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981화
알타누스 (18)
“살려… 살려줘….”
“이쪽입니다. 사제님!”
“으으윽… 아아아악!”
“제발… 아아악!”
“신성력이 듣지 않습니다. 제길… 신성력이….”
“우욱….”
“아아아아악!”
단순히 처참하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광경. 조금만 늦었어도 꿈자리가 사나워질 뻔했다.
“사제님….”
“주교급 이상의 사제들로 구성해야 합니다. 드락타리스 대주교님.”
“알겠네.”
“일반 사제님들을 대피시키세요. 제 생각이 맞다면….”
‘이 화상은 전염될지도 몰라.’
“끄아아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한 환자를 치료하던 사제가 자신의 팔을 부여잡고 비명을 내지른다. 부상자의 상처 부위에 손을 가져다 댄 것이 분명.
“정화가 가능한 사제들이 필요합니다. 이 화상은 역병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이 화상은 역병이나 다름이 없다. 마법저항력이 낮거나 신성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곧바로 퍼질 가능성이 높다.
일반 사제의 신성력이 듣지 않을 정도라면, 그들을 이곳에 머무르게 하는 건 무모한 짓이다.
대충 보기에도 단순한 화상과는 격이 다르다. 온몸이 검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숨어 붙어 있는 환자의 모습을 보면 실감할 수밖에 없다.
이 겁화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아니, 죽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고통을 느끼게끔,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고통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끔 만든다.
숙주가 죽으면 이 화상을 퍼뜨릴 수 없기 때문일까? 역설적이게도 이 역병은 죽음이 드리워진 이들의 생명을 붙들고 있었다.
“악랄한….”
조용히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생명을… 사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악마가 아니라면 생각할 수 없는 사고방식에 분노하게 되는 상황, 분노로 떨리는 손을 누군가가 붙잡는 것이 느껴졌다.
“사제님….”
“괜찮습니다. 템플러 제니. 저는 괜찮아요….”
주교 이하의 신성력이라면 상황이 더 심각해지지 않게 억제하는 것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빛의 성자가 가지고 있는 빛이라면 이 역병들을 몰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를 향해 다가가자 성기사 둘이 환자 한 명을 붙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꽉 잡아!”
“움직이시면….”
“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지사. 이마에 손을 얹자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잠잠해지는 이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곧바로 신성력을 뿜어내자 찬란한 빛이 환자를 감싸기 시작한다.
평범한 신성력으로 치료되지 않은 화상이 어째서인지 이쪽의 신성력에 반응하고 있었다.
루키페르 님의 축복을 받았을 때부터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
“아아….”
“사… 사제님.”
눈에 보이는 광경은 그래… 기적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머리부터 다리 끝까지 뒤덮었던 검은 얼룩이 사라진다.
마치 역병이 스스로 물러나기라고 하는 것처럼, 모든 상처들이 새살이 돋듯 아물기 시작한다.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던 부상자 역시 자신의 몸이 회복되는 걸 느낀 모양인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괜찮아질 겁니다.”
“루키페르시여….”
당연하지만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했고, 생각보다 많은 신성력을 써야 했다.
어느덧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 땀방울이 턱을 타고 흘러내린다.
“다음….”
“사제님….”
그 와중에도 이쪽의 팔은 굳이 치료하지 않는다. 예언의 사제는 자신의 고통보다 남을 더 신경 쓰고 있으니까.
혹시나 신성력이 모자를 수도 있다. 당장의 고통을 줄이려고 하기보다는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우선적이다.
“사제님! 사제님!!”
“아아아아아악!”
“…….”
“다음….”
연신 터지기 시작하는 빛. 주교급 이상의 사제들 몇이 달라붙어야 겨우 치료할 수 있는 겁화의 낙인을 빠른 속도로 지우고 있는 예언의 사제의 모습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감동적이다.
“단순한 화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주교님들에게 전해주세요. 이건 역병에 가까워요. 렘빌의 사도 따위의 짓이 아니야….”
“…….”
“…….”
“뭔가… 알고 있으신 겁니까?”
“거짓과 선동의 군주….”
“……!”
“다른 이명은 역병의 주인.”
“…….”
“악마 군단장 벨리알.”
드디어 드러나기 시작하는 충격적인 진실.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루키페르시여….”
“이를 어찌….”
“루키페르시여… 저희들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물론 아직까지 확정 지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템플러들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지하신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역병의 주인이라니요. 거짓과 선동의 군주라니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명대사. 오랜 유구와 전통을 간직한 바젤 교황의 명대사.
“도대체 템플러들은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이 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명대사였나 보다.
“지하신전에 침입자가 숨어들다니… 대관절 이게 가당키나 한 소리입니까?”
