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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09화 (900/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909화

세라 (9)

-정말로 그럴까?

-…….

-아버지가 기뻐해 주실까?

-분, 분명히 기뻐해 주, 주실 거야. 우, 우리들을 용서해 주실지도 몰라. 쓰, 쓰, 쓰로랑 도미도 잘 말해준다고 했으니까. 분명히… 끄윽…. 어머니도 기, 기뻐해 주실 거고… 다시 나를 찾아 주실지도 몰… 몰라.

‘절박해 보이기는 하네.’

이게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들기는 하고. 조금 새롭게 느껴지기도 해.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아지들이 주인과 떨어졌을 때 불안 증상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상태로 들어갔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호기롭게 내 뜻을 거역하기는 했지만 그게 비정상적인 행동이라는 걸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아주 정상적인 반응.

하루하고도 몇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녀석들의 정신이 많이 지친 것이 보인다.

어떻게든 서로에게 의지해서 버텨보려고 했지만 그것 역시 한계.

때마침 녀석들이 도피처로 찾을 수 있을 만한 게 나타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세라핌이야 항상 도피처를 찾는 성격이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이해가 가지만 매번 냉정한 판단을 하던 케루빔마저 저러는 것을 보면 확실히 몰리기는….

‘몰린 것 같자너.’

그래도 케루빔은….

-용서해 주시지 않을 거야.

그나마 합리적인 판단을 하나요.

-그래도 한 번쯤 생각을 다시 해주실지도 몰라. 그렇겠지? 세라?

-응. 그, 그래… 케루 어머니도 도와주시면….

-어머니는….

차희라를 떠올리자 눈시울을 붉히는 녀석, 결국에는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녀석들이 새롭게 나타난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냐는 것. 4인 파티라면 몰라도 둘이서는 불가능하다는 개인적인 판단이 선다.

아니, 4인 파티로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새롭게 나타난 몬스터는 대충 보기에도 제법 강해 보였으니까.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사냥 준비를 마친 녀석들이 앞으로 뛰어나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 새끼 또 이러네. 이미 다 말 끝났는데.

“형….”

“…….”

“형. 정말로… 함께 가실 건가요?”

“하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파엘 님.”

“물론, 형이 상처 입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래도… 걱정이 돼서… 혹시나 제가 실수하면….”

“저도 한때는 모험가였던 사람입니다. 라파엘 님. 던전 공략에도 많이 참여했었고, 숲에서 야영을 한 경험도 적지 않아요. 최소한 방해는 되지 않을 겁니다.”

“그, 그런 모습으로 그렇게 말씀하셔도….”

뭐 이 새끼야?

“죄송해요. 형. 제가 말실수를… 형을 모욕하려고 한 게 아니라….”

“아닙니다. 라파엘 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럼 원정이 끝날 때까지만 제 말을 따라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확실히 라파엘이 많이 크기는 했어. 그렇게나 수동적이었는데. 저런 말을 할 정도라면 제법 자신감도 있는 거겠지.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래 이 건은 라파엘 님 파티의 소관이니까요. 아. 그리고 이야기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도에도 비슷한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교국 내에 있는 모험가들의 귀에도 이번 던전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는 것 같아서….”

“네. 알고 있어요. 형.”

“만약 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보호 신청을 하시는 게….”

“아니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사실 형이랑 뭔가를 같이 준비한다는 게 기쁜 거지… 다른 건 부수적인 목표였거든요.”

사람 감동시키는 것도 참 잘해. 호구의 표본이야.

“그리고, 형이 도와주신다고 하셨으니까요. 저희가 늦을 리가 없죠.”

충분히 늦고 있는 것 같기는 해.

다른 건 몰라도 이 행군 속도는 마치 거북이처럼 느껴진다.

물론 일반 파티에 비하면 꽤 빠른 속도로 숲에 진입하고 있었지만 지나치게 안전을 추구하는 것이 문제.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야 하는 건 맞지만 이 새끼는 정말로 돌다리를 하나하나 다 두드려 가면서 건너고 있다.

앞장서 있는 파티의 레인저들은 커피 한 잔 마셔도 시간이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 오죽하면 조혜진이 답답해하겠는가.

‘쟤도 충분히 에프엠인데….’

정도가 너무 심해.

기본적인 진영의 구성은 원정에 참여한 외부인들을 모조리 안에 때려 박은 방식이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안에서는 바깥의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을 정도.

파티 내에 괜찮은 소환마법사가 있었던 모양인지 마력으로 만들어진 병사들이 함께하는 것은 희귀한 광경이라 할 만했다.

그만큼 진영 자체는 탄탄하고 안정적이다.

몬스터를 상대로도, 같은 인간을 상대로도 단단한 벽처럼 보일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정하얀은 컨디션 문제로 워프를 사용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원정에는 참여하고 싶었는지 한소라와 함께 걷고 있다.

쓰로누스와 도미니온스, 조혜진까지 방진의 일원으로 중요인사라도 호위하듯 진영을 유지하고 있는 중.

그 와중에 라파엘 이 새끼는 지가 달라졌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는지 쓸데없는 지시를 내리거나 무거운 표정으로 상황을 전해 듣고 있었다.

“레인저들에게서 보고는 아직입니까?”

라든지,

“주변탐색을 조금 더 철저히 하도록 해주세요. 세 번째가 나타났다면 네 번째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가장 최우선은 형의 안전이에요.”

라든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사냥 준비는… 어때? 다른 변수는 확인해 봤어? 이야기가 나오는 대로 바로 보고해 줘. 어떤 타입인지만이라도 레인저들을 먼저 투입해 알아볼 수 없을까?”

자신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주혁과 마리엔을 불러 전술을 가다듬는다.

