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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20화 (91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920화

세라 (20)

“혹시 하얀이 징계 먹였어요?

“아직입니다. 지금 당장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약식으로 보고는 받았지만 현재 길드 내에서 어떤 징계를 내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처리하는 게 좋겠네요.”

“안 그래도 그렇게 처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부길드마스터가 더 잘 이해하고 계신 것 같지만 상태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아서… 개인적으로는 징계 수위를 내리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네. 무슨 말 하는 건지 이해가 가네요.”

‘얘 멘탈도 슬슬 챙기기는 해야지.’

“아무래도 하얀 씨 같은 경우에는 다른 길드원들이 건드리기에는 조금 민감하니까요.”

“네네.”

‘애매하기는 할 거야.’

정하얀과 다른 길드원들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얀이 같은 경우에는 길드 법칙의 룰 위에 있다.

선희영이나 황정연, 조혜진 같은 이들이 하얀이보다 직위도 높고, 권한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정하얀에게 징계를 내린다거나 할 수는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하얀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녀는 마탑에서 탑주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가지고 있는 무력 역시 대륙 1티어에 랭크되어 있었으니까.

정하얀에게 어울리는 직위를 만들어 줄까 고민하기도 했었지만 당시에만 해도 정하얀이 직위로 어떤 일을 벌일 수가 없을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보류.

그게 오랜 시간 지속되다 보니 정하얀은 길드 내에서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가지고 있는 직위는 정 길드원이지만 사실상 나나 김현성 말고는 따로 터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굳이 한 명 더 꼽아보자면 조혜진 정도겠지만 정하얀은 조혜진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임무를 수주하거나 퀘스트에 참여하는 것 역시 본인의 자유였고, 딱히 길드 업무도 맡지 않는다.

간혹 내가 부탁한 연구에 집중하거나 본인이 하고 싶은 일들을 직접 선별해 눈치가 보이지 않는 선에서 작전에 참여한다.

사실 이런 일들도 한소라가 알아서 해주고 있으니 실질적으로 정하얀을 터치할 수 있는 사람은 길드에 없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빛의 성자 암살미수사건이 생긴 거고….’

웬만하면 일 처리를 바로바로 해결하는 길드에서 괜히 늦장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길드원들은 물론이거니와 길드 직원들은 더욱더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지 않을까.

봐, 김미영 팀장한테 연락도 안 오고 있자너. 내가 알아서 처리한다고 생각하고 있나 봐.

“보고는 소라 씨한테 받았어요?”

“네. 최근에 마법실험을 진행하다가 가지고 있는 마력을 대부분 써버렸다고 들었습니다. 워낙에 규모가 큰 실험이라 회복하는 기간이 오래 걸린다고 하더군요. 따로 사전보고하지 않은 이유는 예상하시는 그대로고요. 그리고 하얀 씨에게는 따로 사과를 받았습니다.”

“네?”

“폐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하더군요.”

‘흔한 일은 아니네.’

“그럼… 미리 길드에 보고하지 않은 건에 대해서만 처리하면 될 것 같고….”

‘근데 보고를 거짓말로 했어.’

이쪽으로 보고가 올라갈 것 같으니 한소라에게 거짓말로 보고해 달라고 한 것 같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너 매 초마다 실시간으로 마력 회복 하자너. 좁쌀만 한 마력으로도 할 수 있는 거 다 할 수 있자너.

“그럼 지금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업무처리는 방에서…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네. 여기서 조용히 처리할게요. 길드원들한테도 하얀이 징계받는다고 알리는 거 잊지 마시고요. 혹시라도 상대적 박탈감 느끼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니까.”

“아마 없을 겁니다.”

그래. 누가 있겠어.

“그리고 부길드마스터, 정말로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사제들 말 들었잖아요. 잠깐 충격으로 기절한 것뿐이지. 뭐 다른 일 있는 거 아니라니까.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부활한 이후로 싹 사라졌으니까. 안심해도 돼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잠깐 웃는 조혜진이 방 문을 닫고 나가는 게 눈에 보인다.

‘쟤도 참 쓸데없이 걱정이 많다니까.’