애초에 처음부터 이런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게 그들의 임무였으니까.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템플러들의 실수를 사제단들이 커버하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자신의 타락 소식에 깜짝 놀란 바하무트야 이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겠지만 정치적 입지에 신경 쓰고 템플러들은 예민하게 반응할지도 모르지.
피땀 흘려 신성력을 뿜어내며 역병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사제들의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숭고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빛나고 있는 것은 예언의 사제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봐도 그림이 나오는 모습이기는 했다.
역병의 겁화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치료에 집중하는 성직자들, 주교 이하의 사제들은 분명 자리를 떠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탈진할 때까지 신성력을 쏟아내며 부상자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보안을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템플러들과 호위기사들, 인력지원을 위해 파견을 나온 아텐타들, 모두가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템플러에 대한 불만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이들은 소수였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새끼들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물론 지금 바쁘기야 하겠지.
‘흑마법사를 색출해야 하니까.’
폭발 지역을 필두로 여러 가지 종류의 조사를 진행하고 있겠지만… 만약 흑마법사를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입지가 위협받는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결과가 어떻든 간에 청문회는 열릴거고, 많은 세력들이 템플러들에게 등을 돌린다면 베스트.
바하무트에게 타락 소식까지 전했으니… 흑마법사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의도치 않게 도움을 받게 된 셈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지.’
“당장 비키지 못해? 제임스 경. 거기 있습니까.”
“현재 통제 중에 있습니다. 정화가 끝나는 대로….”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당장 제임스 경을 데리고 이곳에서 나가겠습니다. 드락타리스 대주교님.”
‘나가긴 어딜 나가.’
시바 아무도 못나가. 지금부터는.
“공작부인.”
공작부인을 제지한 것은 드락타리스가 아니다.
“죄송합니다만 통제에 따라주셔야 합니다. 현재 사교회에 초대된 인원들을 대상으로 형식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수습하려고 하는 템플러들이지, 뭐.
녀석들의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사교회에 초대된 인원들을 대상으로 선별조사를 진행하는 게 당연했으니까.
문제는 스폰서들이 이 상황을 고깝게 받아들일 거라는 것에 있다.
“지금 저를… 하브린 공작가를 무시하시는 건가요?”
이 시대 콧대 높은 귀족들이 이 상황을 그저 두고 볼 리 만무, 당장은 통제에 응하겠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귀족들이 어떻게 보복을 해올지는 뻔하다.
모르긴 몰라도 템플러 쪽에 내정담당자는 머리를 붙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을걸.
“하브린 공작가는 절대로 이번 일을 잊지 않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공작부인. 하지만….”
“…….”
“적마탑에서도 결코 이번 일을 좌시하지 않을 거요!”
“형식적인 조사일 뿐입니다.”
사교회는 끝나지 않을 거야.
끝내는 시기를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당연히 꽁꽁 숨어 있던 알타누스 성녀님도 후원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모습을 드러낼 테고, 이쪽은 알타누스와 접촉해 조금 더 영향력을 넓히면 끝.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계획들이 그려진다.
삼 일? 일주일?
템플러들을 적폐집단으로 낙인찍고 팔다리 자른 이후 반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무엇보다 바하무트 본인이 가장 정신없을 테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딱이라는 거지.
환자 한 명을 치료한 이후에 성난 인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지사.
갑작스러운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지하신전의 묘지기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악마들이 노니는 사교회장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템플러 훈련기지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틈틈이 넣어둔 퀘스트가 한꺼번에 완료된 것.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뭐야. 갑자기.’
아니, 모든 퀘스트가 완료된 것은 아니다.
드락타리스 대주교 퀘스트는 아직 진행 중이고, 사절단 퀘스트도 완료하지 않았다.
전력증강, 지하에서 올라온 악마, 넣어둔 몇몇 개의 퀘스트는 아직까지 완료되지 않고 있다.
‘뭐야… 갑자기. 시발… 공략 순서는 어쩌고 이렇게 갑자기 완료가 돼?’
왜 이렇게 점프한 게 많아.
‘아니야. 아니야.’
건너뛴 게 아니다. 모든 퀘스트를 완료 직전까지 내버려 둔 상태에서 한꺼번에 완료했다는 게 더 이치에 맞다.
어째서.
‘메시지.’
머릿속으로 퀘스트 목록들을 전부 떠올린다. 완료한 퀘스트와 완료되지 않은 퀘스트에 일정한 간격이 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가 진행 중입니다.]
[퀘스트가 진행 중입니다.]
완료되었습니다는 점.
진행 중입니다는 선.
모스부호를 기본으로 하는 나, 진청, 누나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암호.
이런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 놈이 놀랍기는 했지만….
이윽고 맞춰진 퍼즐에 머리를 쥐어뜯을 수밖에 없었다.
-변수, 전멸, 위험.
그리고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