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960화
아이템 분배 (1)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꼭 무슨 일 터질 것 같은데….’
“너무 급하게 나아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성 씨.”
그러다 부작용 올 것 같으니까.
“현성 씨가 할 수 있을 만큼, 내디딜 준비가 되셨을 때, 시도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네. 기영 씨. 조언… 감사합니다.”
이 새끼가 내 조언을 정말로 알아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의 노을과 함께, 불안함을 종식시킬 아침이 밝아온다.
자연스럽게 여기저기서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김현성과 내가 나와 있다는 걸 확인한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눈치를 보던 이들은 모두들 일어나 각자 할 일을 하기 시작한다.
‘빠르기는 하네.’
언제나 그렇듯 모험가들에게 아침은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기였으니까.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해가 떠 있을 때 활동하는 걸 선호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안전.
시야 확보 문제나 소속 신전의 사제들의 근무 시간 등등 이유는 많지만 아무튼 근본적인 이유는 안전이었다.
그렇다 보니 여기저기에서는 원정 준비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불문율이 퍼져 있다.
‘누가 누가 일찍 일어나는지 시합하는 거야 뭐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격언은 최소한 여기서는 불변의 진리나 다름이 없다.
사냥터를 선점할 수 있고, 퀘스트를 먼저 수주받을 수 있고, 임무를 먼저 수행할 수 있다. 몬스터와 마주칠 확률도 올라간다.
정리하자면 경쟁자들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여기 있는 원정대원들은 모두가 경쟁자들보다 한발 앞서 있는 이들이다.
캠프를 접는 것은 순식간, 제대로 된 식사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처럼 육포나 빵을 뜯어먹는 놈들도 보인다.
배정된 보급대는 그런 녀석들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움직이는 중, 이미 한참 전에 일어나 모험가들에게 아침을 배식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쪽은 일찍 일어나는 타입은 아니지만 가끔은 나쁘지 않다.
‘좀 일찍 시작해야지.’
이미 한참 전에 하루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커피를 마시며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럼 현성 씨.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오늘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오늘 드린 말씀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네.”
“회의를 시작할까요? 아! 식사는 간단하게 회의와 함께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
‘아쉬워? 근데 안 돼.’
바쁜 분위기가 영향을 끼치고는 있지만 정말로 분위기 하나 때문은 아니었다.
‘성과가 궁금해.’
전령 겔크가 뒈진 다음에 뭐 떨어뜨렸는지 궁금하잖아.
원정대의 감정사들이야 이미 확인했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확인하지 못했다.
그 여러 가지 사정이 바로 바로 옆에 있는 이 새끼가 맞다.
이렇게 주변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도 여유로운 식사시간을 즐기고 싶은 모양.
커피 한잔 하면서 여유를 찾고 싶은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령 겔크의 성과를 확인하러 가는 것 자체가 휴식이다.
사실 아이템이니 돈이니 뭐니 하는 것들에 초탈한 지 오래되기는 했어.
하지만 빛의 성자는 욕심이 많다. 좋은 게 있으면 가지고 싶고, 골드는 더 많았으면 좋겠고, 이것도 내 거였으면 좋겠고, 저것도 내 거였으면 좋겠고, 그냥 전부 다 내 거였으면 좋겠어.
“전령 겔크에게서 나온 부산물과 아이템을 확인할 테니 지휘관들을 포함한 인사들은 전부 간이 회의실로 와 달라고… 아니, 제가 플로헤타 님에게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기영 씨.”
간이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순식간, 꽤 빠르게 왔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모여 있는 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너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
이미 일어나 있었던 거야. 뭐야.
완전무장을 하고 이쪽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 혹시나 이 새끼들 전부 다 일어나 있었던 게 아닐까.
김현성이랑 내가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니까 눈치가 보여서 나오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군기가 잡혀 있다는 건 환영할 만 했지만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어제 김현성을 끌어내리는 모습을 보여준 게 인상적이었을 수도 있겠네. 공격대장마저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 이기영의 카리스마에 뭔가 느낀 게 있나 봐.
괜스레 눈에 힘을 주게 되기는 했지만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럼 정기 상황 보고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네.”
“현재 제1공격대는 제2, 3공격대와 합류. 지하 8층에 진입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하 8층 말입니까?”
걔네 5층에 있었다며.
“어제 새벽, 지하 6층과 7층의 보스 몬스터, 집행관 서사락스와 고문관 아첼리에의 공략을 완료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사망자는 6명, 다수의 부상자와 함께 치료에 집중해,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할 예정이라고 보고받았습니다. 보급부대에 럼주와 맥주를 지급을 요청했으며 결재를… 기다리고….”
“기각입니다.”
“진 군사님께서 수고한 원정대원들에게….”
“아직은 던전 안입니다. 아무리 세이프티 존을 만들고 대원들의 공을 치하하고 싶다고 한들… 지하 8층에 대한 조사가… 기본적인 몬스터에 대한 샘플 조사도 완료되지 않은 시점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도… 위험하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
“사망자도 있고… 많은 대원들이 지쳐 있다고 보고받았습니다. 사령관님. 최소한….”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수고하신 원정대원들의 공을 치하하고 싶다면 다른 방법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네… 그… 그렇습니다.”
어딜 시바 신성한 던전 안에서 럼주랑 맥주를 처먹으려고 그래? 말도 안 되지.
어디에선가 이기영 개자식, 이 개자식이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공격대의 기강을 위해서라도 허락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다면 죄책감에 잠을 못 이룰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제6공격대입니다.”
“네.”
“제6공격대장인 엘리오스 님께서 아직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회복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공격대를 이끌기에는 몸이 성치 않다고 판단해 본대에 합류하는 방향을 모색 중이라 보고받았습니다.”
