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990화 (98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990화

사교회의 끝 (1)

‘어떻게 된 거지?’

콰아아아아아앙!

“제길… 제길! 또 폭발이 일어났….”

‘어디서부터….’

사방에서 불만 섞인 목소리와 폭음이 섞여서 들려왔다.

“제기랄! 여기에서 나가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지하신전이….”

“통제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고작 이러라고 지하신전을 지원하는 줄 아는 겁니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답을 주셔야지요!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에 떨고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알아보고 있는….”

“아까부터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건가. 바하무트 단장. 바하무트 단장! 내 말을 듣고 있는 건가?”

“단장님께서는 지금… 제가 대신 답해 드리겠습니다. 상위 악마와 계약을 맺은 흑마법사가….”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로군… 심지어 흑마법사가 있다는 것 역시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정말로 흑마법사가 숨어든 것이라면 어째서 지금까지 잡지 못하고 있는 건지 설명을 해야 할 걸세! 저리 비키게. 내가 직접 바하무트 님과 이야기를 해야겠으니….”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서….”

“정말로 여기 있는 것이 안전한 것입니까? 당신들의 통제를 따르는 것이 정말로 안전한 길이 맞냐고 묻지 않습니까.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지상에서 사병을 불러올 수 있게 조치를 취해 주십시오.”

아니, 사실 많이 겪어본 일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지하신전에 흑마법사가 잠입해 테러를 일으킨 것뿐이다.

지하신전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한 적은 없었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현재 이 사건이 수습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상에서 내려온 중요인사들을 대피시키고 있고, 사상자와 부상자를 최소화시키고 있는 상황.

연속적으로 들려오고 있는 폭음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고 템플러들은 흑마법사를 찾기 위해 온 지하신전을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하신전의 존재 의의라고 할 수 있는 알타누스 성녀님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직까지 안심할 수 없지만… 낙관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혼란스럽다.

안정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조함이 온몸을 감돈다.

‘예언의 사제….’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정확히는 그가 내게 했던 말 때문에.

그가 전했던 경고 때문이다.

‘힘을 멀리하셔야 합니다.’

머릿속에 틀어박히듯 들어온 목소리.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힘을 멀리하셔야 합니다.’

도무지 무슨 뜻으로 이야기를 한 것인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

그는….

그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 어떤 사제들보다도 진실되며 경건하다. 신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현자들이나 할 수 있는 말들을 기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지식은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뽐내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되려 숨기고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몸가짐 역시 마찬가지다. 온몸에서는 왕족, 혹은 황족들에게나 볼 수 있는 기품들이 배어 나오고 있음에도… 그는 그것을 절제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타인을 위해…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것 역시 개의치 않는다. 자기 자신보다는 다른 이들을 먼저 걱정하는 성자. 자신의 몸이 역병의 겁화에 넝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손에 난 작은 그을림을 걱정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몸으로 폭발에 휘말린 다른 이들을 구하기 위해 생명력을 소진하면서까지 치료에 임하지 않았던가.

따뜻하고… 상냥함을 품고 있는 눈빛.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은 듯한 눈빛.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는 언제나 그런 슬픔이 뒤섞여 있다. 마치 모든 것을 전부 알고 있다는 듯이… 그는 그렇게 다가왔다.

‘안 됩니다… 바하무트 님… 제발… 그 힘을 받아들여서는….’

무슨 뜻이지.

이후에는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인지.

지하신전… 아니, 자신과 예언의 사제는 도대체 어떤 일에 휘말린 것일까.

“타락….”

“…….”

“…….”

말도 안 되는 단어다. 일평생을 신을 위해 살아온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예언의 사제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아니, 의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찰나처럼 지나긴 환상, 그 환상에서 자신은 그의 진면목을 봤다고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

눈이 멀 것만 같은 빛. 성스러운 금안, 세상의 모든 죄악을 품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날개.

신의 사자, 아니, 신의 현신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자태.

어쩌면… 어쩌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자신… 예언의 사제가 본 미래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게…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잠깐… 상황을 살피고 오겠다.”

“바하무트 님!”

“바하무트 단장!”

‘그는 어디에 있지.’

답은 그가 쥐고 있다.

‘예언의 사제….’

그러다 불현듯 깨닫는다.

“이런 멍청한….”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한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질 지경.

“바하무트 님. 성녀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할 일이 있다고 전해드려라.”

“네? 하지만… 정말로 급하신 일이라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도록 하지.”

가장 처음에 일어났었던 그 폭발. 그게 예언의 사제 혹은 자신을 노린 것이 맞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테러가 누굴 목표로 하는 건지는 뻔할 것이다.

