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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80화 (97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980화

알타누스 (17)

‘시바.’

생각보다 센데.

소중한 달팽이관이 상처를 입을 정도의 거대한 폭음, 뒤이어 뻗어 나가기 시작한 불꽃은 평범한 흑마법사가 만들어낼 수 있는 불꽃과는 격이 다르다.

아니, 흑마법사가 만든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특이하게도 어둠으로부터 시작된 폭발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뻗어 들어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마치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

단말마의 비명이 입 밖으로 빠져나가기도 전에 의지를 가진 불꽃이 파도처럼 이쪽으로 쏟아졌다.

‘아. 여기서… 이렇게….’

한평생 남을 위해 희생한 성자의 마지막이 다가온 것일까.

공공의 이익과 빛을 위해 힘써왔던 빛이 이곳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일까.

하지만 성자의 최후를 녀석이 두고 볼 리 만무.

예상했던 것처럼 이쪽의 몸을 뒤덮는 놈의 커다란 팔이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깜깜해진다. 놈이 이쪽을 덮치듯 몸으로 불꽃을 막았기 때문이리라.

겁화가 산소를 태우기 때문인지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다.

단순한 테러행위가 아니었던 만큼 범위가 상당히 크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으로 모자라 사방팔방에서 비명 소리와 함께 폭음이 들려온다.

심지어 불꽃은 비어 있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억지로 이쪽에 상흔을 남긴다.

녀석의 몸이 아무리 커다랗다고 하더라도 저 겁화들을 완전히 막을 수 있을 리 만무.

“으윽!”

새어 나오려고 하는 비명을 억지로 삼켜 넘겼다. 저 폭발을 몸으로 막아낸 바하무트가 더욱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윽….”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새어 나가기 시작하는 고통에 찬 목소리.

콰아아아아앙!

거리는 소리와 함께 뭐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려오는 걸 보니 천장에서 무언가라도 떨어지고 있나 보다.

이후에는 삐이이이이이.

하는 이명.

그리고.

“……!”

“……!”

모든 게 본래대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아….”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단순히 처참하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오랜 역사와 문화, 지식을 간직했던 지하신전이 처참하게 파괴된 모습이 눈에 보인다.

루키페르 님의 신성한 신전이 무너져 버렸다. 사교회장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일어난 폭발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심지어 아직까지 검은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영향력은 작아졌지만 녀석들은 마치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악마처럼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바하무트 님? 괜찮으십니까? 바하무트 님!”

물론 주변을 살펴보기보다는 날 지켜준 사람을 걱정하는 게 먼저지.

“…….”

“…….”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바하무트 님.”

별로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흔적 정도는 남아줬으면 좋겠다 싶기도 했지만 놈의 내구가 워낙 단단했으니 그것도 기대하기 어렵겠지.

어쩌면 내부에 충격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조금은 기대하는 마음에 녀석을 면밀히 살펴봤지만 그런 것도 없다.

‘그래도 조금 아프기는 했을 거야. 안 아픈 척하는 거지.’

호들갑 떨면 체면이 안 서잖아.

그것과는 별개로 이쪽에서는 놈을 걱정하는 포지션을 잡아주는 것이 옳다.

오히려 녀석보다 내가 더 호들갑 심하게 떨어주면서, 불안하고 놀란 마음을 가지면서 괜찮냐고 연신 물어보는 거지.

물론….

내가 다쳐 있을수록 효과는 더욱더 크다.

자신의 상처는 눈치채지 못한 채 연신 바하무트를 걱정하는 포지션.

이미 내 팔 한쪽에 검은 불꽃의 상흔이 남겨져 있다. 계속해서 불꽃이 비집고 들어왔던 만큼 온몸에 이런 상처들이 남았을지도 모르지.

대충 봐도 지독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보이는 상처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성자의 눈에는 타인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

지금 보니 바하무트의 손이 약간 그을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본능적으로 깜짝 놀라며 신성력을 뿌리는 모습도 취해주고.

“이… 이런….”

하는 당황스러운 리액션도 해주고. 물론 단순히 그을린 흔적이지만 이게 평범한 화상일 리가 없지 않은가.

역병 같은 무시무시한 부가 효과가 있을 수도 있는 만큼 서둘러 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이 새끼 눈동자에 각인시켜야지.

“사제님….”

“괜찮으십니까? 바하무트 님? 잠깐만 기다려 주시면… 제가.”

“…….”

“정화해야만….”

“사제님!”

그제야 내 한쪽 팔이 넝마가 되어있다는 걸 깨닫는다.

“아….”

키야.

진짜….

와….

저절로 탄성이 나오는 인성.

진짜 이기영 이 착해 빠진 새끼 미치겠다.

하지만 그 고통도 눈앞에 있는 바하뭐시기의 상처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입을 열어보자.

“저는… 저는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치료하셔야 합니다. 지금 당장.”

“네? 하… 하지만….”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일단 응급처치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응급처치는 할 줄 아네.’

“…….”

“팔을.”

“네.”

