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997화
뿌린 대로 거둔다 (4)
“전원 흩어집니다.”
명령이 떨어진 것은 빨랐다.
“바하무트가 온다아아아!!!”
“미친!”
“바하무트 님이 오신다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유사시 레인저들이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최대한 많은 정보를 본대에 전달해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이미 지휘본부에서 현 상황을 인지하고 있음이 분명, 가까운 곳에 있는 지원부대도 이쪽으로 오고 있을 것이다.
-특수 레인저 부대 소속 부대장 지안입니다. 템플러 시몬과 2분 전에 조우하여 현재 퇴각 중입니다.
-위치 확인 중입니다. 더 정확한 정보를….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템플러 시몬이 거미형으로 몬스터화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니, 몬스터화라기보다는… 마치 악마처럼… 변해버렸습니다. 현재 그의 샘플을 확보 중에 있습니다.
-현장조사는 불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레인저들은 퇴각 중에 있습니다. 퇴로 확보를 요청드립니다.
-확인했습니다.
-추가로 식별되지 않은 촉매를 발견했습니다.
-정확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깃털입니다. 템플러 시몬은 이 깃털에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바하무트가 온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외치고 있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추가 병력이 도착하기 전까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근처에 있는 레인저 부대를 보냈습니다. 약 3분 후에 도착할 예정….
-레인저 부대? 제대로 듣기는 한 겁니까? 병력을 물려주십시오. 레인저 부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공략부대가 도착하기까지는 약 1시간 40분 정도가 소요될….
-1시간이면 전부 뒈질 거야!
‘제길.’
맵이 숲이나 다른 곳이었다면 그나마 희망이 있었겠지만 밀폐된 밀실이라는 것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넓은 동공을 빠져나간 이후에 보이는 것은 마치 미로처럼 되어 있는 공간.
길눈이 밝은 레인저들은 미로에서 길을 잃지는 않겠지만 녀석의 표적이 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
순식간에 흩어진 레인저들이었지만 비명 소리는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곳은 녀석의 집이다. 녀석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우리는 제 발로 거미집에 들어온 것이다.
‘다들 탈출한 건가? 누가 당한 거지?’
-최대한 빨리… 최대한 빨리 안 되겠습니까?
-현재로서는… 가장 빠른 탈출 루트를 현재 찾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신다면….
‘제길. 일 처리가 너무 더디잖아.’
언젠가는 이런 일이 올 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언제나 위험을 달고 살고 있었으니 죽음이 불안하거나 두렵지는 않다.
문제는 소속 부대원들이다.
‘이런 곳에서 개죽음당할 놈들이 아닌데.’
-다른 방법이 없는 겁니까?
-지금 잠깐…. 명예추기경님… 아니… 공격대 작전 사령관님께서 직접 탈출 작전을 지휘하신다고 합니다.
‘명예추기경님?’
이후에는 통신 채널에 누군가가 들어온 듯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나마 자주 접하는 목소리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소속.
-특수 레인저 부대 소속 부대장 지안입니다. 현재.
-함께 있는 인원.
-저와 함께 탈출하고 있는 인원은 부대원 총 4명입니다. 유사시 부대는 5명 단위로 움직이게 되어 있으며….
-좌표 찍겠습니다.
-네? 여기는 현재….
-바로 움직이세요.
“움… 움직인다.”
보이지 않았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손거울 안에 맵과 함께 루트가 찍힌 것은 너무 순식간이라 조금은 의심이 들 정도.
‘작전은 성공한 건가?’
아마 성공했을 것이다. 명예추기경님의 목소리가 들렸다는 건, 진청 군사의 그 작전이 성공했다는 증거일 테니까.
하지만….
현장의 상황은 알고 지휘를 하시겠다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다. 이건 명령이다. 이게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해도 명령이라고 하면 받아들여야 한다.
“달려! 달려!”
“바하무트 님이 오신다아아아아!!!”
쿵 쿵 쿵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뾰족한 것이 바닥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윽고 그 소리가 점점 잦아들기는 했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욱 잘 알고 있다.
-루트 변경.
-네?
-루트 변경. 빨리 확인.
‘제길 설명 정도는….’
“되돌아간다.”
“네?”
부대원들에게 설명할 시간은 없다. 아까까지만 해도 놈의 목소리가 들리던 곳으로 몸을 옮기려고 하자.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이 무너지며 놈의 다리가 쏟아진다.
코 끝을 스쳐 지나가는 뾰족하고 거대한 다리.
‘만약에 무시하고 그대로 전진했다면….’
저 다리에 찔려 꼬챙이 신세가 됐을 것이다.
다른 의미로… 등골이 오싹해진다.
‘어떻게 알고 계셨던 거지?’
천장 위로 템플러 시몬이, 아니, 거미가 자신들을 앞질렀다는 걸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이 타이밍에 공격이 들어올 거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었지? 미래라도….
‘미래라도 읽고 계시는 건가?’
