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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10화 (90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910화

세라 (10)

진짜로 있는 거냐고….

곧바로 베니고어에게 묻고 싶었지만 아마 쓸데없는 행동일 것이다.

던전에 대해 내가 캐묻는다고 한들 베니고어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게 룰이었으니까. 조금은 이상한 타이밍에 그녀 스스로 던전을 업데이트시켰으니….

베니고어의 시신이 지하 속에 묻혀 있다 생각해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그녀가 인간일 때의 일을 전부 다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아니더라고 하더라도 무의식이 개입했다고 봐야지.

솔직히 무의식적으로 그랬을 것 같기는 해.

‘정말로 두더지 성녀가 자기 이야기였던 모양이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더라니…. 정말로 두더지처럼 지하에 처박혀서 지냈었나 봐. 그러니까 뒤통수를 그렇게 맞고 다니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론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일단 템플러의 존재가 그렇다.

베니고어 교단이 설립된 이래로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던 삼 인의 초인들, 그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 보니 괜한 상상력이 치솟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애초에 정보가 없는 게 이상하다니까.”

템플러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평소에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그렇게 교황청을 들락날락할 동안 걔네를 볼 수 없다는 것도 이상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찜찜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비밀무력집단이라고 한들 그들이 교황청 소속이라는 건 변함이 없는데…. 아니. 어쩌면 교황청 소속이 아닐 수도 있나.

산하기관이 아니라 독립기관일 수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베니고어의 시신을 이용해 템플러들을 양산하는 미친 짓을 바젤 교황이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바젤 교황은 베니고어의 열렬한 신도였으니까.

숨기는 거 없는 그 양반이 나도 모르게 비밀로 일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건 너무 간 거 같고…. 진짜 바젤교황이 흑막이면 대륙의 미래는 없다고 봐야지.

‘독립기관이라는 게 더 설득력 있기는 해.’

지금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이야기다. 템플러들이 강하다고는 해도 기껏해야 교국 8좌 정도. 예전이야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녔겠지만 무력이 상향 평준화된 지금은 그리 영향력 있는 단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던전이 생겨났다 이거지.

영향을 받은 것은 몬스터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라는 던전이 나타남으로써 주변이 영향을 받고 있다면, 템플러들 역시 그 영향을 받고 있을 확률이 높다.

치트키를 써서 업그레이드됐다고 보는 게 무방하지 않을까. 물론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지금 당장 고려해 볼 상황도 아니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런 상황이 온다면 템플러들은 던전공략을 탐탁지 않아 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베니고어의 새로운 선물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으니까.

‘이건 한번 확인해야겠네.’

“혜진 씨.”

“네. 부 길드 마스터.”

“아니다.”

“뭡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중에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뭔데요? 사람 궁금하게 만들더니.”

“그냥 생각보다 일이 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아직도 커질 일이 남아 있는 겁니까?”

“확실해지면 전부 다 말씀드릴게요. 일단은 오늘 돌아가는 대로 당분간 의뢰나 임무, 퀘스트 받지 말고 대기하라고 전해 주세요. 특히나 시간이 걸리는 원정들은 전부 정리해 주시고요. 혹시 밖에 나가 있는 인원들 있으면 전원 소집해주시면 될 것 같네요.”

“공화국에 있는 길드 마스터에게도 전하면 되는 겁니까?”

“아뇨. 현성이는 공화국에서 대기. 만약에 상황이 터지면 제가 직접 이야기하겠습니다. 아! 추가로 삼대길드 전부한테도 똑같이 제안해 주셨으면 하네요.”

“그만큼 이번 일을 심각하게 보고 계셨군요. 확실히 강한 몬스터이기는 하지만….”

그래. 확실히 강한 몬스터이기는 해.

상처투성이가 되어 쫓기고 있는 세라핌과 케루빔을 보면 저 몬스터가 어느 정도로 스펙업을 거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몬스터의 경우에도 원판은 기껏해야 트롤이었다. 그냥 단순한 변종이 베니고어의 피를 마시고 폭주한 거라면, 다른 위험 역시 존재한다. 어딘가의 보스 몬스터가 저런 종류의 버프를 받으면 충분히 골치 아파지겠지.