이유도 없이 기절한 걸 들으니 괜스레 그때 울고 불며 베니고어넷에 글이나 올리던 게 떠오른 것 같았다.

부활하면서 기존에 몸에 지고 있던 부담들이 사라졌다는 설정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저러는 걸 보면 어지간히 그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모양.

너무 스케일이 큰 이야기여서 그랬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과민반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리고 제가 부탁한 일 잊지 마시고요.”

“네.”

‘우리 정보원들이 뭘 물어올 수 있는지 기다려야지.’

물론 그걸 기다리는 것보다 정하얀의 집 나간 자존감을 회복해 주는 게 더 중요하기는 하다.

마침 포션의 효과가 사라지는 날이기도 했고, 더 이상 끌다가는 다른 부작용을 마주칠 수도 있을 테니까.

‘얘가 얼마나 무섭겠어.’

지난 시간 동안 마음고생이 심하기도 했을 테고… 무엇보다 이 건은 무조건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품고 있었던 것도 당연, 실제로 들키기 직전에 있는 지금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나는 본 적도 없었던 규모가 큰 마법실험까지 들어가 있는 걸 보면 거짓말이 거짓말을 만든다는 말이 맞다.

‘사람이 진실하게 살기는 해야 돼.’

아니면 불안해하지를 말든가. 아예 들킬 생각을 배제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이윽고 방 안으로 들어온 정하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 말이 더욱더 와닿기 시작했다.

“부, 부, 부르셨어요? 오, 오빠?”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는지 피곤해 보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으로 많이 몰린 것 같다.

한소라 때문인지 손톱을 물어뜯거나 머리가 엉망이 되지는 않았지만 겉모습만으로는 판단할 수가 없다. 눈에는 정체불명의 비장함까지 감돈다.

이대로 버려질 수 없다고, 절대로 들킬 수 없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단 이 자리를 버텨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일생일대의 마지막 변호를 준비하는 변호사와도 같은 표정.

“일단 여기 앉아. 하얀아. 마실 것 좀 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차라도 한 잔 타줄 테니 그거라도 마실래?”

“네… 네. 그거라면 괜찮아요.”

대변인 한소라도 함께 하지 못한 시점, 이미 그녀와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겪었고 나올 질문에 대한 변명거리도 전부 생각해 놨겠지만….

“무슨 일 때문에 불렀는지는 알고 있지?”

“네… 네.”

정하얀은 직접 하는 거짓말에는 서툰 편이다.

“혜진 씨한테 대충 보고는 받았어. 마법실험에….”

“네. 네! 네… 엄, 엄청 대단한 실험이 있어서요. 오, 오빠한테는 비밀로 하고 싶은 실험이어서 미, 미리 말하지 않았어요. 깜… 깜짝 놀라게 해드리고 싶어서… 실, 실험은 결… 결국 잘 안 되기는 했는데… 네. 그래도 정말로 엄청났어요. 제가 다 설명드리고 싶은데….”

“…….”

“실, 실험 부, 부, 부작용 때문에 잠… 잠깐 동안 마법을 사용하기 힘… 힘, 힘들… 아니, 사용할 수는 있기는 한데… 더, 더, 빠르게 회복하고 싶어서… 그, 그래서…. 네. 잠깐 동안만 마법을 사용 안 하기로 결정했거든요.”

“그래? 무슨 실험이었는데?”

“충돌하는 여러 가지 마력들을 융합하는 실험이었어요. 제, 제 몸에 직접 융합을 하려고 했어서….”

말도 더듬지 않고 곧바로 준비된 대답이 나온다.

“소, 소라랑 같이했었거든요. 아마 소라한테 물어보시면 대, 대충 알 수 있을 거예요.”

증인도 바로 등장.

“언제 했는데?”

“그… 오, 오빠가 라파엘 파티 캠프로 가기 전에요. 실험일지표에 전부 적혀 있어요.”

정확한 알리바이까지 확보.

‘생각보다 치밀한데.’

아마 이중 삼중으로 덧칠되어 있을 것이다. 저건 정하얀이 아니라 한소라가 만들어준 알리바이일 테니까.

