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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61화 (952/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961화

아이템 분배 (2)

‘진짜 한 대 후려치고 싶다. 제대로 딱밤 한번 때려봤으면 좋겠다.’

“정말 그것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앉아 있는 인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는 것이 눈에 띈다.

아무래도 기분 좋은 상상을 펼치고 있는 모양.

자신들이 저 아이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본래대로 소유권을 따지자면 당연히 파란 길드에게 돌아가는 게 마땅한 물건, 굳이 공헌도를 정산할 필요도 없다. 1위는 무조건 파란 길드로 정해져 있었으니까.

박덕구가 메인 탱커를 맡았고, 한소라가 놈의 재생 능력을 봉인했다. 정하얀은 쉬지 않고 마법을 펑펑 쏴댔고, 김현성은 다수 개체로 분열된 녀석들을 두부로 만들었다.

남은 길드원들 역시 다른 모험가들에 비해서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편이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김현성이 갑작스레 가방을 가지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마치 파란 길드가 준 신화 등급의 아이템을 양보하는 것처럼 비쳤을 것이다.

파란 길드는 이미지가 좋은 대형 길드였고, 중소규모 클랜이나 길드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치기로 유명했으니까.

“정말로 감사합니다. 파란 길드마스터.”

“역시 파란 길드로군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지랄하지 마. 진짜.’

“기영 씨. 한번 보시겠습니까?”

‘가방 저리 치워 이 정신병자야.’

“가방 안에 수납한 물건은 절대로 파손되지 않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절대로 말입니다.”

‘꺼져. 진짜.’

“크기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이 미친놈.’

“던전에서는 이런 가방을 드시는 게 더 도움이 될 겁니다. 더 실용적이고… 빈티지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듯한 느낌입니다.”

‘입 다물어 진짜.’

“선물로 드리기 위해 입찰하셨군요. 좋은 가방을 얻은 걸 축하드려요. 사령관님.”

“두 분의 사이가 여전히 좋은 것을 보니 조금은 마음이 놓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지 않았어서… 조금은 걱정했었는데… 하하하.”

“…….”

“사령관님께서 소소한 취미를 가지고 계시고 있다는 걸 듣기는 했습니다만… 정말이었군요. 제 와이프 되는 사람도 비슷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언제 한번 컬렉션을 구경시켜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런 취미 없어. 이 새끼들아.’

“축하드려요!”

자꾸만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 아까의 날 선 분위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훈훈해지기 시작한다.

파란 길드는 아이템을 양보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도 가져가고 저것도 가져가고 저기 있는 것도 가져갈 거다. 라고 말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은 느낌. 그 와중에도 저 가방을 들어보라는 듯 내밀고 있는 김현성과 그 모습을 기대하는 갤러리들이 눈에 띄었다.

확실히 오래된 물건이라 그런지 고풍스러운 느낌이 있기는 있어, 소재도 괜찮고, 일상적으로 들고 다닌다기보다는 험난한 지형을 넘나들기 좋은 소재로 되어 있는 것 같아.

솔직히 마음에 드는 쪽이기는 하다.

원정용 수납 가방도 몇 개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샤넬리아 에르메스라는 브랜드가 그쪽에 특화되어 나왔다고 보기에는 애매했으니 말이다.

원정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번 들어보세요.”

“네. 사령관님. 한번 들어보세요.”

여성 간부진들은 내가 이 자리에서 꼭 저걸 들어봤으면 하는 눈치.

어색하게 선물을 받자 짝짝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바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다. 김현성 면상에 이걸, 아니, 의자를 집어 던진 다음에 튀어 나가고 싶다.

“잘 어울리십니다. 기영 씨.”

“감… 감사합니다.”

‘이거 어떻게 말해야 하지. 그냥 눈 한 번 딱 감고 장화도 우리 거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문제는 명예추기경에게도 체면이라는 게 있었다는 것. 대놓고 아이템 욕심을 부리는 건 빛의 성자에게 어울리는 행동은 아니다. 결국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은 박덕구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믿는다.’

녀석이 ‘장화!!’를 외치며 들고 일어서는 걸 보고 싶었지만 저 돼지 새끼는 지금 간식에 정신이 팔려 있다.

시바 앞으로 회의할 때 간식들 다 치워버려야겠어.

그다음 플랜으로 한소라를 슬쩍 바라보기는 했지만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리는 그녀가 이쪽에 협력해 줄 것 같지는 않다.

‘쟤는 또 왜 저래….’

무언가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시점.

슬그머니 거짓 미소를 띤다.

대충 보면 아무렇지 않아 보이기도 했지만 이기영의 진짜 미소를 알고 있는 이들은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미소.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미소 말이다.

당연히 목표물은 김현성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얘를 미친놈으로 만드는 게 편할 것 같았으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아니나 다를까 슬그머니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녀석, 이쪽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듯이, 괜찮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괜찮기는 한데… 많이 들고 다니지는 않을 것 같네.’

속마음을 흘려 보낸다.

‘일단 보관해 놓자. 원정용으로 쓰기에는 나쁘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잘 어울리는 신발이 있으면 조금 많이 쓰기는 했을 텐데.’

빛의 성자는 가방이랑 신발이랑 깔맞춤 하는 거 좋아해. 갑작스럽게 새로운 설정이 튀어나와서 미안하기는 한데… 원래 취미라는 게 점점 늘어나잖아.

