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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99화 (98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999화

뿌린 대로 거둔다 (6)

마주친 악마의 타입은 이쪽과는 정반대로 보인다. 혹시나 녀석이 젠은 아닐지 걱정하기는 했지만 템플러들 중 이쪽이 마주치지 못한 나머지 한 놈일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악마, 황소의 얼굴에 뱀의 머리를 하고 있는 거대한 녀석은 템플러 시몬과는 다르게 힘과 내구에 집중한 형태.

거미와 마찬가지로 연신 바하무트를 외치고 있는 엑스트라 빌런의 눈에는 자신의 주인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육중한 몸을 일으키며 거대한 괴성을 내지르자 녀석과 마주친 원정대원들의 눈에는 긴장감이 서린다. 유능한 이들이기 때문에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마주쳤던 몬스터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할 수 있겠지.

조금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기는 했지만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건방지게 의자에 앉아 있는 채로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모습은 재수 없기는 해도 한때 빌런의 정점에 있었던 저 악마 소환사가 무능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현성이도 있고….

패턴이 단순하다면 공략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사냥이 그렇지만 저런 타입은 공략 중 실수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완벽주의자를 자처하고 있는 저 정신병자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공략은 무난하게 흘러갈 것이다.

황소마냥 몸을 들이받는 괴물, 보호마법이 순식간에 겹겹이 쌓인다.

마법사들이 외운 보호마법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부서지지만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미지를 대신 받아준 마법은 전사가 녀석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더 버틸 수 있게 만들어준다.

메인 탱커의 몸에 순간적으로 많은 버프가 쌓이고 황소의 몸에는 디버프가 쌓인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공격을 받아낸 탱커의 몸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치유주문의 영향으로 곧바로 몸이 회복된다.

‘쉽지는 않아.’

마법사들이 공격마법을 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선순위라는 게 있었으니까. 보호마법으로 놈의 돌진을 막아내는 것이 첫 번째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다음 주문을 외우는 마법사들, 이후에는 파란의 서브 탱커인 유아영이 투구를 고쳐 쓰고 녀석의 앞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황소가 그녀를 인지한 이후 다시 한번 몸을 옮겨 주먹을 뻗어왔지만 이번에도 똑같이 방어막이 겹겹이 쌓이기 시작했다.

악마 소환사가 오만하게 손가락을 까닥거린다.

그러자 이번에는 공화국의 전사 한 명이 발걸음을 내디딘다.

탱커가 계속해서 회복하고 적을 막아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는 모습.

녀석의 공격을 단 한 번이라도 버텨줄 수 있는 전위들을 계속해서 투입하고 그들에게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마치 여러 명의 투우사들이 소 한 마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필요한 체스 말을 적재적소의 자리로 배치하는 것처럼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녀석의 전술은 아군 병력들을 적 앞으로 내몰고 있었다.

규칙적이고 정리가 되어 있다는 것, 전위들이 부상당하고 난 빈 공간은 암살자로 메운다. 이번에 녀석과 마주한 것은 김예리였다.

‘회피 탱커로 사용하려고 하는 건가.’

악마 소환사가 기대한 것처럼 김예리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계속해서 녀석의 공격을 흘려보내기 시작, 한 번의 실수가 곧바로 게임오버로 이어지는 만큼 그녀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서려 있다.

진청이 손가락을 까닥거릴 때마다 병력, 혹은 개인이 계속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멍청한 황소가 자신의 턴을 의미 없이 소모할 때마다 아군 측은 유의미한 턴을 가져갈 수 있다.

간단하지만 어렵고 정석적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한 턴, 한 턴의 작은 이득을 활용해 계속해서 다른 이득을 챙기는 모습은 지난 공화국전쟁이 생각날 정도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원정대가 진땀을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 악마는 소리를 지르며 미쳐 날뛰고 있었고 아군 병력은 밀려 나가며 전열을 정비하기에 바빴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내 눈에는 저 몬스터가 천천히 늪에 빠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차이점은 있다. 이전과 달랐던 것은 녀석이 휘두를 수 있는 검이 있었다는 것.