이후에는 빠르게 이쪽을 빠져나간다. 폭발의 잔해 때문에 애로사항이 꽃피기는 했지만 녀석은 거대한 몸으로 잔해들을 치우며 이동하고 있다.

중간중간 잔해들에 붙어 있는 지옥 불은 명백히 예언의 사제를 노리고 있는 상황.

녀석은 내게 뻗어오는 불꽃을 발로 꺼버린 이후 말을 이었다.

“아직 위험합니다.”

옳은 소리. 놈의 말 그대로 아직 위험이 가시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폭발과 혼란, 주변 상황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갑작스러운 테러가 이대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다.

분명히, 2차, 3차 테러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

녀석은 침착하다. 아니, 최소한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평범한 불꽃이 아니었습니다. 심연보다… 어두운… 지옥의 겁화….”

중2병 톤으로.

“…….”

“어째서 지하신전에 이런 일이… 다른 분들은… 사교회장에 계신 분들은 무사할까요?”

“지금으로서는 확정 지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제 생각이 기우에 불과했으면 좋겠습니다만… 사제님께서도 느끼셨겠지만… 이런 종류의 불꽃을 다루는 악마는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렘빌의 사도와 계약한 흑마법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지하신전에 들어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니요.”

“…….”

“이건… 이건… 렘빌의 사도의 짓이 아니에요.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만….”

“…….”

“악마 군단장과 계약한 흑마법사.”

대악마, 혹은 최소 군단장급의 악마와 계약한 흑마법사, 단순한 테러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불길해 보이는 지옥의 겁화.

상상도 못 했던 정체, 드디어 밝혀진 충격적인 진실.

“우욱….”

하는 헛구역질 한번 해주고.

“괜찮으십니까.”

“악취가….”

“네?”

“검은 불꽃에서 악취가….”

평범한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구역질 나는 악취.

녀석은 의아해하고 있지만 예언의 사제에게는 느껴진다.

불길한 힘,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만 같은 순수한 악.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깊고 어두운 악의였다.

“괜찮으십니까?”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이 타이밍에 눈깔에서 빛 좀 내줘야지.

“또….”

살짝 비틀거려보자.

아마 녀석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이야기했었으니까.

신탁을 받은 이후 눈에서 이상한 것이 보인다는 것. 어쩌면 그게 미래일지도 모른다고 했던 것.

놈은 나를 믿는다고 이야기했다. 예언의 사제가 망설임 끝에 전한 말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이게 바로 그거야.’

예언의 사제는 지금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아….”

“이기영 사제님.”

“안… 안 돼.”

“네?”

“안 돼….”

악몽을 꾸고 있는 것처럼 손을 파닥파닥 뻗으면서 말이야. 눈에는 이미 눈물이 한가득, 흑마법사에게 당한 상처는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안 됩니다… 바하무트 님… 제발….”

“사제님…?”

“제발….”

검은 어둠이 녀석을 집어삼키는 장면.

힘에 취하고 힘에 잠식당한 바하무트가 끝끝내 악마의 힘을 받아들이는 장면 말이다.

“그 힘을 받아들여서는….”

“…….”

“더 이상….”

최대한 애매하게 이야기하는 건 필수.

“제가….”

물론 퍼즐을 알아서 풀 수 있도록 힌트를 주도록 한다. 그 힘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느니, 위험하다느니, 어둠에 집어 삼켜지지 말라느니 중얼거려보자. 놈이 힘을 멀리하도록 말이야.

이 새끼 지금쯤 똥줄 타고 있을 거야.

‘혹시 내가….’

타락하는 건가?

같은 생각 욘나게 하고 있을 거라구.

‘왜?’

단순히 웃어넘기기에는 빛기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너무 신성하지. 그렇지.

이게 어떻게 연기야.

이걸 누가 연기로 봐.

이 눈에서 떨어지는 빛의 물방울을 누가 가짜라고 생각하겠어.

목이 메서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는 거 들려? 턱이랑 손발이랑 덜덜덜 떨리는 것도 보이지?

타이밍 좋게 반대쪽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제님!”

하는 템플러 제니의 목소리.

아마 다른 템플러도 함께 있을 것이다.

“사… 사제님?”

그래. 조금 참혹한 모습이지.

검은 불꽃에 당한 흔적들 보이냐구.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어.

‘그래. 이 새끼가 그런 거일 수도 있어.’

“사제님을 놓지 못해!”

기어코 대대장에게 반말을 지껄여 버린 훈련병.

심지어 총구를 겨누기까지 하는 모습. 검을 뽑은 채 노려보는 모습이 상당히 호전적이다.

조금 의심하기는 했지만 너 이 자식.

진짜로 형 편이었구나.

“진정하세요. 템플러 제니… 지하신전에 침입자가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넓혀야지.

“군단장급의 악마와 계약한 흑마법사입니다. 다른 부상자는….”

“하지만… 사… 사제님… 팔이….”

그래. 내 팔.

“팔이….”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어서… 부상자들이 있는 곳으로….”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빨리 부상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

지금….

지금 희생할 시간이야.

“팔이….”

“어서 안내하세요!”

꿈자리 사나우니까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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