“속도를 올리겠습니다. 레인저들은 곧바로 전투에 투입시키라고 전하세요. 그리고 주혁아….”

“알겠다.”

라파엘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형.”

“네. 라파엘 님.”

“세라와 케루빔이 세 번째 몬스터에게 쫓기고 있는 것 같아요.”

“아!”

짧은 비명을 터뜨린 것은 정하얀.

“안심하세요. 지금 바로 주혁이를 보냈으니까요. 최대한 빨리 구출하도록 할게요.”

“세라는… 세라는 괜찮은가요?”

“네. 한소라 님.”

많이 힘들어 보이기는 하지만 목숨에 지장이 있는 수준은 아니다. 케루빔과 함께 넝마가 된 모습으로 숲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었고 몬스터는 괴성을 지르며 쥐방울만 한 놈들을 잡으려고 손을 휘두르고 있다.

“어떻게 해요? 부 길드 마스터? 세라 좀 어떻게 해주세요.”

정하얀의 얼굴에는 걱정이 묻어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내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

“괜찮을 겁니다. 소라 씨.”

“아….”

그렇게 불안한 듯이 쳐다보지 마. 진짜로 일단은 괜찮으니까.

“조금 더 빨리 가야겠어요. 더 빨리 가주세요.”

“아마 지금쯤 도착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안심하세요. 한소라 님. 저희도 최대한 빨리 움직이고 있어요.”

“정하얀 님. 정하얀 님도 뭐라고 좀 해주세요. 부 길드 마스터. 이대로 세라를 내버려 두려고 하시는 건 아니죠? 그렇죠? 혹시 이러려고… 이러려고….”

‘이러려고 정하얀 님의 마력을 봉인하시려고 한 건가요?’

라고 묻는 듯한 표정, 오해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한소라 얘는 진짜 사람을 뭐로 보고 이래? 아무리 그래도 내가 세라핌 하나 처리하려고 하얀이 마력까지 봉인했겠어? 얘는 아직도 내가 하얀이 좋아하는 게 거짓말인 줄 아나 봐. 뭐 지만 하얀이를 아끼는 줄 안다니까. 나도 얘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이 사람아.

“제발요. 너무 불쌍한 아이예요. 우리 세라. 너무 불쌍하다구요. 흐윽….”

한소라의 열연 때문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 듯한 느낌은 있다. 애들이 쉽게 죽을 아이들도 아니거니와 얼마 안 있으면 이주혁과 맞닥뜨리게 될 테지만 얘는 그런 상황을 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저 애지중지 키운 우리 세라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따위의 생각만 하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저런 종류의 불안감은 전염된다. 일단은 쓰로누스와 도미니온스, 어느 정도 정황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티를 내지 않았지만 함께 자란 만큼 형제들을 걱정하는 것만 같다.

물론 정하얀의 얼굴도 점점 창백해지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정하얀도 세라가 잘못되고 있는 상황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리라.

“아….”

항상 잃을 때가 돼서야 소중한 걸 깨닫는 법 아니겠어.

하얀이가 세라를 이미 자신의 품에 들이기로 한 만큼 녀석이 신경 쓰이지 않을 리가 없다. 그저 담담한 척하고 있을 뿐이지.

“지금 주혁이가 도착한 것 같아요. 형. 안심해 주세요. 정하얀 님. 한소라 님.”

라파엘이 다시 한번 상황설명을 이어나가자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다행이네요.”

“네. 조금 있으면 레이드가 시작될 것 같아요. 안전한 곳으로….”

“아니요. 직접 보고 싶네요. 일단 세라핌와 케루빔을 구출하는 대로 데리고 와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한소라가 정하얀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정하얀이 한소라의 손을 꽉 붙잡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불안감을 표출 하고 있는 신호로 보여 안쓰럽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리액션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별일 없을 거예요. 정하얀 님.”

