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968화
알타누스 (5)
‘사교회 초대장은 한 장이 아닐지도 모르지.’
같은 소리를 하며 현성이를 진정시키기 바쁠 것이다.
그 정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을 테니까.
원정대의 상황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주요 인물들에게 각자 행동 지침을 써놓기는 했지만 그걸 그대로 따를 수 있을 리 만무.
애초에 모든 행동 패턴을 고려하고 써 내려간 지침이었다.
다른 놈들이야 그럭저럭 생각대로 움직여 주겠지만 김현성과 정하얀은 이상한 헛짓거리를 시도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든가. 사라진 지역에 캠프를 차려놓고 원정대를 마비시키는 행동 따위를 시작하겠지.
모든 고급 인력들이 캠프에 투입될 테니 원정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을 것이다.
‘진 군사가 중심을 잡아주기는 해야 돼.’
기왕이면 조혜진이 맡아줬으면 싶었지만 걔는 김현성한테 조금 약했으니까.
내가 이곳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원정대도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
도서관 공략을 끝낸 것이 맞다면 다음은 기도실.
아직 퀘스트를 받은 당사자가 녀석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연계 퀘스트를 받은 것까지 확인을 했으니 확률은 높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초대장이 몇 장 더 있을 수도 있겠지.’
물론 김현성은 와봤자 쓸모가 없다. 누나가 오는 게….
‘그나마 제일 나아.’
아무튼 간에 눈앞에 있는 우선 사항 중 몇 가지는 일단락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자리한 곳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도 확인했고, 원정대에 이쪽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도 성공했다.
다음은 정보를 전달하고, 밀린 숙제를 해결하는 것.
일단은 기도실에 대한 정보부터 습득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마침 내가 이쪽에 있었으니까.
지하 8층의 기도실은 수백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함께 기도를 드리는 예배당 역시 존재하지만 나 같은 이들을 위해,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서 비치된 장소였다.
그중 몇몇의 방은 사제들을 집어넣어 고해소를 운영하고 있었으니….
‘얘네들이 몬스터화 된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겠네.’
보스몬스터는 아마도 대주교 드락타리스. 개인 기도실을 총괄 관리하는 사제였고, 눈에 띌 정도의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사제였다.
“드락타리스 님은 엄하고 고집이 세신 분이시고… 지하 신전에서도 큰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사제분들 중 하나랍니다. 루키페르 님만을 위해 살아가시는 것으로 유명하시지요. 저도 많이 마주친 적은 없지만….”
“그렇습니까?”
“네. 드락타리스 님은… 따로 호위대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저 같은 하위 템플러 정도와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신 분들입니다.”
‘까다롭겠는데.’
“한 번쯤은 뵙고 싶었는데. 아쉽군요.”
“항상 기도실 어딘가에 머무르시니 자주 들르시다 보면 마주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사제님.”
‘랜덤 출현인가.’
게다가 복도식 구조 때문에 많은 병력이 한꺼번에 들어오기 쉽지 않은 지역이다.
현시점을 기준으로 하위 템플러들과 비슷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호위대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교.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넓다면 조금 더 쉽게 풀어나갈 수 있겠지만 공간이 한정된 지금은 까다로운 적이다.
‘다수가 움직이기에는 좁아.’
이 지역의 공략을 위해서는 소수 인원, 대여섯 명으로 구성된 파티를 세 개 정도 만들어 공략하는 것이 최선.
파란 길드를 주축으로 한 소규모 파티를 만드는 게 가장 합리적이겠지.
카스가노 유노를 통해 본 기억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이 지역은 내가 본 미래와는 다르다.
“게다가 각 기도실에 비치되어 있는 조각상에서는 루키페르 님의 신성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기도를 드리는 사제님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축복이 담겨져 있는 것 같더군요. 저도 간혹 이곳으로 기도를 드리러 오는데….”
‘방마다 아이템화 된 조각상이 있고….’
적들에게는 축복이겠지만 아군에게는 저주의 성물이나 다름이 없겠네.
각 방을 열 때마다 소규모 전투가 시작될 테고,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 펼쳐질 확률이 높다.
파티원들이 지쳐 있는 상태에서 드락타리스와 호위병들이 등장하면서 보스전 시작.
특수 이벤트로 남은 조각상들이 계속해서 디버프를 건다고 가정한다면….
이건 하얀이는 걸러야겠는데….
인선에서 정하얀은 빼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조각상이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한소라가 억제제 역할을 해줄 수도 있었지만 이런 종류는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체력이 높고 잘 얻어맞아 주는 박덕구와 냉철한 판단이 가능한 우리 혜지니. 높은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엘레나와 선희영을 필두로 파티를 구성하고… 라파엘 파티와 함께 들어가는 게 이상적이리라.
‘혹시 모르니까 김현성도 거르고….’
김예리, 김창렬, 박리안은 모든 원정에서 열외다.
“그럼 템플러 제니, 저는 이만….”
