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962화
성과 (1)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다. 괜찮은 자료들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종류의 아이템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던전 공략의 힌트를 넘어 공략 자체에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는 아이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정확히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활용할 여지는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지하 사교회 초대장]
‘과거로 이동된다고 해석해도 되는 건가?’
정확한 시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과거의 사교회로 초대받은 것이 맞다면 공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이 사교회의 참석자들이 대부분….
‘포근한 안식처에 네임드 보스들일 거고….’
네임드 보스의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다는 것, 보스 몬스터의 종류와 구성을 분류할 수 있고,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것.
던전의 대락적인 맵을 눈에 담을 수도 있고, 정확한 공략목표가 뭔지 확인할 수도 있겠지.
전령 겔크 이외의 히든 보스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스터에그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건 공략의 핵심이야.’
물론 사용하지 않아도 공략은 가능할 것이다.
저주받은 신단 때도 그랬으니까. 히든 보스인 게드릭을 잡는 선행 조건이 있었지만 결국 율리에나를 이겨내지 않았던가.
이것 역시 답안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거다.
“지금 당장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사용하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로 걱정되는 것이 많다.
정체불명의 던전에서 하루아침에 이기영이 사라졌을 때의 반응은 뻔할 뻔 자.
이곳과 과거의 시간 배율이 다르다면 상관은 없겠지만, 만약 같다고 가정했을 시에는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
김현성의 정신병이 다시 한번 발병할 것이고, 하얀이와 다른 길드원들 역시 불안에 떨지도 모른다.
전령 겔크가 외쳤던 ‘성자가 올 것이다’라는 말이 현실로 왔다고 생각하겠지.
공격대 분위기 완죠니 망할 것 같자너… 김현성 또 질질 짜고 난리 블루스를 칠 거 같자너.
앞으로 한 발 나아가겠다고 다짐한 시점, 자신에게 있는 문제를 직시하고 이겨내겠다고, 자신은 포기하지 않고 마주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시점.
김현성의 정신상태에 무척 중요한 시점이다.
여기서 한 번 더 꼬꾸라진다면 김현성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간에 심각한 정신병이나 이상한 편집증 정도는 달고 살아가겠지.
악몽의 내용도 점점 기괴하고 이상한 내용들로 바뀔지도 모르고….
‘에반데… 난리 날 텐데.’
당연히 말하고 갈 수도 없다. 애초에 말할 수도 없을뿐더러, 다른 누군가를 보낸다는 선택지도 내 성에 차지 않는다.
사교회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이벤트라면 다른 인선을 꾸릴 수도 있겠지만, 이벤트 내용이 정해진 이상, 진 군사나 누나 정도가 아니라면 성에 차는 결과물을 물어오지 못할 것이다.
초대장을 김현성한테 넘겨줘 봤자….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저는 김… 현성…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다가 끝날 거야.’
우선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은 던전의 난이도. 던전의 공략이 지금과 같이 무난하게 흘러간다면 문제는 없겠지만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면 이쪽에서도 뭔가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군사님.]
[…….]
[군사님? 갑자기 죄송한데… 이 던전 어떻게 생각하세요?]
[…….]
[야. 군사야.]
[…….]
[원하시는 보급품 드릴 테니까. 말 좀 해봐요. 혹시나 의심할까 봐 말씀드리는 건데. 제가 일부러 군사님 엿 먹이려고 그런 건 아니에요. 던전에서 맥주랑 럼주를 처먹는다는 발상을 한다는 게 이상한 거지.]
[고생한 병사들의 공을 치하하는 것은 지휘관의 덕목이다. 내가 마시겠다는 것이 아니다. 멍청한 놈. 더불어, 현장 안전에 대한 것은 가마 안에서 편하게 와인을 처먹고 있는 네가 아니라 지휘관으로 직접 나와 있는 내가 판단해야 할 문제다. 네놈이….]
‘살짝 저기압인 것 같은데….’
기분이 좋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기는 했지만 확실히 평소보다 더 안 좋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어째서인지는 대충 알 것 같다.
‘원정 속도가 빨랐으니까.’
이쪽이 잠깐 쉬고 있는 사이에 6, 7층을 돌파했다면, 진 군사가 페이스를 조금 빠르게 잡았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당연히 원정대원들에게 미리 이빨을 털어놨겠지.
조금만 더 고생하자. 8층에 올라간 이후에 휴식시간을 가질 것이다. 고생한 너희들을 위해 술과 고기를 준비할 것이다.
대륙의 드라마에서 몇 번 본 적 있었던 것 대장군의 대사가 스쳐 지나간다.
결국 목적을 달성한 이후에 8층에 도달했지만 약속했던 술과 고기가 도착하지 않은 상황.
중앙본부에서 보급품을 내어주지 않으니 이 새끼가 맥주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일 것이다.
병사들의 사기는 내려갈 대로 내려가고 지휘부에 대한 신뢰도 바닥을 치고 있겠지, 뭐.
[서로 간에 살짝 오해가 있었네요.]
[오해? 지금 오해라고 말….]
[아, 진짜로 엿 먹이려고 그런 거 아니라니까.]
사실 엿 먹으라고 한 게 맞기는 하다.
[보급 부대랑 같이 여분 병력도 보내드릴 테니까. 안전지역에서 쉬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 드릴게. 우리 진 군사가 공을 세웠는데 당연히 사령관인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원하는 건 다 해줄 테니까. 말만 하라구.]
[약속한 대로 보급품을….]
