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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66화 (95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966화

알타누스 (3)

이 초대장이 단순한 초대장이 아니라면, 그냥 지나가는 이벤트가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내가 과거로 온 이유가 명확해진다.

본래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니까.

가면의 영웅이 나를 위해 안배를 남긴 것처럼 나 역시 가면의 영웅, 그리고 현재를 위한 안배를 마련해야 한다.

B라는 결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A라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거지.

아직은 정보가 부족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의 윤곽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베니고어는 아텐타라 불리 우는 시녀라 불과했다. 심지어 이름도 부여받지 못한 일반 시녀였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은 이름을 부여하는 것, 그다음에는 그녀가 베니고어로서 자리 잡을 수 있게 힘을 보태주는 것.

그다음이….

‘알타누스 성녀의 힘을 줄어들게 하는 거라고 봐도 되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모든 시작은 알타누스 성녀의 몰락이었으니까. 그녀가 가지고 있는 권능과 신성력이 축소됨으로 인해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게 퍼즐을 끼워 맞출 수 있는 밑그림이다. 그녀가 몰락함으로 인해, 템플러의 숫자가 줄어들었고, 그녀가 힘을 잃었기 때문에 그들이 알타누스의 피를 탐하게 된다.

그로 인해 템플러들이 계승 의식에 손을 뻗게 되고 알타누스는 스스로 철의 처녀에 들어가 결국 과거의 대륙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현재 대륙의 관리하고 있는

루키페르.

그녀는 대륙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지 못했고 그녀가 일군 문명과 종교는 그림자 속에 감춰지게 된다.

이후에 나타나는 것이 알타누스 교단. 새로운 문명, 새로운 대륙, 새로운 교단.

어째서 지하 속에 처박혀 있는 알타누스 교단이 지상 위에 자리 잡았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것도 내 역할일지도 모르지.’

시간은 짧다. 하지만 알타누스 교단의 교리를 다듬고 정립한 이후 지상에 내놓는 작업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이건 무조건 일어나야 되는 일이야.’

알타누스가 태동은 무조건 적으로 일어나야 되는 일이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다.

그녀는 스스로 철의 처녀에 들어간 이후 육신을 벗어나 대륙을 관장하는 신의 자리에 올라서야 한다. 그래야….

‘그녀가 김현성을 회귀시켜 줄 테니까.’

한 영웅의 일대기를 보고 그를 사랑해 자신을 던진 알타누스의 존재는 그렇게 지워진다.

알타누스의 의지는 베니고어에게 이어지고 그렇게 2회 차가 시작된다.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된 타임라인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것 같은 느낌.

물론 아직은 다듬어야 할 부분은 많다.

거울호수에서 구했던 펜던트는 가면의 영웅과 그녀가 합의한 내용인지, 아니면 알타누스의 독단적인 행동인지, 그게 아니라면 2회 차의 내가 설계를 해야 하는 건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어쩌면 굳이 내가 행동하지 않아도 모든 일이 순리대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성녀의 몰락, 루키페르의 몰락, 알타누스 교단의 태동, 모든 사건에 시스템의 강제력이 개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다. 시스템이 원하는 게 뭔지, 솔직히 나도 알 수 없었으니… 일단은 무조건 행동하는 것이 옳다.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는 것보다는….

‘이게 더 나아.’

차라리 움직이는 게 속이 편하게 느껴진다. 아덴타에게 베니고어의 이름을 들려준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였다. 물론….

“싫… 싫은데요.”

“…….”

세상에 간단한 일이라는 건 없다.

“생각보다 무례하신 분이셨군요.”

‘갑자기 뭔 소리야.’

“혹시 예전에 소중히 하시던 분과 제가 닮아서 그런 건가요?”

‘얘는 진짜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래서 저를 보자마자 베니고어라고 부르신 거죠? 그 베니고어라는 분과 어떤 사연이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저와 많이 닮은 사람이었나 보군요… 물론 사제님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저는 남을 대신하는….”

그새 머릿속에서 이상한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진 모양.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럼….”

“베니고어는… 그 말은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이라는 뜻입니다.”

“…….”

“…….”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

대충 지껄였을 뿐이었지만 효과는 충분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

심지어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대놓고 그녀에게 너는 아름답다고 말했다는 것과 진배없었으니까.

애초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베니고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던가.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느낀 감상이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이라고 말한다면 저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지 않을까.

정확히 베니고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던진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한 모양, 이내 살짝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굳, 굳이… 저를 베니고어라고 부르고 싶으시다는 건….”

“그래야 다음번에도 아텐타 님을, 아니, 베니고어 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건 그렇겠네요. 지하신전에서 신을 위해 봉사하는 아덴타가 저뿐만은 아니니까… 사… 사제님 마음은 잘 알겠어요. 생김새와는 다르게… 아니, 애초에 적극적인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 생각보다 더 적극적이라 놀랐고요. 아직은 사제님의 마음에 대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 일단은 제가 긍정적이라는 것만 알아주세요.”

“그럼 베니고어 님.”

“저! 저는 바쁜 일이 생겨서 이만… 밀린 업무가 있거든요. 사, 사제님은 내일도 도서관에 나오시나요?”

“아마 다른 일이 없으면 쭉 여기에서 머물 것 같습니다. 베니고어 님.”

“자! 자꾸 베니고어라고 부르지 마세요. 부… 부끄러우니까. 정말로 당황스럽네요. 제… 제가 그만큼 매력적으로 보이신다니 감사하기는 하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이라니… 도대체 지상 분들은… 너무 적극적이야.”