“혜진 씨에게 받았겠죠?”
“네. 조혜진 님께 보고받았습니다.”
“네. 6공격대는 본대와 합류하는 게 좋겠네요. 합류 지점을 좌표로 전해주세요.”
“확인했습니다.”
“다른 전달사항이 있습니까?”
“그… 그렇습니다. 명예추기경님… 그… 전령 겔크의 전리품 문제에 대해서….”
“아!”
얘네들 표정 봐.
어째서 이렇게 일찍 나와 있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얘네 이거 기다리고 있었구나.’
“그렇군요. 일단 먼저 전리품을 봐야겠네요. 분류는….”
“이미 끝냈습니다. 이기영 님.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과 샘플로 조사가 필요한 아이템들로 분류했습니다. 추가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들은 병과별로 구분한 이후에….”
“네.”
“그리고… 지금부터 보실 자료는 각 클랜과 길드, 혹은 개인의 공헌도입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자료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주제넘은 자료지만… 각 클랜과 길드에서 원하는 아이템들의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부디 참고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기다린 거야.’
이미 모든 처리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 욕심 많고 탐욕스러운 놈들을 너무 애타게 했던 것일까.
‘진짜 속이 타들어 갔었겠네.’
원정대원들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 동안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느낌.
본인들이 고생한 성과를 직접 하사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여부를 기다리는 놈들의 얼굴은 마치 오줌 마려운 강아지들처럼 보인다.
자신을 한 단계 레벨 업 시켜줄 아이템들에 관심이 없는 녀석들이 어디 있을까.
엄밀히 말하면 비전투원인 나와는 다르게 여기 모인 이들은 대부분이 직접 전투가 가능한 인원들이다.
질 좋은 아이템들은 이들의 생존 능력을 높여주고 한 계단, 간혹 두 세 계단을 뛰어넘게 만든다.
파란 길드야 워낙 쌓여 있는 것들이 많아 전설 등급 아이템에 눈이 돌아가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모험가들은 다르다.
클랜이나 길드의 명성을 드높여 줄 수 있는 수단, 그동안 공략할 수 없는 던전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
일반적인 예는 아니지만 외관에 신경 쓰는 놈들도 많았으니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전령 겔크의 전리품을 확인했을 것이다.
문제는 놈들이 확인만 할 수 있었다는 것. 어디까지나 분배는 이쪽의 몫이었다.
많은 집단들이 모여 있는 만큼 이런 전리품들은 문제의 시발점이 되기 십상이다. 당연히 공격대장 같은 인물들이 배분해 주는 것이 관례.
게다가 이번 원정은 정확한 아이템 분배에 대해 사전에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좋은 거 나왔나 봐.’
그저 대륙을 위해 모여달라고 해서 모인 역전의 용사들이었지만 그 누구도 무보수 노동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을 것이다.
“이게 전부입니까?”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기영 님.”
전령 겔크는 저층의 보스 몬스터들을 흡수하며 올라온 녀석이었지. 떨어뜨린 전리품도 분명히 많았겠네.
“꽤 많군요.”
어제 분명히 전리품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을 거야.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김현성과 내 싸움이 시작됐고, 원정대의 분위기가 얼어버리다 보니 물어볼 수 있는 놈들이 없었던 거네. 혹시나 불똥이 튈까 봐….
‘이 새끼들….’
사실 신전에서 필요로 한다고 꿀꺽 하는 방향도 있지만….
‘그래도 선심은 써야지.’
사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활히 공략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아이템을 지금 분배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군요.”
“판단에 감사드립니다.”
“조금 죄송한 말씀이지만 각 클랜과 길드에서 원하시는 아이템들을 그대로 분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해하겠습니다.”
“당연하지만 공헌도, 그리고 어떤 아이템이 사용자에게 적합한지를 보고 최대한 공정하게 분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진 것 같네요. 겔크를 상대하실 때보다 더 진지한 것 같은데… 차 한 잔씩 마시면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분배 내용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분배는 최대한 빠르고 간단하게 진행하겠습니다. 반론은 각 집단별로 딱 한 번씩만 드릴 수 있도록 할게요.”
‘물론 반론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거야.’
“네.”
“네.”
“간단한 것부터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령 겔크가 흡수한 보스 몬스터의 몸에서 나온 아이템이군요. 지하신전의 경비대장 팔트의 투구. 전설 등급의 아이템으로 투구에 가한 충격을 일정 부문 되돌려 주는 아이템입니다. 공헌도 11위 클랜 연합에 드리겠습니다. 추가로 경비대장 팔트의 깃발도 함께 분배하겠습니다. 이의 있으십니까?”
“…….”
“없습니다.”
“…….”
“이의가 없으시다면 그대로 분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유자 분배는 클랜 연합에서 처리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래, 너네는 그것만 받아가도 뽕 뽑은 거겠지. 팔트의 투구는 조금 애매하기는 하지만… 팔트의 깃발은 광역 버프 아이템이라 쓸 만해 보이고 말이야.’
조금 더 위에 있는 상위 모험가들은 아마 다른 아이템들에 노리고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준 신화 등급의 아이템 전령 겔크의 장화를 확인합니다.]
‘개 좋네.’
저런 아이템들 말이다.
김현성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저는 이것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영 씨.”
조용히 앉아 있던 놈이 불현듯 테이블위로 손을 뻗는다.
당연히 환호할 수밖에 없는 시점, 녀석이 드디어 한 발자국을 내디딘 것일까. 자신에게 선물을 주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하지만 그 손은 켈트의 장화를 지나친다.
[전령 겔크의 편지 가방-전설 등급]
“좋은 가방이로군요.”
“…….”
“…….”
미친 새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