[네. 당연히 그래야죠. 근데 군사님. 진짜 이 던전 어떤 것 같아요? 정확히 난이도에 대한 생각이 듣고 싶은데.]
[…….]
[…….]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건지 모르겠군.]
[네?]
[내가 난이도가 낮다고 말하면 적당히 할 생각인가? 멍청한 놈이.]
[갑자기 왜 그래요?]
[안전한 원정이라는 건 없다. 우리들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네놈을 믿는 놈들이 죽는단 말이다. 무능한 놈.]
[…….]
[독기가 빠졌군.]
[…….]
[과거에 네가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를 떠올려보면 내게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깨닫게 될 거다.]
자꾸 라이벌한테 훈수 두는 클리셰 대사 내뱉지 마요.
지는 게임하러 왔으면서 더럽게 진지한 척하고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일단 알겠습니다.]
[약속은 지켜라.]
[네.]
[아! 그리고… 현재 내가 1,000포인트 앞서고 있다.]
이것 봐. 이 새끼. 진짜 몹쓸 새끼라구. 사람을 장기 말로 보는 놈이야.
근데 이 형이 무슨 말 하는지 알 것 같기는 해.
물론 그거랑은 별개로 병사 몇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피해라고 봐야지. 이른바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개인적으로도 조금 풀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는 하지만 이건 풀어진 게 아니라 여유가 생긴 거라고 봐야 한다.
모든 일에 매듭을 지었고 밀려 있는 숙제를 전부 해결한 상황이 아니었던가.
솔직히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가 규격 외 던전이라고 한들, 외신 전쟁이나 대륙 전쟁만큼의 위협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 사실.
히든 보스 전령 겔크의 레이드는 하품이 나올 정도였고, 유능한 인선들은 내 지시가 없더라도 알아서 일을 처리한다.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잡혀 있다 이 말이야.
진 군사 이 양반이 보급 문제로 일침 한번 날리고 싶어서 개소리한 것 같아 짜증도 났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여지도 있다.
괜스레 다른 성과 하나를 더 펼쳐 둔다.
[템플러 육성 실험 보고서]
이건 어떨까.
-두더지 성녀가 가진 힘이 줄어듦에 따라 템플러의 권능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템플러들이 가진 힘을 보전하려고 했지만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한 권능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수많은 템플러들이 모든 힘을 잃었다. 그들은 이전처럼 악마를 상대하지 못했고, 평범한 성기사로 전락해 버렸다. 두더지 성녀의 힘을, 권능을 유지하고 있는 템플러들은 이제 고작… 8명이 전부였다. 그들은 불안해했다. 대륙의 위협을 지켜내지 못할까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다.
권능을 가진 템플러들의 숫자가 7명이 되었을 때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두더지 성녀의 생피를 마셨다.
결과는 이상적이었지만 많은 힘을 감당하지 못한 이들이 죽었다.
남아 있는 템플러는 이제 4명이 전부였다.
4명의 템플러는 선택받은 것이다. 그래. 선택받아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두더지 성녀에게 받은 힘은 이전과는 달랐다. 마땅히 자신들이 누려야 할 힘이라고 여겼다.
그 많은 템플러들이 가지고 있던 힘을 이번에는 4명이 가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신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우리는 틀림없이 그 순간 신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템플러들이 노쇠하기 시작했다. 두더지 성녀의 생피를 먹은 부작용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템플러들은 늙어가고 있었다.
한 템플러는 불안해했다. 이대로 사라지고 싶어 하지 않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염원과는 별개로 두더지 성녀의 힘이 약해짐에 따라 그들의 노화는 점점 더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다른 한 템플러는 걱정했다. 자신들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 대륙에 대해 그는 걱정했다. 그는 새로운 템플러를 육성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들의 뒤를 이를 이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단의 아이를 데려와 두더지 성녀의 피를 마시게 했다.
교단의 아이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이는 이미 약해진 두더지 성녀의 피를 감당하지 못했다.
다른 한 템플러는 자유롭고 싶어 했다. 그는 자신이 늙어가는 것을 성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자신이 가지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지상 교단의 핵심인물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단의 핵심인물들… 그들 중 누군가는 두더지 성녀의 후계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다른 템플러들이 좋은 생각이라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작 그는 두더지 성녀의 후계자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했다.
그저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았다.
나 역시 무서웠다. 나 역시 불안했다. 죽는 것이 무서웠고 두려웠다. 이대로 끝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는 것이 통탄스러웠다. 영원히 살고 싶다. 계속해서 살고 싶다…. 중략….
그렇게 수년이 더 흐르고, 불안해하던 템플러가 주장했다.
어째서 우리는 늙어가고 있는가. 우리가 가진 힘은 이리 견고하고 빛날진대, 어떻게 우리의 육신은 이렇게 보잘것없는가.
혼과 육신은 다르다. 육신은 단지 우리를 담는 그릇일 뿐, 우리가 가진 본질은 혼에 있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자유를 갈망하던 템플러는 의아해했지만 나는 그가 무슨 주장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육신은 단지 혼을 가둬놓는 그릇이다. 우리는 영생할 수 있다. 우리에게 어울리는 그릇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지금부터 우리의 그릇이 될… 실험체들에 대한 보고서를….
“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악! 시바! 깜짝야!”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카스가노 유노가 검은 눈을 한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치고 있는 것은… 김현성 그리고 정하얀, 그리고 남은 파란 길드원들.
평소와 달랐던 점은….
모두의 목이 잘려 있었다는 것.
“위험합니다. 주인님.”
“…….”
“위험합니다.”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