뭐가 어찌 됐든 상관은 없다. 중요한 것은 희망이 생겨났다는 것.
미약한 의심은 사라지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바하무트 님이 오신다아아아아아!!!”
“달려!!”
‘살 수 있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손거울에 찍힌 좌표만 따라가면 정말로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루트 변경.
-확인했습니다.
쾅!!
-루트 변경.
-확인했습니다.
콰아아아앙!!!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는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놈의 크기를 생각했을 때는 우리 쪽 부대원들만을 쫓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아닌 모양.
놈의 뾰족한 다리는 생각보다 더 길다. 이 장소가 모두 녀석의 사정거리 내일지도 모른다.
‘다리가 8개였나? 아니, 더 있을지도 몰라.’
다른 이들은….
‘탈출하고 있는 건가?’
저 앞에서 탈출하고 있는 레인저들과 마주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들 역시 귀에 수신기를 꽂고 있었다는 것.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여신의 손거울에 떠오른 좌표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다른 지휘관의 지시를 받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네, 확인했습니다. 명예추기경님.”
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들은 순식간에 멀어진다. 자신들과는 다른 루트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말도 안 돼. 제기랄.’
“말도 안 돼….”
설마….
설마 탈출하는 레인저들 전원을 컨트롤하고 있는 건가?
10개의 분대로 이루어진 50명을 전부 따로 컨트롤하고 있는 건가?
-제자리.
반사적으로 몸을 멈춘다.
“트, 트랩입니다. 부대장님.”
콰아아아앙!!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벽면이 무너진다. 트랩이 있는 것은….
‘나도 확인했어.’
문제는 그 트랩이 아군의 것이라는 데에 있다. 분대별로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폭발용 함정. 높은 확률로 방금 전에 자신들을 스쳐 지나간 분대가 설치했을 확률이 높다.
-이동.
“뭐가…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아군의 폭발물로 뚫린 길을 향해 나아간다.
-트랩 설치. 좌표… 입력함. 폭파시간 2분 10초 뒤로 설정.
-확… 확인했습니다.
“트… 트랩 설치해!”
“네? 네… 네!”
지금 설치한 트랩은 다른 아군이 이용할 탈출구가 될지도 모른다. 여기저기서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명예추기경님. 하핫!”
같은 목소리도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거미의 다리가 통로를 막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직진.
이라는 황당한 명령이 떨어지지만 의심하지 않는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옆쪽 벽면에서 튀어나온 것은 검은백조의 박연주 님.
템플러 시몬의 다리는 박연주 님을 쫓아가고 자연스럽게 직진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
‘도대체 뭐가 뭔지… 이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
분명히 거미집에 들어온 것은 자신들이다.
하지만… 하지만 거미줄에 걸린 것은 녀석일지도 모른다.
“천재라고 하는 이유가 있더라니.”
“바하무트 님이 오신다아아!!”
쾅! 콰아아아아앙!!
마침내 천장에서 내려온 녀석은 거대한 다리를 땅에 붙인 채로 기어온다.
‘우리가 마지막인가?’
-루트대로만 움직이세요. 지안 부대장.
쾅! 콰아아아아!
커다란 미로가 무너진다.
거대한 몸을 좁은 통로에 욱여넣고, 닥치는 대로 보이는 것을 부수며 전진하는 녀석에게서 이전에 보였던 똑똑한 사냥꾼의 모습은 없다.
그저 본인의 욕구를 채우기 급급한 괴물이 자리해 있을 뿐이다.
“이 얄미운 쥐새끼들이!! 쥐새끼들이!!”
“달려! 달려어!!”
“쥐새끼들!!”
“달려어어어어!!”
눈 앞에 보이고 있는 것은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는 작은 통로.
더 이상 다른 지령도 내려오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발걸음을 옮긴다.
저기까지만… 저기까지만….
쿵! 쿵! 쾅!!! 콰아아앙!!
“바하무트 님께 네놈들을 제물로 바치리라! 네놈들을 모두!!”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레인저답지 않은 요란한 기합 소리를 내뱉으며 마지막 발걸음을 내디딘다. 이후에는 곧바로 뒤를 돌아본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바하무트 님이!!”
좁은 통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모습.
하지만.
으직으직 하는 소리를 내며 벽이 무너지며….
쾅! 쾅!! 콰아아앙!! 쾅!!!
녀석의 육중한 몸 전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절망적인 표정으로 바라본 순간,
“거미 사냥 시작해요.”
수신기를 통해 들려온 목소리가 곧바로 내리꽂혔다.
“너어어어… 너어어어는… 너어어느느는… 바하무트 님! 바하무트 님!!”
“바하무트?”
“아아아앗! 하하핫! 아하하하하하핫!! 때가… 왔도다! 바하무트 님이시여!!”
“…….”
“…….”
“바하무트가 누군데. 이 더럽게 생긴 악마 새끼야.”
“뭐?”
“혹시 그 새끼도 악마야?”
그 말을 끝으로 거대한 신성력이 놈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