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959화
분위기 (10)
무의미한 말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대충 던진 말이었다.
땀 흘려 일하는 원정대원들이 녀석에게는 그렇게 인상적이었을까. 모두가 대륙을 위해 모였다는 이쪽의 발언을 곱씹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정말로 녀석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신기한 광경처럼 보이기는 할 거야.’
대륙을 위해 헌신하면서 살아간다는 건 놈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니까. 황당한 점은 이 새끼가 이미 모든 것을 바쳐 대륙을 구해냈다는 데에 있다.
“현성 씨는 이미 대륙을 구한 영웅….”
“제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상황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원정도, 모여 있는 이들도… 모든 게 무의미한 일들처럼 느껴집니다.”
조금이지만 녀석은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쓸데없는 말을 한 것은 아닐까. 내가 이런 생각을 입에 담았다는 거로 빛의 성자인 그가 자신을 경멸하지는 않을까 하는 종류의 두려움.
자기가 어딘가 망가진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고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유대감으로 이어진 형제에게는 더욱더 말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원래 얘가 은근히 자존감이 낮았으니까.’
김현성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 평소처럼 아무 일 없는 듯이 행동할 때도 많기는 했지만… 내가, 파란 길드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스탠드를 취할 때도 많았다.
녀석은 1회 차로 인해 자신의 인격이 마모되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실감하고 있었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에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흔한 경우였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들이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김현성 같은 경우에는 아마 더할 것이다. 녀석은 생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살아왔으니까.
사교회나 사람을 만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고, 타인이 접근하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관망하기 일쑤였다.
무리해서 섞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지만 보통은 섞이지 못한다.
김현성이 그나마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는 파란 길드였고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빛의 성자와 길드원들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이 새끼가 이 유대감에 집착하는 거고….’
자신이 유일하게 인간답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일 테니까.
아마 그래서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들킬까 봐.’
자신이 섞이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까 봐.
모든 일이 끝난 지금 이 시점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들킬까 봐.
‘좀 미뤄왔던 일이기는 한데….’
나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밀히 말하면 김현성은 정신병자였고….
‘그동안 너무 나 몰라라 했었나 보네.’
케어가 필요하기는 했으니까.
사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안일한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가방 축제 연다고 염병 떨 때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가.
근데 생각해 보니 김현성은 자신을 위해서 뭔가를 한 적이 없다.
축제를 벌여놓고 두 발자국 뒤에서 웃고 떠드는 모습을 바라보기 일쑤였고, 어디에서 이상한 가방을 가지고 온 이후에는 이쪽의 반응을 살피기 바빴다.
둘이 있을 때는 평범한 사람처럼 이야기를 먼저 꺼내기도 하지만, 타인이 섞이면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상황을 관망한다.
파란 길드원들이 웃고 떠들면 눈치를 보다가 슬쩍 따라 웃고… 자신이 이 무리와 섞이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신병이 심각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폰 타는 걸 좋아하는 것도 어쩌면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일지도 몰라.’
하늘 위에서 날아다닐 때면 자신을 구속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라이딩 스케줄을 짜면 보통 둘밖에 나가지 않으니 이것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 있을까.
사회에서, 보통의 인간관계에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이고 굳이 일상에 섞이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다.
하늘 위에서 녀석을 구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빛의 성자와의 노을 쇼의 영향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정신분석가 이기영의 소견으로 이 새끼에게 하늘은 탈출구가 맞다.
긍정적인 것은 녀석이 먼저 말을 꺼내왔다는 것, 물론 녀석의 질문은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인 것 같느냐는 질문이었지만, 김현성의 무의식이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이 일들을 판단하기 훨씬 쉬워진다.
“아마 다들 현성 씨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네… 하지만….”
‘그래. 내가 모두 대륙을 위해서 모인 거라고 말하기는 했어.’
“잠깐 움직일까요?”
“네.”
나는 머그잔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김현성 역시 잔을 들고 어색하게 몸을 일으킨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걷는 와중에도 김현성의 생각은 뒤죽박죽이다.
괜히 말을 꺼낸 것은 아닐까 따위의 쓸데없는 걱정들.
그 와중에도 나는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우리는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무는 어떠십니까?”
“사령관님을 뵙습니다. 그, 그리고 파란 길드마스터님을 뵙습니다.”
우리가 당도한 장소는 불침번들이 근무를 서고 있는 초소였다.
“어디서 오셨나요?”
“린델 클랜 연합 소속, 최주희입니다.”
“마찬가지로 린델 클랜 연합 소속, 정혜민입니다.”
아쉽지만 아는 얼굴들은 아니다.
“커피 한잔하시겠어요?”
“근무 중입니다! 괜찮습니다!”
소리를 지른 것은 최주희였다.
‘아니야. 너희 시험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딱딱하게 하지 않아도 돼.’
“잠깐 원정대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말입니다.”
‘나랑 진짜 말 안 할 거야?’
“하지만 현재….”
‘정말로 말 안 할 거야?’
명예추기경과 이야기를 나누기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마침 근무 서기도 지루해지고 있었을 테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건 저쪽 역시 마찬가지, 결국에는 못 이기는 척 전혜민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임무 수행이라 생각하며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딱 좋은 회피막이었다.
