검을 아, 아버지한테… 실… 실수로 놓치고… 던져서… 흐윽… 끄윽….”

마음을 기댈 곳이 생기면 울음이 터져 나오게 마련, 한소라를 마주한 세라핌의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대환장 파티.

중간에 낀 한소라도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항상 그녀에게 SOS를 보냈던 건 나였는데. 이제는 그녀가 내게 SOS를 보내고 있는 중.

표정으로 유추해 보면 세라핌을 두둔해 주고 싶은 것 같았지만 그녀가 직접적으로 세라를 실드쳤을 때의 부작용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척 보면 척이지. 우리가 이런 거 한두 번 해봐. 한소라가 여기서 세라핌 측의 변호인이 되면 얘 분노가 타오르면 타올랐지 꺼지지는 않을 거야.

나와는 다르게 한소라는 제법 세라핌에게 정이 많은 편이니까. 세라핌이 처해 있는 상황을 더 걱정해 주고 있는 거겠지.

사실 세라핌을 자식처럼 키운 것도 한소라였으니 녀석에게 정이 없을 리가 없다. 표정부터 안쓰러운 표정이었고, 세라핌을 이 지옥 같은 시간에서 최대한 빨리 해방시켜 주고 싶어 보인다.

나 역시 점점 이상해지고 있는 분위기에 마음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

“짜증 나… 진짜 짜증 난다구… 왜 쟤는….”

“죄송합니다… 정하얀 어머님. 제가….”

“너, 너는… 어디서 나서려고 그러니? 버… 버릇없게! 버릇없어! 어…그, 그러니까… 어른이 말하는데… 버릇없게!”

케루빔도 바로 입 다물자너… 이게 어른의 힘이기는 해… 하얀이가 어른의 힘을 잘 활용했네….

“차, 차희라가… 그, 그, 그렇게 가르쳤니?”

순식간에 일어난 불꽃같은 패드립.

“그건….”

“입… 입 다물어! 입 다물으라구… 히끅…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하얀아. 괜찮으니까. 일단 이리와. 조금 진정하고….”

“저… 잠깐 볼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형.”

눈치 빨라서 좋아. 우리 파엘이. 기왕 가는 김에 가족드라마 시청하고 있는 친구들도 좀 데려가. 옳지 잘한다. 그래.

결국 어정쩡하게 남은 건 나와 한소라, 정하얀, 세라핌이 전부다.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다른 아이들은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표정으로 눈치를 보고 있었고, 정하얀은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세라핌을 노려보고 있다.

방금 자리를 떠난 성검용사 파티 같은 경우에는 정하얀을 바라보며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하얀이 이상한 게 아니다.

얘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다.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범인은 나야.’

시바 내가 범인이기는 해.

너무 간단히 답이 나와 잘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이 범인은 나라는 확신이 든다.

세라핌에 대한 지금까지의 내 태도가 문제. 사실 정하얀 앞에서 세라핌을 두둔하거나 애정을 보인 적도 없다.

정하얀도 세라핌에게 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다지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겠지만, 아마 정하얀에게는 일련의 상황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유독 뒤처졌던 세라핌이 모자라 보일 수도 있고… 매번 쓰로누스나 케루빔에게만 보고를 받거나 녀석들에게 애정표현을 하는 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방금 일어난 일이 원흉이라기보다는 남모르게 쌓여왔던 스트레스가 터진 거라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아무래도 별것 아닌 사건으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부자연스러웠으니까.

‘정이 있기는 한가 보네.’

정말로 세라핌에게 관심이 없었다면 이런 짜증을 부리지도 않았을 테니….

본인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정말로 아무 관심이 없었다면 녀석이 무슨 행동을 하든지, 어떤 평가를 받는지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정하얀은 세라핌도 내게 사랑받기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 뿐이지. 그야 정하얀은 사회성이 없기로 유명하고, 특히나 이런 부분에서는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을 테니까.

나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나도 정하얀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유년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었지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를 연기했던 나와는 다르게….

‘얘는 그런 것도 없었지.’

나도 율하가 있으니까 으쌰으쌰 한 거지, 부모님, 언니들한테도 버림받은 애가 뭘 할 수 있었겠어. 그냥 죽어 있듯이 지내는 게 한계였겠지.

상황을 개선시킬 의지도 없었을 거고, 그저 눈에 띄지 않으려고 웅크리고 있지 않았을까.

당연하지만 이런 관계에 대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었을 리도 만무하다.

어렴풋이 알고 있을지는 몰라도 본인에게 대입시킬 생각을 하기 힘들다든가, 생각은 하고 있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고, 뭐가 정답인지 본인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경험에서 많은 걸 배우니까. 비상식적일 정도로 한곳에 특출 난 하얀이의 경우에는 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나도 잘 몰라서. 시바.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될지 모르겠네.’

일단 여기부터 수습하고 보자.

“괜찮아. 하얀아. 다치지도 않았고… 세라가 실수한 것뿐이야. 일반적인 상황도 아니라 훈련 중에 일어난 실수고, 실제로도 간혹 일어나는 일이니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돼. 세라도 기운 내고….”

“얘, 얘는 매일… 실수한단 말이에요. 매일매일 질리지도 않고… 숙, 숙제도 제대로 못 하고… 마법도… 검, 검 쓰는 법도 몰라.”

‘쟤 상처받겠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아무것도 못 한다구요. 저… 저번에 퀘스트 일지도 읽었는데… 세라는 실수만 했단 말이에요. 아무것도 안 하고… 위험했단 말이에요. 진, 진짜 바보 같아… 히끅….”

‘그것도 읽었어?’

“아이들마다 차이가 있는 거니까.”

“네. 맞, 맞아요. 정하얀 님. 세라도 열심히 하고 있는 걸요. 항상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지원사격 좋아. 소라야. 너도 필사적이구나.

“언젠가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

“…….”

“그렇지 세라야? 잘할 수 있지? 이모랑 약속할까?”

“네… 네… 흐윽… 열심히 할 수 있어요.”

“열… 열심히만 하면… 뭐, 뭐가 달라지는데… 저번에도 열심히 한다고 말했으면서… 매일매일 열심히 한다고 말했으면서… 하나도 안 달라졌잖아. 결국에는 매일 똑, 똑같잖아. 의미 없는 약속이야….”

“…….”

“결과가 있어야 된, 된다고… 그래야 돼… 노, 노력만 하면 안 된다구… 왜냐면… 왜, 왜냐면….”

오빠는 유능한 사람을 좋아하니까?

“유능해야… 유능해야지….”

사랑받을 수 있다고?

“넌… 넌… 너무 답답해… 나를 너무 답답하게 한다구….”

“…….”

둘 다 상처만 받자너….

솔직히 나도 성격이 이상하기는 하다는 생각이 들기야 든다. 정하얀은 몰라도 세라핌이 저러고 있는 건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애초에 함께 내려오지 않을 생각이었고, 케루빔이 녀석을 데리고 왔을 때부터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몰라. 케루빔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그런 일을 저질렀겠지.

슬쩍 녀석을 바라보자 애매하게 시선 처리를 하는 놈이 시야에 비친다. 정하얀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괜, 괜히… 세라를 달라고 했나 봐… 다른 아이들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

“…….”

물론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세라핌에게도 그렇게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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