녀석이 만들어놓은 진영, 녀석이 아껴놓은 턴, 만들어놓은 작은 이득은 가장 날카로운 검을 위해서 마련되어 있다.

탱커와 마법사의 사이, 전위와 전위의 간격, 병력과 병력 사이에 만들어놓은 길로 김현성이 움직이고 있었다.

녀석이 소비한 한 턴은, 딜러들이 공격할 수 있는 한 턴이 된다.

궁수는 화살을 쏘아 보내고 다른 전위들은 녀석의 주변을 돌며 녀석의 장갑을 두드린다.

김현성 역시 녀석에게 달라붙어 검을 휘두른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김현성 역시 이 상황이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신나기는 했어. 쓸데없이 말이야.’

김현성 같은 근접 검사들에게는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것이 유의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으니까.

굳이 명령을 하달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김현성이 하는 일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들어가 검을 휘두르는 것밖에 없다.

‘재수가 없기는 해.’

오만한 표정, 모든 게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눈빛.

-군사님?

-…….

-군사님.

-무슨 일이지? 지금은 바쁘다. 용건이 있다면 나중에….

-전력 아껴주세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말 그대로예요. 함부로 전력 노출하지 말라고, 메인이벤트 전에 현성이 힘 빼놓지 말라는 소리예요. 바하무트전을 대비할 만한 전력을 남겨놔야 되는 거 알고 있죠? 파란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만 제외하면 바로 전력에서 열외시키세요.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 5분 드릴게.

-그걸 왜 네놈이 마음대로 정하는지 모르겠군. 현장지휘관은 나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지 선택권은 내게….

-내가 책임자니까. 그리고 군사님이 하기 싫다고 해도 내가 먼저 말할 수도 있어요. 여유시간을 드린 건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5분이라도 드린 거니까. 그런 줄 알라고요.

-…….

-정보는 지속적으로 보내세요.

의자 손잡이를 주먹으로 쾅 치는 모습을 보자 이제야 살짝 속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재조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변수야 만들어지겠지만….

‘정 급한 상황이면 김현성을 투입시키든지, 지가 직접 전선에 뛰어들든지 뭐라도 하겠지.’

의자에 앉아서 오만한 척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못할 것이다.

-형? 형?

-알아서 좀 해주세요. 라파엘 님.

-아… 네….

김현성의 전력을 지키는 건 현명한 판단이었다. 생각보다 템플러 사냥이 시간을 더 사용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살려줘어어어!! 죽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면서 약한 척하고 있지만 녀석은 아직까지도 다리를 휘두르며 저항하고 있다.

패턴은 계속해서 뒤바뀐다. 천장을 계속해서 움직이면서 거미줄을 뿌리고, 계속해서 원정대원에게 대미지를 누적시키는 것에 힘을 쏟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박덕구를 비롯한 길드원들을 투입시켰음에도 전황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이쪽도 대미지를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뎌.’

만년 존버 드락타리스는 강하기는 했지만 사제 직군이 몰려 있기도 했으니 결정타를 먹일 수도 없다.

“바하무트 님! 바하무트 니임!”

초조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지만 절로 초조해진다. 공략이 더뎌지면 더뎌질수록 기분이 더러워진다.

이쪽의 눈치를 보고 있는 라파엘은 입 안에 침이 마르는지 계속해서 불안해하고 있는 중, 녀석도 답답할 것이다.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사냥이 잘 풀리지 않고 있으니까.

‘부족해.’

저 거미 가지고 이 정도라면 바하무트는 어떻게 상대할 건데.

준비한 퍼즐이 하나 더 있기는 하지만….

‘템플러 젠은 어디 있지?’

“지원 부탁합니다.”

“라파엘?”