“뜬금없지만 조금 이상한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여러분들이 어째서 원정에 참가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위에서 까라고 해서 참가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빛의 성자의 앞에서 ‘제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위에서 까라고 했으니 깔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개인적인 욕심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이 필요했습니다! 아이템을 먹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녀들이 정상이라면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둘 모두 대답을 찾기 어려운지 우물쭈물거리기 시작했다.
서로 네가 먼저 이야기하라고 눈치를 보는 것 같은 느낌.
전혜민이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사실은 제가 명예추기경님의 팬… 팬입니다! 그래서!!”
‘아니야. 너는 말하지 마. 그 대답을 기다린 게 아니야.’
그나마 눈치가 빠른 최주희 대원이 급하게 전혜민의 옆구리를 친 다음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딱 알맞은 모범답안이었다.
“남편은 비전투직군입니다! 심화되는 대륙의 이상 현상이 언젠가는 남편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정신 차린 전혜민의 다급한 목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친구들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몇몇은 저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현성 씨는 어째서 원정에 참가하셨나요?”
“네?”
“…….”
“기, 기영 씨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봤지? 쟤들이나 너나 별반 다를 바 없어.
대륙을 지킨다느니, 대의를 위해서라느니 같은 말은 포장된 말일 뿐이다. 실제로 그렇게 커다란 뜻을 품고 싸우는 사람은 없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지키려고 하는 게 사람 심리라는 거지.
“봐요. 현성 씨도 타인을 위해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대륙을 위해 싸운다는 건 그런 의미였습니다.”
“…….”
“아끼는 사람들,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장소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게, 바로 대륙을 위해 싸운다는 말이었습니다. 개개인이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들은 모두 다르겠지만 우리들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니까요.”
네가 이기영을 위해서 싸운다는 것 대륙을 위해서 싸운다는 말이랑 같아.
이기영이 시바 대륙 그 자체니까.
“사실 큰 뜻이나 거창한 목표가 있는 사람이 더 드물 거라고 생각합니다.”
“…….”
“현성 씨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제게는 그 어떤 사람보다 이타적인 사람처럼 보여요.”
얘는 항상 나를 위해 희생해 주자너. 그야말로 이타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지.
멍하니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초소병들에게 살짝 목 인사를 건넸다. 어울려 줘서 고맙다는 표시.
그리고 방금 있었던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달라는 의미로 손가락을 입술에 붙인다.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둘에게 살짝 웃어주자 시선을 어디로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이상한 생각을 하셨네요.”
“네? 저는….”
“저는 현성 씨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튜토리얼 때부터 말이에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2회 차가 시작되고 나서 도망쳤을 겁니다. 무섭고 겁이 나서 곧바로 도망쳤을 거예요. 하지만 현성 씨는 도망치지 않았죠.”
물론 중간에 꽤 많이 탈주하기는 했다. 김현성이 탈주할 때마다 이 새끼를 다시 잡아 오는 게 내 일이었지.
심지어 22살 김현성은 도망치는 게 특기였다. 하지만….
“끝까지 남아 자신에게 내려진 상황에 맞서 싸우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과적으로는 마주하지 않았던가.
결과적으로 김현성은 본인에게 주어진 상황을 피한 적은 없었다.
‘그게 네 프라이드가 될 거야.’
도망칠지언정, 피하지는 않았다고, 결국에는 끝까지 남아서 맞서 싸웠다고. 그게 네 프라이드가 될 거야.
이 프라이드는 김현성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네?”
“사실 현성 씨가 새로운 대륙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너 사회부적응 하는 거, 형이 다 보고 있었어.’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어쩌면 제게 이런 질문을 던지신 것도 확답을 찾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만….”
‘…….’
“제가 생각하는 현성 씨는 강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이겨내는 사람 말입니다.”
‘악몽도 파바박 하고 이겨내고, 정신병도 파바박 하고 이겨내. 알지? 빛의 성자는 패배자한테 관심 없는 거.’
“그건 기영 씨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이겨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자너.
“저는 지금도 옆에 있습니다. 현성 씨.”
나는 항상 옆에 있을 거라고 살짝 안심시켜주고, 언제나 지지해 줄 거라고 표현해 줘야지.
물론 단기간에 끝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김현성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심각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슬그머니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기보다는 발을 내디딜 거고, 악몽 때문에 불안감에 떨기보다는 떨쳐내려고 시도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렇군요….”
도움이 됐는지 안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은 미소 짓는다.
그리고, 어느덧 아침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던전 안이었기 때문에 하늘은 보이지 않았지만….
화악 하는 소리와 함께 김현성이 날개를 꺼내 드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녀석의 노을빛이 던전 안을 비추는 것은 순식간. 마치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분위기 너무 좋은 것 같은데.’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플래그가 꽂힌 듯한 느낌.
‘갑자기 못 이겨낼 것 같아….’
이런 훈훈한 순간 이후에는 꼭 안 좋은 일들이 생기더라고….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왠지 모르게 실망할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더 이상 말하지 마.’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