알타누스 성녀님의 보호에 일차적으로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 더 중요한 것을 놓쳤을지도 모르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몸을 일으키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순식간,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들이 들려왔지만 신경 쓸 여유는 없다.

‘드락타리스 대주교와 같이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한눈을 판 사이에 흉수에 당했다면… 정말로 검은 손이 그에게 드리워진 것이 맞다면… 템플러 제니가 그를 지킬 수 있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에 감돌기 시작한다. 대륙의 희망을, 새로운 빛을 허망하게 잃게 되는 그림을 상상하게 된다.

‘제길.’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정신없이 신전 안을 뛰어다니고 있을 때였다.

[이곳으로….]

“…….”

[이곳으로 와주세요.]

“내가… 내가 미쳐가고 있는 건가.”

[이곳으로 와주세요.]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머릿속을 헤집어 놓을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루키페르 님? 아니, 예언의 사제일지도 모르지. 어쩌면 내 머릿속에서만 들리는 환청일지도 모른다.

발걸음이 천천히 느려진다. 하지만 몸은 천천히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스스로 뭔가에 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인 것처럼 여겨졌다.

[어서… 어서 와주세요.]

“제길….”

다른 대안이 없었던 탓이다.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저 목소리 이외에는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없었던 탓이다.

조심스레 걸음을 옮길수록 풍경은 달라진다. 옳은 표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점점 더 주변이 어두워지는 것만 같다.

이미 지하신전 내부는 쑥대밭이 되어 있다.

길을 밝혀주는 불은 모두 꺼진 지 오래. 이미 불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어두워진다. 어쩌다 새어 나오는 한 줄기 빛마저 모두 차단한 것처럼 계속해서 어두워지고 있다.

부서진 루키페르 님의 여신상은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솟았지만 다시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한다. 손으로 벽을 짚자 익숙한 감촉이 느껴진다.

‘피.’

무기를 꺼내 든 것은 당연지사. 자신을 부른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 장소에 당도해야만 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주변은 아마 난도질 된 고깃덩어리들로 가득할 것이다. 코를 찌르는 듯한 혈향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마치 지옥을 재현해 놓은 것만 같은 모습이겠지.

루키페르의 이름을 한 번 외우고는 다시금 걸음을 옮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어둠 속, 희미한 빛이 저 멀리 보인 것은 바로 그때.

무기를 꺼낸 이후에는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한다.

[와주세요.]

“넌 누구야.”

[이쪽으로 와주세요.]

“너는 도대체….”

“아윽….”

하는 희미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

‘예언의 사제.’

“절대로… 절대로… 네 생각대로 되게… 놔두지는….”

“…….”

극도로 발달한 청력으로도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아까부터 머릿속을 헤집던 목소리와는 다르게 이 목소리는 틀림없이 예언의 사제의 것이다.

-그게 네 뜻대로 될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예언의 사제여.

“나는….”

이윽고 시야에 들어온 것은 순백색의 날개를 달고 있는 예언의 사제의 모습.

칠흑과도 같았던 어둠을 밝히는 빛.

한 손에는 성스러운 횃불을, 다른 한 손에는 거울을 들고 있다.

성유물이나 성물처럼 보이는 그것들은 스스로 빛을 내뿜으며 어둠에 대항하고 있었다.

“예언의….”

그를 부르려다 다시 한번 그를 바라보게 된다. 몇 장의 날개는 꺾여 있었고 머리와 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

무엇보다… 무엇보다 한쪽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감은 눈에서는 피가 연신 흘러나온다. 예언의 사제의 눈은….

“바하무트 님?”

눈이 마주친다.

“제가….”

“어… 어째서 여기에… 오신 겁니까. 바하무트 님.”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 예언의 사제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움직이지 마세요!”

-하하하하… 악의 씨앗을 품은 자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구나!

“악의 씨앗?”

“크윽….”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바닥에서부터 어둠이 터져 나오기 시작.

순식간에 공간을 집어삼켜 먹어버린 어둠은 예언의 사제가 뿜어내고 있는 빛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가만히 계셔야 합니다… 바하무트… 으윽… 님….”

“예언의 사제님… 눈… 눈이….”

“이제… 눈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요.”

“그 날개는… 도대체….”

“나중에… 나중에… 전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바하무트 님.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렇게… 이렇게 밝힐 생각이 아니었는데….”

슬픈 표정.

-악의 씨앗이 당도했노라. 크하하하하하하핫. 악마의 씨앗을 품은 자가 드디어 이곳에 당도했노라.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바하무트 님.”

상황을 따라가기 힘들다.

머릿속이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하지만 퍼즐이 풀리고 있다는 걸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예언의 사제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째서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지.

예언의 사제의 예언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는지.

“악마의… 씨앗….”

그것이 자신의 몸에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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