“네. 사제님.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지가 넘치는 만큼 개인 기도실은 넓다. 전투를 진행하기에는 좁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작은 제단과 벽면 한쪽을 차지한 조각상, 아마 모든 방이 같은 디자인으로 되어 있겠지.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알프스도 집어넣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흰둥이의 버프가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영웅 등급의 연계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영웅 등급의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기도실의 대주교-전설 등급]
[대주교 드락타리스는 기도실의 거주하는 신앙 높은 사제입니다. 루키페르의 충실한 종인 그는 당신들을 위협할 만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으며 충성스럽고 강한 호위병사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각 기도실에 배치된 악신의 조각상은 그대들을 끊임없이 저주할 것이며 정신력이 약한 모험가들을 시험에 들게 할 것입니다. 특정한 영웅들만이 이 역경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커다란 방패를 가지고 있는 자. 높은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여사제. 하이엘프의 여왕. 회색 날개를 가지고 있는 용사와 그의 동료들. 부정한 생각을 막아주는 개.]
‘그리고 또 누가 있었지?’
좁은 지역이니 무투가도 필요할 것이다.
[부정한 지역에서 당도한 신체를 무기로 삼는 영웅들과]
진청 졸병들.
마지막으로.
[붉은 전신.]
정신계 공격이 있는 지역이라면 희라 누나가 제격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단단한 사람이었으니까.
[대륙을 위해 험한 곳에 발을 들인 영웅들의 무운을 빌겠습니다.]
이 정도라면 오픈 북 시험이나 다
름이 없다.
곧바로 퀘스트를 등록하기 전에 편지라도 한 장 남겨야 될 것 같은 느낌.
적어도 김현성과 정하얀에게는 한 장씩 남겨 둬야 했다.
이곳에서 할 일이 있다는 것과, 여기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사교회 손님의 신분으로 초대된 것이기 때문에 신변에는 이상이 없다는 것.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사교회가 끝난 이후에는 곧바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까지.
마지막에는 미사여구 붙여서 힘내라 응원한다, 정도만 써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과거에서 온 편지이기도 하니 살짝 일기나 자서전 같은 느낌으로….
[영웅 등급의 연계 퀘스트 기도실의 대주교가 등록됩니다.]
[????님께서 연계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기도실의 대주교가 완료되기 전까지 이쪽도 해야 할 작업이 있다. 조용히 손을 모으고 빛을 내뿜는다.
순식간에 방 안이 거대한 빛으로 휩싸이기 시작, 아마 바깥에서도 빛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보일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찬란한 빛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다른 기도실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날개는 뽑지 않았다. 왠지 무서웠으니까.
‘그래도 효과는 충분할 거야.’
아니나 다를까 바깥에서는 벌써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기적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루키페르 님이시여….”
“알타누스 성녀시여….”
“이건 도대체….”
라고 중얼거린다. 굳이 알타누스 성녀가 나온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녀가 그 정도로 이곳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우리 대륙에서도 빛의 성자시여. 빛의 아들이시여 이런 거 하잖아.
사방을 가득 메운 빛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물론 나는 한참 동안이나 기도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대중의 궁금증을 유발해야 했으니까.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갤러리들은 망부석처럼 개인 기도실의 앞을 떠나지 않는 중, 심지어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위 관계자들이 이곳을 찾아온 것이 분명하리라. 하루 동안 처박혀 있으면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대략적으로 이틀 혹은 그 이상을 더 소비해야 신을 만난 사제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에 대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틀 동안이나 이곳에 처박혀 있을 생각은 없다. 지금은 비상상황이었으니까.
약 네 시간이 지난 직후. 나는 기도실의 문을 열었다.
침묵으로 휩싸인 장내. 갤러리들은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다. 땀에 젖은 채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제에게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신을 만났느냐고, 루키페르 님의 목소리를 들었느냐고 물을 정도로 눈치 없는 놈들은 없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신을 찬양하는 목소리를 내뱉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처음부터 이쪽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템플러 제니 역시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다 곧바로 몸을 옆으로 내던진다.
‘자연스럽게 쓰러졌나 봐.’
이쪽의 몸을 받아 든 것은 템플러 제니.
“사제님. 사제님 괜찮으십니까? 사제님.”
애써 몸을 일으켜 고개를 끄덕인다.
“네. 괜찮습니다. 템플러 제니. 대주교님을… 대주교님을 불러주시겠습니까?”
“네… 네?”
물론 대주교도 이 자리에 있다. 호위 병사들과 함께 나타난 대주교 드락타리스.
루키페르에게 열성적인 사제답게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에 호의가 가득하다.
“이분은….”
“사교회에 초대된 사제님이십니다. 드락타리스 님.”
“그렇군요. 혹시….”
창백한 얼굴로 한번 지껄여 주자. 혹여나 누가 들을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곳에서… 이곳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대주교님.”
“…….”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헬리스. 사제님을 모시거라.”
“네. 대주교님.”
“저… 저는….”
“당신은….”
“템플러 제니라고 합니다. 드락타리스 대주교님.”
“함께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신탁을 받은 사제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쓰는 사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이동되기 시작한다.
작은 복도를 지나고 기도실을 벗어나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로 들어선다.
드락타리스는 비교적 청렴한 성격인 모양인지, 화려한 양식과는 거리가 먼 인테리어가 이쪽을 반긴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적당히 타락한 부패 세력보다는 루키페르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제가 더 이야기가 통할 것 같았으니까.
“그럼….”
“…….”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호흡을 한번 삼킨 이후에 말을 이었다.
눈물을 쏟으며 불안하다는 듯이, 창백해진 얼굴로 말이다.
“알타누스 성녀님께서….”
“…….”
“그분이 신성력을 점차 잃어버릴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