물론 정보 수집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이건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고렙이라고 하더라도 실수하면 죽는다. 이번같이 뭐가 나올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몬스터의 경우에는 더욱더 조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라파엘의 눈에는 뭔가가 가득 들어차 있다.

‘이것 좀 봐주세요.’

라고 외치는 것 같은 느낌.

‘제가 이렇게 컸어요.’

자신이 이렇게 성장했다고, 예전에 어수룩하던 자신과는 다르다고, 달라진 모습을 봐달라고 필사적으로 어필하는 것이 느껴진다.

혹시나 사냥 중에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일까 걱정하는 것은 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은사님 같은 사람에게 칠칠치 못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겠지.

라파엘 파티의 분위기가 딱딱하다 싶을 정도로 경직되어 있는 것은 그런 연유일 것이다.

세세한 것 하나라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것 같은 느낌.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쓰로누스.”

“네. 아버지.”

“뭔가 조사해 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네 소견을 듣고 싶구나.”

“네.”

정보 수집은 하면 할수록 좋은 거니까.

“몬스터는 습성은 기본적으로는 이 숲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몬스터인 트롤과 굉장히 유사했습니다.”

“그래?”

“네. 사실 유사하다기보다는 아예 같아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손톱자국이나 발자국, 나무에 달라붙어 있는 체모나 여러 가지 것들이….”

“그거 신기하구나. 도미니온스. 뭐 찾은 것은 있니?”

“아직 확실하게 말씀드릴 단계는 아닙니다만….”

“그래.”

“아버지가 원하신다면 부족한 소견을 말해보도록 할게요.”

“그렇게 하려무나.”

“첫 번째로 나타난 몬스터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실행들을 병행했어요. 쓰로가 가지고 온 정보를 토대로요. 그렇게 많은 것을 알아낸 것은 아니지만 가정할 수 있었던 것 하나는 이 몬스터가 기존의 존재하던 몬스터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어요.”

“너희들의 추측이 맞다면 첫 번째 몬스터는 본래 트롤이었다는 말이 되는구나.”

“네. 어떤 종류의 힘이 이 몬스터를 이런 방향으로 진화 시켰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것 같아 확인과정을 더 거쳐야 하지만… 지금까지로는….”

“흠….”

“조사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두 번째 몬스터도 마찬가지예요. 아버지. 둘은 비슷한 개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개체고… 만약 이들을 이런 방향으로 이끈 다른 수단이 있다고 한다면….”

그게 신성력을 발현시킨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건가 싶다.

“더 듣고 싶구나. 확실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좋아.”

“사실….”

“…….”

머뭇머뭇거리는 것이 눈에 띈다. 얘네 실수할까 봐 걱정하는 건가 봐. 나 그렇게 차가운 사람 아닌데.

“사실 두 몬스터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조직 샘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어요. 아버지.”

‘좋네.’

“문제는 이 샘플이 어떤 성분을 베이스로 했는지 가닥이 잡히지 않아서….”

“알아낼 방법은.”

“단,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두 몬스터를 변화시킨 것이 어떤 초월적인 존재의 혈액이 아닐까 하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신성력을 가지게 된 것이 이 몬스터들의 공통된 특징이라면 아마도….”

“도미!”

쓰로누스가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는 게 시야에 비쳤다. 도미니온스가 직접적으로 말을 꺼내오지는 않았지만 내 혈액과 대조해 본다면 비교적 빠르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어투였으니까.

“내 혈액이 있으면 비교해 볼 수 있겠구나.”

“그, 그건….”

“너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란다. 오히려 칭찬해 주고 싶은 심정이구나.”

피를 보는 게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뭐, 으아 무서워.

살짝 단검을 꺼내 손가락에 가져다 대자 피가 뚝뚝 떨어진다. 화들짝 놀라는 아이들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이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당황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특히나 쓰로누스의 진심으로 기겁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우습다.

도미니온스는 자신이 할 일을 알고 있는지 작은 약병을 꺼내 손을 덜덜 떨며 손가락에 가져다 대는 중, 뚝뚝 떨어지는 피는 어느새 작은 약병을 채우기 시작했다.

“저, 저, 저도….”

너는 왜 줄을 서. 하얀아.

“저, 저도 간직하고 싶어서요.”

그래, 가져가라. 그래.

“혜진 씨도 조금 줘요?”

“불결한 소리 하지 말고 치료나 하세요. 부길드마스터.”

뭔가 가닥이 잡힌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처구니가 없네.’

아마, 아마도 쓰로누스와 도미니온스는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도미니온스는 더욱더.

심증만 있는 상태에서 아버지의 혈액을 요구할 정도로 간이 크지는 않을 테고, 무엇보다 도미니온스는 이런 부분에서 강하다.

검은백조에서 자란 만큼, 실험이나 정보 수집에도 능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부터 시작해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이 뛰어나 정말로 이지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튼 도미니온스의 말이 맞다면 저 두 몬스터를 변화시킨 것은 기본적으로 신의 혈액이라는 거겠지.

‘교황청 밑에 던전이 있는데.’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

저 몬스터들을 변화 시킨 피가 누구의 혈액인지는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을 것 같아.

“베니고어?”

정황상 베니고어의 피를 받은 몬스터들이 이상 현상을 일으킨 거라고 보는 것이 맞나.

참 웃기지. 교황청에 개인적인 의문점이 몇 개 있었는데 그게 점점 더 명확해지는 느낌이거든.

일단은 템플러.

‘너네도 마셨어?’

왠지 모르게 의심이 들어.

“…….”

“…….”

교황청 깊숙한 지하에,

“…….”

‘하….’

베니고어의 시체라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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