“으응….”

‘그래. 별일 없다니까 그러네.’

그 시각 이주혁은 녀석과 조우했다. 검 한 자루를 든 채로 놈을 가로막는 모습은 작위적으로 폼을 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일단은 안심이 되기야 한다. 스펙이 밀리더라도 녀석은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익숙한 듯 공격을 모두 회피하는 모습은 꽤 멋들어진다. 최소한의 움직임, 가장 효율적인 방법. 그리고 드라마 같은 대사.

-고생 많았다. 애송이들.

-어, 어떻게 하지? 케루? 아… 아버지가 우리를 구하러 오신 거야?

-그래.

-케… 케루 들었어? 들은 거 맞지? 흐윽… 정말인가요? 정말로 아버지가….

-명예추기경님께서 너희들을 곧바로 데려오라고 말씀하셨다. 안전하게 말이다. 일단 상처부터 치료하는 게 좋겠군. 포션이다.

-정말… 정말이에요?

-그래.

진실이랑은 조금 다를 수도 있기는 해. 그래도 일단 데리고 오기는 해야지. 할 이야기들이 많으니까.

-저… 저희도 싸울 수 있습니다. 세라. 싸울 수 있지?

-으… 으응.

-…….

-싸우게 해주세요. 저희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후우….

-제발….

-그럼 보조를 부탁하지. 무리하지 마라. 애송이들. 목적은 본대가 올 때까지 버티는 것. 레인저들이 너희들을 도와줄 거다. 정보를 모아. 사냥은 그 이후다. 패턴을 파악하고 머릿속에 모든 걸 집어넣어.

정석이네.

-녀석이 뭘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움직여라.

좋은 선생님이기도 하고.

이주혁과 케루빔은 꽤 호흡이 잘 맞는 모양, 천천히 몬스터를 알아보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무조건 공을 세워야 된다는 게 머릿속에 틀어박혀 있는 모양인지, 자신의 몸을 던지면서까지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급하게 생각하지 마. 전투라는 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우리 역할은 마무리가 아니야. 지금 네 행동은 굉장히 어리석었다.

-네… 네!

-네….

-오른쪽, 오른쪽이다. 멀리 떨어져. 원거리 견제기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백금발 꼬마. 너는 후위다. 괜찮으니까. 아무거나 도움이 될 만한 걸 외워.

이주혁이 생각보다 괜찮네.

-네… 네!

-가자.

-네.

케루빔은 조금 놀랐다는 눈으로 이주혁을 바라보고 있다.

배울 게 있다는 거겠지. 항상 차희라 같은 괴물들만 보다 보니까.

일반인의 몸으로 상위 서열에 든 모험가가 신기할지도 모른다. 결단력, 경험, 움직임, 모든 게 배울 것투성이.

다소 이상한 말을 가끔 지껄이는 것과는 다르게 이럴 때의 녀석은 굉장히 무게감 있다.

-우우우우우!!

-왼쪽은 내가 맞는다.

-네!

‘생각보다 특이한 점은 없나.’

2차 페이즈, 3차 페이즈,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비해 특이한 점이 있을까 하는 느낌으로 과정을 지켜봤지만 눈에 띄는 것은 없다.

신성력을 사용하는 거대한 몬스터, 가끔씩 폭발적으로 신성력을 쏘아 보내기는 하지만 누가 봐도 지성이 없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생각보다 무난한 공략이 될 것 같다고 느낄 즈음.

커다란 날개를 달고 있는 인형이 몬스터의 목을 베어버리며 땅 위에 내려앉았다.

-아….

-…….

갑작스러운 상황에 입을 벌린 아이들과 새로 나타난 인형을 바라보는 이주혁이 시야에 비쳤다. 처음에는 먼저 간 라파엘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새끼 지금 내 옆에 있네.

-넌 누구지?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다.

녀석의 모습을 확인한 이후에는 조용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템플러.”

이 새끼들 날개 달았네. 원래는 없었잖아.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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