“내일도 와주시는 겁니까?”

“조금 생각 좀… 해보고요.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저… 저는 남자보는 눈이 높으니까.”

“…….”

“그… 그럼 이만….”

말을 끝으로 녀석이 출구를 향해 신나게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 급하게 달려가다가 콰당 넘어지는 것은 덤.

실제로 보고 있기는 했지만 어처구니없는 캐릭터 성을 보여주는 모습에 실소가 절로 튀어나왔다.

물론 그녀의 뒷모습만 멍하니 쳐다볼 수는 없다. 생각한 이론에 대한 사실 확인 작업이 필요했으니까.

만약 이 장소에 있는 내가 미래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게 사실이라면….

‘간단한 실험 정도는 해봐야겠지.’

원정대원들한테 남긴 편지도 있었으니까.

시간이 꽤 지났으니 제1공격대는 지하 8층 도서관 쪽에 진입했을지도 모른다.

카스가노 유노는 남은 편지를 진 군사한테 전했을 테고….

시간 선상은 다르지만 나와 녀석은 같은 장소에 서 있다.

가방에서 연금키트를 꺼내고 바닥을 조심스럽게 들어낸다.

[영웅 등급의 히든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과거로부터 온 경고-영웅 등급]

[과거로부터 누군가가 이 장소를 발견한 당신에게 경고합니다. 당신이 이 장소를 발견했다면 당신은 대륙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내려온 사람이 분명할 것입니다. 대륙을 위협하는 악에 맞서 이곳으로 당도했겠지요. 쉽지 않고, 고행이 가득한 일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 장소는 그런 당신들을 위한 선물을 남겨놓은 곳입니다. 미래에 이곳에 당도할 영웅들을 위해 과거로부터 전해져온 유산입니다. 부디 당신의 앞날에 찬란한 빛이 함께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퀘스트 보상-과거로부터 전달된 포션]

‘이 정도면 괜찮겠지?’

바닥을 들어낸 이후에는 성능이 괜찮은 포션들을 몇 가지 집어넣는다. 그래도 영웅 등급의 퀘스트인 만큼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 몇 가지를 선별하는 게 좋겠네.

다시 바닥을 닫은 이후에는 꼼꼼하게 정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흔적들이 발견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으니 적당히 먼지도 좀 덮어주고, 결정적으로 시약으로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위에 만들어 놓은 퀘스트를 바닥 안에 집어넣으면 준비는 끝.

보통의 던전에서도 자주 보이는 간단한 트릭이었다.

이스터 에그, 히든 퀘스트, 히든 피스 같은 종류의 퀘스트. 꽁꽁 숨겨 놓은 것 치고는 보상이 턱없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가 적정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 군사뿐 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려 있는 퀘스트였으니까.

과거의 누군가가 도서관을 지나가다가 이곳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물론 시약으로 처리까지 완료된 바닥을 들어낼 미친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던 놈이 책에 발을 걸려 넘어져 발견하게 된다든가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저 포션을 보상 목록으로 책정한 것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과거의 누군가가 발견하면 정말로 히든 피스를 발견한 것처럼 좋아서 미쳐 날뛸 수도 있지 않을까.

귀한 물건이니 포션 성분을 분석한답시고 뒤집어 엎어버리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아니야. 그럴 수도 있어.’

성분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 분석에 성공한 연금술사가 나타난다면?

웬 천재 연금술사에게 이 포션이 들어가 대륙 전반적으로 연금술 붐이 일어나게 된다면?

이 지역에 보스 몬스터라고 추정되는 도서관 사서장이 포션을 던지게 된다면?

쓸데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만큼 나비효과에 대해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작은 행동으로도 미래는 뒤바뀌기 쉽다. 날갯짓 한 번에 태풍이 생기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이 달라질 수도 있다.

너무 충동적으로 퀘스트를 만든 것은 아닌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시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허벅지를 툭툭 두드려봤지만 지금은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라는 판단이 선다.

‘나비효과가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하면 병신 소리 듣기 딱 좋을 거야.’

“진 군사. 제발….”

한자리에서 맴돈 지 몇 시간 째, 사교회 준비와 정보 획득을 위해 책들을 읽어보지만 집중이 잘되지 않는다.

“사제님. 혹시 저녁은….”

“괜찮습니다. 템플러 제니.”

그동안 녀석도 한 번 더 이쪽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내려왔고.

“사제님의 건강이 상하실까 염려됩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템플러 제니. 이것 또한 수행의 한 가지 방법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래도….”

“…….”

“사제님.”

“정 걱정되신다면 작은 빵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불필요한 식사시간까지 가져야 했다.

“그나저나 템플러 제니.”

“네?”

“혹시 갈색 머리에 주근깨가 있는 아텐타를 아십니까?”

“죄송합니다. 사제님. 아텐타들과는 말을 제대로 섞어본 적이 없는 터라.”

물론 나쁘지 않은 대화도 있었지만….

‘아직 도서관 사서장을 공략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이쪽까지는 닿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조금은 여유를 찾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봤지만 이쪽은 여기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도서관의 밑바닥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트릭을 만들어 놓는 게 좋지 않을까.

그게 뭔가 발견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바로 그때였다.

[영웅 등급의 퀘스트 과거로부터 온 경고가 완료되었습니다.]

진청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일단은 입꼬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 * *

[영웅 등급의 히든 퀘스트 과거로부터 온 경고를 발견했습니다.]

“도대체 이 멍청이는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건지….”

[자동으로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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