‘그러고 보니 장화 바꿀 때 됐나. 원정용 신발들은 전부 오래된 것뿐이네. 발도 아프고….’

사념을 받은 김현성은 깜짝 놀라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이쪽은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다시 미소 지었다.

“정말로… 마음에 드네요. 감사합니다.”

“하하하. 사령관님께서 마음에 드신다니 정말로 다행이군요. 자. 그럼 다음 아이템에 대한 분배를 진행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잠깐….”

“…….”

“그리고….”

“네? 파란 길드마스터?”

“그리고… 전령 겔크의 장화도 가져가겠습니다.”

“…….”

“…….”

‘사랑스러운 미친 새끼!’

미친 새끼였다.

이 분위기에서, 이런 말을 꺼낼 정도로 염치없는 새끼를 지금껏 본 적도 없다.

김현성이 사회 부적응자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잘 섞이지는 못하지만 틀림없이 분위기를 읽을 정도의 능력은 갖추고 있다.

모두가 야근하고 있는 회사에서 당당하게 퇴근하겠습니다를 외친 신입사원처럼 녀석은 주변의 분위기를 무시하고 있었다.

“네?”

물론 당연히 챙겨야 할 권리다. 그래도 파란이 이거 먹고 떨어진다는 건 말도 안 됐으니까.

“당연한 권리입니다. 기영 씨.”

“…….”

“공헌도를 생각해 보자면 무조건 받아야 하는 아이템입니다. 타 길드와 클랜을, 그리고 다른 원정대원들을 배려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이들을 통솔하고 있는 입장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공평하게 분배하시려고 하는 마음 역시 이해하지만… 모든 걸 배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저는 한 집단을 책임지는 길드마스터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파란 길드는 이번 레이드에서 많은 활약을 했고, 마땅히 그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렇게 말을 잘해.’

“…….”

“…….”

“옳… 옳으신 말씀입니다. 파란 길드마스터.”

“죄송하다는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하하. 파란 길드마스터가 죄송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현성 씨….”

“저는 지금 공격대장이 아니라 파란 길드마스터의 입장에서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기영 씨.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전령 겔크의 장화에 대한 소유권을 정식으로 주장하겠습니다.”

‘폭주 기관차야. 아주. 거칠 게 없어요.’

다른 원정대원들과 눈을 한 번씩 마주쳐주자. 나는 너희들에게 이 아이템을 주려고 했지만 결국 지킬 수 없었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혹시나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는 했지만 녀석들 모두가 나를 이해한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파란 길드에 분배되는 아이템이 적었더라면 저희가 다 불편해졌을 겁니다. 사령관님.”

“네. 맞아요. 생각해 보면 파란 길드에서 아이템의 우선권을 주장하는 게 당연한 거겠죠. 오히려 저희가 욕심을 부린 것 같아 죄송하네요.”

현성이 말을 누가 거역할 수 있겠냐구.

가끔 무대포로 밀어붙이는 것도 진짜 좋기는 좋아. 아까 그거 한 방으로 회의하기도 훨씬 편해졌으니까.

“마를먼로의 의식용 단검은… 라임 길드에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하 성기사단의 빛나는 방패는 전위가 단단한 커다란 짐승 길드에 분배하는 게 좋겠군요.”

“임무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이의제기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본래의 아이템 증정식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합리적으로 분배한다고 해도 이쪽저쪽에서 개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던가.

주는 대로 처받는 놈들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지기 시작했다.

“나머지는 몬스터 샘플이나 당장 감정하기 힘든 물건들이네요. 샘플은 곧바로 연구진들에게 넘기고… 당장 사용하기 애매한 물건들은 보관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네.”

“원정 준비 해주세요. 제6공격대와 합류하도록 하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9층으로 넘어갑니다.”

“네. 사령관님.”

원정대는 이미 원정 준비를 마쳤다. 회의 텐트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원정길에 향할 수 있게 조치가 되어 있는 모습, 이쪽을 기다리고 있는 가마도 시야에 들어왔다.

당연히 가마에 들어서기 전에 이쪽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영 씨.”

“네?”

“방금 전에…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

“하지만 이 장화는….”

“그건 현성 씨 거예요.”

“네?”

“그건 현성 씨가 사용하실 아이템입니다. 제가 쓰는 것보다는 현성 씨한테 더 어울릴 것 같네요.”

“하… 하지만….”

“비꼬려고 말하는 게 아니라….”

“…….”

“진심으로 현성 씨가 사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

“제 선물이에요.”

내가 사 준 것도 아니고, 내가 얻어 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생색은 내야지.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김현성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입꼬리를 올린다.

놈은 고장난 로봇처럼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을 마쳤다.

‘형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겨요.’

그렇지?

“감사합니다. 기영 씨.”

“…….”

“…….”

그리고.

[두더지 성녀에 관한 비밀스러운 보고서]

[전령 겔크가 작성한 문서]

[템플러 육성 실험 보고서]

[지하 사교회 초대장]

문을 닫은 이후, 가방에서 나온 성과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하 사교회 초대장]

[지하 신전을 지지해 주시고 이 비밀을 함께 지켜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이에 저희 지하 신전에서는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대륙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들과 함께, 우리의 미래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참여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빛의 신의 무한한 영광이 함께하기를 기도드리며, 부탁드리건대 꼭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시기를 희망하겠습니다.]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물론 곧바로 초대장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뭐야 시바.’

초대에 응해서 피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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