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904화
세라 (4)
“세라핌, 도미니온스, 쓰로누스, 그리고 나.”
“…….”
“세라핌, 도미니온스, 쓰로누스, 그리고 나….”
세라핌, 도미니온스, 쓰로누스, 그리고 나…. 그 말은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난 이래로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던 말이었다.
언제나, 언제나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말.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왜인지는 자신조차도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은 그 말을 계속해서 되새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불안한 일이라도 있을 때면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것도 이제는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방금처럼 말이다.
“도미. 세라 위치 추적돼?”
“글쎄. 평소에는 그렇게 굼뜨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빠른지 모르겠네. 탐지마법에도 안 걸리는 것 같아. 역시… 충격이 컸던 걸까.”
“그야….”
입 밖으로 내뱉으려는 말을 다시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한테 버림받았으니까.’
아니면….
‘미움받았으니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자신들은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서 태어난 이들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부터 그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아, 우리는 이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거구나. 아버지를 위해서 태어난 거구나.
그 첫 번째 순간은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많은 감정을 떠올리게 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게 만들 정도였다.
우리가 축복받았음을 느낄 수 있었고, 살아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자상한 손길과 따뜻한 목소리는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은 기쁨을 느끼게 했다.
아주 단순한 표현이었지만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족감을 느끼게 했다.
물론 행복한 감정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자신의 손을 꽉 붙들고 있는 세라를 본 아버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것이 보였었으니까.
아버지는 세라의 머리를 쓰다듬지 않았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다정한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볼 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치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라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분명히 당시의 아버지는 무언가 무서운 생각을 하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주 앙큼한 짓을 했구나. 케루빔. 너다워.’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일단 오늘은 들어가서 쉬려무나. 네 처우에 대해서 생각 좀 해봐야 할 것 같으니까.’
‘…….’
‘태어난 것을 환영한다.’
그때 느꼈던 것은 공포였다.
아버지의 눈에 들어서 있었던 작은 분노를 느꼈던 순간은 앞으로도 영영 잊지 못하겠지.
미움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그 어떤 것보다 더 무서웠으니까.
이후의 아버지는 그런 표정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인해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에 정말로 버림받는다면….
“새로 태어난 이유 따위는 없는 거야.”
“뭐?”
“아버지한테, 어머니한테 버림받는 걸 상상할 수 있겠어? 도미?”
“끔…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케루.”
“…….”
“차…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세라핌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분명히.”
“아냐. 아직 버림받은 건 아니야. 아버지가 세라를 버린다는 말은 한 적이 없잖아. 우리 어머니가 그랬어. 정하얀 어머니는 간혹 마음에 없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고… 가끔 지나치게 흥분하니까. 그럴 때면 피하는 게 좋다고… 오늘은 조금 평소 같지 않으셨잖아. 분명히 그런 날이었던 게 아닐까.”
“세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건 몰라… 하지만….”
“만약 네가 어머니에게 같은 소리를 들으면 어떨 것 같아.”
“우리 어머니는… 엄하시기는 하지만….”
“만약에.”
“슬… 슬프겠지. 단순히 슬프다는 것 정도로 끝나지 않을지도… 그래도 아버지가 세라를 데려오라고 했으니까. 분명히 다른 조치를 취해 주시지 않을까… 걱정하고 계시는 거잖아. 아버지는 세라를.”
“아버지는 세라를 미워하셔.”
“뭐?”
“세라가 조금 성장이 느리거나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야. 아버지는 세라를 미워하시는 것 같아.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세라와 한 번도 둘이 만난 적이 없어. 머리를 쓰다듬어 준 적도 없고,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신 적도 없어. 눈을 마주쳐주신 적도 없고. 파란 길드에 있을 때도 항상 쓰로만 부르신다고 하셨어. 세라는 아버지 집무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 세라의 훈련참관도 한 번도 가신 적이 없다고 했어. 대화를 나눈 적도….”
“…….”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아마 평생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라는 아버지랑 같이 살잖아.”
“…….”
“그런데 왜….”
“이유는 나도 몰라. 어머니도 말씀을 해주신 적이 없거든. 나도 아버지한테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
“…….”
“선을 넘지 말라고 하셨어.”
“그리고….”
“그게 끝이야. 어쩌면 아버지는 세라를 원하지 않으셨을지도 몰라. 세라는 태어났을 때부터 나랑 같이 있었으니까.”
점점 더 표정이 심각해지는 도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괜스레 분위기가 무거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아’라고 말했던 도미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세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자신은 세라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라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었을까.
정말로 지금 세라가 어떤 기분인지, 감히 예상할 수 있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무섭고 아픈데… 세라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겠지. 분명히 그럴 거야.
점점 더 발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호흡은 거칠어지지 않았지만 숨을 쉬기가 힘들어진다.
“세라!”
“세… 세라!”
“세라핌 어디 있어!”
“세라! 어디에 있어?”
“아… 아직도 위치 확인 안 돼?”
“잠깐만… 한번 찾아볼게.”