“사제님들. 지원 부탁드립니다!”

사제단 쪽에서 커다란 빛의 창이 생성된 것은 바로 그때, 순식간에 쏘아진 창은 번쩍 하는 소리를 내며 녀석의 외갑에 부딪친다.

“아아아악!”

하는 소리가 들려온 이후에는 곧바로 날개로 몸을 감싼 라파엘이 검을 들고 놈에게 향하기 시작.

회색빛이 순식간에 놈의 몸을 꿰뚫고 콰지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등에서 녹색 체액들이 쏟아져 내린다.

그것 역시 산성으로 되어 있는지 순식간에 온몸에 산성을 뒤집어썼지만 라파엘은 개의치 않고 녀석에게 검격을 쏟아붓기 시작.

차희라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저 친구 마음에 드네.”

‘개판이구만 뭘.’

사제진이 유능하지 않았다면 곧바로 최소 중상이었다.

제대로 된 유효타를 입혔다는 것은 칭찬해 줄 만했지만 저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일을 벌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육체는 녹아내리기와 회복되기를 반복하고 있는 중, 계속해서 치이익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회색빛의 용사는 벼랑 끝에 내몰린 것 마냥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아아아아아악! 아파아! 아파아아!!”

하는 괴성이 들려오는 것은 순식간, 다시 한번 커다란 다리를 쿵쿵거리며 공동을 휘젓고 다니는 녀석은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발악하기 시작했다.

다리로 벽을 마구잡이로 부수며 자신이 탈출하는 루트를 만들려고 하고 있었고….

“놓치지 마! 제길 제기랄!”

거친 말을 내뱉은 라파엘은 뭐가 그리 초조한지 입술을 꽉 깨물며 칼질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누가 봐도 상황이 개판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어디까지나 이점이 이쪽에 있었기 때문에 챙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쾅! 콰아아아아앙!

“개자식들! 개자식들!! 아파아아아아아!!”

더 이상 보는 게 괴로울 정도로 막장으로 향하고 있다.

드락타리스 쪽은 계속해서 신성을 쏘아 보내고 있는 쪽.

도망가는 거미와 라파엘은 의미 없는 술래잡기를 하며 체력을 소모하고 있다.

기껏 막아놓은 방벽을 녀석은 다리로 두들기고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

쿵.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까부터 공포에 질려 발버둥 치기 여념이 없었던 녀석이 이번에는 광소를 터뜨린다.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시이바….’

“바하무트… 님께서… 네놈들을… 켁!”

반대쪽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손이 거미의 목을 틀어잡는다.

“바하무트… 니임… 죄송… 살려….”

파악!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목이 그대로 비틀어지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심장이 쿵쾅쿵쾅거리는 듯한 느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가 들린 이후 벽이 터져 나가고….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뭐야….”

몇몇 인원들은 떨리는 몸을 부여잡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괴물… 괴물….”

‘시바… 시바… 시바….’

차희라가 이빨을 보이는 것이 보인다. 곧바로 뛰쳐나갈 것 같은 불안한 느낌에 곧바로 몸을 비틀거리면서 희라 누나의 품에 안긴 것은 당연지사.

옷깃을 부여잡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모습을 선보일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이 미치광이는 쟤한테 달려들 테니까.

“자기?”

누가 봐도 두려움에 젖어 있는 성자의 모습.

이 현실을 믿고 싶지 않고 싶어 하는 성인의 표정.

“…….”

“누나. 도망….”

“잠깐….”

“희라 누나. 도망… 나 지금….”

“…….”

“도망쳐….”

동시에 굉음이 터져 나왔다.

[우으아아아아아아아!!!!]

수만 년 전 따뜻한 우정을 나눴던 바하무트. 잊을 수 없었던 그 사람이….

지금은… 지금은 비위 상하고, 역겨운… 더러운 괴물이 되어 있었다.

“저… 저 역겨운 괴물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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