“원, 원래는 이런 실수는 하지 않는데. 그, 그때는 조금 컨디션이 안 좋았었나 봐요. 아마도 아, 아팠었나 봐요. 사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미리 말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다, 다른 길드원들한테도 전부 사과했어요. 소라랑 같이 가서요.”

“그래? 그럼….”

“징, 징, 징계는 받아야 하니까… 아! 아! 징계 이전에 제가 폐를 끼쳤으니까. 당연히 사과해야죠. 제가 잘못했어요.”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는 어른스러운 모습까지 장착되어 있다.

“나도 웬만해서는 하얀이한테 따로 징계를 주고 싶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 눈치를 전혀 안 볼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

“네… 네!”

“길드 생활을 하다 보면 지켜야 할 일도 있고…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얀이 안전을 위해서 내리는 거니까.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네….”

‘얘 안 들켰다고 생각하나 봐.’

왜. 귀엽지.

성공했다는 얼굴. 저도 모르게 꽉 쥐고 있는 주먹이 왠지 모르게 귀엽게 느껴진다.

거짓말 초보자의 순수함이 드러난다. 사실 적당히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런데… 실험은 진짜야?”

“네?”

“실험일지는 며칠 전에 확인했어. 하얀이 실험일지는 거의 매일 확인하고 있으니까. 라파엘 파티의 캠프로 오기 전에는 분명히 다른 실험이 없는 거로 기억하고 있는데.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아… 그, 그러니까. 제가 업로드를 깜빡….”

“길드 직원이나 마탑 길드의 길드원들에게도 이미 확인하고 말하는 거야.”

“…….”

“어떤 실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위험한 실험이었다면 내가 모르고 있을 리도 없고. 게다가 지금 내 눈에는 네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데. 정말로 하얀이 말이 다 맞아? 혹시 거짓말하고 있는 거 아니야?”

“거, 거, 거, 거짓말… 이라뇨. 저… 저는 거짓말 같은 거… 오빠한테 안 하는데.”

왜 눈을 못 마주쳐.

꽉 쥔 주먹은 어느새 펴져 있다. 조금씩 몸이 움츠러들고 있는 게 보인다. 심지어 머리에서는 식은땀이 나고 있는 중. 자꾸만 침이 마르는지 입술을 달짝이고 있다.

눈동자가 점점 옆으로 이동하는 것 같다.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볼 자신이 없는지 자꾸만 옆에 있는 사물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저… 저… 몸… 몸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잠깐 휴정하자 이거야?

아마 한소라에게 돌아가 대책회의를 진행할 작전이겠지만 아쉽게도 휴정은 없다.

“다른 건 괜찮아. 하얀아.”

“네? 뭐, 뭐가요… 뭐가….”

“정말로 다른 건 괜찮아. 하지만 나는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

“저는….”

“특히나 네 건강이나 몸 상태에 대한 거짓말은 하지 않아 줬으면 해.”

당연히 따뜻한 눈빛을 일발장전 한다.

너보다 소중한 건 없다는 듯이 하얀이의 뺨을 어루만진다. 이미 현성이와 정하얀은 대충 알고 있는 표정일 것이다.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지?’

“정말로….”

‘너밖에 없는 거 알지?’

“아으아… 아….”

‘너보다 소중한 거 없는 거 알지? 그렇자너. 나한테 뭐가 또 있겠어.’

심각한 상황에서 저도 모르게 보내는 미소, 물론 티가 날 정도는 아니다. 지금은 나름 심각한 상황이었으니까.

왜, 그래도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나오는 사람 있잖아. 하얀이는 나한테 그런 사람이야. 너무너무 소중한 사람이라니까.

“저, 저, 저… 그러니까….”

네가 잘못되는 상상만 해도. 혹시라도 네가 다친다고,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다면 나는 정말로 견디지 못할 거야.

‘네가 계속 함께 있어줬으면 좋겠어.’

영원히.

‘정말로 영원히 함께 있어줬으면 좋겠다니까.’

“아… 아으아아… 오, 오빠….”

그런데.

“언제부터 마력을 잃게 된 거야?”

“…….”

“…….”

순식간에 창백해진 표정이 시야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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