“이럴 게 아니라 흩어지자.”
“응. 바로 연락할게.”
길게 펼쳐져 있는 울창한 숲속에서 작은 빛을 발견한 것은 아주 약간의 시간이 흐른 직후였다.
조용히 도미에게 연락을 한 이후에 천천히 다가서자 작게 일렁이는 빛이 시야에 비친다.
커다란 나무 속에 있는 작은 굴, 나무를 한 바퀴 돌자 거기에서 웅크리고 있는 세라가 눈에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계속해서 떨리는 어깨를 보니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말을 걸어보는 게 좋을까. 내가 여기에 있는 건 눈치챈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세라.”
“…….”
“괜찮아?”
“…….”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 아닐 거야. 너무 상심하지 마. 세라.”
“…….”
“…….”
“정, 정, 정말로 그래?”
“응. 우리 어머니도 그랬어. 정하얀 어머니는 세라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어.”
“정말로?”
“응.”
“아버지도 걱정하고 계셔.”
“…….”
“돌아가자.”
“…….”
“여기 있는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같이 아버지께 말씀드려보자. 정하얀 어머니한테도 사과드리고…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고 진지하게 말씀드리면 용서해 주실지도 몰라.”
“그, 그렇게… 그렇게 하면… 괜찮아질까?”
“내가 잘 말씀드려볼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바로 그때였다.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들아.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 저절로 몸이 떨려오는 것만 같다.
-오늘은 너희들의 아버지가 아닌 창조주로서 한마디 하고 싶구나.
“네… 네. 아버지.”
“네….”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감사합니다.”
“감, 감, 감사합니다.”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기 위해 이 땅 위에 너희들을 내렸다. 너희들에게 많은 것을 경험시키고자 했고, 너희들이 지난 생에 얻지 못했던 것들을 선물해 주고자 했지. 너희들을 만들기 위해 나 스스로를 희생한 것 역시 모두가 너희들을 위해서였단다. 내가 사랑하는 너희들이 사랑받게 하기 위해, 나는 많은 것을 포기했고 많은 책임을 지게 되었지.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니다. 나의 아이들아. 그저 내가 얼마나 너희들을 사랑하는지를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뿐이니….
“아… 아아… 저희가 어떻게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아, 아버지… 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세라핌도 마찬가지다. 오해였던 거야. 아버지가 우리들을….
-하지만 나는 너희들만 사랑할 수가 없단다. 사랑에 우선순위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너희 어머니들을 더욱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내 입장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구나. 그녀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하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이들이다. 그래, 쓰로누스, 네 스승도 마찬가지지. 그들은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내 사람들이다.
“…….”
“…….”
-그렇기 때문에 고민할 수밖에 없구나. 내가 너희들에게 어머니를 내린 것은… 너희들이 그녀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해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들이 너희들로 인해 행복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란다. 물론 몇몇은 너희들로 인해 행복해진 것 같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이도 있는 것 같더구나. 나는 너희들이 어머니들을 불행하게 만들기를 원하지 않는다. 세라핌. 네게는 미안하지만 내게는 선택권이 없을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너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을 것….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 제, 제발 부탁드립니다. 세라핌을 용서해 주세요. 세라핌의 죄는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 그러니 세라핌은….”
“아… 아, 아….”
-네 형제를 사랑하는 네 마음은 언제나 내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구나. 케루빔.
“안, 안 돼요… 흐윽… 아버지…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발!”
-너는 항상 네 형제들을 위해 희생하는구나.
“제가 짊어지겠습니다. 세라의 죄는 제가 짊어질게요.”
-나는 차희라가 슬퍼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네가 짊어질 죄는 세라의 죄가 아니다.
‘아… 안 돼.’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지만 답을 찾을 수 없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머니. 만약 정말로 아버지가 세라를 저버리신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머니. 저는….
‘네 마음대로 해. 퍼랭아.’
세라핌, 도미니온스, 쓰로누스, 그리고 나.
‘네 마음대로 살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너 꼴리는 대로 하고 살란 말이야. 그게 행복한 거야. 유치하고 답 없는 것처럼 들릴지도 몰라도. 원래 유치하게 살아야 재미있는 거라니까. 조용히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그러면 답이 나와. 퍼랭아. 넌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네가 하고 싶은 걸 전부 할 수 있어.’
세라핌, 도미니온스, 쓰로누스, 그리고 나.
‘최소한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단다. 귀여운 퍼랭아. 너는 나랑 동류니까. 네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렇게 될 거야.’
세라핌, 도미니온스, 쓰로누스, 그리고 나….
‘그렇지?’
“도망쳐. 세라핌….”
“뭐…. 뭐?”
“여기서. 도망쳐.”
“어….”
“빨리!”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용서하세요. 아버지. 제발.”
쓰로누스의 검이 목에 겨눠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움직이지 마. 케루. 세라 너도 마찬가지야.”
“쓰로누스?”
“…….”
“…….”
“너. 방금 아버지를 거역하려고 했지.”
“…….”
“내 말에 대답해. 배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